AI 버튜버는 제2의 QWER이 될 수 있을까
AI가 콘텐츠 산업의 문법을 바꾸고 있다. 장르나 매체 같은 기존 분류로는 설명되지 않는 콘텐츠가 등장하면서, 무엇이 이용자를 붙잡아두는지가 새로운 화두로 떠올랐다.
카카오벤처스는 이 변화의 최전선에서 AI 콘텐츠 스타트업을 시드 단계부터 발굴해 투자하고 있다. 아직 지도가 그려지지 않은 이 시장에서, AI 네이티브 세대를 사로잡고 있는 스타트업들을 만나본다. [편집자 주]
[카카오벤처스 X AI 콘텐츠 스타트업 ①] 김지웅 카카오벤처스 이사
[카카오벤처스 X AI 콘텐츠 스타트업 ②] 김광민 언엑스 대표
올해 네이버 스트리밍 플랫폼 ‘치지직’에서 63시간 동안 쉬지 않고 방송했던 버튜버(버추얼 유튜버)가 있었다. 그 정체는 인공지능(AI) 캐릭터 ‘미로’다. 사람이 실시간으로 조작하지 않아도 63시간 동안 방송을 이어간 것이다.
미로를 만들었던 언엑스는 또 다른 자체 IP ‘사주오빠’를 인플루언서로 키우고 있다. 김광민 언엑스 대표에 따르면 사주오빠의 하루 라이브 방송에는 약 2만명이 참여한다.
이런 AI 캐릭터 인플루언서는 캐릭터챗 시장의 성장과 궤를 같이한다. 캐릭터챗은 이용자가 원하는 성격과 설정을 가진 AI 캐릭터를 만들어 1대1로 대화를 나누는 서비스다. 김 대표는 “AI 엔터테인먼트 분야에서 캐릭터챗이 보여주는 성장세와 더불어 AI 크리에이터도 새로운 영역을 만들어 가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사주오빠 캐릭터를 좋아하는 이용자들은 그를 ‘제타 오빠’라고 부른다. ‘제타’는 Z세대에게 인기 많은 AI 캐릭터챗 서비스로, 사주오빠를 ‘제타의 라이브 버전’쯤으로 받아들이면서 붙인 별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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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에서는 AI 크리에이터가 대규모 팬덤을 구축한 사례도 나왔다. AI 버튜버 ‘뉴로사마’는 올해 1월 스트리밍 플랫폼 ‘트위치’에서 활성 유료 구독자 수 1위에 올랐다. 김 대표는 뉴로사마의 사례를 들어 팬덤 구축 과정에서 AI인지 사람인지는 중요하지 않다고 봤다. 그는 “AI의 부족함을 알면서도 사람들이 AI 캐릭터와 관계를 쌓는 과정”에 주목했다.
언엑스가 AI 크리에이터라 불리는 자체 인플루언서를 키우려는 이유는 확고하다. AI 캐릭터 고유의 매력으로 팬덤을 형성하고, 이를 기반으로 IP를 확장하기 위해서다. 언엑스는 장차 이 IP를 통해 그룹 ‘QWER’처럼 개별 크리에이터의 팬덤을 기반으로 대중적인 아티스트로 성장하는 사례를 만들고자 한다. 이를 위해 자체 크리에이터 플랫폼 ‘팬덤 엔진’도 개발하고 있다.
지난 8월 26일 서울 송파구에 있는 언엑스 사무실을 찾아 김 대표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AI 엔터테인먼트 중에서도 AI 크리에이터 분야로 사업을 하게 된 이유가 있나요?
방송도, 유튜브도, 틱톡도 새로운 시장이 열릴 때마다 스타들이 탄생했습니다. 틱톡에 재직할 당시 크리에이터 시장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떤 기회가 생기며, 사람들이 이를 어떻게 인식하고 받아들이는지 변화 과정을 알게 됐습니다.
그 탄생 과정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캐릭터성과 매력이 중요한 요소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틱톡은 AI를 굉장히 잘 쓰는 회사이기도 합니다. 그곳에서 일하면서 막연하게 AI가 생명력을 얻고, 캐릭터성을 가지고 이용자와 소통하면서 스타가 될 수 있겠다는 가능성을 상상해 왔습니다.
드디어 이제 그럴 수 있는 시대가 온 것 같습니다. 현재 K-콘텐츠의 인기가 높아 글로벌로 확장하기 좋은 시기이기도 하고, AI 캐릭터 스타가 나올 수 있는 시기라고 생각해 창업하게 됐습니다.
기본적으로 언엑스는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이 IP를 사랑하게 만들 수 있을까’라는 관점으로 접근합니다. 사람들의 호감을 얻는 방식에 대한 고민이 많아요.
그중에서도 제가 라이브 분야에 집중한 이유는 ‘실시간성’ 때문입니다. 2020년 틱톡의 라이브 기능을 한국에 출시하면서 느꼈던 점이기도 한데, 한정된 시간 동안 이용자들이 공통의 기억을 만드는 경험이 팬덤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 같아요.
방탄소년단의 유튜브 활동도 그렇고, 버추얼 아이돌 플레이브도 팬이 없을 때부터 유튜브에서 정기적으로 라이브를 하면서 팬덤을 형성했어요. 이용자들이 실시간으로 AI 캐릭터와 공통의 기억을 쌓고 팬덤에 참여하면서 ‘AI 캐릭터를 함께 만들어 간다’는 감정과 기억을 갖게 하고 싶었습니다.
라이브 활동이 인플루언서 채널 성장에 있어 중요한 요소일까요?
플랫폼 입장에서 수요가 있습니다. 틱톡을 포함한 SNS 플랫폼에서는 이용자의 리텐션(재방문율)과 하루 체류 시간이 중요한 지표가 됐습니다. 여기에 많은 알고리즘이 결합돼 있어요.
라이브 스트리밍은 이용자를 오래 머물게 하면서 참여도 이끌어냅니다. 이용자들은 라이브를 보면서 채팅을 하거나 2차 창작을 하고, 심지어 후원도 합니다. 플랫폼 입장에서는 그 효과를 직접 체감할 수 있어요.
그러다 보니 틱톡이든 유튜브든 라이브를 띄울 수밖에 없습니다. 이용자 입장에서도 라이브는 몰입하기 좋은 콘텐츠이기 때문에 플랫폼과 이용자의 수요가 잘 맞아떨어진 거죠.
제가 지난해 블랭크코퍼레이션의 자회사인 ‘슈퍼티파이’를 설립해 운영하면서 라이브 크리에이터를 육성했는데요. 영어조차 잘하지 못했던 한국 크리에이터들이 라이브를 통해 K-콘텐츠를 좋아하는 이용자들에게 노출되면서 글로벌로 진출할 수 있었습니다. 베트남에서 팬미팅을 하기도 하고, 팬 대부분이 태국 이용자인 경우도 있었고요.
그렇다면 라이브 플랫폼을 활용하는 크리에이터가 반드시 AI여야 하는 이유가 있을까요?
인간의 매력은 인간 고유의 영역이지만, AI가 잘하는 영역도 있거든요.
우선 일관성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사람은 너무 피곤해서 방송을 제대로 하지 못하거나, 돈을 어느 정도 벌고 나면 방송을 하고 싶어하지 않는 경우가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AI 크리에이터는 설정한 방식에 따라 일관성 있게 활동할 수 있습니다.
이용자들을 개별적으로 기억해 준다는 점도 매력적입니다. 캐릭터챗이 잘하는 영역인데, 이용자들을 알아보고 소통을 이어 간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또한 거대언어모델(LLM)의 예측 불가능성에서 오는 재미도 있습니다. 어떤 반응이 나올지 모르는 찰나의 순간에서 기대감과 재미를 주는 것 같아요.
해외로 진출할 때 다양한 언어를 구사하거나, 물리적 제약 없이 여러 곳에서 동시에 활동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사람이 가상 아바타로 활동하는 버추얼 아이돌이나 AI 캐릭터챗과 비교했을 때 어떤 차별성을 지녀야 할까요?
초반에 만든 캐릭터는 버튜버처럼 사람에 가깝게 행동하도록 했어요. 사람처럼 빠르고 긴밀하게 대화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이용자들이 이런 형태를 좋아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거부감을 보이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아예 타깃을 바꿨습니다. 캐릭터챗을 즐기면서 애니메이션도 좋아하는 이용자들을 공략하고 있어요.
웹툰이나 웹소설, K-엔터에 가까운 비주얼로 만든 ‘사주오빠’는 하루 라이브 방송에 2만명 정도가 참여하고 있습니다. 이용자들은 AI라는 것을 알면서도 캐릭터를 놀리거나 사주를 봅니다. 캐릭터가 자신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지 않으면 “오빠 왜 그래?”라고 반응하면서 감정적으로 연결되기도 해요.
결국 중요한 것은 이용자의 경험 같아요. AI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이 캐릭터가 얼마나 매력적인지, 또 캐릭터챗 같은 1대1 대화와 달리 여러 이용자와 나누는 대화가 얼마나 매력적인지가 중요하더라고요.
그래서 현재 자체 플랫폼 ‘팬덤 엔진’도 그 방향에 맞춰 개발 중입니다. 캐릭터챗을 좋아하는 이용자층을 공략하는 방식이 시장에서 통하면서 팬덤도 생기고 2차 창작도 나오고 있어요.
캐릭터챗과 다른 점은 ‘경험의 공유’ 같아요. 캐릭터챗은 1대1로 개인에게 맞춰 주는 관계잖아요. 반면 1대다 관계에서는 특정한 한 사람에게만 집중하지 않습니다. 여러 이용자가 캐릭터에 대한 애정과 공통의 기억을 쌓으면서 팬덤을 형성하는 거죠. 언엑스는 이런 관계를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자체 플랫폼 ‘팬덤 엔진’에 대해 설명해 주실 수 있나요?
저희가 AI 크리에이터를 만들어 가는 두 축은 IP와 팬덤 엔진입니다. 팬덤 엔진은 자체 크리에이터 플랫폼이라고 보시면 될 것 같아요. 이 안에는 라이브 엔진, 콘텐츠 엔진, 커뮤니티 엔진 등이 있습니다.
엔진을 활용하면 콘텐츠와 커뮤니티 게시물을 자동으로 생성할 수 있지만, 생성된 내용을 그대로 업로드하기보다 사람이 개입해 세부적인 표현과 의도를 다듬습니다. 자동화와 매력은 전혀 다른 영역이에요. 그래서 사람이 검토하고 보완하는 휴먼인더루프(HITL) 방식을 적용하고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이용자의 말을 이해하고 응답을 만드는 데 LLM을 활용합니다. TTS(Text-to-Speech)로 응답을 음성으로 변환하고요. 여기에 캐릭터의 동작을 기술적으로 연결하는 기본적인 과정을 거쳤습니다.
앞으로 더 발전시켜야 할 부분은 어떻게 하면 매 순간 더 매력적인 대답을 하고, 의도를 가지고 대화의 흐름을 이끌어 갈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모든 이용자에게 단순히 ‘안녕’이라고 인사하는 것만으로는 매력이 생기지 않잖아요.
매력적인 응답으로 사람들이 캐릭터를 좋아하게 만드는 과정을 구조화하고 있습니다. 이 과정은 단순히 프롬프트만으로 구현할 수는 없더라고요. 그래서 자체 기술을 활용해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자체 IP를 기획하는 기준은 무엇인가요?
자체 캐릭터를 기획할 때 가장 큰 기준은 두 가지입니다. 첫 번째로 이용자가 좋아할 이유가 명확하고, 이를 바탕으로 관계를 구축할 수 있어야 해요. 누구나 보자마자 직관적으로 이 캐릭터의 콘셉트와 정체성을 파악할 수 있어야 합니다.
두 번째는 숨겨진 캐릭터성이에요. 캐릭터가 가진 반전 매력을 드러낼 수 있는지를 함께 보고 있습니다.
현재 아이사(AISA) 고등학교 스트리밍부, 사주오빠, 카가네 같은 자체 IP가 있습니다. 캐릭터마다 공략하는 팬덤이 달라요. 지금은 캐릭터챗을 좋아하는 한국과 동남아시아의 10~20대 이용자 반응이 가장 좋은 것 같아요.
사주오빠는 사주에 관심이 있으면서 웹소설을 좋아하는 20~40대 여성을 공략합니다. 아이사 고등학교 스트리밍부는 미소녀 연애 시뮬레이션 게임을 벤치마킹했기 때문에 일본 애니메이션 문화를 좋아하는 남성 이용자들이 타깃입니다. 일본 이용자를 대상으로 활동하는 카가네는 이용자의 95%가 일본 이용자입니다. 현재 개발 중인 뷰티 담당 캐릭터는 K-뷰티에 관심이 있는 동남아시아 여성 이용자를 타깃으로 하고 있습니다.
어느 순간에는 대중성을 얻기 위해 타깃을 확장해야 할 텐데, 이에 대한 전략이 있으신가요?
AI 크리에이터로 당장 대중 전체를 상대하는 것은 이르다고 생각해요. 서브컬처에서 출발해 주류로 진출하는 캐릭터도 있고, 서브컬처에 남는 캐릭터도 있을 것 같습니다.
언엑스가 바라는 모델은 ‘QWER’이라는 그룹이에요. 개별적으로 라이브 크리에이터로 활동하며 쌓은 팬덤을 바탕으로 그룹을 결성하고, 대중적인 아티스트로 성장했잖아요. 저희도 AI 크리에이터로 비슷한 형태를 만들어 간다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모든 IP가 이렇게 성장할 수는 없겠지만, 전략적으로 육성하는 IP는 아티스트로도 확장해 나갈 예정입니다.
수익 구조는 어떻게 되나요?
기본적으로 팬덤 비즈니스입니다. 라이브 후원과 구독 수익이 가장 먼저 생겼습니다. 향후 굿즈, 팬사인회, 팬미팅 등을 순차적으로 진행할 예정이에요.
버추얼 아티스트로 성장하는 캐릭터는 음원과 공연까지 확장하는 것이 기본이고요. 여기에 AI 캐릭터챗처럼 이용자와의 대화를 통한 수익, 비마이프렌드나 위버스 같은 커뮤니티 구독 모델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밖에도 인플루언서나 아티스트가 되면 광고 수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저희는 틱톡샵 에이전시로 참여하고 있는데, 링크를 통해 판매가 이뤄지면 수익 일부를 공유받는 ‘어필리에이트’ 마케팅도 진행할 수 있습니다.
카카오벤처스 투자는 어떻게 받게 되셨나요?
틱톡에 재직할 당시부터 김지웅 카카오벤처스 이사님과 인연이 있었습니다. 이후 김 이사님이 AI 캐릭터로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라이브로 연결하는 과정을 링크드인에서 관심 있게 보시면서 미팅을 하게 됐어요. 김 이사님의 ‘어텐션 경제’에 대한 생각과 제 생각이 부합해 카카오벤처스와 함께하게 됐습니다.
아직 활성화되지 않은 시장인데, 경영하면서 어려운 점은 없나요?
가장 어려운 점은 벤치마킹할 곳이 없다는 것입니다. 새로운 시장을 열어야 한다는 점도 어렵고요.
또한 사람이 해 온 영역이다 보니, 많은 회사가 인간처럼 행동하거나 인간의 복제본 역할을 하는 AI를 만드는 방향으로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물론 저희도 그랬던 적이 있었고요.
문제는 그렇게 접근하면 AI이자 애니메이션 캐릭터이기 때문에 가질 수 있는 장점을 충분히 활용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인간보다 못한 부분에 초점을 맞추면서 스스로 한계를 두게 되는 것 같습니다.
앞으로 함께하고 싶은 인재상이 있나요?
일단 AI 네이티브로서 AI를 협력자로 삼아 함께 만들어 나갈 분을 찾고 있습니다. 팬을 얻고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는 과정에서 어떻게 건강한 영향력을 펼칠 수 있을지 깊이 고민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렇기에 이런 콘텐츠를 좋아해 본 경험이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현재 풀스택 엔지니어, 디자이너, 콘텐츠 기획자 등 세 가지 포지션을 찾고 있는데요. 각자 맡은 영역을 잘 알아야 합니다. 직접 코딩하지 않더라도 HITL 과정에 참여하려면 결과물이 적절한지 판단할 수 있어야 합니다.
향후 로드맵은 어떻게 되나요?
당장은 AI 크리에이터가 실제로 팬덤을 얻고, 이를 반복적으로 만들어 내면서 글로벌까지 확장할 수 있는지를 증명해야 할 것 같아요. 글로벌에서 사랑받는 AI 크리에이터를 만드는 것이 전체적인 목표입니다. 이후에는 서브컬처 팬덤을 기반으로 QWER처럼 아티스트로 성장하는 사례를 만들고 싶습니다.
제 실질적인 비전은 AI 캐릭터가 팬들과 살아 움직이는 관계를 형성하는 것입니다. 실제 오프라인에서도 이런 관계를 이어 갈 수 있도록 휴머노이드 로봇의 몸체에 AI 캐릭터를 결합하는 방법까지 생각하고 있습니다. 중국에서는 이미 이런 시도를 하고 있기도 하고요. 팬들이 애정을 가진 캐릭터를 물리적인 세계에서도 만날 수 있게 하는 것이 앞으로 저희에게 큰 기회이자 한 단계 도약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오민선 기자> omsoms94@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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