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자 전환한 쿠팡, 아직도 ‘계획된 적자’?
김범석 쿠팡Inc(이하 쿠팡) 의장은 실적 컨퍼런스 콜 때마다 숫자에 다소 인색한 편입니다. 증권가에서 가이던스를 달라 요청하더라도, “고객 경험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식의 이야기를 주로 하지요.
약 3300만명 회원 개인정보 유출 사태 여파가 모두 반영된 1분기 매출이 공개된 5일(현지시간) 실적 컨퍼런스 콜에서, 김범석 의장은 조금 달랐습니다. 시작부터 숫자를 꺼내드는 동시에, 이번 분기 적자 원인에 대해 긴 시간을 할애해 설명했습니다.
김범석 의장이 이렇게까지 시간을 할애해 지표와 원인을 설명한 데에는 올 1분기 실적 자체가 처참했기 때문입니다. 매분기 20~30% 이상 연결기준 매출 성장세를 기록했던 쿠팡의 올 1분기 매출 성장률은 고작 8%입니다. 게다가 분기 영업손실은 약 3500억원으로 적자 전환했습니다.
하지만 쿠팡은 언제나 그렇듯이 ‘예정대로’ 나간다는 계획입니다. 그렇다면 이번 분기 성적표와 쿠팡이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이유를 살펴봅니다.
4년 3개월 만에 최대 적자…사상 최초 ‘평균 이하’ 성장세
쿠팡의 올해 1분기 연결기준 실적에서 두드러지는 건, 적자와 성장세입니다. 쿠팡이 물류센터 운영과 구축을 중심으로 한 투자 기조를 유지하면서, 매출 성장세가 줄어듦에 따라 영업적자가 두드러졌습니다.
사실 쿠팡 입장에서는 오랜만에 받아들이는 적자 성적표입니다. 창업 이래 내내 적자를 내던 쿠팡은 2022년 3분기 처음으로 영업흑자를 기록하면서, ‘돈 버는 회사’의 궤도에 올랐기 때문입니다.
이후 흑자 기조를 이어오던 쿠팡에 개인정보 유출 사태의 여파가 온전히 반영된 올 1분기는 다릅니다. 쿠팡의 올해 1분기 연결기준 영업손실은 3545억원(2억4200만달러, 평균 분기 환율 1465.16원), 당기순손실은 3897억원(2억6600만달러)로 적자 전환했습니다.
표면적으로 맨 앞에 보이는 적자보다 더욱 두드러지는 건 매출 성장세입니다. 쿠팡은 상장 이후 4년 내내 매출 성장률 두 자릿수를 기록해온 기업입니다. 아무리 낮아져도 20%대를 유지할 만큼 고성장하는 모습을 보였는데요.
그러나 개인정보 유출 사태가 이 같은 성장세를 확 꺾었습니다. 쿠팡의 개인정보 유출이 발표된 지난해 4분기 매출 성장률은 14%로 하락했으며, 이번 분기에는 8%를 기록했습니다. 국가데이터처의 ‘온라인쇼핑동향’ 조사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온라인쇼핑 거래액은 전년 동기 대비 9.2% 성장했는데, 같은 기간 간 쿠팡이 8% 성장세를 기록한 겁니다. 쿠팡이 성장의 궤도에 오른 이후 시장 평균 이하 성장률을 보인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구체적인 지표는 다음과 같습니다.

이 중 주목할 만한 건 쿠팡의 핵심 사업인 로켓배송, 로켓그로스 등을 포함한 프로덕트 커머스 부문과 대만, 한국과 일본 음식배달, 파페치 등을 포함한 신성장 사업 부문의 매출 성장률 격차가 매우 크다는 사실입니다.
개인정보 유출 사태가 벌어진 쿠팡 본체를 중심으로 이용자들이 이탈했기 때문으로 풀이됩니다. 프로덕트 커머스 부문의 매출 성장률은 5%인 반면, 신성장 사업 부문은 28%를 기록했습니다. 개인정보 유출이 발표되기 직전 분기인 지난해 3분기 프로덕트 커머스 부문의 매출 성장률은 18%, 신성장 사업 부문은 31%입니다.
이용자 또한 계속해 감소하고 있습니다. 이번 분기 프로덕트 커머스 부문에서 분기에 한 번이라도 상품을 구매한 적이 있는 활성고객 수는 2390만명으로, 전년 동기 대비2% 증가했지만 직전 분기 대비 3% 감소했습니다.
프로덕트 커머스 부문의 매출 성장률이 낮아진 건 쿠팡이 1월부터 지급하기 시작한 보상금 성격의 쿠폰도 일부 반영됐습니다. 쿠팡은 쿠폰을 판관비로 설정, 매출에서 차감하는 방식을 취했습니다. 이 때문에 매출 성장세가 일부 둔화된 것으로 풀이됩니다.
쿠팡은 다시 ‘계획된 적자’를 택했다
하지만 적자의 원인이 구매보상금 뿐만은 아닙니다, 이번 1분기 적자에는 물류 중심의 운영을 위한 투자를 고려한 전략적 선택도 반영됐습니다. 과거 쿠팡은 규모의 경제를 일으키기 위해 선제적인 투자를 단행하며 ‘계획된 적자’를 내세웠는데요. 이번 적자는 결이 다릅니다. 개인정보 유출 사태로 인한 소비자의 이탈을 ‘일시적인 수요 교란’으로 판단하고, 버텨내는 과정에서 나타난 적자입니다.
첫 번째는 유출 사태 대응으로 발행한 고객 바우처입니다. 일회성 성격이며, 바우처 대부분은 1분기에 집행되고, 2분기 초까지 이어집니다.
두 번째는 저희 물류 네트워크상에 일시적으로 나타난 비효율입니다. 쿠팡의 캐파(capacity) 구축과 발주 계약은 모두 사전에 이뤄집니다. 캐파와 발주 계약의 규모는 안정적이고 예측 가능한 고객 패턴을 기반으로 저희가 전망한 수요에 맞춰 결정됩니다.
저희가 효율적으로 비용을 관리하는 방식이며, 유출 사태 이전까지 저희가 걸어온 길입니다. 이런 종류의 외부 사건이 그 흐름을 바꾸면, 실제 수요가 미리 정해 두었던 규모에 못 미치게 되고, 저희는 그 기간 동안 확보해 둔 미활용 캐파와 재고의 비용을 부담합니다. 수요가 원래의 예측 가능한 흐름으로 돌아오면, 캐파와 공급망이 다시 균형을 찾으면서 비효율이 점차 해소될 것으로 기대합니다.
김범석 쿠팡Inc 의장
쿠팡은 물류센터를 기반으로 한 고정비 지출이 매우 높은 기업입니다. 김범석 의장은 “비용 기반의 의미 있는 부분이 고정비이며 사전에 구축된다”며 “그 어느 것도 한 분기 단위의 공지로 이뤄지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김 의장이 예시로 든 건 풀필먼트 센터, 물류 네트워크, 파트너와 맺은 직매입 등 공급망 계약, 그리고 인력 채용 등입니다.
결국 쿠팡의 사업 운영을 위한 운영비용 규모가 매우 크기 때문에, 개인정보 유출로 인한 이용자 이탈 및 매출 감소세를 마주했던 1분기 수익성이 급격히 악화됐다는 게 김범석 의장의 설명입니다.
새 풀필먼트 센터는 계획하고, 짓고, 가동하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립니다. 발주 계약도 긴 리드타임을 두고 협상되며, 채용과 교육 등 인력 관련 업무도 실제로 필요해지는 시점보다 훨씬 앞서 진행됩니다.
저희는 이 모든 걸 전망된 수요 곡선에 맞춰 정합니다. 즉, 현재 사업을 바탕으로, 분기 단위, 어떤 경우에는 수년 뒤의 고객 수요가 어떠할 것이라고 저희가 예상하는 모습에 맞춰 규모를 정한다는 의미입니다.
실제 수요가 그 곡선을 따라가면, 고정비 기반 시스템은 저희가 계획한 가동률(utilization)에 맞춰 돌아가고, 서비스 제공 비용(cost-to-serve)은 원래 모습대로 나타납니다. 그것이 저희가 시간이 흐르면서 일관되게 마진을 늘려 온 방식입니다.
외부 사건이 그 곡선을 일시적으로 교란하면, 수요는 그 비용들이 상정해 두었던 규모에 못 미치게 됩니다. 풀필먼트 센터와 재고 계약도 이전과 같고, 인건비 또한 계속 지출되지만, 실제로 판매되는 물량은 더 적습니다. 따라서 그 비용들의 가동률이 일시적으로 목표치 아래로 내려가고, 목표치와 현실 간의 격차인 미가동(under-utilization)이 매출총이익률과 조정 EBITDA에 직접 반영됩니다.
김범석 쿠팡Inc 의장
물론 이같은 선택을 마주했을 때 쿠팡이 고를 수 있는 선택지는 두 가지입니다만, 쿠팡은 그대로 가는 방향을 택했습니다. 김범석 의장은 “첫 번째는 단기에 극적인 변화를 가해 어떤 단기 숫자를 맞추려 시도하는 것”이라며, “두 번째 선택지는, 그 일시적인 미가동을 흡수하는 것으로 성장이 회복되면 수요가 비용 기반을 다시 따라잡고 가동률이 목표치로 되돌아간다는 것을 알고 있는 상태”라고 설명했습니다.
이 중 쿠팡이 선택한 건 두 번째, 즉 일시적인 적자를 감수하고서라도 나아가는 방향입니다. 쿠팡은 자사가 운영해온 가치 기반의 서비스에 고객이 돌아올 것이라는 판단 아래 계속해서 나아간다는 계획입니다.
저희의 전반적인 자세는, 그동안 구축한 비용 기반 시스템이 쿠팡의 경로에 맞는 적절한 것이었으며, 일시적인 변동(temporary dislocation) 때문에 이를 해체하지는 않겠다는 겁니다.
수요가 회복되면, 가동률이 다시 균형을 찾고 마진 압박은 점차 해소되어 갑니다. 그것이 저희가 내년부터 연간 마진을 다시 늘릴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해 주는 메커니즘입니다.
김범석 쿠팡Inc 의장
“이탈한 멤버십 이용자, 80% 회복됐다”
그렇다면 김범석 의장의 이와 같은 이야기는, 단순히 근거 없는 자신감일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이날 진행된 컨퍼런스 콜은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 사태 이후, 두 번째이자 여파가 온전히 반영된 첫 분기 컨퍼런스콜입니다. 김범석 의장은 컨퍼런스 콜 시작부터 “고객 집착(customer obsession), 운영의 탁월함(operational excellence), 그리고 자본 배분에 있어서의 규율(discipline)은 창립 이래 저희를 이끌어 온 원칙이며, 이 시기를 통과하는 동안에도 동일하게 저희를 이끌고 있는 원칙”이라며, 자사의 기조를 강조했습니다.
이미 쿠팡은 회복세를 느끼고 있습니다. 이날 경영진의 발언은 ‘회복’에 온전히 초점이 맞춰졌습니다. 김범석 의장은 올 1분기가 유출 사태 여파가 온전히 반영된 분기라는 점을 짚으며, 1월 최저점을 찍은 후 재반등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1월은 저희 프로덕트 커머스 매출 성장률의 저점이었습니다. 그 이후 매월 전년 동기 대비 성장률이 개선되어 왔으며, 그 개선 속도는 2월과 3월을 거치며 더욱 강해졌습니다.
김범석 쿠팡Inc 의장
특히 이들이 강조한 건 쿠팡 플라이휠의 핵심인 멤버십 회원 수입니다. 거랍 아난드 쿠팡 CFO는 “올해 4월 말을 기준으로, 개인정보 유출 사태로 인한 이탈분의 80%를 회복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탈했던 고객들 중에서도 다수가 돌아와서, 떠나기 전 수준의 지출을 회복하고 있으며, 지금은 그 위에서 다시 소비를 늘려가고 있습니다. 유출 사태를 거치며 남아 있던 멤버십 회원들과 강력한 신규 가입의 조합을 통해 4월 말 기준 개인정보 유출 사태 후 와우 멤버십 회원 감소분의 약 80%를 만회했습니다.
김범석 쿠팡Inc 의장
올 한해 회복세가 계속될 것이라는 게 경영진의 판단입니다. 아난드 CFO는 “(2분기) 연결기준 원화 매출 성장률은 9~10%를 예상한다”며, “정보 유출 사태의 영향이 줄어들면서 올 한 해 동안 탑라인의 성장률이 계속 개선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습니다.
대만과 일본, 계속해 크고 있다.
쿠팡의 또 다른 성장축인 신성장 사업 부문 또한 계속해 성장하고 있습니다. 김범석 의장은 25%에 달하는 신성장 부문의 성장률에 대해 “대만에서의 초고성장률(hyper-growth rate)과, 쿠팡이츠(Eats) 및 로켓나우 재팬(Rocket Now in Japan)에서의 지속적인 높은 성장률에 의해 견인됐다”고 했습니다.
이미 쿠팡은 일본과 대만에 실핏줄과 같은 영업망을 까는 데에 성공했습니다. 지난해만 해도 대만 현지에 247억5000만 대만달러를 투자한 쿠팡은 올해 3월 현지 4번째 물류센터를 완공했습니다. 또 자체 배송의 비중을 늘려가는 등 한국에서의 사업 모델을 현지에 그대로 이식하고 있습니다.
쿠팡의 계획이 그대로 진행되고 있는 겁니다. 기존 이커머스 업계 관계자들은 쿠팡이 현지 대부분의 인구가 집중된 북서부와 남서부 지역을 공략할 것으로 전망했는데요. 처음 지은 3개의 물류센터는 북서부, 그리고 4번째 물류센터는 남서부에 위치했습니다.
로켓나우 또한 빠르게 성장하고 있습니다. 로켓나우는 지난해 1월 출시 이후 전국으로 서비스 지역을 확대했는데요. 주요 수도권 지역을 포함해 전국 곳곳으로 확장하는 모양새입니다.
올해 쿠팡의 기조는 크게 본진의 회복, 그리고 해외 성장 두 가지로 정리됩니다. 한국에서는 이용자를 다시 끌어들이면서 성장하는 데에 집중해야 하고, 해외에서는 국내 사업에서 검증한 사업 모델 이식을 마무리하고 숫자를 끌어올리는 과정에 있습니다. 결국 두 박자가 모두 맞아떨어진다면 쿠팡의 성장세는 계속 될텐데요. 개인정보 유출로 인한 과징금 등 아직까지는 개인정보 유출 사태의 후폭풍이 마무리되지는 않은 상황입니다. 올해를 더욱 더 지켜보아야 할 일입니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성아인 기자> aing8@byline.network




세상 밝게 웃는 모습 정말 꼴보기 싫으니 어서 망했으면 좋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