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산적금융 대전환③] 혁신을 가로막는 법적·제도적 과제는 무엇인가
돈이 돈을 버는 시대는 끝나야 한다. 정부가 꺼내든 ‘생산적금융’이라는 화두는 그 선언에 가깝다. 한국 금융은 언젠가부터 부동산 담보 대출과 가계 신용으로 몸집을 키워왔다. 금융권 입장에서는 안전하고, 수익도 났지만, 그 돈이 경제를 성장시켰느냐는 질문 앞에서는 답이 궁색해진다.
정부는 방향을 틀겠다고 했다. 금융이 첨단산업과 벤처, 소상공인 같은 생산적 활동에 흘러들어야 경제가 다시 뛴다는 논리다. 금융사들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바이라인네트워크는 [생산적금융 대전환] 기획을 통해 생산적 금융이 무엇인지, 각 금융사가 어떻게 응답하고 있는지를 들여다본다.[편집자주]
[생산적금융 대전환①] 왜 지금, 금융의 방향을 바꿔야 하나
[생산적금융 대전환②] 빌려주는 금융에서 키우는 금융으로
“은행은 단순한 예금·대출 기관이 아니라 혁신을 가능하게 하는 사회적 장치입니다. 아이디어의 미래 가치를 현재의 구매력으로 전환하는데요. 이는 생산적금융의 뿌리입니다.”
16일 김자봉 은행법학회 회장은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생산적금융, 포용금융과 공정금융의 법·경제적 과제’를 주제로 한 공동춘계학술대회에서 이같이 밝혔다.
현재 한국의 금융 현실은 일반금융은 과잉돼 있지만 혁신금융은 과소돼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일반금융이 과잉된 이유로는 담보 중심의 ‘부동산 금융 구조’가 주요 원인으로 지목된다. 금융이 성장성과 기술이 아닌 담보와 안정성에 집중되면서 자금이 생산적 영역으로 흐르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혁신금융 생태계 역시 제대로 형성되지 못한 상황이다. 2024년 기준 국내 비상장 법인의 주식 등록 비율은 0.65%에 불과하다. 이에 따라 시장은 정보 비대칭성에 심각하게 노출돼 있다는 평가다. 기업 정보가 충분히 공개되지 않으면서 투자 판단의 기준 자체가 취약해지는 구조다.
혁신금융 생태계에 필수적인 기관투자자의 역할도 미흡하다. 국민연금의 벤처캐피탈(VC) 투자 비중은 전체 자산운용의 0.014% 수준에 그친다. 이는 전체 운용 자산 대비 벤처투자 비중이 극히 미미한 수준에 머물러 있음을 의미한다. 기업의 스케일업(성장 확대)을 위한 은행의 벤처투자 역시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평가다.
생산적금융 활성화를 위한 쟁점은
향후 생산적금융으로의 활성화를 위해서는 몇 가지 핵심 쟁점이 제기된다. 우선 국민성장펀드가 초기, 중기, 후기 등 전 단계에 걸쳐 개입해 기업 스케일업을 유도할 수 있을지가 중요한 과제로 꼽힌다. 단기적 효율성을 위해서는 스케일업 단계, 장기적 성장을 위해서는 초기, 금융 생태계 전반의 구축을 위해서는 전 단계에 개입돼야 한다는 분석이다. 국민성장펀드는 5년간 약 500조원에 달하는 투자 수요에 대응하고, 첨단산업 육성을 지원하기 위해 조성되는 대형 자금 플랫폼이다.
이어 프리시드(초기 단계 투자) 단계에서 개념검증을 수행할 공적 역할을 어떻게 설계할지도 핵심 과제로 꼽힌다. 이는 기술의 사업화 가능성을 입증하기 전 단계에서는 민간 자금 유입이 어려워 초기 투자 공백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한 새로운 기관을 설립할지, 아니면 기존 연구기관을 활용할지에 대한 정책적 판단이 필요하다.
또한 벤처캐피털(VC)의 지분투자와 은행의 벤처대출이 분절적으로 이뤄지면서 스타트업에 대한 자금 공급이 단계별로 끊기는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이에 따라 투자와 대출이 연계돼 기업 성장 단계에 맞춰 자금이 이어질 수 있는 구조를 마련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생산적금융을 위한 법적·제도적 과제는
생산적금융 생태계 구축을 위해서는 초기기술 개념검증, 벤처기업 정보 공시 확대, 기관투자자 평가 방식 등 제도 전반의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우선 정부가 초기 기술에 대한 개념검증(PoC)을 직접 수행하는 ‘미국 국방고등연구계획국(DARPA)형 기관’ 도입 필요성이 강조됐다. 다르파(DARPA)는 고위험·고수익 기술에 대해 정부가 초기 단계부터 과감하게 투자하고, 프로젝트 매니저(PM)에게 권한을 부여해 연구개발과 사업화를 주도하는 모델로 알려져 있다. 특히 실패를 용인하는 제도적 기반을 통해 혁신 기술을 발굴해 온 점이 특징이다.
이와 함께 벤처기업의 정보 공시 확대도 핵심 과제로 꼽힌다. 현재와 같이 주식 발행 이후에도 등록·공시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경우 정보 비대칭성으로 인해 기관투자자의 벤처 출자가 제한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반면 미국은 디지털화와 제3자 검증을 통해 신뢰 기반 생태계를 구축하며 세계 최대 비상장주식 자본시장으로 자리 잡고 있다.
기관투자자 기반 확대를 위한 제도 개선 필요성도 제기된다. 초기 연구개발(R&D) 단계 벤처기업에 투자하는 벤처캐피털(VC) 펀드에 출자하는 기관투자자에 대해 보다 합리적인 평가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국민연금법 제102조(기금운용원칙)의 수익성과 안정성 기준은 유지하되, 벤처투자에 대해서는 투자 의사결정 과정은 매년 평가하고 성과는 5~10년 장기적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특히 현재 0.014% 수준에 머물러 있는 국민연금의 벤처투자 비중을 해외 수준인 1~2%까지 확대할 경우, 벤처투자 시장의 모태펀드 의존도도 완화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금융 규제 역시 중요한 개선 과제로 지목된다. 현재는 벤처투자에 대해 높은 위험가중치가 적용되면서 금융회사들이 투자를 기피하는 구조가 형성돼 있다. 특히 정보 공시가 미흡한 경우 위험가중치가 최대 수준으로 적용되면서 벤처캐피털 투자뿐 아니라 외부 출자금까지 모두 부담으로 반영되는 점이 문제로 지적된다.
이 같은 규제 환경은 금융그룹이 보유한 벤처캐피털의 투자 확대를 제약하는 요인으로도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공시 체계와 위험가중치 규정이 맞물리며 투자 규모가 제한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아울러 인수합병(M&A) 시장 활성화를 위한 제도 개선 필요성도 제기된다. 비상장 주식을 매각할 때 세제 부담을 완화하거나, 초기 기업 지분을 5년 이상 보유한 뒤 매각할 경우 양도차익에 대한 과세를 면제하는 등의 지원이 필요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이수민 기자>Lsm@byline.network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