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산적금융 대전환①] 왜 지금, 금융의 방향을 바꿔야 하나
돈이 돈을 버는 시대는 끝나야 한다. 정부가 꺼내든 ‘생산적금융’이라는 화두는 그 선언에 가깝다. 한국 금융은 언젠가부터 부동산 담보 대출과 가계 신용으로 몸집을 키워왔다. 금융권 입장에서는 안전하고, 수익도 났지만, 그 돈이 경제를 성장시켰느냐는 질문 앞에서는 답이 궁색해진다.
정부는 방향을 틀겠다고 했다. 금융이 첨단산업과 벤처, 소상공인 같은 생산적 활동에 흘러들어야 경제가 다시 뛴다는 논리다. 금융사들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바이라인네트워크는 [생산적금융 대전환] 기획을 통해 생산적 금융이 무엇인지, 각 금융사가 어떻게 응답하고 있는지를 들여다본다.[편집자주]
“시중 자금이 비생산적 영역에서 생산적 영역으로 유입되어 경제의 선순환 구조가 복원될 수 있도록 모든 노력을 다하겠습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취임 30일 기자회견에서 꺼낸 말이다. 발언의 배경은 간단하다. 금융의 역할이 경제 성장과 무관한 곳으로 흘러왔다는 진단이다.
실제로 10개 금융지주는 지난해 26조7000억원의 순이익을 거뒀다. 전년보다 12.4% 늘어난 역대급 실적이다. 같은 기간 부동산 부문에 공급된 금융권 자금은 4137조원으로, GDP 대비 비중이 162%에 달한다. 금융사는 돈을 벌고 있지만, 돈은 경제 성장과 무관한 곳으로 흘러왔다는 뜻이다. 금융은 경제의 혈관이다. 그 혈관이 10년 넘게 부동산으로만 피를 보내왔다. 대한민국의 미래 경제성장을 이끌 첨단산업과 벤처기업엔 피를 공급하지 않았다.
정부의 생산적 금융 정책 기조는 이 구조를 바꾸겠다는 선언이다.
생산적 금융은 금융이 부동산·가계대출 등 비생산적 부문에서 벗어나, 경제의 지속가능한 성장과 생산성 향상에 기여하는 분야로 자금을 선별해 공급하는 것을 의미한다.
즉 첨단산업, 벤처·혁신기업, 지역 등 경제성장에 기여할 수 있는 영역에 금융자원을 투입하는 것이다. 반대로 부동산과 가계대출 등 특정 자산에 금융이 과도하게 집중되는 구조는 ‘비생산적 금융’으로 지적된다. 이러한 개념이 등장한 배경에는 한국 금융 구조의 쏠림 현상이 자리한다.
금융감독원이 지난 9일 발표한 ‘2025년 금융지주회사 경영실적’에 따르면, KB·신한·하나·우리·농협·iM·BNK·JB·한투·메리츠 등 10개 금융지주의 지난해 연결당기순이익은 26조7000억원으로, 전년(23조7000억원) 대비 3조원(12.4%) 증가했다.
최근 9년간 가계 자산의 64%가 부동산에 집중되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52.9%)을 크게 웃돌았다. 부동산 부문에 공급된 금융권 자금은 약 4137조원으로, 국내총생산(GDP) 대비 비중도 2015년 말 111%에서 2024년 말 162%로 확대됐다.
기업 자금조달 구조 역시 은행 대출 의존도가 높아지는 방향으로 변화했다. 기업 자금 중 대출 비중은 2015년 말 24.2%에서 2024년 말 29.7%로 증가했다.
이처럼 금융권 수익은 확대되는 반면 자금은 부동산과 대출 중심으로 쏠리는 구조가 지속되면서, 금융사들이 리스크를 회피한 채 담보대출 중심의 안정적인 수익을 추구해 왔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아울러 이러한 구조가 ▲성장동력 저하 ▲수도권과 지방 간 격차 확대 ▲가계부채 증가에 따른 소비 위축 등 부작용으로 이어졌다는 지적도 함께 나온다.
이에 따라 지난해 시중 자금 흐름을 생산적 영역으로 전환하기 위한 금융 대전환이 추진됐다.
금융당국 ‘3대 전환 9대 과제’로 구조 개편
당국은 ‘금융 대전환 회의’를 통해 생산적 금융으로의 전환을 본격화하고 있다. 정책의 핵심은 ‘3대 전환 9대 과제’ 추진이다.
우선 정책금융이 시중 자금의 방향을 선도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정책금융과 공적기금이 첨단·벤처·지역투자를 이끄는 구조를 구축하는 데 방점이 찍혀 있다.
국민성장펀드를 활용해 미래 전략산업에 150조원 이상을 집중 투자할 방침이다. 이는 민관이 공동으로 첨단전략산업 생태계 전반을 지원하는 대규모 프로젝트다. 가령 원천기술을 보유한 스타트업에 대해 지분 및 후순위 투자를 지원하는 식이다.
정책금융 측면에서는 부동산 금융 관련 공적 보증을 축소하고 기술금융을 강화한다. 이는 자금 흐름을 부동산에서 기술·산업 중심으로 전환하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이어 장기투자에 적합한 공적기금의 벤처투자를 확대한다. 투자 지분을 중간에 거래할 수 있는 세컨더리 시장을 조성하고, 기술 수요가 있는 기업 중심의 인수합병(M&A)과 기업주도형 벤처캐피털(CVC) 활성화를 추진한다. 또한 성장 단계 기업에 대규모 자금을 공급하는 민관합동 스케일업 펀드도 확충한다.
또한 맞춤형 지역 정책금융을 확대하고, 지역 기반의 에너지 전환도 함께 지원한다. 정책금융과 지방 재정, 민간자본을 결합한 ‘지역특화 자금 공급’ 모델을 확산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둘째는 감독 체계 개선을 통해 금융회사의 생산적 금융 역할을 강화하는 데 있다. 은행과 보험 등 업권별 특성에 맞춰 역할을 재정립하고, 생산적 자금 공급을 유도하는 한편 부동산 쏠림을 완화하는 방향으로 규제를 정비한다.
가령 은행과 보험사가 벤처기업·정책펀드 등 생산적 영역에 보다 적극적으로 자금을 공급할 수 있도록 자본 및 운용 규제를 개선한다. 벤처기업 투자 시 은행이 해당 자산에 대해 부담해야 하는 자본 수준을 결정하는 위험가중치(RWA)를 낮춰 자금 공급 여력을 높이는 방식이 대표적이다. 또한 부동산 금융에 대해서는 건전성 규제를 강화하는 방향이 검토된다.
마지막 목표 과제는 자본시장 활성화다. 초기 창업부터 중기 성장, 후기 상장에 이르기까지 기업이 단계별로 원활히 자금을 조달하고, 국민이 투자 수익을 공유하는 선순환 구조를 구축하는 데 목적이 있다.
이를 위해 초기 창업기업과 중기 성장기업의 자본시장 자금조달 수단을 확대한다. 가령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이 증권화를 통해 자금을 조달할 수 있도록 토큰증권(STO)을 제도화한다. 또한 벤처투자 확대를 위해 일반 투자자의 자금을 모아 성장 단계 기업에 투자하는 기업성장집합투자기구(BDC) 도입과 세제 혜택 부여도 검토 중이다. 자본시장 참여자의 모험자본 공급 기능 역시 강화한다.
향후 생산적 금융 정책은 국내 경제 회복과 성장 모멘텀 확보에 핵심 역할을 할 금융정책으로 평가된다. 정부와 국영·민간 금융사의 효율적인 자금 공급이 정책 성패를 가를 핵심 요인으로 꼽힌다. 정책이 성공적으로 추진돼 자본이 고생산성 영역으로 이동할 경우 생산 효율성이 개선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에 따라 투자·생산·고용이 확대되고 잠재성장률 역시 높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를 위해 당국은 전략산업 선정과 기금의 투명하고 신속한 집행을 담당하고, 금융사는 적재적소에 자금을 공급할 수 있는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 기업 역시 효과적인 투자 계획을 수립해 자금 활용의 효율성을 높일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이수민 기자>Lsm@byline.network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