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게 뭔가요] SaaS 종말론, ‘새스포칼립스(SaaSpocalypse)’ 논쟁
요즘 실리콘밸리에서 ‘SaaSpocalypse(새스포칼립스)’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습니다. SaaS(Software as a Service)와 아포칼립스(Apocalypse, 종말)를 합친 신조어입니다. 말 그대로 ‘SaaS의 종말’이 왔다는 뜻입니다. 과장된 표현처럼 들리지만, 실제로 글로벌 SaaS 기업 주가는 올해 들어 연달아 급락했습니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요?
SaaS가 뭔가요?
SaaS는 ‘Software as a Service’의 약자입니다. 소프트웨어를 직접 설치하지 않고 인터넷으로 빌려 쓰는 방식을 말합니다. 영업관리 분야의 ‘세일즈포스’, 협업 툴 ‘슬랙‘, 인사관리의 ‘워크데이‘, 워크플로우 자동화 플랫폼 ‘서비스나우‘ 같은 것들이 대표적입니다.
과거 기업들은 이런 기능을 이용하기 위해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를 구매하고 직접 시스템을 구축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SaaS 등장 이후 인터넷만 연결되면 기업 운영을 위해 필요한 소프트웨어 기능을 간단히 이용할 수 있습니다.
SaaS의 요금 구조는 간단합니다. 직원 1인당 월 얼마씩 내는 ‘퍼 시트(per seat)’ 방식입니다. 직원이 100명이면 100명 분의 요금을 냅니다. 사용자가 늘수록 SaaS 기업 매출도 늘어나는 구조입니다.
SaaS는 2010년대 이후 폭발적으로 성장했습니다. 기업들은 회계, 영업, 인사, 마케팅, 고객서비스 등 업무 영역마다 전문 SaaS를 도입했습니다. 시장조사기관 IDC에 따르면, 2026년 전 세계 퍼블릭 클라우드 지출이 1조 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 중 절반이 SaaS입니다.
그런데 왜 ‘종말’이라고 하는 건가요?
문제는 AI 에이전트입니다.
AI 에이전트란, 사람이 일일이 지시하지 않아도 스스로 판단해 업무를 처리하는 AI를 말합니다. 예를 들어, “이번 달 고객 컴플레인 분석해서 보고서 써줘”라고 하면 알아서 데이터를 뽑고, 분석하고, 문서를 만들어 메일까지 보내는 식입니다.
AI 에이전트가 직원 업무를 대신하게 된다면, 직원 수 기준으로 요금을 매기는 SaaS는 수익구조가 흔들립니다.
세일즈포스 CRM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세일즈포스는 영업사원들이 고객 정보를 관리하는 소프트웨어입니다. 영업사원 100명이 있으면 100명 요금을 내겠죠? 그런데 AI 에이전트가 고객 정보 조회, 미팅 일정 입력, 계약 현황 업데이트를 자동으로 처리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그러면 영업사원은 직접 CRM에 로그인할 일이 대폭 줄어듭니다. 기업 입장에서는 줄어든 만큼 세일즈포스 계정 수를 줄일 수 있고, 세일즈포스에 내야 할 요금도 줄어들게 됩니다.
AI 에이전트가 SaaS가 필요없게 하나요?
극단적으로는 그럴 수 있다는 전망도 있습니다. 실제로 스웨덴의 핀테크 기업 클라르나는 세일즈포스 CRM을 해지하고 자체 개발한 AI 시스템으로 갈아탔다고 테크크런치가 보도했습니다.
예전에는 자체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려면 수십 명의 개발자를 몇 달씩 투입해야 했습니다. 시간도, 돈도 엄청나게 들었죠. 그래서 기업들은 전문 SaaS를 사는 쪽을 택했습니다. 이른바 ‘빌드(build)냐 바이(buy)냐’의 싸움에서 ‘바이’가 압도적으로 유리했습니다.
그런데 AI 코딩 에이전트가 등장하면서 판도가 바뀌었습니다. 앤트로픽의 클로드 코드, 오픈AI의 코덱스와 같은 도구들은 자연어 지시만으로 소프트웨어 코드를 작성·수정·배포합니다. 개발자가 몇 달 걸릴 일을 며칠로 단축합니다.
미스트랄 AI CEO 아르튀르 망슈는 최근 인터뷰에서 ”지금은 조달 워크플로우, 공급망 관리 소프트웨어를 며칠 만에 맞춤형으로 만들 수 있다. 5년 전이라면 전문 버티컬 SaaS를 사야 했을 일들이다”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현재 기업들이 구매하는 SaaS 중 절반 이상이 AI 기반 자체 솔루션으로 대체될 수 있다고 내다봤습니다.
SaaS 기업들이 이에 어떻게 대응하고 있나요?
SaaS 기업들도 손 놓고 있지는 않습니다. 대부분 AI 기능을 기존 제품에 통합하거나, AI 에이전트 전용 제품을 새로 내놓는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한 가지 근본적인 딜레마가 드러납니다. 과금 모델의 문제입니다.
기존 SaaS 기업의 매출은 이용하는 직원의 인원수에 달려있었습니다..그런데 이들이 팔려는 AI 에이전트가 제대로 작동할수록, 고객사가 필요한 인간 직원 수는 줄어들고, 그만큼 시트 수도 줄어듭니다. 자사 AI 제품이 잘 팔릴수록 자사 기존 매출이 깎이는 구조입니다. AI를 더 잘 만들수록 스스로 손해를 보는 셈입니다.
이 딜레마를 해결하기 위해 ‘아웃컴(outcome) 기반 과금’이라는 새로운 방향이 제시되고 있습니다. 시트 수가 아니라 AI가 실제로 해결한 업무 건수만큼 요금을 내는 방식입니다. 가트너는 2030년까지 전체 SaaS 매출의 40% 이상이 이런 사용량·성과 기반 과금 모델로 전환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전환이 기존 SaaS 기업에게도 쉬운 길은 아닙니다. 매출 예측이 어려워지고, 요금 청구 기준을 새로 설계해야 하며, 기존 고객과의 계약 구조도 바꿔야 합니다.
정말 SaaS가 사라지는 건가요?
AI 에이전트가 기업 업무 프로세스를 실질적으로 대체하는 수준까지 도달하려면 아직 시간이 걸린다는 것이 중론입니다. 실제로 AI를 가장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있는 빅테크 기업들조차 기존 SaaS 구독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오픈AI COO 브래드 라이트캡은 최근 이렇게 말했습니다. “솔직히 말해, 기업 AI가 아직 기업 비즈니스 프로세스를 실질적으로 파고들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픈AI 자신도 슬랙을 비롯하여 다양한 SaaS를 대규모로 쓰고 있다는 사실이 이를 방증합니다.
또 하나, 구분도 중요합니다. 루브릭 CEO 비풀 신하는 SaaS를 두 계층으로 나눠 분석합니다. ‘워크플로우 소프트웨어'(반복적인 업무 자동화)는 AI에 의해 대체될 가능성이 높지만, ‘데이터 인프라 소프트웨어'(기업의 핵심 데이터를 저장·관리)는 오히려 AI 시대에 더 중요해진다는 겁니다.. AI 에이전트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결국 이 데이터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기업 CIO들은 어떻게 대비해야 할까요?
가장 실용적인 질문은 이겁니다.
“우리가 쓰는 소프트웨어가 워크플로우 층인가, 데이터 인프라 층인가?”
AI 에이전트가 쉽게 대체할 수 있는 반복적 업무 자동화 도구라면, 계약 갱신 전에 자체 개발 가능성을 진지하게 검토할 시점입니다. 반대로 기업의 중요 데이터가 쌓인 ERP나 핵심 데이터 플랫폼은 쉽게 교체할 수 없습니다.
국내에서 협업 SaaS ‘플로우’를 공급하는 이학준 마드라스체크 대표는 아래와 같이 말했습니다.
“전환 비용이라든지 기술적인 해자가 없는 SaaS 기업들은 10개 중에 7~8개 날아가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일즈포스닷컴 같이 고객사의 복잡한 워크플로우가 그 안에 담겨 있거나 수년간의 고객사의 다양한 데이터들을 보유하고 있는 기업들은 오히려 AI를 더해서 매출을 더 올릴 수 있는 가능성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 한 가지 변화는 협상력입니다. SaaS 기업들이 계약 갱신마다 10~20% 인상을 요구하던 시절이 저물고 있습니다. “직접 만들 수 있다”는 현실적 선택지가 생긴 이상, CIO들은 예전보다 강한 협상 카드를 쥐게 됐습니다.
결국 새스포칼리스는 SaaS 전체의 소멸이라기보다, SaaS 생태계의 대대적인 재편을 예고하는 신호로 봐야 합니다. 2030년까지 누가 살아남을지는, 올해 얼마나 괜찮은 AI 에이전트를 내놓느냐로 판가름 날 것이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심재석 기자>shimsky@byline.network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