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지금까지 이런 데모데이는 없었다…디캠프 D.Day 2.0
“작년 이맘때 많은 분들이 걱정했습니다. ‘불가능하다’, ‘아직 이르다’, ‘리스크가 너무 크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저와 디캠프 멤버들은 확신이 있었습니다.”
29일 오후, 서울 강남구 섬유센터 컨퍼런스홀. 1년 전 ‘디캠프 2.0’이라는 새로운 비전을 선포했던 박용훈 대표는 무대에 올라 이렇게 말했다. 이날은 디캠프가 지난 1년간 공들여 준비한 시리즈 A 단계 액셀러레이팅의 결과물인 디캠프 배치(Batch) 1기가 세상에 처음 공개되는 디데이(D.DAY) 현장이었다.
일반적으로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가 주최하는 데모데이에는 극초기 기업이 무대에 오른다. 이들은 투자자들에게 자사의 매력을 어필하기 위해 팀과 제품, 비전을 소개한다.
하지만 이날 열린 디캠프의 ‘디.데이 2.0’은 달랐다. 죽음의 계곡(Death Valley)이라 불리는 시리즈 A 단계의 벽에 부딪힌 유망 스타트업들이 어떻게 그 벽을 허물었는지를 증명하는 자리였다. 그런 의미에서 디캠프는 행사의 핵심 키워드로 ‘브레이크스루(Breakthrough, 돌파)’라고 꼽았다.
이날 발표는 극초기 스타트업의 데뷔 무대였던 기존 D.DAY와 달리, 성장 단계 기업들의 후속 투자와 사업 확장을 위한 플랫폼으로 진화한 D.DAY 2.0의 첫 선을 보이는 자리였다.
박 대표는 “우리 생태계가 양적 확대에서 질적 전환을 추구해야 하는 단계에 도달했다”며 “시리즈A 단계 스타트업들이 겪는 데스밸리를 극복하도록 돕는 것이 디캠프 배치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이날 행사에는 데스밸리를 뛰어 넘어 고속 성장을 눈 앞에 둔 6개의 스타트업 대표가 무대에 올랐다. 6개 팀의 성과를 소개한다.
원셀프월드 – Web3 기술로 광고 시장의 판도를 바꾸다
원셀프월드는 웹3 기반 디지털 지갑에 사용자의 정체성을 담아, 기존 광고 식별자의 한계를 대체하는 마케팅 인프라를 구축하는 스타트업이다. 단순한 크립토 지갑이 아니라, 광고·마케팅 수익 모델을 내재한 사용자 중심 지갑을 지향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핵심 기술은 ‘웹3 ID’다. 지갑 주소와 토큰 정보를 활용한 타겟팅 기술로, 정보가 암호화돼 블록체인에 올라가 생성 환경과 정보 정확성을 보증할 수 있다. 더 중요한 것은 이 데이터의 소유자가 사업자가 아닌 개인이라는 점이다. 솔바운드 토큰(복제·변형·이동 불가 토큰)을 활용해 개인 정보를 암호화해 담는다.

원셀프월드는 두 가지 사업을 운영 중이다. 첫째는 자체 리워드 앱 마이비(MyB) 다. 2024년 5월 출시해 현재 누적 145만 가입자를 확보했으며, 매일 접속하는 유저 비율이 25%에 달한다. 조 대표는 “일간 접속률 25%면 세상을 바꾸는 위대한 앱이 될 수 있다는 말이 있다”며 자신감을 보였다.
둘째는 2024년 10월 출시한 ‘마이비 애드체인’이다. 웹3 ID 기술을 타 모바일 매체에 제공하는 B2B 애드 네트워크로, 출시 3개월 만에 연동 매체의 MAU가 300만에 달했다.
디캠프 배치 기간 동안 원셀프월드 월 매출이 1억원에서 9억원으로 9배 성장했고, 연매출은 4억원에서 60억원으로 1500% 증가했다. 창사 이래 단 한 달도 매출이 하락하지 않은 연속 성장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2026년 목표는 더 야심차다. 애드체인 MAU 1000만 달성, 연매출 300억원, 그리고 “원화 스테이블코인 생태계에서 데이터가 포함된 종합 결제 인프라를 가장 잘 준비한 지갑 사업자가 되겠다”는 것이다. 조 대표는 “이미 500만 MAU를 확보했고, 월 매출이 1억에서 9억이 된 속도를 감안하면 충분히 가능한 숫자”라며 자신감을 표했다.
마이스터즈 – 블루칼라 서비스 시장의 운영체계 혁신
가전 설치와 AS 서비스를 제공하는 마이스터즈는 많은 기업들이 도전했다가 실패한 블루칼라 서비스 시장에서 독자적인 성장 모델을 구축했다. 천홍준 대표는 전국 1등 설치 기사 출신의 창업자다. 그는 “블루칼라 시장은 현장에서 어떤 공구를 쓰느냐, 어떤 나사를 쓰느냐 하나의 차이로 효율성이 천차만별로 달라지고, 여기에 서비스 품질까지 일관되게 유지하기 어려워 많은 기업들이 외면했다”고 설명했다.
마이스터즈는 이 어려운 과제 해결을 위해 운영체계라는 전략으로 접근했다. AI 기반 자동화 시스템, 데이터 중심 품질 관리, 통합 서비스 플랫폼 등을 통해 블루칼라 서비스 산업 전체를 작동시키는 운영체계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디캠프 배치 1기에 참여하면서 마이스터즈는 중요한 전환점을 맞았다. 천 대표는 “우리는 단순히 일하는 회사가 아니라 ICT 기업”이라는 확신을 얻었다고 말했다. 매출 확대보다 시스템 체계화에 집중했고, AI 기반 자동 진단부터 엔지니어 매칭, 스케줄 관리까지 통합 운영체계를 구축했다.

특히 AI 도입으로 고객 만족도가 크게 높아졌다. “엔지니어가 언제 오는지 모르겠다”는 컴플레인이 대부분이었는데, AI를 통한 즉각적이고 즉시적인 소통으로 불만이 대폭 줄어들었다. 천 대표는 “피지컬 AI 시대가 와도 우리가 모은 현장 데이터가 학습 자료가 될 것”이라며 자신감을 보였다.
현재 마이스터즈는 300개 이상의 기업이 이용하고 있으며, 연평균 성장률 90%를 기록 중이다. 2024년 매출 100억원을 돌파했고, 2025년에는 2배 이상 성장하며 300억원을 달성했다. 더욱 주목할 점은 영업이익이 6배 증가했다는 것이다. 7년간 팬데믹 시기를 제외하고 단 한 번만 적자를 기록했다.
천 대표는 “기업이 우리를 이용할수록 데이터가 쌓이고, 시스템이 좋아지면 기업이 더 만족하고, 더 많은 엔지니어가 들어오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었다”며 “시장 검증 단계가 끝났고, 이제 스케일업 단계로 간다”고 강조했다.
넥스트에디션(캠핏) – 캠핑 시장 디지털 전환의 선두주자
캠핏이 등장하기 전 당시 캠핑 시장은 아날로그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전화나 문자로 예약을 받고, 결제는 현장 현금이었으며, 갈 때마다 가격이 달랐다.
캠핏을 운영하는 넥스트에디션의 윤우진, 김동수 공동대표는 ”캠핑 시장의 문제는 고객이 아니라 시장 구조”라고 판단했다. 한 두 대표는 캠퍼를 설득하기보다 캠핑 시장이 잘 작동하기 위한 구조를 먼저 만들기로 했다. 하지만 공급자 주도 시장이었던 캠핑업계에서 플랫폼에 대한 니즈는 거의 없었다.

넥스트에디션은 캠핑장을 핵심 고객으로 정의하고, 사장님들이 더 쉽고 정확하고 효율적으로 사업을 운영할 수 있도록 모든 역량을 집중했다. 계약 관리, 고객 관리, 정보 관리 등 캠핑장 운영에 필요한 모든 기능을 캠핑장 사장님들과 직접 머리를 맞대고 설계했다. 캠핑에 특화된 PMS(Property Management System)가 탄생한 것이다.
그 결과 전국 탑티어 캠핑장들이 먼저 캠핏을 독점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별도 마케팅 없이도 “유명 캠핑장을 이용하려면 캠핏을 써야 하는 구조가 자연스럽게 만들어졌다. 현재도 캠핏 입점 캠핑장의 약 70%가 캠핏에서만 예약 가능한 독점 구조다.
2025년 9월, 그동안 무료로 제공했던 서비스를 유료 중개 수수료 기반으로 전환했다. IT업계에서 유료화란, 그 동안 쌓은 공든 탑이 한 번에 무너질 수도 있는 이벤트다. 하지만 현장에서 쌓은 신뢰 덕분에 이탈 없이 안정적으로 안착했다. 김동수 대표는 “5년간 만들어온 서비스의 완성도가 현장에서 통한다는 것을 검증했다”고 말했다.
현재 캠핏은 연간 거래액 1350억원, 월간 활성 사용자 100만명, 연간 600만명이 이용하는 플랫폼으로 성장했다. 올해는 캠핑 커머스 시장에 진출한다. 캠핑 커머스라고 하면 으레 캠팽 장비를 떠올리지만, 캠핏의 ‘오더 앤 픽’은 캠핑 갈 때 필요한 음식을 구매하고 캠핑장으로 배송·보관해주는 서비스다. 또 캠핑을 넘어 낚시 등 아웃도어 전반으로 서비스를 확장해 나갈 계획이다.
펫팜 – 약국 채널로 반려동물 헬스케어 표준 만들기
현재 반려동물 보호자가 약을 살 수 있는 유일한 경로는 동물병원뿐이다. 증상이 생기면 예약하고, 시간을 내서 방문하고, 진료와 처방이 묶여서 시간과 비용이 동시에 발생한다. 사람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상비약과 일상 관리 구조가 반려동물 영역에는 아직 없다.
펫팜은 이런 문제를 해결해 나가고 있다. 펫팜이 선택한 채널은 약국이었다. 이를 위해CS, 배송, 설명, 교육, 재고 관리 등 약국이 반려동물 의약품을 다루기 어려운 모든 지점을 하나하나 표준화했다. 약국 입장에서는 리스크 없이 시작할 수 있는 구조가 생긴 것이다.
펫팜은 아울러 실제 판매 데이터를 기반으로 지역·규모·고객 특성별 최적의 제품 조합을 제안한다. 초도 세팅이 곧 재구매와 확장의 기반이 되는 것이다.
현재 펫팜은 전국 2만5000 개 약국 중 7000 개에 반려동물 의약품을 공급하며, 누적 매출 150억원을 달성했다. 윤 대표는 “약국이 늘어나면 데이터가 쌓이고, 데이터가 쌓이면 추천 정확도가 올라가고, 재구매와 신뢰가 쌓이는 플라이휠이 작동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2026년에는 소화, 피부 관리, 계절 관리, 여행 등 상비약 카테고리를 확장하고, 약국 기반 모델의 글로벌 진출도 준비 중이다.
윤 대표는 “후발주자로 시작했지만 가장 많은 현장을 학습했고 가장 많은 시행착오를 데이터로 축적한 유일한 팀”이라며 “반려동물 상비약과 일상 헬스케어의 기준을 만드는 회사로 진화하겠다”고 밝혔다.
캐비지(어글리어스) – 못난이 채소로 지속가능한 유통 혁신
마트에서 장을 보다 보면 색깔이 예쁘고 깨끗한 농산물을 주로 구매하게 된다. 다리가 두 개인 당근이나, 울퉁불퉁한 사과에는 잘 손이 가지 않는다. 이 때문에 유통업체들은 못난이 농산물을 취급하지 않는다. 이로 인해 전 세계적으로 식품 생산량의 30%가 폐기되고 있으며, 온실가스의 10%가량이 식품 폐기로 발생한다.
하지만 다리 두 개 당근이나 울퉁불퉁한 사과는 유기농·무농약으로 건강하게 자란 경우가 많다.
못난이 농산물 정기 구독 서비스 ‘어글리어스 마켓’을 운영하는 캐비지의 최현주 대표는 “못생긴 농산물이 버려지는 게 너무 비합리적이라 생각했다”고 창업 배경을 밝혔다.

최 대표는 처음에 못난이 농산물을 모아 파는 방식을 시도했다. 하지만 이런 방식은 A급을 가져간 후 남은 B급을 처리하는 사후 방안에 불과했다. A급과 B급을 모두 구매하는 것이었다.
최 대표는 농가에 씨앗을 심기 전부터 “150g 당근만 받는 게 아니라 100g, 90g, 심지어 다리가 2개인 당근도 괜찮다”고 제안했다. A·B급 통합 매입으로 농가는 선별 비용을 줄이고, 소비자는 합리적 가격으로 구매하는 구조다.
문제는 소비자가 못난이 농산물을 받아줄까, 였다. 소비자 설득을 위해 어글리어스는 웹사이트에서 못난이 농산물에 대해 세심하게 설명하고, 박스 안에 못난이 사연을 담았다. 유기농 사과의 ‘동록 현상(껍질이 녹슨 것처럼 변하는 현상)’처럼 소비자가 거부감을 느낄 수 있는 상품은 구입 직후 카카오톡으로 별도 안내를 보낸다.
어글리어스의 심 타겟은 2030 1~2인 가구다. 건강과 환경에 관심 많지만, 뭘 해 먹을지 모르고 마트에서 사온 채소는 썩혀버리는 세대다. 이들을 위해 어글리어스는 소용량 정기구독 모델을 만들었다. 당근 1개, 양파 12개, 시금치 50g처럼 극소량 판매하고, 79종 제철 채소를 매주 큐레이션해 레시피와 함께 보낸다. 비선호 채소는 자동 제외하고, 유통기한 알림과 조리법까지 제공해 소비자 식탁에서도 버려지지 않게 한다.
커뮤니티도 자산이다. 국내 최대 채소 레시피 DB를 보유하고 있으며, 세발나물 같은 독특한 재료도 유저들이 자발적으로 레시피를 공유한다.
그 결과 신규 고객 중 44%가 2030 세대로 경쟁사 대비 3배 높고, 리텐션은 88%, 광고비는 4% 이내다. 2025년 매출 125억원, 연평균 성장률 125%를 기록했다.
최 대표는 “못난이 농산물은 하나의 대표성일 뿐, 우리는 유통의 비효율 문제를 해결하는 회사”라며 “2030 1~2인 가구와 함께 이 문제를 지속가능하게 풀어가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바인드(에슬러) – 35세 이상 남성 패션 시장의 재발견
한국 소비 시장에서 35세 이상 남성은 주요한 관심사가 아니다. 소비에 소극적인 집단이라는 인식 때문이었다.
패션 쇼핑몰 ‘에슬러’를 운영하는 바인드의 김시화 대표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35세 이상 남성은 인구수도 가장 많고 구매력도 있는 집단”이라고 판단했다. 시장이 미개척인 이유는 시장이 존재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그 시장에 적합한 플레이어가 없었기 때문이라는 게 그의 분석이었다.

그는 이 세대 남성이 유통업계의 타깃이 되지 못한 이유를 ‘리스크’로 꼽았다. 남성은 귀찮아서 교환·반품을 잘 안 하고, 첫 구매에서 성공 경험이 없으면 다시 시도하지 않는다. 사이즈 실패, 코디 실패, 지나치게 많은 선택지가 소비를 침체시킨 원인이었다고 분석했다.
이 같은 판단 아래 애슬러는 35세 이상 남성이 좋아할 한정된 브랜드만 모아서 서비스를 시작했다. 또 사이즈를 표준화했다. 같은 라지 사이즈라도 브랜드마다 실제 치수가 다르기 때문에 종류별로 실측 사이즈를 데이터화하고 AI 기반 사이즈 추천 기능을 도입했다.
또 최대한 빠르게 구매를 할 수 있도록 유도했다. 많은 커머스가 유저를 1초라도 더 잡아두려 하지만, 에슬러는 정반대 선택을 했다. 구매 의사결정이 높은 상품만 숏리스트로 보여주도록 했다. 예를 들어 브랜드 하나를 조명해 스토리를 전달하고 모델 착장을 그대로 코디로 구매할 수 있게 하는 식이다. 이런 프로모션은 기존 대비 5배 높은 매출을 기록했다.
김 대표는 “2년간 축적된 사이즈 빅데이터, 검증된 브랜드 포트폴리오가 경쟁력”이라며 “단순히 옷을 쉽게 구매하는 커머스가 아니라 35세 이상 남성의 소비 취향을 개발하고 발전시키는 일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최종 목표는 패션을 넘어 라이프스타일 커머스로의 확장이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심재석 기자>shimsky@byline.network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