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재석의 입장] 자랑스러운 한국 기업이라던 쿠팡
“쿠팡은 자랑스러운 한국 기업입니다.”
지난 2019년 7월 17일 쿠팡 뉴스룸에 올라온 글의 첫 문장이다. 이 글에서 쿠팡은 “(쿠팡은) 우리나라에서 설립돼 성장했고, 사업의 대부분을 한국 내에서 운영한다”며 이같이 천명했다.
당시 쿠팡을 외국기업이라고 모함(?)하는 목소리가 많아지자 뉴스룸에서 공식 반박한 것이다. 회사 측은 “쿠팡은 외국기업”이라는 이야기가 ‘헛소문’과 ‘거짓 뉴스’라고 일갈했다.
그런데 6년이 지난 지금, 쿠팡은 한국 기업이 아닌 것처럼 행동하는 듯 보인다. 3000만명이 넘는 초대형 개인정보 유출 사건이 발생하자 쿠팡은 한국 대표를 미국인으로 교체했다. 한국 정부 및 사회와 가장 긴밀하게 소통해야 할 이 시점에, 가장 소통하기 쉽지 않은 인물을 대표로 내세운 것이다. 소통을 강화하고 사고에 대한 책임을 지겠다는 모습보다 왠지 “미국 기업 함부로 건드리지 말라”는 뉘앙스가 읽힌다. 신임 대표는 국회 청문회에 출석해 영어로 같은 말을 반복하면서 책임을 피해 나가기만 했다.
6년 전 쿠팡은 스스로 “자랑스러운 한국기업”이라고 선언했지만, 미국 정가에서는 쿠팡 건드리지 말라는 압박을 해오고 있다. 트럼프 1기 행정부 때 국가안보보좌관을 지낸 로버트 오브라이언은 “한국 국회가 쿠팡을 공격적으로 겨냥하는 것은 미국 기업을 향한 광범위한 규제 장벽의 발판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공화당 대럴 이사 하원의원도 “한국 정부가 미국 기업(쿠팡)을 상대로 공격적인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는 기고를 했다.
쿠팡은 나스닥 상장 후 약 5년간 미국 행정부와 의회를 상대로 총 1075만 달러(약 156억 원)의 로비 자금을 지출하고, 트럼프 대통령 취임준비위원회에 100만 달러(약 14억5000만 원)를 기부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 같은 지출이 미 정가의 쿠팡 옹호 배경 아니겠냐는 해석도 나온다.
사실 쿠팡은 필요할 때마다 한국기업과 미국기업이라는 두 가면을 번갈아 썼다. 일례로 김범석 창업자기 공정거래법상 동일인(대기업 총수)로 지정되지 않은 건, 미국기업이라는 지위 덕분이었다.
공정위는 김범석 의장 친인척의 국내 계열회사 출자가 없고, 국내 계열사와 자금 거래를 하지 않은 것을 이유로 들며 김 의장을 동일인으로 지정하지 않았다. 이런 조건은 네이버 이해진 의장도 마찬가지지만, 이 의장은 동일인으로 지정됐다. 김 의장이 동일인 지정을 받지 않은 것은 쿠팡이 미국 기업이라는 점이 작용했다. 네이버 이해진 의장이 국내 기업 총수로서 엄격한 잣대를 적용받을 때, 김 의장은 미국 기업이라는 방패 뒤에서 규제의 사각지대를 누린 셈이다.
역대로 한국 기업의 오너들은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을 때 청문회에 나와 국민 앞에 설명을 했다. 때로는 국회의 출석 요구가 정치적 입장에 따라 무리한 것일 때도 있었지만, 국회에 나와 싫든 좋든 질문을 받았다.
반면 김 의장은 국회의 출석 요구를 계속 외면하고 있다. 불출석 사유는 역시 “외국”이다. 김 의장은 해외 거주를 이유로 30~31일 예정된 국회 6개 상임위 연석 청문회에 참석 못한다고 알려왔다.

김범석 의장이 한국 기업으로서의 책무를 계속 피하기만 할 것이라면, 이제 더 이상 한국 기업이라는 선언은 취소하는 게 어떨까 싶다.
“쿠팡은 자랑스러운 한국 기업입니다”라고 시작하는 글은 아직도 쿠팡 뉴스룸에 올려져 있는데, 이 글을 삭제하고, “쿠팡은 이제 미국 기업이니 한국인들은 더 이상 내적 친밀감 같은 것은 갖지 말라”고 선언해야 하지 않을까?
한국 사회가 쿠팡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는 쿠팡 스스로의 태도에 달려 있다. 외국인 지위는 방패가 될 수 없고, 기업의 정체성은 말이 아닌 행동으로 입증된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심재석 기자>shimsky@byline.network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