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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간 매달 계란 40개씩 받아가세요”

제주도에서 빈집 재생사업을 하는 다자요 남성준 대표에게 연락이 왔다. 제주도에 ‘애월아빠들’이라는 달걀 브랜드가 있는데, 이번에 ‘트립팜스(TRIP FARMS)’라는 새로운 서비스를 내놓는다고. 우리가 흔히 ‘1번 계란’이라고 알고 있는, 자유방목한 닭이 낳은 달걀을 회원제로 팔겠다는 거다.

말을 들어보니 흥미로운 게, 회원들로부터 회비를 걷어 그 돈으로 땅도 사고 건물도 짓고, 닭도 사서 사업을 한단다. 3년 동안 돈 낸 회원들에게 이자 대신 계란을 40알 씩 매달 보내고, 3년 뒤에는 회비 자체를 갚는다는 전략. 사람에게도 닭에게도 좋은 1번란을 많이 팔려면 그만한 환경을 갖춰야 하는데, 그 환경을 소비자 돈으로 갖추고, 산출물은 나눠 먹자는 것.

오, 남성준 대표가 하는 다자요도 지방의 빈집을 무상으로 빌려 기깔나게 고치고, 10년간 숙박 사업을 한 후 그 집을 주인에게 다시 돌려준다는 발상 아닌가. 이 제주도 사람들, 이런 아이디어는 자꾸 어떻게 내지? 궁금해서 이욱기 애월아빠들 대표에게 연락해 봤다. 국내 최초로, ‘RE100 계란’을 만들고 많은 사람에게 1번란을 먹이겠다는 이 포부. 어쩐지 대단하면서도 귀여우니까. ** RE100은 기업이 사용하는 전력을 100% 재생에너지로 전환하자는 글로벌 캠페인이다.

참고로, 애월아빠들의 창업기는 지난 2021년 이욱기 대표와 진행한 인터뷰 [계란 팔아 연매출 140억원, ‘애월아빠들’의 비밀]를 함께 봐달라.

계란으로 이자를 주는 아이디어는 어디서 나왔나

법적으로, ‘이자’라는 말을 쓸 수 없다고 하더라. 이자라기 보단, “계란 농사를 대신 지어드린다”는 생각으로, 회원들에게 매달 자유방목(사육환경 1번) 계란을 보내기로 했다.

통상의 구독 경제는, 매달 얼마를 내면 무언가를 보내주는 것이 일반적이다. 조금 더 매력적인 건 없을까 고민하다, ‘콘도 회원권’을 생각했다. 사용하다가, 나중에 탈퇴할 때 원금을 돌려주는 방식이다.

1차로 300명의 회원에게 300만원씩을 받는다. 그럼 총 9억원인데, 이 돈은 어디에 쓰려 하나

우선은 토지를 구입한다. 제주와 육지를 가리지 않고 꽤 많이 돌아다녀서, (토지 구매 후보)리스트가 있다. 한두 달 내 결정해 토지를 구매할 예정이다. 12월에 2차 회원으로 1000명을 유치할 예정이다. 그 돈으로 건물을 짓고 기자재를 넣어 닭을 사육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든다. 물론, 닭도 구입하고. 병아리를 사서 계란을 낳을 수 있는 데까지 키우는 비용에 쓰려 한다.

그 돈으로 방사 환경을 구축하겠다는 이야긴데

그렇다. 사육환경 1번 농장만 해보려고 한다.

방사 환경을 만드는 것이 왜 중요한가?

몰랐는데, 전국 1000개의 산란계 농장 중에, 동물복지가 가능한 사육환경 번호 1번의 환경을 갖춘 농장이 50개 정도밖에 안 되더라. 마릿 수로 보면, 전체 8000만 마리가 되는 닭 중에 50만 마리만이 정부 인증을 받은 동물복지 1번 농장에서 사육된다. 동물복지가 잘 된 환경에서 자란 닭의 숫자가 1%도 안 되는 거다. 숫자가 너무 적지 않나.

게다가 지금, 1번란을 찾고 있는 소비자가 많아지는 추세다. 그런데 누가 이 숫자를 맞출 수 있을까? 현재 제주도 애월아빠들은 5개의 농장을 운영 중에 있는데, 이걸 좀 더 확대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우리가 전국에 100개의 농장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다.

닭에게는 어떠한 긍정적인 부분이 있나

운동장이 넓고, 마음대로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는 사육환경이다. 닭장 안에서만 지내는 것과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기존에는 1번과 2번의 농장 환경을 섞어 사육했는데, 1번 농장의 사육환경이, 우리가 보기에도 훨씬 더 좋아 보였다. 닭이 말을 못하기 때문에 “나는 1번이 더 좋아요”라고 말은 못하지만, 계란을 먹어보면 맛이나 그런 것이 분명 좀 다른 것 같다.

통상 1번란은 비싸지 않나. 시장이 충분한가?

계란은 일상적인 식재료지만, 전염병(AI), 사료·에너지 가격 변동, 공급망 혼란이 반복되면서 소비자는 “가격이 조금 더 들더라도 믿고 먹을 수 있는 안정적 구조”를 원하게 됐다.

수요가 있는데, 왜 그간 사육 환경이 바뀌지 않았을까

핵심 원인은 초기 방사공간과 시설 투자 부담, 예측 불가능한 현금흐름, 실제 사육환경을 소비자가 잘 몰라 의사결정이 잘 이뤄지지 않는 정보 비대칭 등의 문제 때문이다.

장기 약정이나 회원제 모델을 쓰면 변동성에 취약한 상품 판매 거래 구조를 ‘예측 가능한 수요 곡선’으로 전환할 수 있다. 또, 복지형 사육 설비와 재생에너지 전환에 드는 비용을 우선 해결할 수 있고, 소비자도 이득을 볼 수 있도록 투자 회수 로드맵도 명확하게 만들어야 한다.

 ‘RE100 계란’이라고 표현했던데

지난해 12월 말에 제주에서 농장을 RE100 사업장으로 인증(녹색 프리미엄 인증)을 받았다. 녹색 프리미엄(탄소배출권과 유사)을 구입하는 방식이다. 일부는 태양광을 이용해 재생에너지로 전력을 쓰고 있는데, 부족한 부분은 녹색 프리미엄을 구입해 충당하고 있다. 중기 비전으로, 2~3년 이내에 재생에너지 도입을 단계적으로 확대하려고 하고 있다.

이와는 별개로 순환발효농법을 쓴다. ‘순환’은 농장에서 나오는 닭의 분(계분)을 주위의 농가에 나누고 있다. 여기에서 재배한 감귤을 회원들에게 보내주는 것도 계획에 있다. 농장에서 생겨나는 것을 버리는 것 하나 없이 순환농업에 사용한단 뜻이다. ‘발효’는, 닭에게 발효된 미생물 보조 사료를 먹인다. 사람이 장을 튼튼하게 하기 위해 요구르트를 먹는 것처럼, 이 사료가 닭에게 요구르트와 같은 역할을 한다.

애월아빠들의 성장세는 어떤가

이제는 자리가 좀 잡혔다. 20년을 해왔는데, 올해 매출액이 300억원을 넘길 것으로 예상된다. ** 2021년 인터뷰에서는 130억원 매출을 낸다고 했으니, 4년 만에 두 배를 훌쩍 넘긴 매출 성장을 이룬 셈이다.

그런데, 제주도에서는 농장의 숫자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전국 양계산업에서 제주가 차지하는 비중은 1%에 불과하다. 기업은 지속 가능성이 있어야 하는데, 제주 안에서는 어느 정도 성장의 한계가 오는 거다. 그래서 재작년 말부터 육지를 오가면서 사업 확장을 꾀하고 있다. 지금은 육지에 있는 시간이 더 많다. 트립팜스를 시작으로, 육지에서도 우리가 양계 산업을 펼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동물복지 1번 농장 환경을 어느 정도까지 확대할 수 있으리라고 보나

우리의 꿈은 ‘100%까지 가는 여정’으로 설정했다. 그렇지만 모든 농장이 자유 방목을 하긴 쉽지 않다. 그래서, 우리가 전국 100개 농장까지는 시도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다. 하나의 농장에서 1만~1만5000마리 닭을 키울 수 있으니까, 100개 농장이라면 100만에서 150만마리 까지는 동물복지 1번 환경에서 키울 수 있을 거다.

사업을 추가로 확장할 계획이 있나

멤버십 회원과 소통 강화를 위해 제주도를 시작으로 각 도에 오프라인 공간을 만들어보려고 한다. 가족끼리 올 수도 있고, 아이들 교육 공간으로 활용할 수도 있다. 주말에 차를 한 잔 마시고 간다거나, 닭을 어떻게 키우는지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을 같이 만들어보려 한다.

이런 사업이 지역 경제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을 것 같다. 예를 들어, 애월아빠들이 제주도민 70명을 고용해 일자리를 만들어냈던 것처럼

그렇다. 그런 걸 하려고 한다. 오프라인 공간을 만들겠다고 했는데, 그 안에 지역민을 직원으로 유치하거나, 혹은 오프라인 공간에 판매장을 일부 만들어서 지역 농산물도 같이 입점하는 형태로 갈 수도 있다.

앞으로의 사업 방향성은 어떻게 되나

트립팜스가 믿는 핵심 가치는 세 가지로 단순하다. 첫째, 닭이 건강해야 계란이 건강하다(동물복지). 둘째, 생산 구조가 지속 가능해야 일상 속 신뢰가 유지된다(지속 가능성). 셋째, 소비자가 과정을 이해할 수 있어야 진짜 프리미엄이 된다(투명성)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방사 공간·사육 밀도·위생 공정 같은 요소를 단계적으로 공개하고, 난각 정보와 추적 시스템을 확대할 예정이다. 완벽하다고 말하기보다 “어디까지 왔는지”를 솔직하게 보여주는 것이 우리 방식이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남혜현 기자> smilla@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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