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 한국 AI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한 12명의 사람들
“AI 코리아, 어디로 가야 하나”
이재명 정부가 AI를 국정 핵심 의제로 내세우며, 한국의 AI 산업은 새로운 분기점에 서 있습니다. 기술을 넘어 경제·안보의 전략 자산이 된 AI. 그러나 글로벌 시장은 빅테크의 질주, 공급망 재편, 소버린 AI 등으로 빠르게 변화 중입니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묻습니다.
한국 AI 정책, 이대로 충분한가?
진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무엇에 집중해야 하는가?
바이라인네트워크는 정치, 산업, 학계, 스타트업 등 각계 전문가들과 함께 대한민국 AI가 나아가야 할 방향과 실질적 해법을 모색합니다. 정책은 현장의 목소리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이 시리즈가 ‘AI 강국’ 코리아의 새로운 길을 찾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새 정부 들어, 한국 AI의 정책이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싶었다. 지난 석달 간 열두명의 사람을 만나 질문을 던졌으며 답을 들었다. “모든 길은 AI로 통한다”는 대전제는 같았으나, 그 길로 가는 방법론에 대해서는 같은 말도, 다른 뜻도 있었다.
인터뷰이 중에는 AI 전문가와 사업가, 투자자, 학자, 그리고 AI 산업을 진흥하기 위한 정책을 내는 정치인도 있었다. 각자 자리한 위치는 달랐으나 AI가 바꿔가는 삶과 산업의 지형을 흐린 눈 뜨지 않고 오롯이 바라보고 있었다. 이들이 ‘더 나은 우리의 삶’을 위해 내놓은 AI 정책 방향을 위한 제언을 모아 정리했다.
12명, 어떤 이들이 참여했나
인터뷰 시리즈 ⑫ 유민상 오토노머스에이투지 CSO
인터뷰 시리즈 ⑪ 한재권 한양대 교수(에이로봇 CTO)
인터뷰 시리즈 ⑩ 이해민 조국혁신당 의원
인터뷰 시리즈 ⑨ 신정환 알토스벤처스 파트너
인터뷰 시리즈 ⑧ 남경필 포니링크 대표
인터뷰 시리즈 ⑦ 류정혜 과실연 AI미래포럼 공동의장
인터뷰 시리즈 ⑥ 이성엽 고려대 기술법정책센터장
인터뷰 시리즈 ⑤ 노정석 비팩토리 대표
인터뷰 시리즈 ④ 김한규 더불어민주당 의원
인터뷰 시리즈 ③ 윤성로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교수
인터뷰 시리즈 ② 박태웅 한빛미디어 의장
인터뷰 시리즈 ① 임문영 미래전환 대표
국가AI전략위원회에 임명된 3인, 무엇을 말했나
열두 명의 인터뷰이 중 무려 세 명이 이재명 대통령이 위원장을 맡은 ‘국가인공지능(AI)전략위원회’에 위원으로 위촉됐다. 실질적인 운영을 책임지는 상근 부위원장엔, <쿼바디스 한국 AI> 시리즈의 포문을 연 임문영 미래전환 대표가 취임했다. 이재명 대통령의 디지털 정책 싱크탱크로도 불렸던 그는, 인터뷰에서 AI를 단순한 기술 변화로 볼 것이 아니라 문명 전환을 가져올 근본적인 혁신으로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모든 정책에 AI를 근본으로 깔아야 한다. AI를 정보화처럼 접근해서는 안 된다. AI는 산업 뿐만이 아니라 정치, 사회문화 등 모든 것을 바꾸는 근본적인 변화다.”
임문영 부위원장은 기술을 책임지는 특정 부서가 아닌, 모든 정부 부처가 AI를 바탕으로 깔고 일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국가AI전략위원회가 앞으로 어떠한 방향성을 띄고 움직일지를 암시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아울러, 전환의 기본 바탕이 될 인프라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1순위로 급한 것은 결국 인프라”라면서 “그중에서도 핵심은 데이터센터와 데이터, 인재 네트워크, 전력”을 꼽았다.
임 부위원장과 마찬가지로 박태웅 한빛미디어 의장도 이재명 대통령이 AI를 바라보는 관점에 영향을 미치는 인사로 일컬어져 왔다. 박 의장은 이 대통령의 후보시절, 당선을 도우면서 더불어민주당 민주연구원 집단지성센터장을 맡아 ‘모두의질문Q’라는 집단지성 플랫폼을 운영한 인물이기도 하다. 국가AI전략위원회에서는 AI 기반 행정 서비스 혁신, 재난안전·국방·치안 등 AI 기반 국민 안전 시스템 강화를 위한 공공 AX 분과장을 맡았다. 그도 인터뷰의 첫 일성에 “AI는 전기나 증기기관 같은 것”이라고 말했다. AI가 전 산업은 물론, 일상에 쓰이는 기반 인프라가 될 것이란 이야기다.
박 의장은 AI 강국으로 가는 입장료로 ‘GPU 10만장 (이상) 확보’를 말했다. 전국에 깔린 통신망 없이 우리나라가 인터넷 강국이 될 수 없었듯, AI 연구개발을 할 수 있는 기본적인 전제조건으로 GPU 확보가 우선되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국가AI전략위원회도 향후 다룰 주요 의제 중 하나로 ‘AI 액션플랜’을 내걸었는데, 여기에는 “정부가 민간 투자와 전문성을 활용하는 민관 협력으로 특수목적법인(SPC)를 설립해 2028년까지 첨단 그래픽처리장치(GPU)를 1만5000장 이상, 2030년까지는 GPU 5만장 확보에 나선다”는 내용을 담았다.
다만, GPU만 깐다고 해서 바로 AI 강국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도 강조했다. “악마는 디테일에 숨어 있기” 때문에 AI에 대한 현장 경험이 있는 이해도 높은 사람들이 정책을 이끌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그는 “GPU도 최고 수준의 엔지니어가 붙지 않으면 못 쓴다”면서 “대용량 분산 처리 경험이 있는 엔지니어가 몇 명이나 되나, AI옵스 쪽 엔지니어는 얼마나 있나 등 온갖 것들을 다 고려해야 한다”고도 덧붙였다.
어떤 사람이 AI를 이끌어가야 하는가, 사람에 대한 강조는 류정혜 과실연 AI 미래포럼 공동의장도 마찬가지다. 류 공동의장은 카카오엔터테인먼트에서 미래전략 담당 부사장을 역임한 인물로, AI와 엔터테인먼트의 융합을 이끌어온 크리에이티브 리더다. 국가AI전략위원회에서는 산업AX&생태계 분에 소속되어 힘을 보탠다.
류 공동의장은 특히 인재에 대한 집중 투자, AI를 중심으로 하는 문화 강국 등을 강조했다. 메타로 부터 촉발된 인재 전쟁을 바라보면서 “AI는 국가의 미래가 달려 있는 영역이 인재들을 확보하면서 수백억원은 커녕 10억원도 못 주겠다는 마인드를 가지고 있으면, 앞으로 경쟁을 어떻게 하란 말이냐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고 한탄했다. “인재도 데이터센터와 같이 투자해야 하는 영역이라는 관점을 가져야 한다. AI인프라나 인재 육성 같은 것은 기본적으로 이견 없이 통과시켜야 할 정책”이라는 것이다.
K 콘텐츠에 대한 관심이 뜨거울 때, “한국이 AI 아트의 수도”가 되기 위한 행동에 나서자는 제언도 인상적이다. AI 콘텐츠 생산에 대한 ‘대헌장’을 우리가 앞서 만들고, 지금의 칸이나 아카데미처럼 세계의 AI 아티스트들이 권위를 인정하는 AI 콘텐츠 시상식을 만들자는 말은 얼마든지 실현 가능한 일로 들렸다.
화두, 소버린 AI
새 정부의 AI 정책 방향에서 빼놓을 수 없는 키워드가 ‘소버린 AI’다. 빅테크들이 천문학적 자본을 쏟아부으면서 파운데이션 모델을 개발하고 있는 와중에, 상대적으로 자본도 인력도 적은 우리가 독자적인 파운데이션 모델에 자원을 얼마나 쏟아부어야 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는 지속해 있어왔다. 그러나, 인터뷰이들은 대부분 “우리 국가 권력이 필요할 때 채택하거나 통제할 수 있는지 여부”가 소버린 AI의 핵심이라고 입을 모았다. 우리가 원할 때 갑자기 AI를 쓸 수 없는 상황이 오는 것을 미연에 방지하자는 뜻이다.
어떻게 경쟁력 있는 AI를 구축할 수 있을까. 구체적인 방법론으로 박태웅 의장은 ‘AI 맨해튼 프로젝트’를 제안하기도 했다. 2차 대전 당시, 미국 주요 대학, 국립 연구소, 군 산하 연구소 등에 있던 과학자들의 협력으로 핵무기를 개발한 프로젝트에서 이름을 따왔다. 전 세계에 있는 모든 한국계 AI 개발자를 모아 소버린 AI를 개발하자는 것이다. 국내 개별 기업 차원에서는 자본과 인력 면에서 미국과 중국의 빅테크에 대응하기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해서다. 류정혜 의장은 유사하게 “원팀 정신이 필요할 때”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임문영 부위원장은 “오픈AI도 한국을 ‘풀스택 AI’라고 부른다”라면서 “자신감을 갖고 상상력을 펼치라”고도 말했다.
다만, 소버린 AI에 대한 현실적인 어려움을 지적한 이들도 있다. 4차산업혁명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한 윤성로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교수는 “(독자 AI 구축이)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우를 대체하는 뭔가를 만들겠다는 것에 비유할 만큼 중요하면서도 어려운 일”이라고 지적하면서 독자 AI 모델을 추진하려면 글로벌 모델과 겨뤄서도 제대로 된 성능이 나올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해민 조국혁신당 의원도 “AI 주권 확보와 AI 3대 강국은 서로 다른 목표”라고 짚었다. 3년 전에야 두 노선을 하나로 묶어 갈 수 있었겠으나, 지금은 이미 AI 경쟁의 초입기를 지났기 때문에 이를 투 트랙으로 보고 시급성 측면에서 우선순위를 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무엇을 먼저 볼 것인가에 대해서는, ‘AI 3대 강국’을 우선 꼽았다. 파운데이션 모델 확보는 주권확보에 가까운데, 이는 제대로 경쟁력을 가질 수 있도록 조금 더 천천히 투자해도 된다는 입장이다. 대신, “AI 산업은 서비스 레이어(계층) 혹은 버티컬 레이어, AI 전환을 일으키는 공장 제조업 쪽에서 사용을 해서 빨리 발전을 시키고 싶은 니즈가 굉장히 높다”는 점을 환기했다. 산업계에선 “소버린 AI를 기다렸다 쓰라는 말”은 지금 통하기 어렵단 것이다. 대신, 지금은 우선 “기업의 AI 수요에 대응하는 것”을 급선무라고 말했다.
“기업이 필요로 하는 GPU를 직접 줄 수도 있고 아니면 오픈AI API로 서비스를 만들 때, API 콜 가격이 너무 비싸죠. 그걸 지원해주거나 업체에서 원하는 구글 클라우드든 AWS(아마존웹서비스)가 됐든 MS 애저가 됐든 사용하는 것에 대한 마중물을 바로 채워줄 수 있는 게 중요합니다”
이 의원은 또 “소버린AI가 국산 제품이냐 아니냐는 후차적인 문제”라면서 “이걸 뜯어고칠 수 있는 제어, 콘트롤 권한을 가지고 있는 것이 제가 보는 소버린AI”라고 말했다. “국산화에 매몰되지말고”, ” 데이터가 잘못됐으면 뜯어고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우리가 콘트롤 할 수 있는 소버린 AI를 차분히 구축해나가자”는 논지다.
한편, 윤성로 교수는 한국이 잘 할 수 있는 분야로 ‘데이터 활용’을 꼽기도 했다. 윤 교수는 “기업 입장에서 핵심 경쟁력은 AI 모델보다는 데이터 확보가 중요하다”면서 “영세한 제조 기업들이 상당히 많은 가운데 AI를 접목하는 방향이 맞다는 건 알지만 감히 시도를 못하는 경우가 많이 있는데 정부 지원이 있었으면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보존해야 할 제조 기술이 있다면 회사 규모를 떠나 AI 기업과 연결시켜주는 것도 중요한 방향성이 될 것”이라고 제언했다.
초인공지능의 시대, 창업가는 어떤 생각을 갖고 있나
AI 시대를 이끌어가는 최전선에는 누가 뭐래도 창업가가 있다. 노정석 비팩토리 대표는, 지난 2008년 아시아 회사 중에선 처음으로 구글에 회사를 매각하고 잇단 창업과 M&A를 하면서 한국의 대표적인 연쇄창업가로 불린다. 그는 AI로 성공하는 기업이 많아지는 데는 정부 지원보다, 각고의 노력 끝에 성공한 이들에게 합당한 보상을 주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더 주효한 방안이라고 말한다. 결국 성공을 이끄는 것은 기업가 정신이며, 창업자들은 다른 데 신경 쓰지 말고 당장 “내가 소비하는 토큰의 양을 늘릴 수 있도록(사업을 스케일업 하도록) 할 것”을 조언했다.
“원맨(1인) 유니콘은 정책 같은 걸로 만들어지는 게 아니에요. 성공 사례가 많이 탄생하고, 그 사람들이 확 부자가 될 수 있는 생태계가 만들어지는 거, 그냥 정당한 자본주의 세상이 저는 유일한 답이라고 생각해요”
AI로 인한 변화가 ‘회사’라는 개념을 뒤흔들 거라고도 전망했다. 이미 일어나고 있는 변화이기도 한데, “홀로 운영하는 1인 회사가 그대로 ‘유니콘’이 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 AI라는 훌륭한 동료를 둔 이들 창업자는 빅테크가 모든 걸 점령할 것 같은 세상 분위기 속에서도 여전히 ‘컨수머 애플리케이션’ 영역에서 기회가 있다고 봤다. 특히, 세상의 변화를 기민하게 잡아내는 능력이 한국인의 DNA에 있으므로 “원맨 유니콘이 만약 탄생한다면, 그 처음은 한국일 것”이라고 긍정적 전망을 했다.
이들 창업자를 지원하는 벤처투자사의 입장에선 점점 치열해지고 있는 기술 경쟁을 주목하고 있다. 카카오 최고기술책임자(CTO)를 역임한 후, 지금은 알토스벤처스에서 투자 심사를 하는 신정환 파트너는 “빅테크 내부 연구팀들도 자원을 할당 받기 위해 내부 경쟁이 치열하다”면서 우리 정부의 AI 인프라 지원 역시 “경쟁하게 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름표 떼고, 실력으로 겨뤄보게 해서 진짜 능력 있는 곳에 지원해야 한다는 이 말은, 아직 덜 유명해도 실제로는 AI로 성과를 내고 있는 스타트업에 기회가 갈 수 있어야 한다는 뜻도 담고 있다.
“디테일을 집요하게 파는 작업은 한국인이 정말 잘한다고 생각해요. 그런 환경이 구축되면, 글로벌 빅테크에 비해 10분의 1의 인프라를 가지고도 할 수 있다고 봅니다. 그들이 100을 만들었다면 저희는 환경이 다소 부족하더라도 95이상은 충분히 만들어 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인의 DNA 이야기가 또 한번 나온다. 인프라 적다고 미리 쫄지 말고, 도전하라 말한다. “독자적인 데이터로 AI를 활용해 문제를 해결하는 영역과 기존 모델을 개선하는 영역” 모두에서 스타업에 기회가 있는데, 이걸 잘 해내려면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고도 언급했다. 처음엔 아무 것도 가진 것 없는 국방 분야에서 정부 예산을 많이 지출했고, 그 여파로 방산 기업 역시 연구개발에 지원을 많이 받아 성장한 것처럼, 지금의 스타트업 역시 이와 같은 지원이 필요하단 소리다. 물론, 지원의 전제는 ‘경쟁’이다.
차세대 AI, ‘피지컬’과 ‘자율주행’에 대한 관점
모빌리티의 미래가 자율주행에 있다는 것에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을 본적이 없다. 미래가 자율주행인 것은 맞는데, 여기서도 역시 “누구 것을 쓰느냐”에 대한 논쟁이 불붙었다.
“기술 전반에 대한 완전한 자립이 현실적으로 가능할까? 불가능하고 비효율적이기도 하다. 따라서 나는 ‘선택적 자립’ 또는 ‘전략적 소버린 AI’라는 개념을 지지한다. 핵심은 효율적 자립과 국제적 개방이 균형을 이루는 ‘하이브리드 생태계’ 구축이다.”
경기도지사를 지낸 남경필 포니링크 대표는 외국의 기술이라도 선진화된 것을 들여와 우리 것을 만들면 된다고 강조한다. 포니링크는 중국의 포니AI로부터 투자를 받았고, 합작회사도 준비 중이다. 남 대표는 “중국에 가보니 AI 기술의 집합체라고 할 수 있는 자율주행차의 경우엔 ‘초등학생과 대학생’ 정도로 차이가 나더라”며 “(상대적으로 발전 속도가 늦은 우리가) 처음부터 기술을 개발하는 것보다는 선진 기술을 수입해 우리 것으로 만들고 발전시켜 한국화 하자”고 말한다. 귤을 수입해 탱자를 만들자는 것.
그러나 국내 자율주행 기업들에선 자율주행과 같은 기반 기술은 자국 기업을 중심으로 성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람의 생명과 이동권을 담보로 하는 영역이므로 기술을 우리 스스로 콘트롤 할 수 있어야 하는 데다, 여기에 쓰이는 지도 데이터 유출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국내에선 자율주행으로 가장 많은 투자를 받은 오토노머스에이투지의 유민상 최고전략책임자(CSO)는 “어느 국가든 자율주행은 자국 기업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현재 산업이 가는 방향성이고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라면서 “데이터’의 문제 때문에라도 자국 기업 위주로 가는 게 맞고, 그 시장을 선점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자본 전쟁에선 미국과 중국에 비비기 어렵지만, 그럼에도 국내 자율주행 기업이 살아남을 수 있는 활로도 있다고 말한다. 우리나라는 무인 자율주행이 가능한 레벨4 차량의 판매를 위한 정책을 올 3월 마련했다. 차량이 판매되기 시작하면 정부가 주요한 고객이 되는 것이다. 버스가 드문 지방이나 수도권 심야 시간에는 자율주행이 충분히 대안이 될 수 있다.
유 CSO는 “열심히 생존하려는 기업에게 정부가 수요 창출의 초점을 맞춰줬으면 좋겠다. 수요 창출이 자국 기업 중심으로 가면 좋겠단 이야기”라면서 “그래야 관련 산업이 죽지 않고, 그나마 (글로벌 빅테크를) 추격할 힘이 남아 있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일명 ‘로봇’으로 통칭되는 피지컬AI도 자율주행 만큼이나 많은 돈이 들어가고 있는분야다. 역시 투자가 중요시 되는데, 로봇 박사이자 로봇 스타트업인 에이로봇의 CTO이기도 한 한재권 한양대 교수는 “AI는 투자하면 그만큼 나오는 영역”이라면서 “지금은 투자를 안 하고 가만히 앉아 있으면서, 다른 사람들이 앞서가는 걸 보고 ‘우리가 되겠어?’ 이러고 있는 것”이라고 일갈한다. 해보지도 않고, 미리 안 될 거라고 생각하는 이들에 대한 비판이다.
그러나 이런 투자는 민간에서 어렵다. 역시, 정부가 적극 나서야 한다는 것이 한재권 교수의 입장이다. 정부 지원을 우리만 하는 것도 아니다. 미국도 물론 한다. 겉으로 드러나는 직접 지원이 아닐 뿐이지, 정부가 간접적으로 판을 만들어 놓고 그 위에서 기업들이 연구개발하고 사업을 한다. 지금은 국가적 역량을 총동원해서, 우리 기술을 지키고(소버린 AI), 이를 바탕으로 공세로 나아가야 한다고도 말했다.
AI 인프라를 깔고 나면 부가가치를 만들어야 하는데, 그 핵심이 ‘로봇’이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지금은 아직 AI가 컴퓨터 안에 갇혀 있는데, 스크린 밖으로 나오도록 만드는 게 로봇”이라면서 “AI가 몸을 얻어 물리적인 공간에서 일을 하고 부가가치를 만드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로봇 영역에서도 한국이 얼마든지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고 봤다. 단적인 예로, 독일이 자동차를 잘 만든다고 해서 다른 나라가 자동차를 안 만드는 것은 아니다. 한 교수는 “로봇은 대표 선수만 있는 게 아니고 생태계가 중요하다. 필요한 부품 종류만 수천가지”라고 설명하면서 “이걸 어디서 조달할지 봐야 하는데, 여기서 한국이 세계 톱”이라고도 강조했다.
AI에 대한 규제와 보편적 AI
규제 얘기를 빼놓을 수 없다. 기술과 법정책의 조화를 꾸준히 설파해 온 이성엽 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기술법정책센터장)는 한국이 AI 3대 강국이 되기 위해선 ‘포괄적 규제 리스크’에 대한 우려를 해소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형 기업이 AI 투자에 적극 나서게 하려면 “AI기본법이 포괄적 규제 법안으로 작동해 AI 투자로 인한 수익보다는 비용이 높을 우려”를 없애야 한다는 이야기다.
“미국도 중국도 일본도 하지 않는 AI 기술에 대한 포괄적 규제를 한국이 EU보다 먼저 할 필요가 있느냐는 거죠. (내년 1월 AI기본법 시행과 동시에 규제를 적용하면) 세계 최초의 고위험/고영향 AI 규제 국가가 되는 거예요.”
데이터 부족 문제도 언급했다. AI 발전을 저해하는 요소로 데이터 부족을 거론하면서, “AI 학계에서는 생성형 AI 학습에 쓴 데이터로 나온 결과를 다시 학습에 여러 번 활용하면서 모델 성능이 크게 감소하는 ‘모델 컬랩스(붕괴)’ 우려가 제기된다”고도 말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선, ‘데이터 마이닝 면책’을 도입하자고 제안했다. 원활한 데이터 학습을 위해서, 웹에 이미 공개된 개인정보를 활용하는 등의 상황에선 동의를 받지 않아도 되도록 예외를 인정하자는 얘기다.
새 정부가 추진하는 ‘모두의 AI’에 대해선 김한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목소리를 냈다.
“‘AI 가장 잘 쓰는 나라’는 ‘AI 가장 잘 만드는 사람’만으로 안 된다. 그런데 최고 수준의 AI 개발자 양성에만 주목하는 경향이 있다. ‘AI를 잘 활용하는 인재’를 폭넓게 양성하는 것도 그 못지않게 중요하다”
개인, 중소기업, 스타트업을 빼놓고 국가 AI 경쟁력을 논할 수 없다. 김한규 의원은 학생, 노인, 재취업자 등을 대상으론 AI 교육을 활성화해 “각 산업 분야의 도메인 지식과 AI 활용 능력을 겸비한 융합형 인재”를 길러야 한다고 말했다. 중소기업에는 AI 접근권과 활용 능력을 키우기 위한 솔루션 지원을 하자고도 덧붙였다. 그래야만, 국가 경제의 중심축들이 AI를 제대로 활용해 경쟁력 있는 구조를 만들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사회 안전망도 정치인들이 주의 깊게 봐야 한다. 이와 관련해서 김 의원은 “AI 시대에 맞게, AI로 어느 분야에서 일자리 변화가 있을지 구조적으로 전망을 하고, 사람의 재교육도 결국은 AI를 중심으로 해야 되지 않느냐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남혜현 기자> smilla@byline.netwo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