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일본은 철저히 자국 중심인데…국내 플랫폼 규제안이 놓친 것
‘플랫폼 규제 신보호주의 진단’ 국회 세미나 개최
자국 기업 보호 논의 실종돼…기업의 밸류업 방향성 놓쳐
EU 빅테크 규제 집행 지켜보며 벤치마킹해야
일본서 빅테크 OS 사업자만 특별 관리 법안 발의
규제 논의 이후 VC 투자 끊겨…장기적 안목 갖고 논의
“정말 불필요한 규제는 최소화할 필요가 있다. 핀셋으로 골라서 규제 장치를 마련해야 할 필요가 있다. 특별법 하나를 만들어 모든 플랫폼에서 발생하는 문제점들을 다 해결하기는 사실상 어렵다. 공정거래법, 대규모 유통업법을 개선하는 방향, 여기에 자율규제를 병행하는 것이 현 시점에서 가장 실효성 있는 방향이 아닌가 한다.”
문상일 인천대 법학부 교수는 지난 29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최형두, 김영배 의원 주최의 ‘플랫폼 규제 공정성 그리고 디지털 신보호주의, 쟁점 및 진단’ 세미나에서 이 같은 의견을 냈다.
문 교수에 따르면 지난 21대 국회에서 발의된 온라인플랫폼법안은 총 21개다. 그는 플랫폼 규제로 영업상 자유를 침해할 가능성과 중복 규제 우려, 규제 효과 입증의 어려움을 들어 사전보다는 ‘사후’를 짚었다. 플랫폼 기업이 세계 시장에 진출할 수 있도록 경쟁력을 불필요한 규제에 대해선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미국이나 EU는 입법 태도가 다르다. 결국 자국 기업들의 사업을 우선하기 위한 신보호주의 정책에 따라서 조금씩 다른 방향의 플랫폼 규제 스탠스를 취하고 있다. 이것과 별개로 우리나라는 국내 사업자들의 이익을 이해관계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도외시하고 자칫 해외 커머스 사업자들 플랫폼 사업자들이 오히려 반사 이익을 볼 수 있는 부분에 대해서도 충분히 좀 고려를 해야 된다고 보고 있다.”
정혜련 경찰대학교 법학과 교수는 ‘K플랫폼 규제의 딜레마’를 들었다. 유럽은 데이터(정보) 신보호주의를 배경으로 플랫폼 규제 패키지 입법(DSA, DMA)을 추진했지만, 국내에선 경쟁법과 전자상거래법 등 여러 법안의 논의가 섞이는 바람에 ‘정보 보호’와 ‘플랫폼 기업의 밸류업’이라는 방향성을 놓치고 있다는 지점을 짚었다.
EU는 DMA를 통해 미국 빅테크 플랫폼엔 완고한 태도를 취하는 반면, 자국 테크 산업의 진입장벽은 낮추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EU의 플랫폼 기업들이 미국 빅테크 대비해 상대적으로 가벼운 의무를 담당하고 규제의 부담을 완화하는 방향이다.
정 교수에 따르면 유럽연합(EU)의 플랫폼 규제 패키지 입법(DSA, DMA) 배경은 ‘자국 인센티브’가 주요하다. 회원국들이 개별 입법을 추진하면서 다양한 권한을 가진 공무원 일자리를 만들어내고 빅테크들을 압박한다는 것이다. 독일의 경우 빅테크 조사권과 감독권을 연방망관리청에 위임하는 등 정부 조직법을 개편한 바 있다.
현재 디지털시장법(DMA) 첫 타깃은 애플이다. 애플 앱스토어 약관인 ‘안티-스티어링(결제 유도 금지)’ 조항의 법 위반 여부를 두고 대대적인 컴플라이언스 인터뷰가 진행되고 있다. EU 집행위원회 내 전문적 식견을 가진 직원들이 없어 현실적인 집행이 쉽지 않다는 문제가 있다. 여전히 공식적인 조사가 진행 중이다. 정 교수는 국내에서도 진행 경과를 지켜보며 참고할 사안으로 소개했다.
“일본은 유럽의 방식을 차용했다. 최근 발의된 통신시장활성화를 위한 규제법은 OS 사업자만 특별히 관리하는 법안이다. 빅테크의 데이터를 공용화하고 유통하고, 통신시장의 중요성만을 보고 접근했다. 차라리 이 방식이 우리의 결에 맞지 않나 생각한다. (유럽의 플랫폼 입법이) 규제 집행의 한계를 보이는 점, 이러한 법안에서 어떤 점까지 수용해야 할지 벤치마킹할 점을 잘 포착해야 한다. 정보 보유가 국가경쟁력을 좌우할 수 있다. 국내 산업도 성장하기 위한 제도와 금융 등 공통된 정보와 경쟁력 등 여러 가지 모든 것들을 종합해서 고려한 판단이 필요하다.”
뒤이어 한국인터넷기업협회 박성호 회장은 플랫폼 규제 논의가 이어지면서 해외 VC의 투자가 끊긴 상황과 카카오 화재 사태와 티메프 사태를 개별 기업 사례가 아니라 플랫폼의 구조적 문제로 보고 접근하는 것에 우려를 표했다.
“플랫폼 규제 논의가 법안 발의가 나온 시점부터 벤처 스타트업 생태계가 연쇄적으로 안 좋아지고 있다. 해외에서 예측 불가능한 한국에 더 이상 투자하지 않겠다는 해외 VC(벤처캐피탈)의 명확한 가이드라인이 발표가 됐다. 이게 나비효과가 아니고 분명히 예측되는 효과다. (미국 빅테크가 점령한 유럽과 달리) 우리나라는 많은 기업들이 10%, 20% 영역에서 치열하게 경쟁 중이다. 구글이 석권을 하고 그런 상황이 아닌데, 경쟁 촉진법을 낸 정부 부처에 왜 그러시냐고 물었고 아직 분명한 대답을 못 듣고 있다.”
“(티메프 사태 등으로) 한국 플랫폼 생태계를 매도하는 하나의 기폭제가 돼선 안 된다. 옥석 가리지 않은 유럽식 법안의 섣부른 베끼기, 카피한 법안들에 대해 유감스럽다. 찬찬히 대안을 모색하자는 게 제 입장으로 장기적 안목이 필요한 부분이다. 현재 규제만 얘기하고 있는데 혁신 입법이 없다. 균형을 맞출 필요가 있다.”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정주연 박사도 기업 투자 관점에서 우려를 전달했다.
“얼마 전 우리나라보다 먼저 강력한 플랫폼 심사 지침을 적용했던 중국의 경우, 사실 글로벌 기업이라고 할 수 있는 알리나 테무 등 소수 몇 개 기업을 대상으로 했음에도 불구하고 중국 내에 월간 벤처 투자 건수가 약 27%, 신규 진입 스타트업 수가 약 19%나 감소했다라는 연구 결과가 나와서 저희 업계가 상당히 충격을 받은 바 있다. 이런 상황은 국내도 이미 벌어지고 있다. 스타트업얼라이언스가 분석한 바에 따르면 2021년부터 2023년까지 3년 내내 플랫폼 스타트업들에 대한 전반적인 투자가 급격히 감소했을 뿐만 아니라 특히 100억원 이상의 대규모 투자의 경우에는 2021년 약 17%에서 2023년 약 8%로 반토막난 것으로 확인됐다. 여러 가지 요인들을 말씀 주시지만 저희는 국회와 정부가 그간 온플법이나 플랫폼 경쟁 촉진법 등 강력한 규제 도입을 논의하고 추진하는 과정에서 규제 불확실성이 국내 스타트업 투자 시장에 이미 큰 악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한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이대호 기자>ldhdd@byline.netwo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