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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재석의 입장] 그 돈은 당신 돈이 아니다

“회계에서 운영자금과 판매대금을 분리하는 제도는 플랫폼 기업의 자금 운용에 제약을 초래할 수 있다”

“정산 주기를 단축하고 정산 대금의 운용 방법을 제한하는 규제는 기업의 운영 효율성을 저하시킬 수 있다”

최근 티메프 사태 이후 이커머스 플랫폼의 ‘정산’에 대한 규제 움직임이 일자 스타트업 협회인 코리아스타트업포럼(이하 코스포)에서 낸 성명의 내용 중 일부다. 정부는 앞서 이커머스 회사의 판매대금 정산 기한을 40일 이내로 제한하고, 판매대금 예치 등 자금 별도 관리도 의무화하기로 했다.

뭔가 사건이 하나 벌어지면 면밀한 검토 없이 일단 규제나 대책을 발표하는 것은 우리나라 정치권과 정부의 종특(종족 특성)이다. 본질적인 문제 해결을 위한 깊은 고민보다 국민 앞에서 빨리 생색내는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니 벌어지는 일이다. 

제 2의 티메프 사태를 막기 위한 대책이라는 것이 이렇게 며칠만에 뚝딱 만들어지는 것이 아무래도 탐탁지 않다. 아직 사태의 본질적 원인이 시스템에 있는 것인지, 경영자의  잘못된 경영 방식에 있는지, 제도의 미흡에 있는지 충분한 조사와 연구가 이뤄지지 않았다. 충분한 원인 파악이 없는 상황에서 대책부터 만들면 그 대책은 역효과를 발휘할 때가 많다.

사실 정산주기를 이용해 현금 유동성을 확보하는 것은 이커머스 업체뿐 아니라 모든 유통업체들이 공통적으로 발휘하는 스킬이다. 재무제표를 보면 매입채무나 미지급금을 늘린 덕분에 현금흐름은 플러스로 굴러가는 유통사가 많다.

그럼에도 서두에 인용한 코리아스타트업포럼(코스포)의 주장은 쉽게 받아들이기 힘들다. 코스포는 판매자에게 지급해야 할 돈을 플랫폼의 필요에 따라 운용하는 행위나, 정산주기를 늘려 플랫폼에 머무는 돈을 늘리는 것이 효율성을 위한 선택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틀린 말은 아니다. 이커머스 플랫폼 입장에서 보면 그렇게 하는 것이 효율적일 것이다. 

하지만 생태계에는 플랫폼만 있는 것이 아니다. 판매자도 이 생태계의 중요한 일원이다. 정산주기가 길어지면 이커머스 플랫폼의 유동성은 증가하지만, 판매자의 유동성은 줄어든다. 정산주기를 기다리지 못해 대출까지 받는 판매자가 많다. 판매자에게 선정산해주고 이자를 받는 스타트업도 활황이다. 플랫폼의 매입채무, 즉 플랫폼이 줘야 할 돈을 빨리 안줘서 판매자는 안 내도 될 이자를 내게 된다. 유동성이 막히면 자칫 흑자 도산할 수도 있다.

코스포가 이야기하는 효율성은 오직 플랫폼에게만 해당하는 논리일 뿐, 판매자에게는 매우 비효율적인 일이 된다. 

입장을 바꿔보자. 코스포가 이야기하는 그 ‘효율성’을 신용카드사가 발휘한다고 가정해보자. 신용카드사가 고객의 결제 대금을 70일 뒤에 플랫폼에 준다면 어떨까? 신용카드사의 자금 운용 효율성을 위해 결제 이후 70일 이후에 대금을 받는 것을 플랫폼은 ‘효율적 기업 운영을 위해 그럴 수 있지’라고 받아들일까? 신용카드사를 원망하며 하루라도 빨리 고객의 결제대금을 받기 위해 노력하지 않을까?

생태계에는 플랫폼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플랫폼의 발전도 중요하지만, 플랫폼과 함께 하는 생태계 일원 모두 발전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스타트업은 외부 투자금를 통해 단기간에 급성장을 이루고 그 성과를 투자자와 나누자는 사업 방식이지, 파트너에게 줘야 할 돈을 임의대로 운용해 성장하자는 모델이 아니다. 그 돈은 플랫폼, 당신의 돈이 아니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심재석 기자>shimsky@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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