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재석의 입장] 플랫폼이란 놈은 참 이상해
플랫폼이란 놈은 참 이상하다.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과 다르게 움직일 때가 많다.
예를 들어 시장경제 시스템에서는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가격이 내려가고 소비자 효용이 커지는 것이 상식이다. 그래서 공정거래법과 같은 법을 세계적으로 ‘독점금지법’이나 ‘경쟁법’이라고 부른다. 독점을 막고 경쟁을 촉진시키는 것을 목표로 한 법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상식이 플랫폼에서는 엉뚱하게 적용될 때가 종종 있다. 예를 들어 배달앱 시장을 보자.
최근 시장의 압도적 1위 서비스 ‘배달의민족(이하 배민)’은 수수료 인상을 발표했다. 창립 이래 대체로 2~3위 사업자에 비해 낮은 수수료 정책을 유지해오던 배민이 쿠팡이츠와 같은 수수료를 받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배민 수수료 인상의 배경에는 독일 본사 ‘딜리버리히어로’가 한국 시장을 현금인출기로 이용하는 점이 있지만, 쿠팡이츠와의 경쟁도 수수료 인상의 요인으로 작용했다. 쿠팡이츠가 최근 빠르게 성장해 요기요를 넘어 시장의 2위까지 자리잡은 것에 배민이 위협감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얼마 전부터는 쿠팡의 멤버십 프로그램 가입자에게 무료 배달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어 배민이 떨고 있다.
오래 전부터 쿠팡이츠를 가장 큰 잠재적 위협으로 생각해오던 배민은 경쟁이 심화되자 수수료를 인상한다고 발표했다. 쿠팡이츠와의 경쟁에 대비한 자금을 마련하겠다는 것이 명분이다. 이처럼 쿠팡이츠와의 경쟁은 수수료 인상의 명분으로 이용됐고, 실제로 그러한 면이 있기도 하다. 배민은 ‘쿠팡이츠보다 더 받겠다는 것도 아니고 그동안 쿠팡이츠보다 월등히 저렴했던 수수료를 똑같이 받겠다는 것인데, 이게 왜 문제냐’라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쿠팡이츠와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배민의 수수료가 올라감 셈이 됐다.
최근 큰 이슈로 떠오른 큐텐 사태도 이런 관점에서 해석해 볼 수 있다. 티몬과 위메프는 시장의 강자가 아니었다. 주요 이커머스 업체 중에서 시장점유율이 낮은 편에 속했다. 그런데 이들의 정산주기가 가장 길었다.
생각해보면 이상하다. 시장점유율이 낮은 서비스 플랫폼이라면 잘 나가는 플랫폼보다 혜택을 더 많이 제공해야 점유율 상승을 노려볼 수 있는 것 아닌가? 점유율을 높이려면 다양한 판매자가를 많이 확보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정산주기 같은 걸 경쟁사보다 짧게 해야 판매자를 유치할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현실에서는 시장점유율 후순위인 티몬과 위메프는 정산주기가 길고 1위인 네이버는 정산주기가 짧다.
플랫폼과 경쟁의 역설이다. 이는 플랫폼의 양면시장적 특성 때문이다. 플랫폼에는 구매자와 판매자라는 두 개 집단의 고객이 있다. 배달앱에서는 소비자와 음식점 사장님, 오픈마켓에서는 소비자와 판매자가 그 두 집단이다.
플랫폼의 경쟁이 치열해지면 소비자는 전통적인 경쟁법의 이론대로 효용을 얻는다. 요즘 배달앱으로 음식을 주문하면 배달비가 거의 들지 않는다. 배민과 쿠팡이츠가 배달비를 안 받거나 최소액을 받기 때문이다. 티몬과 위메프에는 다른 곳보다 훨씬 저렴한 특가 상품이 있었다.
하지만 음식점 사장님이나 판매자와 같은 공급자에게는 플랫폼 경쟁이 치열해지는 것이 역효과로 작용될 때가 있다. 플랫폼이 소비자 혜택을 늘리기 위해서 공급자의 희생을 강요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공급자는 소비자와 달리 플랫폼을 자유롭게 옮겨다니기가 어렵다. 이미 고객을 확보하고 있는 플랫폼을 떠나 새로운 곳에 자리잡는 것은 엄청나게 큰 모험이다. 또 최대한 많이 판매해야 하는 입장에서 다양한 플랫폼을 이용하는 멀티호밍은 기본 전략될 수밖에 없다.
결과적으로 성숙한 시장에서 플랫폼들은 경쟁이 치열할수록 소비자 혜택을 늘리면서 공급자 혜택을 줄인다. 플랫폼을 떠나기 어려운 공급자의 희생을 강요해서 떠나기 쉬운 소비자를 붙잡아 두는 것이다.
플랫폼 경제 시스템이 성숙해지면서 벌어지는 현상들이다. 이런 현상을 통제하기 위해 각 나라들은 기존의 경쟁법과는 다른 법률을 만들기 위한 행보를 하고 있다. 유럽은 디지털 시장법이라는 것을 만들었고, 우리나라도 플랫폼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 지 오래다.
중요한 것은 어떤 관점으로 규제를 만들 것인가 하는 점이다. 공정위가 최근까지 추진했던 플랫폼 법의 명칭은 가칭 ‘플랫폼 경쟁 촉진법’이다. ‘플랫폼의 독점이 문제고, 플랫폼간 경쟁이 치열해 져야 한다’는 전통적 경쟁법 관점으로 법 제정을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앞서 보았듯 플랫폼의 경쟁 심화는 공급자에게 부정적 효과를 일으킬 수 있다. 기존의 경쟁법은 소비자 효용을 최우선 가치로 삼고 있었다. 이 관점만으로는 양면시장을 모두 다룰 수 없다.
플랫폼 경제가 이제는 완전히 성숙해졌다. 독점과 경쟁을 정의하고 규제하는 관점도 플랫폼에 맞게 새로 정립돼야 할 것이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심재석 기자>shimsky@byline.netwo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