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견기업, 왜 스타트업 인수에 떠오르는 주체가 됐나
회사가 성장하려면 크게 두 가지 방법이 있다. 만드는 제품이나 서비스를 잘 팔아서 지속해 매출과 영업익을 키우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회사의 부족한 부분을 파악, 그 영역을 메꿔줄 수 있는 성장동력에 투자하거나 그럴 수 있는 회사를 인수합병(M&A)한다. 구 게임빌, 현 컴투스홀딩스는 두 방법을 꾸준히 도모하고 있는데, 그중에서도 두 번째의 ‘인수합병’ 전략을 잘 썼다.
이용국 컴투스홀딩스 경영고문은 17일 국회 유니콘팜과 스타트업얼라이언스가 공동주최한 ‘기업혁신을 위한 스타트업 M&A 활성화 방안 토론회’에 발표자로 참석, ‘콘텐츠 중견기업의 스타트업 M&A를 통한 성장 전략 사례’를 공유했다. 2000년 창업 이후 PC 게임이 시장을 주름 잡던 시절에 ‘놈’이라는 게임으로 모바일 시장을 두드렸던 이 회사는, ‘애니팡’이라는 걸출한 경쟁작이 나오면서 생존을 위해 컴투스라는 또 다른 경쟁사를 인수합병했고, 이듬해 ‘서머너즈워’라는 히트작을 탄생시켰다.

게임빌은 인수합병으로 회사를 키워 온 좋은 사례다. 2009년 코스닥에 기업공개(IPO)를 하면서 100억원 규모의 자금을 확보했으나, 곧 시장으로부터 추가적인 성장 압박을 받았다. 새로운 수익원을 찾아야 하는 상황에서 게임빌은 상장 이후 약 3년 간 10개 이상의 스타트업에 투자를 하며 시장의 기회를 봐왔다.
컴투스를 인수하기 이전에도 에버플이라는 스타트업에 투자, 이 회사가 개발한 게임 ‘몬스터워로드’가 글로벌 히트를 치는 성과를 봤다. 종국에는 이 회사의 지분을 100% 인수하면서 IP와 인재를 확보했다. 이용국 고문은 “이전처럼 내부에서 열심히 게임 개발해서 성공하는 순차적 방법에만 기댈 수 없는 상황에서, 외부 스타트업 개발사에 대한 투자와 인수합병에 눈을 돌리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후 인수한 컴투스와의 합병은, 시장의 기대를 뛰어넘는 성과를 가져왔다. 이 고문은 “당시만 해도 애니팡 같은 회사를 만들어야지 왜 컴투스를 인수하느냐는 비판이 있었다”고 회상했는데, 결국 이 인수합병 결정은 잘 한 것이 되었다. 합병 1년 만에 두 회사가 모바일 게임에서 쌓아온 역량을 결합해 출시한 ‘서머너즈 워’가 북미와 유럽에서 빅히트를 치면서 결국 컴투스와 컴투스홀딩스를 먹여 살리는 주요 수익원이 됐다. 지난 10년간 서머너즈워가 일으킨 매출이 약 30억달러(약 4조원)로, 이 수익 중 절반이 미국과 유럽에서 난다.
컴투스홀딩스와 같은 사례는 스타트업 생태계에서는 장려되는 일이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스타트업 M&A 현황 및 활성화 방안’을 주제로 연구한 결과를 담은 리포트가 공개됐는데, 스타트업얼라이언스와 함께 리포트를 만든 강신형 충남대학교 경영학부 교수는 “최근 스타트업 M&A 시장에서 부상하고 있는 중견・중소기업의 역할에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양적완화로 시장에 유동성이 공급된 2021년과 대비해, 2022년 기준 대기업의 스타트업 인수합병의 시장규모는 1/5로 감소한 반면 중견기업의 스타트업 인수합병 시장규모는 2.3배 증가했다. 강 교수는 “대기업, 해외기업의 경우 기술, 인력 확보와 시장점유력 확대를 위한 동종산업 M&A에 집중하는 반면, 중견기업의 경우 새로운 비즈니스모델을 찾기 위한 이종산업 M&A에도 적극적”이라고 말했다.
따라서 스타트업 M&A 시장 확대를 위해서는 대형 M&A를 주도하는 글로벌・대기업의 스타트업 투자&인수 촉진과 더불어 중견기업이 스타트업 M&A 시장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오픈이노베이션 프로그램 확대 등 지원책이 필요하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토론자로 참여한 여영준 국회미래연구원 부연구위원도 중소·중견기업과 스타트업의 협업을 강조했다. 최근 중소·중견기업의 CVC(기업 내 벤처투자사)가 늘어나고 있고, 이들의 소액 인수건이 많아지고 있다는 점을 고려한 것이다. 다만, 인수합병의 경우 시장가격이 비싸지면 매수 기업 역시 부담스러워질 수 있으니 비교적 가치가 작은 씨드 단계나 시리즈 프리A, 최대 시리즈B 단계에서의 중소·중견기업 인수합병을 활성화하는 방법을 제안했다. 이 경우 상대적으로 변화에 빠른 유연한 조직이 결합하는 것이므로, 문화가 서로 달라 합병 이후 괴리감을 겪는 대기업-스타트업 간 인수합병보다 사후 적응의 성공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는 장점도 언급했다.
인수합병 시장에서 중소·중견 기업의 역할을 강화하자는 얘기가 나오는 것은 최근 인수합병 시장에서 대기업의 비중이 줄어들고 있다는 현실이 반영됐다. 특히 벤처투자 시장이 활황일 당시 대기업 군에서 가장 활발히 인수합병에 나섰던 카카오가 최근에는 투자에 적극적이지 않다는 부분이 언급됐다. 강 교수는 “투자업계에서는 그나마 카카오가 인수에 적극적이어서 우리가 먹고산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였다”면서 “2021년에는 대기업 내 카카오그룹의 벤처투자 비중이 80%수준(약 5조1000억원)까지 올랐으나 최근에는 회사 내부의 경영상 이유 등으로 투자가 급감했고, 전체적으로 대기업이 투자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 역시 급감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분석했다.
한편, 발제자인 강신형 교수는 2016년부터 2023년까지 이루어진 국내 594건의 스타트업 인수합병 사례를 분석한 결과 “국내 스타트업 인수합병시장은 성장하고 있으나 안정적인 투자금 회수와 모험자본시장의 선순환을 위해서는 지금보다 스타트업 인수합병 시장이 두 배 이상 더 성장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남혜현 기자> smilla@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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