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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재석의 입장] 배민은 현금인출기가 될 것인가

나는 개인적으로 배달의민족(배민)이라는 서비스를 굉장히 높게 평가해왔다. 길거리 전단지 주워 사진찍어 올리는 것으로 시작한 이 서비스가 지금은 스마트폰 혁명 이후 가장 성공한 서비스 중 하나가 됐다. 배민(우아한형제들)은 서비스 면에서나 기업 문화 면에서나 국내에서 가장 혁신적인 기업이라고 꼽혀왔다.

배민의 성장이 의미가 깊은 건 음식점 생태계가 함께 발전했다는 점이다. 전단지 시절에는 배달을 시킬 수 있는 품목이 중국음식, 피자, 족발 등 한정적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배달 불가능한 음식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는 어떤 음식점 사장님도 배달로 매출을 일으킬 수 있는 것을 의미한다. 배달 전문으로 창업을 하면 굳이 비싼 임대료를 내고 큰 길에 매장을 내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창업자의 리스크도 줄었다.

배달 라이더라는 새로운 직종이 크게 성장하기도 했다. 라이더는 특별한 지식이나 스펙을 요구하는 직종이 아니기 때문에 실업자 구제 등 사회적 안전망 역할을 하기도 한다.

개인적으로 배민에 특히 긍정적이었던 이유는 생태계 구성원과의 사회적 협력에 가장 적극적인 회사라고 봤기 때문이다.

배민의 수수료는 다른 경쟁 서비스보다 확연히 저렴했다. 현재 배민의 수수료는 6.8%인데, 쿠팡이츠이나 요기요보다 훨씬 저렴하다. 한때는 수수료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일자 수수료를 아예 없애고 광고비로만 수익을 올리기도 했다. 수수료 체계가 도입된 이후에도 광고비만 내고 배민 플랫폼을 이용하는 것이 여전히 가능했다.

또 라이더 보험 가입을 위해 가장 적극적으로 움직인 회사도 배민이었고, 음식점 사장님 교육 등에도 적극적이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배민의 행보가 조금씩 과거와 달라진다는 느낌을 받았다. 생태계 구성원과의 사회적 협력이라는 가치는 조금씩 약해지고, 수익극대화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 듯한 모습이 보였다.

예를 들어 배민은 배달대행업체들과 음식배달 산업의 생태계를 구성해왔다. 하지만 이제 배달대행업체들은 하나씩 사업을 접고 있다. 배민이 서비스를 ‘배민배달’과 ‘가게배달’로 분리하고, 스스로 배달을 책임지는 배민배달에 힘을 주면서 가게배달을 담당했던 배달대행사들이 설 자리가 줄어들었다.

음식점 사장님들도 배민 때문에 힘들어진다는 하소연을 많이 하기 시작했다. 배민배달에 들어가야 매출이 나오는데 배민배달에 들어가면 음식점에서 배달비를 조정할 수 없다. 배달비를 얼마나 부담할 것인지 음식점이 선택할 수 없게 되면서 울며겨자먹기로 배달비를 내는 경우가 많다.

결정적 장면은 10일 발표한 수수료 인상이다. 배민은 수수료율을 6.8%에서 9.8%로 인상했다. 무려 44%를 한 번에 올린 것이다. 더이상 쿠팡이츠보다 수수료가 저렴하다는 것을 강점을 내세울 수 없게 됐다.

물론 수수료율을 인상할 수 있다. 배민도 수익을 내야 직원들 월급을 주고 미래를 대비한 투자를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배민은 이미 충분한 수익을 내고 있다. 지난해 매출 3조4155억원, 영업이익 6998억원을 기록했다. 해외 계열사를 제외한 국내 법인의 별도 기준 영업이익은 7248억원에 달한다. 국내 이커머스 1위 기업 쿠팡보다 많은 영업이익이다. 영업이익률도 20%가 넘는다.

이렇게 이익을 많이 내는 상황에서 수수료율을 44%나 인상한다는 것은 더 많은 수익을 원하고 있다는 의미다. 배민이 수익을 높여갈수록 음식점 사장님들의 수익은 줄어든다.

생태계와의 사회적 협력에 높은 가치를 부여했던 배민이 과거와는 달라지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건 내 개인적 생각만은 아닌 듯 싶다.

업계에서는 배민의 이런 변화를 독일회사인 딜리버리히어로에 매각된 이후 나타난 모습이라고 해석한다. 그동안 사회적 협력에 가치를 두고 사업을 펼쳐왔던 창업자와 기존 경영진이 하나둘씩 떠나고 독일 본사의 입김이 점점 강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4127억원의 배당이다. 배민(우아한형제들)의 지분 99%를 독일 딜리버리히어로가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배당금은 거의 본사로 넘어갔다.

독일 딜리버리히어로는 배민이 없으면 생존이 불가능한 게 아닐까 생각될 지경이다. 한국시장에서 7248억원이라는 막대한 영업이익을 안겨줬는데, 딜리버리히어로의 지난해 조정에비타는 겨우 3800억원이다. 한국시장이 없으면 3000억원이 넘는 적자를 기록하는 회사라는 의미다. 과장해서 나쁘게 말하면 딜리버리히어로는 한국 음식점 사장님들에게 빨대를 꽂고 거대한 글로벌 기업으로 존재하고 있는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44% 수수료를 인상한다는 것은 빨대를 더 굵고 튼튼한 것으로 바꾸겠다는 의미로 들린다. 최근 배민 대표가 갑작스럽게 사임을 했는데 독일 본사와의 갈등이 있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배민은 이제 단순히 사기업의 서비스라고만 보기는 어렵다. 스스로 원든 원치 않든 배민은 한국 음식점 소상공인의 비즈니스 인프라가 됐다. 기업이 수익을 추구하는 것이 뭐가 나쁘냐고 말할 수는 있겠지만, 원치 않아도 배민에는 사회적 책임이 부여돼 있다. 한국 음식점 사장님들의 주머니가 독일 딜리버리히어로의 현금인출기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심재석 기자>shimsky@byline.network

첫 댓글

  1. 기자님이 정확히 정리해 주셨습니다.
    자영업자는 독일 흡혈기에 쪽쪽 빨리고 있어요 앙상한 뼈만 남을 때까지 천만 가까운 대한민국이 빨리고있어요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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