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추얼 트윈’ 왕좌 노리는 다쏘시스템

프랑스 기업 다쏘시스템(Dassault Systèmes)은 캐드(CAD) 솔루션으로 유명한 회사이지만 생각보다도 더 넓은 영역에서 활약하고 있다. 제조업은 물론 헬스케어와 도시 인프라, 더 나아가서는 방위 산업까지 다양한 분야의 디지털트랜스포메이션을 지원하며 대표적인 3D모델링·시뮬레이션 기업으로 자리 잡았다.

“인생에는 리허설이 없다.” 다쏘시스템 홈페이지에 담긴 문구다. 이미 벌어진 일을 되돌릴 수는 없는 것은 당연지사. 하지만 다쏘시스템은 자사 솔루션이 산업 분야의 시행착오를 예방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제품수명관리(PLM)를 지원하는 솔루션으로 실제 모델 제작 이전에 먼저 리허설을 해볼 수 있다는 것이다.

다쏘시스템의 명성이 캐드 솔루션 ‘솔리드웍스(SOLIDWORKS)’에서 시작한 것은 사실이다. 본래 미국 기업이었던 솔리드웍스를 1997년 인수한 이후 자신들의 대표 브랜드로 키웠다. 여기에 클라우드 기반의 플랫폼 ‘3D익스피리언스 웍스(3DEXPERIENCE WORKS)’를 내놨다. 솔리드웍스를 비롯해 카티아(CATIA), 델미아(DELMIA), 에노비아(ENOVIA) 등 12가지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3D 시뮬레이션 작업을 지원한다.

디자인을 비롯해 ▲시뮬레이션 ▲거버넌스 ▲마케팅 및 세일즈 ▲제조 등 5가지 도메인을 바탕으로 각각의 업무에 맞는 다양한 애플리케이션을 클라우드로 쉽게 활용할 수 있다. 일종의 3D 설계 종합 선물세트다. 버추얼 트윈(VirtualTwin) 작업을 지원하고, 시제품 제작과 최적화를 지원해 모든 산업의 환경 문제 또한 줄일 수 있다고 다쏘시스템은 강조한다.

회사는 지난 1981년 설립됐다. 지난해 다쏘시스템의 전 세계 매출은 59억5000만유로. 우리 돈으로 8조6000억원에 달한다. 한국 법인은 1997년에 세워졌다. 특히 2010년에는 720억원을 투자해 조선해양 분야 연구개발(R&D) 센터를 대구에 설립하기도 했다.

다쏘시스템은 특히 ‘지속가능성’에도 집중한다. 3D익스피리언스 웍스 같은 플랫폼을 통한 버추얼 트윈으로 환경에 기여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2008년부터 매년 환경 보고서를 내는가 하면 ‘유럽 그린 디지털 연합 (EGDC)’의 창립멤버이기도 하다.

다쏘시스템 측은 “실물 제작에 드는 비용과 시간 등을 줄여 탄소 중립을 도울 수 있다”며 “현재 세계 전기차 85%와 풍력 발전 시설의 75% 이상이 다쏘시스템의 버추얼 트윈 기술을 통해 만들어졌다”고 밝혔다.

우리나라에서도 마찬가지다. 다쏘시스템코리아는 영월군의 스마트시티 사업에 참여, 버추얼 트윈 기술을 접목해 환경에 악영향을 주는 요소를 미리 예측하고 예방하고 있다. 스마트시티의 모습을 사전에 구현해 보고, 적합한 입지 조건이나 교통 여건 등을 제시해 다양한 기업이 영월에 자리하도록 지원한다.

디지털 트윈 앱 모은 3D익스피리언스 생태계

솔루션 자체에 집중해 보면 역시 12개 애플리케이션을 모은 3D익스피리언스 웍스가 중심이다. 흔히 솔리드웍스의 명성으로 캐드만 하는 기업이라는 이미지가 있지만, 3D 익스피리언스 웍스에 포함한 앱 면면을 보면 사회에 필요한 기술 전반을 시뮬레이션하는 데 무리가 없는 진용이다. 다쏘시스템 스스로 ‘버추얼 트윈 익스피리언스 기업’으로 자신들을 표현한다.

3D익스피리언스 웍스에 들어있는 생명공학 솔루션 ‘바이오비아(BIOVIA)’는 다쏘시스템의 넓은 사업 범위를 확인할 수 있는 앱이다. 화학적 연구와 재료과학 시뮬레이션에 초점을 맞췄다. 이를 통해 코로나19 백신 연구를 지원하고, 사람의 심장 운동을 시뮬레이션 하는 등 건강 관련 연구에 힘을 보태고 있다는 게 회사의 전언이다.

솔루션 간의 융합이 자유로운 것도 장점인데 솔리드웍스로 약품 용기 모델을 시뮬레이션하고, 바이오비아를 통해 약품의 성분 분석부터 제조까지 과정을 시뮬레이션 해보는 식이다.

한 대 가격이 수천억원에 달하는 전투기를 관리하는 데도 다쏘시스템이 쓰인다. 전투기는 수만개의 부품 중 하나만 잘못돼도 비행에 문제가 생기는 기술의 집약체다. 운용에 문제가 생기면 천문학적인 손실이 생긴다. 그만큼 정확도 높은 시뮬레이션 솔루션이 필요하다.

다쏘시스템은 최근 계열사인 다쏘 에비에이션과 함께 프랑스산 전투기 ‘라팔’의 유지보수 및 수리·운영(Maintenance·Repair·Overhaul, MRO) 최적화를 지원하고 있다.

3D익스피리언스 웍스의 넷바이브(NETVIBES) 앱을 활용해 MRO를 진행한다. 넷바이브는 기계나 설비 운용 단계에서 문제가 될 수 있는 요소를 예측하고, 신속하게 유지보수 일정을 짤 수 있는 맞춤형 대시보드 앱이다.

다쏘시스템 생태계를 한 곳에서 만난다…‘3D익스피리언스 월드’

연례 컨퍼런스 ‘3D익스피리언스 월드’는 다쏘시스템의 기술력을 확인할 수 있는 장이다. 이와 함께 고객사들이 참여해 사용 사례를 공유하는 ‘3D익스피리언스 포럼’도 매년 개최한다.

올해 개최 25주년을 맞은 3D익스피리언스 월드. (사진=다쏘시스템)

올해 미국 텍사스주 댈러스에서 열린 3D익스피리언스 월드는 인공지능(AI)을 화두로 올렸다. 생성AI를 활용한 3D 설계의 혁신 방안을 중점적으로 소개했다.

버나드 샬레(Bernard Charles) 다쏘시스템 회장은 제너럴 세션에서 자연어를 기반으로 3D 설계 작업을 지시하는 생성AI 시연 영상을 제시했다. 솔리드웍스를 통한 3D 디자인 작업에서 자연어 프롬프트로 원하는 스타일 추천을 요청하고, 시뮬레이션까지 진행할 수 있는 기능이다.

단 다쏘시스템의 AI 전략은 타사와는 조금 다른 자세를 취한다. ‘속도 조절’에 방점을 찍는다. 생성AI가 대세이긴 하지만 설계 단계에서 활용하다 오류가 나면 자재 수급이나 완제품 생산까지 영향을 미친다. 이에 급히 적용하기 보다는 완벽히 영글었을 때 내놓겠다는 의지가 포착된다.

수칫 제인(Suchit Jain) 3D익스피리언스 웍스 전략 및 비즈니스 개발 부사장은 솔리드웍스에 접목할 생성AI가 100% 신뢰할 수 있으려면 범용 모델보다 더 오랜 개발 기간이 필요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다쏘시스템은 타사와의 융합도 지속하고 있다. 올해 3D익스피리언스 월드에서는 전자디자인자동화(EDA) 업계의 강자 케이던스(CADENCE)와의 협력을 알렸다. 케이던스가 제공하는 인쇄회로기판(PCB), 칩과 기계 설계 프로세스를 자사 솔루션 생태계와 통합해 제품 디자인 속도를 끌어올리겠다는 게 회사의 계획이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이진호 기자>jhlee26@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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