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D 설계 특화 AI…다쏘시스템의 도전은 성공할까

3D 설계와 인공지능(AI). 이름만 보면 잘 어울리는 둘이지만 제대로 붙이려면 꽤 많은 난관을 넘어야 합니다. 현실감 있는 3D 이미지를 만들고, 원하는 부품을 제대로 찾아 조합하는 일에는 무척 정확하고 창의적인 AI 모델이 필요합니다.

캐드(CAD) 솔루션의 강자 다쏘시스템이 AI 카드를 본격적으로 뽑아 들었습니다. 이를 통해 복잡한 작업을 돕고 세상의 혁신을 지원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지난해만 해도 AI에 대한 걱정을 내비쳤던 것과 비교하면 달라진 행보입니다. 물론 AI의 효용을 애써 외면했던 건 아닙니다. 다만 챗GPT 열풍 속 생성AI에 대해서는 신중론에 가까운 쪽이었죠.

흐름에 뒤처지면 기회를 놓치는 게 엔터프라이즈 솔루션 시장입니다. 다쏘시스템도 모를 리 없습니다. 미국 텍사스 댈러스에서 열린 ‘3D익스피리언스 월드(3DEXPERIENCE World) 2024’에서 AI를 바라보는 이들의 속내를 엿볼 수 있었습니다.

시계를 1년 전으로 돌리겠습니다. 지난해 행사에서 지앙 파올로 바씨(Gian Paolo Bassi) 3D익스피리언스 웍스 수석부사장은 AI 만능론을 경계한 바 있습니다. AI가 데이터를 모으고 분석하는 데는 훌륭한 방법이지만, 사람의 복잡한 사고 체계는 따라가지 못한다는 생각이었죠.

그랬던 다쏘시스템이 간판 솔루션 ‘솔리드웍스(SolidWorks)’에 일종의 생성AI를 붙이기로 했습니다. 시연 영상을 보면 마치 마이크로소프트의 코파일럿(Copilot)처럼 자연어 프롬프트를 넣어 3D 모델링과 시뮬레이션을 자동화하고, 필요한 자재나 스케치 디자인까지 추천해주는 기능으로 보입니다.

회사는 이를 ‘마법(Magic)’이라고 칭했습니다. AI의 마법이 3D 설계 환경을 혁신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사실 다쏘시스템은 수년 전부터 AI 기술 개발에 매진해왔습니다. AI를 활용해 작업 자동화도 일부 지원했죠. 챗GPT 출시 이후에는 메사추세츠 공대(MIT)와 함께 생성AI 개발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도 했고요.

설계부터 최종 제조단계까지 유기적으로 지원하는 게 CAD 솔루션의 생명입니다. 스케치나 모델링이 잘못됐다면 시뮬레이션 작업도 난관을 겪고, 시뮬레이션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모델링 단계로 다시 돌아가야 합니다.

한번 꼬이면 수습하는 데 많은 공수가 들어갑니다. 시뮬레이션을 제대로 못해 자재 수급이 잘못되면 비용 부담이 커지겠죠. 단순히 질의에 답을 내는 AI 챗봇이나 이미지를 만드는 생성AI와는 결이 다른 기술력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AI 기술에 대한 기대와 자신감을 동시에 내비친 마니쉬 쿠마 솔리드웍스 CEO. (사진=다쏘시스템)

그래도 믿는 구석이 있는 걸까요? 제너럴 세션에 나선 마니쉬 쿠마(Manich Kumar) 솔리드웍스 최고경영자(CEO)는 자신감을 먼저 내비쳤습니다. 또 솔리드웍스에 접목한 AI가 잘못된 작업의 위험성을 경고하고 오류를 미리 예측해주는 데 활용될 거라고 전했습니다.

다만 현장의 반응이 조금 미지근합니다. 3D 익스피리언스 월드는 다쏘시스템의 1년 농사 소식을 전하고 앞으로 성장의 비료가 될 신기술을 소개하는 자리입니다.

행사 첫날 제너럴 세션에서 터지는 환호성은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았습니다. 2023년 행사에서는 데스크톱용 솔리드웍스 사용자들도 추가 비용 없이 3D익스피리언스 웍스의 클라우드 기능을 쓸 수 있다고 발표했습니다. 역시나 큰 함성이 나왔죠.

올해는 이런 환호가 없었습니다. 비용적 혜택이 아니라 그럴 수도 있습니다. 짧게 시연 영상을 보여준 정도라 큰 임팩트는 없었습니다. 구체적인 스펙이나 적용 범위는 아직 베일을 벗지 않았고요. 새로운 3D 설계 업무용 생성AI 기능은 빠르면 하반기 쯤 출시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확실한 건 올해를 기점으로 AI를 3D 설계 업무의 공식 도우미로 임명했다는 겁니다. 또한 완전히 영글었을 때 내놓겠다는 의지가 읽힙니다.

한국 기자들과 만난 수칫 제인(Suchit Jain) 3D익스피리언스 웍스 전략 및 비즈니스 개발 부사장은 솔리드웍스의 생성AI가 힘을 발휘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고 짚었습니다.

텍스트로 3D 이미지를 만드는 건 성배와 같다고 했습니다. CAD 작업에서 오류가 났을 때 오는 후폭풍(?)을 염두에 둔 말입니다. 3D 설계에 특화한 AI는 분명 혁신이지만 잘못되면 안 하느니만 못한 일이 됩니다.

그는 “미드저니나 달리 같은 범용 모델(훈련)보다 2~3배의 시간이 걸릴 것”이라며 “생성AI 탑재는 3D 제작을 자동화하는 방법을 찾을 수 있을 때 더욱 큰 영향력을 발휘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다쏘시스템의 또 다른 전략은 클라우드입니다. 올해로 25주년을 맞은 3D익스피리언스 월드의 원래 이름은 솔리드웍스 월드였습니다.

솔리드웍스는 데스크톱에서 쓰는 온프레미스용 솔루션, 3D익스피리언스 웍스는 클라우드 포트폴리오죠. 회사 스스로도 무게중심을 온프레미스에서 클라우드로 옮긴 겁니다.

3D익스피리언스 웍스는 ▲디자인 ▲시뮬레이션 ▲거버넌스 ▲마케팅 및 세일즈 ▲제조 등 5가지 도메인으로 구성됩니다. 각각의 업무에 맞는 다양한 애플리케이션을 클라우드를 통해 쉽게 활용할 수 있습니다.

또 솔리드웍스 2024 버전은 클라우드 연동서비스를 제공해 솔리드웍스의 설계 데이터를 3D익스피리언스 플랫폼에 연결할 수 있게 됐습니다. 일종의 클라우드 머스트(Must) 전략으로 읽힙니다.

물론 솔리드웍스 사용자들이 바로 내일부터 모두 클라우드로 옮겨타지는 않을 겁니다. 그래도 결국에는 클라우드가 대세가 될 거라는 게 다쏘시스템의 생각입니다.

제인 부사장은 “많은 스타트업이나 중소기업이 순수 클라우드 기반 기술을 원하는 것을 알고 있다”며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솔리드웍스와 3D 익스피리언스 플랫폼을 활용해 더 많은 작업을 수행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다쏘시스템 고객들의 클라우드 전환 흐름도 빨라지고 있습니다. 다쏘시스템은 매주 월요일 서비스형소프트웨어(SaaS) 사용자 추이를 검토합니다. 활성 사용자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추세라는 설명입니다.

대형 파트너사와의 협업도 클라우드와 함께합니다. 전자디자인자동화(EDA) 업체 케이던스(CADENCE)와 다쏘시스템은 클라우드를 통해 인쇄회로기판(PCB), 칩과 기계 설계 프로세스를 통합해 제품 디자인 속도를 끌어올리겠다고 발표했습니다.

모델링과 시뮬레이션을 결합한 개념인 ‘모드심(MODSIM)’ 또한 클라우드가 바탕입니다. 3D익스피리언스 플랫폼 내에서 공통 데이터 모델링과 시뮬레이션을 통합하는 게 다쏘시스템의 모드심 전략입니다.

기존에는 제품 제작을 위해 설계팀과 해석팀이 따로 떨어져 일했다면, 모드심은 시작부터 협업하며 함께 문제점을 검토하는 형태죠.

스마트폰을 떠올려볼까요? 기능을 더 많이 넣으려는 개발팀과, 최대한 얇게 만드려는 디자인팀의 다툼이 빈번합니다. 다툼이 길어지면 출시 일정이 밀리고 기업의 수익 증대에도 장애물이 되죠.

하지만 두 팀이 시작 단계부터 동시에 힘을 합친다면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습니다. 전체 제품 개발 프로세스를 고려한 클라우드 협업이 업무 장벽을 허물고 성과를 높입니다.

다쏘시스템의 이같은 행보가 실제 성공으로 이어질 수 있을까요. 특히 AI 드라이브는 주목할 만 합니다. 3D 설계 특화 AI를 접목한 새로운 솔리드웍스가 더 많은 사용자를 끌어들이고 데이터가 쌓이면 제대로 된 평가가 나오겠죠.

다쏘시스템이 생성AI를 접목하는 궁극적인 목표는 프로세스 자동화입니다. 바씨 부사장은 “앞으로 AI를 활용한 고객의 사용 사례를 연구하는 데 시간을 할애할 것”이라며 “3D 설계 작업을 돕는 디자인 생성AI 기술을 전문화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댈러스(미국)=이진호 기자>jhlee26@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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