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신도 힘든데 버섯커 역습? 게임 고인물의 시장 진단
한국게임미디어협회 ‘2024년 국내 게임 산업 전망 신년 토론회’ 개최
“2023년을 돌이켜보면 (전년과) 똑같이 ‘리니지 라이크’였고, 또 ‘방치형’이었습니다. 게임의 틀이 너무 정형화돼 있던 거죠. 작년 (신년 토론회) 얘기를 되짚어보면 차라리 BM(수익모델)이라도 한번 바꿔보자, 리니지라이크가 욕을 먹는 이유가 ‘페이투윈(돈을 쓰면 승리할 수 있는) 아니냐’, 그러면 더 대중들에게 다가가기 쉽게 BM을 설계해서 모바일게임이라도 정액제를 만들고 매출을 낼 수 있는 유저 폭을 늘려보자 얘기를 좀 했었는데 그게 전혀 이뤄지지 않은 것 같아서 그 부분이 좀 안타깝습니다.”
김상현 경향게임즈 국장은 지난 23일 한국게임미디어협회 주최의 ‘2024년 국내 게임 산업 전망 신년 토론회’에 나서 지난해 게임 시장을 진단했습니다. 안타까움을 넘어 안쓰러움마저 느껴진 의견이었는데요. 확률형 아이템 주제로 후끈 달아올랐던 2023년 신년 토론회에 비해 올해는 전반적으로 점잖은 분위기였네요.
<참고기사: [게임 신년토론①] ‘업계 고인물들’ 모였더니…시작부터 맹공>
리니지 라이크란 ‘리니지를 닮은’ 게임을 말합니다. 리니지 시리즈는 이용자 간 경쟁을 부추겨 강함을 겨루게 하고 세력전 구도를 만들어 그 과정에서 수익을 취하는 대규모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MMORPG)인데요. 확률 기반의 고강도 뽑기 유도와 강화 시스템이 들어가 상당 규모의 매출을 일으킵니다. 전쟁을 하려면 스펙업도 필요하고 무기도 강화하는 등 많은 준비가 필요하죠. 게임 내에서 호전적 이용자가 다수인 국내에선 검증된 성공 방정식입니다. 비슷한 게임이 꽤 나왔죠. 이 때문에 시장의 반감이 커진 상황입니다.
방치형이란 말 그대로 방치해 둬도 자동 진행되는 게임 장르를 통칭하는 말입니다. 접속이 끊겨도 설정해 놓은 대로 게임이 진행되다 보니 가끔씩 봐도 캐릭터는 성장하고 재화는 늘어나 있는데요. 이런 게임에서 재미를 찾는 이용자층이 두터워졌네요. 중국산 게임이 강세이고요. 이제 웬만한 국내 기업들은 방치형 게임을 기획하거나 이미 개발 중이라는 얘기도 있네요.
“원신 정도를 우리나라에서 개발할 수 있을까라고 반문했을 때, 사실 물음표인 경우가 많고 N사들 역시도 원신을 뛰어넘는 게임을 개발할 수 있을까 했을 때 경영진들도 역시 ‘노’라고 대답을 하더라고요.”
김 국장은 성공한 중국 게임의 상징이 돼 버린 ‘원신’을 언급했습니다. 원신은 오르지 못할 나무처럼 너무 커 버린 게임입니다. 매번 엄청난 분량의 업데이트를 더하다 보니 후발주자들이 따라갈 틈을 주지 않고 있는데요. 캐릭터마다 세계관을 갖추고 팬덤을 구축하는 서브컬처(하위문화)의 정석과도 같은 행보를 보이는 것도 강점이네요. 다들 공고한 팬덤을 갖췄다는 부분에서 국내 개발사들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 게 아닐까 합니다.
이런 가운데 중국산 방치형 게임 ‘버섯커 키우기’가 리니지M을 꺾고 국내 구글플레이 매출 1위에 오르기도 했네요. 세계 시장에서 산업 역전은 오래전 일어났으나, 국내 시장마저 넘겨줬다는 느낌이네요. 중국산이 워낙 강세이다 보니 언젠가 오겠구나 했던 변화였습니다. 시장에 이렇다 할 충격은 없었네요. 매년 위기론이다 얘기가 나오지만, K게임의 위기가 진짜 코앞에 있는 듯한 느낌이네요.
최호경 게임인사이트 대표는 “국내 산업을 뜯어서 보면 창의적인 시도들이 많이 없었던 거는 사실이라고 본다”며 쓴 소리를 했습니다. 그는 큰 회사들의 도전적인 시도가 없던 부분에 아쉬움을 보이면서도 국내 기업에 여전한 기대감을 보였습니다.
“사실 매년 연초에 위기론이라고 말해도 비슷하게 굴러갈 가능성도 있고, 여러 좋은 이슈들이 생길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고 봅니다. 굉장히 힘들었을 때 메가히트 게임들이 나온 케이스들이 많고요. (중략) 위기의 시기엔 보통 기업들이 M&A를 하거나 다른 변화를 시도하는데요. 2~3년 동안 비슷한 케이스가 늘어날 걸로 보이고, 콘솔 게임도 있고 글로벌 프로젝트에서 창의적 시도가 늘어날 걸로 봅니다. 창의적 프로젝트들이 많아지면 충분히 기회를 만들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게 한국 게임 산업이고, 긍정적 분위기를 만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메이저 개발사 업체들한테 당부 드리고 싶은 건 좀 더 큰 프로젝트를 장기적으로 해서 우리나라에서도 GTA 같은 게임을 만들지 못하는지 그런 것들을 한 번 고민해 보고 우리의 경쟁력에 대해 재고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GTA는 락스타게임즈가 만든 자유도가 엄청나게 높은 액션 어드벤처 시리즈인데요. 최신작이 GTA5라지만 지난 2013년 출시된 꽤 오래된 게임입니다. GTA5는 온라인 멀티플레이 기능을 넣어 수명을 대폭 연장했는데요. 게임 내에서 하고 싶은 대로 플레이하는 샌드박스(모래상자)형 게임의 주축이기도 합니다. 최 대표는 샌드박스형 게임의 멀티플레이 부분에서 국내 게임사들이 노하우가 있어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고 내다봤네요. 그런 의미에서 GTA를 언급한 것으로 풀이됩니다.
최근 ‘TL(쓰론앤리버티)’을 언급하는 청중 발언도 있었네요. 다소 점잖던 행사 분위기를 바꿨습니다. 국내 대표 게임 기업인 엔씨소프트가 오랜 기간 준비한 야심작이 시장에서 아쉬운 평가를 받자 비판과 함께 의견을 물었네요.
“지금 우리나라 게임의 경쟁력이라는 게 참 아이러니합니다. 좋은 게임을 만들자니 돈을 못 벌고 돈 버는 게임을 만들자니 또 (확률형) BM 때문에 또 이런 데서 욕을 먹고 있습니다. 그 합의점이 굉장히 힘들고 그걸 잘 못 맞춰서 TL 같은 게임이 지금 안 되고 있는 상황 아닙니까, 재미있는 게임도 못 만들었고 돈 버는 게임도 안 되고. (중략) 방치형 게임 같은 거 만들어 올려 광고 잘하고 하면은 또 돈은 들어와요. 그러면 우리 개발자들은 어떤 부분에서 선택을 할지 고민이 됩니다.”
여기엔 김 국장이 답했습니다. TL을 향한 세간의 날 선 저평가에 아쉬운 내심을 비쳤네요. 초대형 프로젝트를 기획해달라는 당부도 더했습니다.
“(TL이) 이게 이 정도까지 욕을 먹을 게임이었나, 저는 게임을 꽤 오래 플레이했습니다. 못 만들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실패했다고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글로벌 론칭이 남아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그후 얘기를 해야 된다고 봅니다. 요즘에 엔씨만 보면 유튜브에서 물어뜯고 조회수 높이려고 그러는 건진 모르겠지만 너무 자극적인 얘기만 나와서 너무 아쉽고요. 리니지라이크 유저층, 방치형 유저층은 분명히 있고 그러면 그 유저층에 맞춰서 개발할 수밖에 없는 업체들은 그렇게 해야 됩니다. 그러면 변화가 있을 수가 없잖아요. 그러니까 저는 큰 회사들이 솔직히 애기하면 (프로젝트 규모가) 지금 몇백억 몇천억인데 그거보다 좀 더 길게 조 단위 프로젝트를 한번 기획해서 나가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이대호 기자>ldhdd@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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