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심재석의 입장] 굿바이 암호화폐, 굿바이 사토시

최근 미국 금융당국이 비트코인 현물 상장지수펀드(ETF)를 승인했다는 기사를 본 후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지난 2018년 있었던 한 토론회의 장면이었다.

유시민 : (비트코인은) 화폐였던 적도 없고, 앞으로 화폐가 될 가능성도 전혀 없다.

정재승 : 앞으로 화폐가 될 가능성이 굉장히 높기 때문에 ‘암호’ 그리고 ‘화폐’를 명확하게 정의하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

당시 비트코인 열풍 속에서 JTBC는 ‘가상통화 긴급토론 : 신세계인가 신기루인가’라는 토론회를 중계했다. 유시민 작가, 정재승 박사 등 유명 지식인과 김진화 코빗 창업자, 한호현 경희대 컴퓨터공학과 교수 등이 패널로 참석했다.

이 토론에서 가장 뜨거운 쟁점은 ‘비트코인을 화폐라고 볼 수 있는가 없는가’였다. 비트코인 회의론자를 대표한 유시민 작가는 서술한 것처럼 비트코인에 대해 “화폐인 적도 없고, 화폐가 될 가능성도 없다”고 단정했고, 신기술에 우호적인 정재승 박사 등은 “화폐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경제학에 기반을 둔 지식인과 과학과 기술에 기반을 둔 지식인들의 비트코인 토론은 꽤나 의미있고, 재미있는 장면이었다.

시간이 5년이 흐른 지금 시장은 유시민 작가의 전망이 맞았음을 보여준다. 이번 비트코인 현물 ETF 승인 소식은 이를 보여준다. 비트코인 현물 ETF가 등장했다는 것은 비트코인이 화폐가 아니라 가상의 투자상품임을 상징하는 장면이다.

실제로 국내에서는 언젠가부터 암호화폐라는 말을 잘 쓰지 않는다. 가상자산이라는 용어가 암호화폐라는 용어를 이미 대체했다.

비트코인에 대한 정재승 박사의 전망은 비트코인 창시자로 알려진 사토시 나카모도의 이상을 받아들인 주장이었다. 실제로 비트코인은 궁극적으로 화폐 시스템이 될 목적으로 태어났다. 사토시가  2008년 발표한 비트코인 백서의 첫 줄에는 아래와 같이 쓰여있다. 백서를 보면 비트코인이 ‘화폐’를 목적으로 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P2P 버전의 전자 현금(비트코인을 의미. 기자 주)은 금융 기관을 거치지 않고 한 당사자에서 다른 당사자로 직접 보내지는 온라인 결제를 할 수 있다”

사토시는 금융기관과 같은 중개자와 중앙의 통제 없이 개인과 개인이 블록체인 기술이 제공하는 신뢰 아래 거래를 할 수 있는 화폐 시스템을 만들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 점에서 비트코인은 다소 아나키즘(무정부주의)적 성격을 갖고 있다. 국가와 중앙의 통제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화폐 시스템이 되는 것이 목적이었다.

하지만 현물 ETF 상품은 이와 같은 이상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예를 들어 비트코인 현물 ETF 상품에 투자를 해도 투자자는 비트코인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다. 이들에게 비트코인은 오직 투자 대상일 뿐 다른 기능을 제공하지 않는다. 즉 비트코인으로 그 어떤 결제도 할 수 없다.

또 비트코인은 블록체인이 제공하는 시스템을 기반으로 신뢰를 제공받았는데, 비트코인 현물 ETF 상품 투자자는 이 상품을 공급한 금융기관에 대한 신뢰로 상품을 구매한다. 비트코인의 신뢰 시스템이 이 투자자에게는 의미가 없어진다.

이 ETF 상품이 얼마나 인기를 끌지는 아직 불분명하지만 자칫 지나친 인기는 비트코인 시스템 자체를 무너뜨릴 수도 있다. ETF 상품을 운영하는 기관이 소유한 비트코인이 너무 많아지면 기존의 비트코인 거버넌스 체계가 위협을 받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 의장 게리 젠슬러는 이번 ETF 상품을 승인한 것이 비트코인을 사토시의 이상에서 멀어지게 한다는 것을 인정했다. 그는 “비트코인 현물 ETF 출시는 사토시 나카모토의 탈중앙화 사명에 반한다는 점에서 아이러니한 일”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심재석 기자>shimsky@byline.network

첫 댓글

  1. ETF는 비트코인 가격변동을 추종하는 금융상품이고 ETF 구매자는 금융기관에 대한 신뢰가 필요하고 화폐로써 비트코인을 활용할 수 없는 건 맞지만 거래소에서 현물 비트코인 사서 개인지갑에 넣어두면 금융기관에 대한 신뢰 필요 없이 비트코인 소유가 여전히 가능하고 온체인이든 라이트닝이든 비트코인 트랜잭션은 막힌게 아닌데 etf승인과 화폐로서의 가능성이 무슨 상관인지 모르겠네요. 그리고 비트코인은 이더리움같은 POS 방식이 아니라 소유한 비트코인 개수와 거버넌스와는 무관한데 기관이 비트코인을 많이 소유하는 것과 거버넌스 체계의 위협이 무슨 상관인지도 모르겠구요. 이더리움 etf가 승인된다면 이더리움에 대해서는 나름 합당한 논리네요.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