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자’에 꽂힌 IBM…도전은 현재진행 중
빅테크의 아버지나 마찬가지인 IBM. 과거 메인프레임으로 누렸던 영광은 다소 흐려졌지만 기술에 대한 노력은 여전히 진심이다. IBM이 힘껏 힘주고 있는 양자 컴퓨팅 기술은 그래서 주목할 만하다. 개념도 생소하고 아직 갈 길이 멀지만 세계적인 빅테크가 매달리는 데는 이유가 있을테다. 메인프레임으로 PC 산업 성장을 이끌었듯 지속적인 연구를 통해 새로운 지평을 열겠다는 포부인데, IBM의 양자 컴퓨터 기술은 어디까지 왔고 또 꿈꾸는 미래는 무엇일까.
양자? 개념부터 알자
양자 컴퓨터는 빠른 연산 능력과 높은 처리 용량이 특징이다. 엄청나게 많은 경우의 수를 빠르게 계산해 슈퍼컴퓨터 못지않은 성능을 낸다. 이는 연산 단위로 ‘큐비트(Qubit)’를 쓰기 때문이다. 전통적인 컴퓨터는 ‘비트(Bit)’를 연산 단위로 쓴다. 비트는 이진법 기반이라 0 또는 1 두 가지 상태 중 하나의 값만 가질 수 있지만, 큐비트는 중첩성 이론을 통해 동시에 두 가지 값을 가질 수 있다. 큐비트 수가 늘어날수록 2의 n제곱으로 성능이 증가해 빠른 연산이 가능하다.
1000 큐비트 프로세서 발표
2023년 한 해 동안 라이벌 마이크로소프트가 오픈AI의 ‘GPT’를 필두로 생성AI에 힘을 쏟았다면, 올해 IBM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역시 양자다. ‘왓슨(Watson).x’ 라인업으로 생성AI 경쟁에 참전하긴 했지만 이미 시장을 선점한 마이크로소프트와의 비교는 아직 무리가 있다.
독자적 기술을 바탕으로 한 양자 컴퓨터는 IBM 미래 전략의 핵심이다. 회사 기술 전반을 알리는 ‘씽크(Think)’와 함께 양자 기술만을 위한 별도의 컨퍼런스 ‘퀀텀(Quantum) 서밋’을 여는 것도 양자 컴퓨터에 대한 IBM의 진심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올해 퀀텀 서밋에서는 새로운 양자 컴퓨터 프로세서 ‘퀀텀 콘도르(Condor)’를 발표했다. 1121개 큐비트 모델이다. 우리나라 정부는 지난 6월 2030년대 초까지 9960억원을 들여 1000큐비트급 양자 컴퓨터를 개발하겠다고 밝혔는데 IBM은 이를 10년 가까이 앞당긴 셈이다.
단 개발 완료 소식을 알렸을 뿐 아직 상용화 단계는 아니다. 양자 컴퓨터는 오류가 상용화의 최대 걸림돌로 꼽힌다. 양자는 온도 변화에 민감해 극저온 환경을 구현해야 제대로 돌아간다. 또한 진동이나 불순물 같은 미세한 요소에도 무척 민감하다. 실제 산업 현장 활용까지는 넘어야 할 산이 존재한다.
그래서 함께 발표한 ‘퀀텀 헤론(Heron)’을 주목할 만하다. 133큐비트라 콘도르에 비해 절대 성능은 떨어지지만 2021년 출시한 IBM 이글 모델과 비교해서는 오류율 5분의 1로 줄인 것이 특징이다. 헤론은 내년 중 일부 IBM 시스템 제품군에 탑재될 예정이다.
앞서 지난 2019년 세계 최초로 선보인 범용 양자 컴퓨터인 ‘퀀텀 시스템 원(System One)’은 지금도 가동하고 있다. 뉴욕주 요크타운의 토마스 왓슨 연구소에 설치한 시스템 원은 현재 클라우드로 접속할 수 있다.
산업계도 IBM의 양자 기술의 도움을 받아 사업을 가속화하고 있다. 유수의 기업들이 IBM의 파트너다. 독일의 메르세데스벤츠는 IBM과 협력해 전기차 배터리의 화학 작용을 시뮬레이션 하는데 허밍버드(Hurmingbird) 프로세서를 활용한다. 허밍버드는 65큐비트 구조로 2020년 출시한 제품이다.
화학회사 엑슨모빌(Exxonmobil)과 유럽물리입자연구소(CERN)도 IBM의 파트너다. 또한 IBM은 이미 200개 이상의 포춘 500대 기업과 대학, 연구소 등이 참여하는 퀀텀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는데, 한국의 LG전자도 이 네트워크의 일원이다.
앞으로는?
학계에서는 현재 IBM의 양자 기술이 ‘Utility or Utility Scale’, 즉 구체적인 문제를 풀 수 있다는 걸 과학적으로 증명한 단계로 본다. 지난 6월 세계적인 과학저널 네이처(Nature)지는 양자 기술을 표지에 싣고 IBM 이야기를 소개했다.
네이처는 양자 컴퓨터가 100큐비트 이상의 규모에서 기존의 컴퓨터를 뛰어넘어 정확한 결과를 낼 수 있음을 입증했다고 평가했다. 양자 컴퓨터는 그 민감성으로 인해 연산 오류가 불가피하다. 따라서 모델 스펙 그대로의 큐비트를 100% 활용하지 못해 슈퍼컴퓨터만큼 실용적이지 않다는 평가가 있었다.
하지만 IBM은 이글 프로세서로 자화(Magnetization·자석이 아닌 물체가 외부 자기장에 반응해 자석 같은 상태가 되는 현상) 등의 물리적인 특성을 정확하게 계산했다. 네이처는 캘리포니아 주립대 버클리 캠퍼스 연구팀이 슈퍼컴퓨터에서 같은 물질의 시뮬레이션을 함께 진행한 결과, IBM 프로세서는 계속 정확한 결과를 낸 반면 슈퍼컴퓨터는 실험 규모가 커질 수록 오류를 냈다고 전했다.
이 연구가 의미 있는 건 아직은 슈퍼컴퓨터만큼 실용성이 없다는 통설을 깼기 때문이다. IBM은 더 나아가 궁극적으로 ‘양자 우위(Advantage)’ 시대를 꿈꾼다. 완벽하게 유효한 1000큐비트 이상의 시스템을 쓸 수 있는 상황을 말한다. 현재의 슈퍼컴퓨터 성능을 뛰어넘어 안정적으로 양자 컴퓨터를 쓸 수 있는 시대가 목표다.
“제대로 써야지”…개발 도구 ‘퀴스킷’도 출시
이번 퀀텀 컨퍼런스에서 ‘퀴스킷(Qiskit)’을 소개한 것도 그 연장선이다. 퀴스킷은 양자 컴퓨터를 제대로 활용하기 위한 일종의 소프트웨어(SW) 개발 키트다.
양자 컴퓨터가 아무리 연산 능력이 좋더라도 이를 활용하는 애플리케이션이 없으면 말짱 도루묵이다. 이에 양자 컴퓨터를 활용해 SW를 쉽게 만들 수 있는 일종의 코딩 툴을 내놨다. 내년 2월 1.0 버전을 정식 출시한다. IBM은 향후 왓슨.x를 통해 퀴스킷에 생성AI를 붙여 코딩 자동화를 도울 방침이다.
이와 함께 첫 모듈형 양자컴퓨터인 ‘퀀텀 시스템 투’도 내놨다. 시스템 원의 후속작이다. 헤론 프로세서 3개와 극저온 상태를 구현하는 인프라, 이를 지원하는 전자제어장치를 한데 결합했다. IBM은 내년에는 1386큐비트의 ‘플라밍고(Flamingo)’ 개발에 이어 2025년에는 여러 칩을 모듈화해 4000큐비트 이상의 양자 프로세서를 내놓겠다고 밝혔다. 2026년 이후에는 1만 큐비트 이상의 프로세서도 개발할 계획이다.
계속된 양자 사랑. IBM이 가장 최근 보낸 보도자료 테마는 ‘양자 교육’이다. 한국의 서울대와 연세대, 일본의 도쿄대와 게이오대, 미국의 시카고대와 협력해 향후 10년간 최대 4만명을 대상으로 교육 프로그램을 펼치기로 했다.
당장 큰 돈이 되지도 않는 사업. 그래도 진심인 이유는 신기술에 대한 끊임 없는 탐구정신 때문 아닐지. 메인프레임이 PC 시장의 씨앗을 뿌린 것처럼 양자 컴퓨터로 미래 문제 해결의 물꼬를 틀 수 있을까. 끝을 알 수 없는 양자 컴퓨터 드라마의 메인 주인공이 될 수 있을까. 적어도 지금 IBM은 크레딧 앞자락에 놓아도 될 것 같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이진호 기자>jhlee26@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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