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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산 대표 오픈소스 DB 이끄는 자전거 아저씨, 정병주 큐브리드 대표

[인터뷰] 평직원에서 대표로…“진정성과 끈기가 중요”

주말이면 자전거를 타고 우리나라 구석구석을 누비는 사람이 있다. 자전거가 걱정을 잠시 잊게 만든다고 했다. 20여년간 IT 업계에서 산전수전 다 겪었다. 말단 직원으로 시작해 회사 대표 자리까지 올랐다. 스트레스가 없을 리 없다. 그래도 페달을 돌릴 때 만큼은 마음을 비울 수 있단다. 바람을 가르는 로드바이크처럼 시원하게 사업을 펼치는 큐브리드의 정병주 대표 이야기다.

정병주 대표(54)는 2008년부터 국산 오픈소스 데이터베이스관리시스템(DBMS) 기업 큐브리드를 이끌고 있다. 처음부터 대표는 아니었다. 그는 1999년 큐브리드의 전신 한국컴퓨터통신에 경력사원으로 입사한 평직원 출신이다. 하지만 회사에 불어온 변화의 바람이 삶의 궤적을 바꿨다.

앞선 스토리를 먼저 알아야 한다. 잘 다니던 회사가 이름을 바꾸는가 하면, 다른 IT 기업에 인수되기도 했다. DBMS 제품 ‘유니 SQL’을 만들던 한국컴퓨터통신이 2006년 사명을 바꾸면서 큐브리드가 됐다. 오라클처럼 기업명과 제품명을 일치시키기 위한 결정이었다.

이후 2008년 네이버(당시 NHN)가 국산 DBMS 사업을 꾸리기 위해 큐브리드를 인수했다. 그 해 11월 큐브리드의 오픈소스화가 마무리됐다. 네이버의 인수는 오픈소스인 큐브리드로 DBMS 개발 생태계를 활성화하고, 원천기술을 확보하자는 계산이었다. 지난 11월 22일은 큐브리드의 오픈소스 전환이 완료된 날로, 올해로 15주년을 맞았다.

직원에서 대표가 되는 게 “아주 크게 어려운 결정은 아니었다”고 말하는 정병주 대표. 회사에 대한 애착이 큐브리드를 국산 DBMS의 대표 주자로 키우는 원동력이 됐다.

부장이던 그가 CEO에 오른 것은 그간의 성실성과 진정성을 회사가 알아본 결과다. 큐브리드 최고기술책임자(CTO)였던 김평철 박사가 그를 눈여겨봤다. 김 박사는 NHN 개발본부장을 겸임했던 인사다. 네이버의 큐브리드 인수와 함께 대표로 그가 추천됐고 지금까지 큐브리드의 수장으로 일하는 계기가 됐다.

정 대표는 “네이버에 인수되기 전부터 큐브리드의 오픈소스 전환 작업은 이뤄지고 있었다”며 “CEO가 되는 것에 큰 고민은 하지 않았던 것 같다”고 말했다.

언젠가 이 회사의 주인이 되겠다는 거창한 생각은 아니었다. 지금보다 더 외산 제품 천지였던 DBMS 업계에서 한국컴퓨터통신이 만들던 국산 제품에 애착이 있었고, 자연스럽게 회사에도 애정이 컸다.

개발자 생태계의 중요성을 일찍이 깨달은 그는 개발자 커뮤니티를 동분서주하는가 하면 어려운 IT 기술 서적을 파면서 한계를 깨려 노력했다. 그는 “아직도 개발자가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네이버라는 울타리는 오래가지 않았다. 기업대기업(B2B) 사업 성격인 큐브리드는 당시 네이버의 기업대고객(B2C) 포트폴리오와는 약간 결이 달랐다. 네이버가 매출 압박을 준 것은 아니었지만 제대로 된 사업을 펼치기 위해서는 독립이 필요했다.

정 대표는 이때 네이버가 매각한 지분을 전량 인수하면서 비로소 오너 형태의 대표가 됐다. 하지만 제품 개발 부서는 네이버에 남고 사업 조직만 떨어져 나온 게 문제였다. 2011년 직원 12명으로 다시 시작한 큐브리드는 돌파구를 찾아야 했다. 불안감을 느낀 직원 몇 명이 퇴사한 가운데 기업의 존속을 위해서도 성과를 만들어야 했다.

그때 국가정보자원관리원 사업을 따낸 게 희망의 불씨가 됐다. 굵직한 레퍼런스가 생기자 추가 고객사들이 붙기 시작했다. 오픈소스에 대한 인식이 긍정적으로 변한 것도 호재였다. 2016년 자체 연구소를 꾸린 큐브리드는 현재 지능정보사회진흥원, 외교부 등 굵직한 기관과 부처에 DBMS를 제공하며 데이터 기반 국가 업무에 기여하고 있다.

그는 업계에서 특유의 소탈함으로 유명한 인물이다. 20대 직원들과도 격의 없이 지낸다. 노는 것도 진심이다. 해외로 워크숍을 가는 회사는 흔하다. 하지만 직원들이 편하게 즐기는 ‘플레이(Play)숍’을 가는 것은 참신하다.

수년 전부터 플레이숍을 열던 큐브리드는 지난 4월 전 직원이 대만에 다녀왔다. 큰돈을 들여 해외에 간 자리. 대표라면 비전 공유 자리나 소소한 회의 욕심이 날 법도 하지만 말 그대로 놀기만 했다고. 해외 플레이숍은 큐브리더(큐브리드 직원들을 일컫는 말)들의 사기도 끌어 올렸다.

정 대표는 3년 전부터 자전거에 푹 빠졌다. 그의 SNS에는 자전거 타는 사진이 가득하다. 이미 4대강 국토종주는 마무리했고 동해안변과 제주도까지 누비는 국토종주 그랜드슬램을 노린다. 본래 골프를 쳤던 그는 ‘비움’을 가져다주는 게 라이딩의 매력이라고 했다. 내색하지는 않지만 주목 받는 회사를 이끄는 게 쉽지는 않았을 테다. 반복되는 오르막과 내리막, 때때로 알아서 잘 굴러가는 자전거는 사업과도 비슷하다.

국토종주 그랜드슬램을 꿈꾸는 정병주 대표. 자전거는 그에게 휴식이자 소중한 취미다. (사진=정 대표 제공)

그는 인터뷰 내내 개발자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기술 중심 문화를 만드는 게 가장 핵심이라고 했다. 지금도 큐브리드에는 예순이 넘은 개발자들이 여럿이다.

정 대표는 기업의 대표자가 갖춰야 할 덕목으로 진정성을 꼽았다. 회사가 매출 증대를 이끄는 것은 기본이고 업(業)에 대한 진정성이 좋은 성과를 가져다줄 수 있다고 했다. 30대 초반 그가 개발자 커뮤니티를 누볐던 것도 내 제품과 회사가 더 알려지고 누군가는 또 알아줄 거라는 기대 때문이었다.

끈기와 실행도 마찬가지다. 큐브리드도 장기 사업계획을 세우긴 하지만 지키지 못할 약속은 가급적 피한다. 그는 “아무리 훌륭한 계획이라도 실행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며 “끈기 있게 지치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한편 큐브리드는 현재 클라우드향 DBMS 개발에 착수했다. 공공 시장도 클라우드 환경이 확산되는 가운데 서비스형 DBMS로 새로운 시장을 공략할 계획이다. 현재 11.3 버전인 현재의 큐브리드 DBMS는 2025년 12 버전으로 메이저 업그레이드 할 예정이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이진호 기자>jhlee26@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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