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 되살아난 ‘게임 탓’ 망령

잊힐 만하면 ‘게임 탓’이 반복된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불특정 다수를 향한 칼부림과 살인예고 사건의 원인으로 ‘게임’이 입방아에 오르내리고 있다.

일부 언론이 선(先)진단을 내렸고, 11일 서울중앙지방검찰청(서울지검)이 낸 ‘신림동 흉기난동 살인 사건 수사결과’ 보도자료에서도 게임을 비중 있게 다룬다.

“수사결과, 본건은 피고인이 현실과 괴리된 게임중독 상태에서 ‘불만과 좌절’ 감정이 쌓여 저지른 ‘이상동기 범죄’에 해당하고, 범행도구를 미리 준비하고 증거를 인멸하는 등 계획적으로 실행한 범행으로서, 「젊은 남성」을 의도적 공격 대상으로 삼아, 마치 컴퓨터게임을 하듯이 공격한 사건임”(서울지검 보도자료 발췌)

서울지검은 “게임 중독 상태에서 불특정 다수 살해를 시도했다”고 결과를 냈다. 최근 8개월간 대부분 시간을 게임을 하거나 게임 관련 동영상 채널을 시청하는 등 게임 중독 상태에서 마치 1인칭 슈팅 게임을 하듯 잔혹하게 범죄를 실행했다는 것이다.

세계보건기구(WHO)가 제시한 ‘게임 이용장애(gaming disorder)’ 진단 기준을 보면, 이용자가 게임을 하고 싶은 욕구를 참지 못할 정도가 돼야 한다. 어떤 일보다 게임 플레이를 우선하는 것이다. 일상에 문제가 생겨도 게임을 중단하지 못하는 증상이 ‘12개월 이상 지속’돼야 한다고 정의했다.

검찰이 WHO 정의에 한참 못 미치는 기준으로 ‘게임중독 상태’에서 벌인 범죄라고 결론을 내린 것도 개탄스럽지만, 전후 사정을 따지지 않고 단편적 원인 찾기에 게임이 또 다시 희생당한 것은 아닌지 착잡한 감정이 든다.

검찰은 피고인은 가족관계 붕괴, 대학·회사 등 사회생활 부적응과 실연, 경제적 곤궁 등이 겹쳐 실패감, 열등감으로 ‘현실 불만, 좌절’ 상태라고 ‘이상동기 범죄’라고 결론을 냈다.

결국 가정 환경의 부재와 개인 성향이 실체적 원인이 아닌가. 은둔생활 중 반사회성 발현의 외부자극 중 하나가 ‘게임’이다. 결론을 잘 내놓고도, 게임이 마치 칼부림의 주된 원인처럼 호도할 수 있는 자료가 나왔다.

1990년대 1인칭 슈팅 게임의 원조 격인 둠(DOOM)이 나오자, 미국에서도 이 같은 논란이 있었다. 슈팅 게임이 폭력을 유발하는지 논쟁이 격렬했다. 주로 정치인과 언론이 반사회적인 사건에 이러한 문제를 연관시켰다. 총기 사고가 잦은 국가로 더욱 예민할 수 있는 문제다. 그렇게 수많은 문제 제기가 있었으나, 이렇다 할 연관 증거는 나오지 않았다.

북미에선 십 수년째 최고 인기 게임이 ‘콜 오브 듀티’ 시리즈다. FPS 장르를 넘어 전체 게임 중에서도 판매량 1위를 오르내리는 게임이다.

콜 오브 듀티 시리즈는 캐주얼 액션 수준인 국내 FPS와 달리 전장을 대단히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것이 특징이다. 피와 살점이 난무하며 눈 앞에서 상대가 폭사하는 것도 생생하게 볼 수 있다. 회사가 군사 컨설턴트를 따로 고용해 게임을 만들 정도다.

국내 검찰의 논리 전개라면 진즉 문제가 됐어야 할 게임이다. 반사회적 사건사고의 원인으로 수시로 언급되고도 남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지난 2007년 한국계 미국인이 일으킨 버지니아 공대 총기 사건은 역사상 가장 충격적인 교내 총기 난사로 손꼽힌다. 당시 미국에선 누구나 총기에 접근할 수 있는 법 체계에 대한 지적과 교내 따돌림, 우울증 이력 등을 원인으로 봤다. 콜 오브 듀티 등 슈팅 게임을 원인으로 몰진 않았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이 땅에서 벌어진 일이었다면, 벌써부터 눈앞에 깜깜해진다. 게임 중독을 다스리기 위한 법제화가 여러 번 진행되지 않았을까.

누군가 되풀이되는 게임 탓의 망령을 떨쳐내려면, 한 세대가 지나야 한다고 봤다. 게임을 열심히 즐기고 추억을 쌓은 이들이 사회 곳곳에서 의사결정을 하는 자리에 올랐을 때, 비로소 바뀔 수 있을 것이란 얘기다. 이번에 반복된 게임 탓을 보면서 시간만이 해법이라는 생각이 든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이대호 기자>ldhdd@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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