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 박은 왜 병원을 때려치고 스타트업에 합류했나

닥터 박준민(=사진)은 대학병원 응급의학과에서 일해온 전문의다. 18년 간 생명을 지키는 최전선에 있던 그가 지난해 돌연 사표를 내고 의료 AI 솔루션을 만드는 스타트업 코어라인소프트에 합류했다.

코어라인소프트는 흉부 CT 영상에서 폐 결절 등을 찾는 솔루션과 이를 병원에 연결하는 플랫폼을 만든다. 의료AI를 만드는 회사는 자신들이 만든 제품을 어떻게 병원에서 많이 쓰게 만드느냐가 숙제다. “우리가 이렇게 제품을 잘 만들었는데 의사들은 이걸 왜 안쓰지?”를 고민한다. 의사의 합류는 회사가 하는 고민을 풀어내는 실마리가 될 수 있다. 

반대로, 의사도 답답하다. 새로운 기술이 병원에 들어왔지만 이게 진료에 도움이 되는 건지 아닌 건지 의사마다 생각이 다르다. 이걸 좀만 더 쓰기 편하게 만들면 의사들도 진료에 새로운 무기를 갖게 될텐데, 안타까운 마음을 갖는 이들도 있다. 박준민 씨도 그런 마음을 가진 이들 중 하나였다.

그는 왜 잘 다니던 대학병원을 때려치고 의료AI 스타트업에 합류했을까? 닥터 박이 코어라인소프트에 제품최고담당자(CPO)로 합류한 지 만 1년. 회사 제품전략부서에서 임상과 인허가를 총괄하고 있는 그에게 의사와 같은 전문직이 스타트업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 병원에서 AI 솔루션이 어떻게 기능할 수 있는지 등을 물었다.

참고로, 코어라인소프트는 ‘신한제7호스팩’과 스팩소멸 방식으로 합병해 오는 9월 코스닥에 상장한다.

코어라인소프트에 어떻게 합류했나?

응급실에서 일하면서 여러 기기를 쓸 기회가 많았다. 초음파나 여러 시술에 쓰이는 영상기기를 접하면서 의료기기에 자연스럽게 관심이 생겼다.

병원에서 일하면서 종종 의료기기를 개발하는 분들과 미팅할 때가 있었는데, 이분들이 실제 임상에서 의사들이 어떤 기능을 필요로 하는지에 대해 잘 모르는 부분이 있다고 느꼈다. 기술 자체가 아무리 훌륭해도 제품화 과정에서 (서비스가) 의사들의 워크플로우에 잘 녹아야 하는데 여기에 대한 아이디어가 좀 부족하단 걸 알게 됐다.

내가 가진 18년의 현장 경험이 제품 개발 전단계부터 제품화 단계까지, 모든 영역에서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던 차에 코어라인소프트에서 의사에 대한 수요가 있다는 걸 확인하고 합류하게 됐다.

AI 솔루션을 만드는 개발자들이 어떤 부분에서 의료 현장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다고 봤나?

제품의 방향을 설정 할 때 실제 의사들이 필요로 하는 부분에 대한 감을 잡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성능이 좋은 것을 강조하지만, 실제 의료 현장에서는 성능보다 더 필요한 부분들이 있어서다.

의료 AI 취재를 하다보면 의료 AI 솔루션이 병원에서 많이 쓰이려면 수가가 적용되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이 솔루션이 질병 치료에 효과가 있다는 걸 먼저 검증 받아야 하는 딜레마가 있다고 하더라. 아직은 솔루션이 비싸거나, 의사들이 AI 솔루션에 대한 거부감도 있어서 병원에 도입이 더디다는 이야기도 들었는데, 실제 병원에선 어떻게 체감하나?

AI 서비스 자체가 아직은 도입 초기 단계다. 의료진 입장에서는 성능에 대한 신뢰 문제가 가장 크다. 의료진 원래 일을 해오던 방식이 있는데 AI를 도입하게 되면 워크플로우가 좀 변하는 문제도 있다. AI 서비스를 업무에 적용시키고, 스스로도 적응하는 과정이 번거롭기 때문에 의사 중에서는 거부하거나 반감을 가진 분들도 좀 있을 것 같다.

하지만 AI 자체가 사실은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고 본인들 업무에 이로운 방향으로 녹이려는 전향적인 태도로 받아들이는 분들은 실제로 매우 만족하고 있는 걸 확인하고 있다.

수가와 관련해서는, AI 서비스를 사용하려면 비용이 지불돼야 한다. 의사가 연구비 지원 없이 개인 비용으로 이걸 부담하기는 어렵고 병원에 구매 요청을 하자니 AI 서비스 사용으로 인한 가시적인 효과를 증명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다. 그래서 수가에 대한 애로 사항이 있는데, 다행히 최근 정책적으로 AI에 대한 수가 보전의 길이 점점 열리는 것 같아서 앞으로 긍정적으로 해결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다만, 수가는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고 해외 학회나 고객들 역시 “AI 솔루션이 경제적인 효과를 가져온다는 것이 병원을 설득할 때 필요하다”고 말하더라. 모든 AI 업체들이 가지고 있는 고민이 아닐까.

AI 기술이 업무 효율에 도움이 된다고 말하는 이들은 어떤 부분에서 그걸 체험한다고 보나?

폐암 솔루션의 경우, AI가 이상소견을 잘 발견하려다 보면 사람이 보기에는 그리 이상하지 않은데도 과하게 잡는 부분이 있을 수 있다. 그런데 기존에 일을 해오던 방식에 익숙하던 분들은 이런 상황을 속된 말로 “쓸데 없는 것 까지 다 잡아줘서 내가 봐야 할게 너무 늘어난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반대로 기술에 잘 적응하는 분들은 “그래도 솔루션이 조금이라도 이상한 부분을 빨리 잡아줘서 내가 할 일이 더 줄었다”고 생각해 본인 업무에 잘 녹여 활용하기도 한다. 같은 현상을 보더라도 어떤 측면을 보느냐에 따라 생각이 달라진다.

병원에 계실 때 AI 솔루션을 현장에서 써봤었나?

지난해 기준으로, 엑스레이 솔루션이 들어오던 단계였다. 그런데 그때, “생각보다 잘 못잡는 경우도 많네, 기대하던 것보다는 조금 실망스럽다”이런 생각을 하다가 넘어오게 된 것 같다(웃음).

그 이야기는 개발자들이 보는 제품 완성도와 의료 현장에서 보는 완성도 사이에는 간극이 있다는 이야긴데

기술적인 간극은 나중에 기술 자체가 발전하면 줄어들 수 있겠지만 보는 관점의 간극이 더 큰 것 같다. 임상 의사 역시 기술의 단점을 좀 인정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솔루션이 주는 장점을 자기의 도구로 활용하려는 태도가 필요할 것 같다. 기술적 간극은 AI가 점점 더 많은 데이터로 학습을 하고, 또 다른 학습의 방식이 개발이 되면서 차차 발전해 갈 것 같다.

의사가 CPO로 합류했으니 의사들의 AI 의료 솔루션에서 필요로 하는, 가려운 부분을 긁어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어떤 부분에 초점을 맞춰 일하고 있나

기본적으론 지난 경험에서 어떤 부분이 필요한지를 살펴본다. 그 다음에는 회사에 여러 제품군이 있는데, 각 분야의 전문가나 오피니언 리더, 연구를 많이 해 학계를 이끌어 가는 분들의 의견을 직간접적으로 청취하고 나누려고 한다.

또, 개발자가 의료진과 커뮤니케이션을 할 때, 이해하고 방향을 잡는 부분에 한계가 있기도 한데 그 간극을 좁혀주는 역할을 하고 있지 않나 생각한다.

솔루션을 확장할 계획은?

일반적으로 병원 가면 외래나 응급실에서 흉부 시티를 많이 찍지 않나? 그 영상에 대해서도 솔루션을 제공할 계획이 있다. 즉, 폐암 검진에 국한된 솔루션이 아니라 다른 흉부 CT 영상에서도 암을 진단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솔루션이다. 이 외에도 흉부의 빅3 질환이나 뇌출혈 등을 검진하는 프로그램도 이미 개발해 제품으로 내놓았다.

가장 집중하려는 것은, 코어라인이 올해 초 폐암 진단 AI 솔루션의 FDA(미국 식품 의약국) 승인을 받았다. 가장 큰 의료 시장을 가진 미국에서 판매가 기대되는 부분이다. 또 세계적으로 폐암 검진이 이제 막 도입단계인 국가들이 많다. 코어라인의 가장 강점이 폐암 검진에 있고, 이 시장 자체가 세계적으로 더 성장성이 있다고 보므로 이 영역에 가장 집중하게 될 거라고 생각하고 있다.

다른 나라의 폐암 검진 상황은 어떤가?

유럽 일부 국가와 미국, 우리나라 정도가 폐암 검진을 한다. 최근 대만에서 폐암 검진을 시작했고, 호주나 다른 여러 국가에서 폐암 검진 도입을 고려하는 국가들이 많다. 그런 곳들에서 국가폐암 검진을 경험한 코어라인에 문의가 오고, 따라서 그들과 접촉할 기회도 많이 있다. 판매 측면에서 확장을 예상할 수 있는 부분이다.

(스타트업에서) 일하는 어떤가, 힘든가?

어떤 일이 든지 안 힘든 일은 없겠지만(웃음), 고민은 많이 하는 자리 같다. 병원에서는 당장 눈앞에 벌어진 걸 해결하는 일을 했다면, 지금은 미래를 그려보고 이런저런 얘기도 많이 들어보면서 상상을 펼칠 수 있는 자리 같아 만족하고 있다.

의사과학자, 변호사 등 사람들이 선망하는 직종에 있던 전문직들이 최근에 스타트업에 합류하거나 직접 창업하는 경우가 많아지는 것 같다. 왜 그런 선택을 한다고 보나?

의료에 한정해 말해보자면, 최근에 의료 AI 시장이 커진 게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 의료 AI라는 시장 자체가 그동안은 별로 없었다. 시장 자체가 없었으므로 합류의 빈도가 적었던 것 같고. 또, (의료 AI를) 정책적으로 지원하려는 움직임도 (직업 이동에) 큰 몫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도 그렇지만, 앞으로 이 시장이 커지면서 다양한 분야 전문가가 필요해질 거라고 본다. 그런 이들의 합류가 회사 발전에도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하고 있다.

스타트업은 일할 차이가 같다. 뭐가 제일 다른가?

일단 주된 관심사가 완전히 다르다. 병원에 있을 때는 진료만 생각했는데 회사에 합류하면서 보는 눈이 좀 더 넓어졌다고 해야 할까. 전반적인 병원 업무 흐름이나 환자에 필요한 부분, 병원에 (코어라인의) 기기가 도입됐을 때 어떤 식으로 적용되어야 하는지 등의 부분을 고민한다. 또, 단순히 의료 기기를 병원에 도입해야 할 필요성 외에도, 수가나 제품의 가치를 인정받는 방향에 대해서도 생각을 많이 해야 한다.

또, 의사도 각자 전문 분야가 세분화되어 있으므로 전문가들과 많이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고 의견을 나누는 것도 필요하다. 그런게 차이가 아닌가 싶다.

동료 의사들한테 스타트업으로 가는 걸 추천하겠나? 드라마 같은 데서 보면 병원은 생명을 다루는 곳이어서 그런지 상명하복을 중요하게 여기고 위계질서가 엄격한 것 같던데

케이스 바이 케이스겠지만 의지가 있다면 적극 추천하고 싶다. 소통 측면에서는, 제일 다른 게 수평적인 문화다. 내가 정답이 아닐 수 있고 혼자서는 회사를 리드해 갈 수 없는 부분이 분명히 존재하므로 “나는 회사의 구성원 중 하나고 다른 여러 사람과 협업해서 일해야 한다”는 태도를 가진 이가 스타트업에 적합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코어라인에 오면서 계획한 것과 앞으로의 계획, 둘 다 듣고 싶다

개발자와 의료 현장 간극의 다리 역할을 생각하며 합류했다. 그런데 앞으로는 제품 전체 주기로 역할을 확장하고 싶다. 제품을 개발하기 전 단계부터 제품을 개발한 후 현장에 뿌려질 때까지, 또 현장에서 파생되는 여러 수요를 알아내는 것까지 포함해 제품 전체 주기에 걸쳐 관심을 가지고 역할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기술이 조금 더 발전하면 병원 현장에서 AI 솔루션이 어떤 역할을 좀 하게 될까

근시일 내에 기술이 의사를 대체하는 것은, 분명히 어렵다고 본다. 중요한 건 한 발씩 (기술이 의료 현장에) 진입해 갈 때마다 의사들이 제품을 사용해 적응하게 된다면 결국 기술은 의사에게 군인의 총과 칼 역할을 하게 될 거다. 우리 제품이 없으면 진료를 볼 때 불안하다고 해야 할까, 그런 존재가 될 거라고 생각하고 있다.

AI 솔루션이라는 총과 칼이 많이 생기면 의사한테도 필요로 하는 역량이 조금 달라질 수 있을 것 같은데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챗GPT를 쓰면서 AI가 도출하는 결과를 잘 판단, 선별해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지 않나?

챗GPT가 주는 정보에서 거짓을 잘 골라내야 하듯이?

그것도 일종의 능력이라고 하지 않나. 얼마나 양질의 결과를 끌어내는 지도 사용자에 따라 좀 틀려지더라. 마찬가지로 의료 AI 쪽도 솔루션이 주는 정보를 얼마나 잘 선별해 실제 진료에 활용하는지, 그런 능력이 있어야 할 것 같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남혜현 기자> smilla@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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