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게 뭔가요] 자동차를 휴대폰처럼? SDV
테슬라 차주한테, 테슬라 타서 뭐가 제일 좋으냐고 물은 적이 있다. 남들이 멋지게 본다, 전기차가 최고다, 뭐 이런 이야기를 기대했는데 의외의 대답이 나왔다.
“이번엔 어떤 새로운 기능이 들어갔을까, 업데이트가 기다려져요.”
이것이 ‘소프트웨어 정의 차량(Software-Defined Vehicle, SDV)’의 핵심이다. 테슬라를 필두로 거의 대부분의 자동차 회사가 자신들의 미래를 SDV에 걸고 있다. 현대차그룹도 마찬가지인데, 오는 2025년까지 모든 차종을 SDV로 전환하겠다는 전략을 발표했다. 포드나 토요타 등 주요 글로벌 완성차 회사들이 앞다퉈 내놓는 키워드 역시 SDV다.
SDV가 뭐길래 모두가 입을 모아서 “우리는 SDV의 리더십을 가져가겠다”고 말하는 걸까?
1. 소프트웨어정의차량의 정의
SDV를 소개하는 거의 모든 문서에서 “기능이 소프트웨어에 의해 제어되거나 결정되는 차량”이라고 정의한다.
이 말을 쉽게 이해하려면 스마트폰을 떠올리면 좋다. 스마트폰이 운영체제(OS)를 업데이트 하면서 기존 버전에서 발견 됐던 문제를 고치고, 또 새로운 기능을 업데이트 하는 것처럼 자동차도 그렇게 만들겠다는 뜻이다.
이런 변화는 스마트폰에서 시작해서 거의 모든 가전에 퍼져나갔고, 자동차도 예외는 아니다. 냉장고도 와이파이를 연결해 떨어진 식재료를 알려주는 세상이다. 가전 회사가 냉장고 팔았다고 끝내는 게 아니라 마트랑 연결해 비즈니스 모델을 찾아내듯이, 완성차 업체들도 ‘판매한 이후의 자동차’로부터 새로운 기회를 엿보고 있다. 그러려면 꾸준히 성능과 기능을 업데이트하며 차량이 늘 최신 상태를 유지하도록 해야 한다. 그게 SDV다.
다만 자동차라는 상품의 특성상 SDV를 스마트폰과 완전히 똑같이 보기는 어렵다. 스마트폰과는 달리 제어해야 할 부품의 수가 많고, 제품 자체의 크기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크다. 특히 주행과 관련한 부분에서 기능 제어가 들어가기 때문에 실시간성과 안정성, 안전성 측면 모두 스마트폰보다 훨씬 크게 요구된다.
2. SDV의 핵심기술, OTA와 OS
앞서서 스마트폰과 SDV를 비교했는데, 꾸준한 업데이트가 되려면 우선적으로 ‘인터넷에 연결되어 있어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붙는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OTA(Over The Air)다.
OTx라는 단어가 어딘가 익숙하다면, 넷플릭스와 같은 영상 스트리밍 구독 서비스에서도 비슷한 단어를 써서 일 수 있다. 넷플릭스처럼 셋톱박스를 통해서 어디서나 인터넷에 연결해 끊이지 않고 콘텐츠를 업데이트해 볼 수 있게 하는 플랫폼을 OTT(Over The Top)라고 부른다.
마찬가지로 무선 인터넷을 통해서 차량의 소프트웨어를 실시간 업데이트 할 수 있게 하는 기술이 OTA다. SDV는 차량 내에 전자제어장치(Electronic Control Unit, ECU)를 탑재하고 있는데, 이 장치에 대한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를 무선통신으로 받아 실행하는 것을 말한다.
OTA를 활용하면 뭐가 좋으냐. 자동차를 한 대 씩 사람이 손 볼 필요가 없으니, 제조업체에서는 관리하는 차량을 한 번에 시스템 업데이트 할 수 있다는 강점이 있다. 특히 차량에 들어가는 전자부품의 수가 늘어나고, 그만큼 제어기 역시 증가하고 있기 때문에 이를 콘트롤하는 측면에서도 OTA는 SDV에 있어 필수적인 요소가 됐다.
SDV를 가능케 하는 운영체제(OS)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자동차에 왜 OS가 필요하냐면, 또다시 스마트폰을 생각해보면 편하다. 스마트폰 이전에도 핸드폰은 있었지만, 그 피처폰들은 사실상 OS를 갖고 있지 않았다. OS가 있음으로 스마트폰은 비로소 컴퓨팅이 가능한 기기가 됐다.
OS는 전자기기에 탑재된 부품들에 각자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명령을 내리기도 하고, 애플리케이션을 가동시키며 기기에 이상이 있는지 없는지를 점검하는 역할까지 한다. 컴퓨팅을 제어하는 중앙집권적 권력을 OS가 쥐고 있는 것인데, SDV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지금 자동차 업계에서는 차량 제조사마다 각자의 OS를 개발 중에 있다. 물론 구글이 제공하는 안드로이드 OS(안드로이드 오토모티브)를 가져다 쓰려는 곳도 있지만 상당히 많은 수의 완성차 제조업체들은 각자 자신들의 OS를 개발하는데 자금을 투입한다. 스마트폰처럼 하나의 OS를 가져다가 쓰면 편할텐데, 왜 각자 개발하려는 걸까?
몇 가지 이유가 있는데, 우선 스마트폰 생태계에서 애플과 구글의 힘이 얼마나 센지 자동차 업계도 똑똑히 봤다. 남의 것을 가져다 쓰면 당연히 그 OS 생태계에 종속될 수밖에 없다. 지금 자동차 OS 시장은 이제 막 태어나는 지라 (테슬라가 앞서 있긴 하지만) 절대적으로 시장을 장악한 지배자는 없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지금 완성도 높은 OS를 개발한다면 다른 회사에도 자사 OS를 공급할 수 있는 가능성도 생긴다. 성공한다면 노다지.
자기 OS를 쓰면 데이터도 쉽게 확보할 수 있다. 사실 이게 핵심인데, SDV와 같은 커넥티드카는 데이터를 누가 얼마나 모으느냐가 경쟁력을 좌우한다. 게다가 인터넷에 연결되어 있는 전자기기인 만큼 보안에 각별히 신경쓸 수밖에 없다. 누군가 해킹해서 SDV의 제어권을 탈취한다는 것은 생각만해도 오싹한 일이다.
애플이 독자 OS를 고집하면서 보안에 강점이 있다고 말하는 것과, 안드로이드 OS를 쓰는 다른 스마트폰과는 달리 (당연히) 구글의 눈치를 보지 않고 생태계를 넓혀가는 모습을 보면 차량 제조사들의 행동을 이해할 수 있다. 물론, 독자 OS를 만든다고 해서 다 잘나가는 것은 아님을 유의하자.
3. 이게 되면 왜 좋나?
제조사 입장과 소비자 입장을 나눠서 볼 수 있다. 일단 소비자 입장에서는 차량의 업그레이드를 위해서 서비스센터를 방문할 필요가 없다. 주요 기능을 개선하거나 새로운 서비스를 장착하는데 OS 업데이트로만 가능하게 된 것이다.
그동안은 길 안내라든가 엔터테인먼트 콘텐츠 확보에 커넥티비티카의 역할이 집중됐다면 앞으로는 SDV가 차량의 점검 상태나 주행에 필수적인 정보 같은 것들도 자동으로 운전자에 제공할 것으로 보인다. 이는 테슬라가 이미 실행하고 있는 영역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제조사의 입장. 우선,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다. 아까 냉장고와 마트의 협업 이야기를 했는데, 완성차 업체들도 ‘구독’ ‘추가 기능 제공’ 또는 ‘유지 보수’라는 이름의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창출해낼 수 있다. 자동차는 이제 아주 기본 기능으로만 나오고, 거의 대부분의 기능을 구독료로 내고 쓰게 되는 그런 미래는 사실 이미 와 있다. 테슬라는 자율주행 프로그램(FSD)을 월 199달러에 팔고 있고, BMW는 일명 ‘엉따’라고 불리는 열선 시트를 구독 상품으로 내놓았다. 이제 공짜 옵션은 없어질지도.
이 “많은 돈을 벌 수 있다”는 말은 유연성과 확장성이라는 말로도 갈음이 된다. 스마트폰 OS 업데이트를 하면서 차량의 문제점을 빨리 잡을 수 있고, 자꾸만 할 수 있는 일을 넓혀 갈수도 있다. 운전자의 데이터를 쌓아서 개인 맞춤형 서비스를 주는 것도 가능하다.
OS로 상당 부분 문제를 잡는다는 것은 제조사가 차량을 만들고 유지하는데 드는 비용을 줄인다는 말이 된다. 또, 자동차가 전동화가 되면서 모듈로 생산하는 것이 더 쉬워졌는데 이 역시 차량을 만들 때 드는 비용을 줄이는데 도움이 된다.
4. 자율주행차와는 어떤 관계?
SDV를 자율주행차라 부를 순 없지만 자율주행차는 SDV여야 한다. 자율주행차가 인공지능 두뇌를 탑재한 움직이는 로봇이라면, SDV는 그 두뇌에 해당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SDV가 고도화될수록 자율주행차의 상용화를 앞당길 수 있다. 거의 실시간으로 정보를 제공하고 차량의 상태를 확인할 수 있다면 자율주행에 대해 가지는 많은 우려를 완화시킬 수 있어서다. 물론, 완전 자율주행차의 상용화에는 도시 구조 등의 문제가 더욱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이기는 한다.
[자율주행 개념에 대한 참고기사: 당신이 잘못 알고 있는 자율주행의 핵심 개념]
5. 주요 플레이어들
위의 표는 하이투자증권 보고서에서 발췌해왔다. SDV의 핵심인 OS 개발 상황을 단계별로 나눴다. 그림에 있는 내용을 옮기자면, 테슬라만 SDV라 부를 수 있는 영역에 가 있고 나머지 회사는 SDV를 향하는 길목에 줄지어 서 있다. 중국업체들과 스타트업이 그 뒤를 바짝 쫓고 있는 가운데 폭스바겐은 소프트웨어 자회사 카리아드를 통해서 OS를 개발 중에 있고, 메르세데스-벤츠 역시 유니티와 소프트웨어 개발에 협력하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ccOS라는 독자 OS를 만들고 있는데, “오는 2025년까지 모든 차종에 ccOS를 적용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다음은 SDV를 리딩하는 주요 회사들에 관한 내용이다.
• 테슬라
SDV의 시발점은 사실상 테슬라다. 처음으로 자동차(모델X)에 OTA를 적용했기 때문. 테슬라의 충성 고객 중에서는 차량 OS 업데이트가 차량을 구입하는 주요한 요소가 된다고 말하기도 한다. 전기차 업체 중에서 테슬라가 압도적 수익을 내는 것 역시 이 회사가 SDV에 앞서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일단 전기차를 가장 많이 찍어내 규모의 경제가 가능하고, 그 생산에 공용 부품의 수를 늘렸으며, 지속적인 업데이트 서비스를 통해 수익성을 높여가고 있기 때문이다.
• 현대자동차
현대자동차도 SDV에 매우 적극적이다. “소프트웨어 기술력 강화에 2030년까지 총 18조원을 투입할 계획”을 밝히기도 했는데, 오는 2025년까지 글로벌 시장에서 판매하는 모든 차종에 OTA 기술을 탑재한다는 전략을 세웠다. 지난해 8월에는 SDV 개발 체계 조기 전환과 SW 경쟁력 강화를 위한 ‘글로벌 SW 센터’를 설립하고, 센터 구축의 일환으로 자율주행 플랫폼을 개발해 온 스타트업 포티투닷을 인수했다. 포티투닷은 자율주행 소프트웨어와 모빌리티 플랫폼을 개발해온 곳으로, 현대차의 SW 센터 운영의 전진기지가 됐다.
• 폭스바겐과 포드
폭스바겐은 지난 2020년에 자동차 소프트웨어를 전담할 ‘카리아드’라는 조직을 만들었고, 여기에 40조원이라는 어마어마한 돈을 쏟아붓는다는 계획을 세웠다. 운영체제는 물론이고 운전자 지원 시스템이나 클라우드 같이 SDV와 연관한 기술을 개발한다. 포드는 지난 2021년에 구글과 손잡고 2023년부터 6년간 구글의 커넥티비티와 클라우드 기술을 가져다 쓰기로 했다. 포드 차량에 안드로이드 OS와 구글 어시스턴트(AI 음성 인식 서비스)를 집어 넣기로 한 것. 앞선 회사들과는 달리 구글이라는 OS 유경험자와 발 빠르게 한 배를 탔다.
** 참고문헌
https://ww2.hi-ib.com/upload/R_E09/2023/02/[20192743]_230352.pdf
https://www.hyundai.co.kr/story/CONT0000000000032963
https://www.hyundai.co.kr/story/CONT0000000000016049
https://press.hmckmc.co.kr/news/press.do
https://news.samsungdisplay.com/15944
http://redwood.snu.ac.kr/wordpress/wp-content/uploads/2022/01/22-01-05-SDV.pd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