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현대자동차 연구개발본부 홍순성 연구원]

레벨 2.5와 레벨 2+, 그리고 반자율주행 등 자율주행 레벨에 대해 소비자가 헛갈릴 수 있는 잘못된 표현과 개념이 널리 사용되고 있다. 아직까지는 자율주행 기술을 주변에서 접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잘못된 개념이 실제로 많은 문제를 일으키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제는 다르다. 국내를 포함한 많은 국가에서 자율주행 상용화를 위한 법과 제도를 갖추었고 기업들도 자율주행차를 판매하기 시작했다. 벤츠는 올해부터 고속도로 정체 구간에서 사용할 수 있는 레벨3 자율주행 기능 “드라이브 파일럿”을 독일에서 판매하기 시작했다.

벤츠에 앞서 혼다는 일본에서 트래픽 잼 파일럿이라는 레벨3 자율주행 기능을 세계 최초로 상용화 했다. 볼보도 라이드 파일럿이라는 레벨3 자율주행 기능을 수년 내 미국에서 출시할 계획을 발표했다. 연이은 레벨3 자율주행의 상용화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자율주행 시대로 들어가는 첫 관문을 통과했다는 것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자율주행 기능의 본격적인 상용화를 앞두고 있지만, 자율주행 레벨에 대한 정확한 개념을 전파하기 위한 노력은 부족했다. 온라인 상에 잘못된 해석이 널리 퍼지고 있어 대중의 올바른 이해를 저해하고 있는 것도 큰 문제다. “레벨3 자율주행차에서 우리는 잠을 자도 괜찮을까? 스마트폰을 사용해도 괜찮을까?” 이제는 자율주행 레벨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바탕으로 소비자들의 안전한 사용을 도모해야 한다.

사진출처: https://gmauthority.com/blog/2020/11/gm-super-cruise-subscription-prices-announced/

들어가며

자율주행 레벨 분류 기준을 제시한 미국자동차공학회 문서(SAE J3016)에서는 ‘운전 자동화(Driving Automation)’라는 용어의 사용을 권고하고 있다. 하지만 대중들에게는 운전 자동화 보다 자율주행이라는 말이 더 익숙하다는 점과 이 두 용어 차이는 문서의 내용을 이해하는 데 큰 영향이 없다는 점을 감안하여, 본문에서는 독자의 이해를 제고하기 위해 두 용어를 적절히 혼용했다.

 

SAE J3016 표준 문서란?

자율주행 레벨에 대한 논의에서 미국자동차공학회(SAE)의 SAE J3016 표준 문서를 빼놓을 수 없다. SAE J3016은 공공도로에서 주행하는 자동차의 운전 자동화 시스템(Driving Automation System) 관련 용어를 정의하고 레벨 분류 기준을 제시한 문서다. 흔히 알려진 여섯 단계(0~5)의 자율주행 레벨 분류 기준도 이 문서에서 제시된 것이다.

SAE J3016은 규범이나 법적 기준을 제시하는 문서가 아니기 때문에 자율주행 레벨 역시 승인이나 인증의 대상이 아니다. 이 문서는 자율주행 단계별로 인간과 시스템에 기대하는 역할을 제시하고 있다. 비록 강제성은 없지만 SAE J3016은 자동차 국제기준 회의체(UNECE WP.29)를 포함한 대부분의 자율주행 전문가 회의체에서 준용되고 있다. 따라서, 자율주행 레벨을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SAE J3016 표준 문서의 내용을 정확히 아는 것이 중요하다.


 

SAE J3016 레벨 분류 기준

SAE J3016은 시스템과 인간의 역할에 따라 자율주행 레벨을 분류한다. 먼저, 인간 운전자가 평소에 어떤 역할을 하는지 알아보자. 운전자는 출발 전 목적지를 정하고 어떤 길을 이용할지 결정한다. ① 주행 중에는 계속해서 주변 상황을 확인하고 판단한다. ② 그 판단에 따라 조향장치(횡 방향)와 가속, 제동 페달(종 방향)을 조작해 순간순간 자동차의 움직임을 조절한다. ③ 고장과 같이 예상치 못한 상황이 발생하면 더 주의해서 천천히 운전하거나 갓길에 차를 세우기도 한다.

여기에 자율주행 시스템을 대입해 보자. 우선 목적지를 정하고 경로를 선택하는 전략적인 판단은 인간의 역할로 남겨두자. 자율주행 시스템이 운전을 하기 위해서는 인간 운전자와 동일하게 ①, ②의 반복 작업이 필요하다. 혹시 예외 상황이 발생하면 안전을 위해 ③과 같은 비상 대응책도 마련해둬야 한다. 그런데 자율주행 시스템의 운전에서는 한 가지 조건을 더 고려해야 한다. 바로 시스템이 정상 동작하도록 설계된 ④ ‘작동 가능 조건’이다.

SAE J3016에서는 ①, ②의 운전 작업을 ‘DDT(Dynamic Driving Task)’라 부른다. 특히 ①은 자율주행 레벨 구분에 중요한 개념으로 ‘OEDR(Object and Event Detection and Response)’이라는 이름을 갖는다. ③과 같은 비상 대응책은 ‘DDT Fallback’으로 부른다. 마지막으로 ④ 작동 조건은 ‘ODD(Operational Design Domain)’로 불린다. ODD는 날씨, 시간, 지역, 도로 구조와 같은 외부 조건뿐 아니라 차량의 작동 속도 같은 내부 조건도 포함한다.

이렇게 SAE J3016에서는 자율주행 레벨을 네 가지(①~④) 기준에 따라 분류하고 있다. 자율주행 시스템은 설계된 작동 조건(④)에서 운전 작업(①, ②)을 적절히 수행하고 예외 상황이 발생하더라도 안전하게 대응(③)할 수 있어야 한다.

SAE J3016 자율주행 단계 분류

[레벨0]

레벨0은 시스템이 인간에게 지속적인 지원을 하지 않는 단계다. 레벨0에 해당하는 기능은 ESC(Electronic Stability Control) 등과 같은 능동안전시스템이다. 이런 기능들은 보통 위험 상황에서 순간적인 개입만 이루어진다. 따라서 인간과 시스템의 기대 역할에도 변화를 가져오지 않는다.

 

[레벨1~2, 운전자 지원 기능]

레벨1과 레벨2 기능은 시스템이 지속적인 도움을 주는 단계로 운전자 지원(Driver Support) 기능에 해당한다. 시스템이 자동차의 종 방향 및 횡 방향 움직임 제어에 지속해서 관여하는 단계다. 하지만 반드시 인간이 모든 운전 작업의 역할을 완수하고 지원 기능의 작동 상태도 감독해야 한다. 레벨1이 종 방향 또는 횡 방향 움직임 중 하나에만 관여하는 단계라면 레벨2는 동시에 두 가지 움직임에 관여하는 것이 차이점이다. 대표적인 레벨1 기능에는 현대차 차로유지보조(LFA), 스마트크루즈컨트롤(SCC) 등이 있고, 현대차 고속도로주행보조(HDA), GM의 수퍼 크루즈 등은 레벨2 기능에 속한다.

 


[레벨3~5, 자율주행 기능]

레벨3부터 5까지의 기능은 자율주행(Automated driving system) 기능에 해당한다. 레벨3부터는 제한된 작동 조건 내 일반적인 주행 상황에서 시스템이 주행에 필요한 모든 운전 작업을 수행할 수 있다. 하지만 시스템 고장이 발생하거나 설계된 작동 조건을 벗어나는 상황에서는 인간의 개입이 필요하다. 인간은 직접 운전 작업을 하지 않지만 시스템의 요구가 있으면 항상 개입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따라서 레벨3에서 인간은 온전한 탑승객이 될 수 없다.

반면에 레벨4 기능은 예외 상황에서도 인간의 개입이 요구되지 않는다. 시스템이 모든 것을 스스로 대응해야 한다. 예를 들어 시스템 고장이 발생하면 주행 전략을 바꿔 목적지까지 저속으로 주행하거나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해 갓길에 차량을 정차 시킬 수 있어야 한다. 비로소 레벨4부터 인간의 역할은 탑승객으로 남을 수 있다. 현재 크루즈, 웨이모 등이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 활발하게 평가하고 있는 로보택시가 레벨4 자율주행의 기능을 갖추고 있다.

레벨5에서는 작동 조건의 제한 마저 없다. 날씨, 시간, 주행 속도와 같은 작동 조건의 제한 없이 모든 도로를 숙련된 인간 운전자처럼 시스템이 운전할 수 있다. 말 그대로 완전 자율주행 단계다. 하지만 레벨5 기능도 눈보라로 인한 화이트 아웃, 홍수가 난 도로 등 숙련된 인간 운전자도 대처하기 힘든 상황까지 대응하도록 요구되지는 않는다.

 

자율주행 레벨에 대한 오개념 바로잡기

SAE J3016 표준 문서에서 제공하는 레벨 분류 기준은 일반인들이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그러다 보니 용어나 명칭만으로 그 의미를 추측하고 본래의 뜻을 오해하기도 한다. 홍보를 위해 제조사가 의도적으로 용어를 변형해서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또 전문가들이 문서의 내용을 재가공하는 과정에서 의도치 않은 오개념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대표적인 두 가지 오개념 사례를 살펴보자.

1) 레벨2.5 자율주행 기술?

레벨의 숫자가 자율주행의 기술 수준을 나타낸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흔히 레벨2 운전자 지원 기능에 다양한 기술이 추가 적용되거나 편의 기능이 추가되면 레벨이 높아진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테슬라 FSD 베타는 고속도로뿐만 아니라 시내에서 좌회전, 우회전 등 다양한 기능을 수행한다. 따라서, FSD 베타를 레벨2보다 뛰어난 2.5 심지어 3.5라고 표현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잘못된 표현이다. 자율주행 레벨을 분류하는 핵심은 시스템과 인간의 역할이 어떻게 달라지느냐는 것이다. FSD 베타 역시 인간에게 모든 주행 의무를 부여하고 있기 때문에 레벨2로 분류하는 것이 맞다.

GM의 레벨2 운전자 지원 기능인 수퍼 크루즈는 특정 조건에서 운전자의 핸즈 오프(hands-off)를 허용한다. 핸즈 오프를 허용하기 때문에 수퍼 크루즈가 레벨 2.5 또는 레벨 3이라고 주장하는 것도 오개념이다. 핸즈 오프 가능 여부는 자율주행 레벨을 구분하는 기준이 아니며, 추가적인 편의 기능이 제공된다는 이유만으로 레벨의 숫자를 임의로 올리는 것은 부적절하다. GM은 사용자 매뉴얼을 통해 수퍼 크루즈가 자율주행 기능이 아니고 운전자 지원 기능임을 명시하고 있다. 카메라 기반 운전자 모니터링 기능으로 운전자가 상시 전방을 주시하고 있는지 확인하며, 시스템이 인간을 완전히 대신할 수 없다고 분명히 경고하고 있다.

 


2) 레벨3는 핸즈 오프(Hands-off)와 아이 오프(Eyes-off)가 필수?

자율주행 레벨을 설명하기 위해 손, 눈 등 인간의 신체 부위를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 주행 중 조향장치에서 손을 뗄 수 있거나(핸즈 오프) 전방을 주시하지 않아도 되면(아이 오프) 레벨3라는 주장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이러한 설명은 직관적이고 이해도 쉽다. 하지만 문제는 이런 정보들이 대부분 틀렸거나 왜곡되었다는 데 있다. 그리고 왜곡된 정보는 연쇄적인 오해를 낳아 결국 소비자의 안전을 위협할 수 있다.

레벨3에서는 운전자가 전방을 주시하지 않아도 된다는 오개념은 주행 중 스마트폰을 보거나 심지어 잠을 자도 된다는 또 다른 잘못된 인식을 불러 일으킨다. 여기에 익숙해진 운전자가 자율주행 시스템을 잘못 사용할 경우, 안전 사고 등의 위험에 노출될 위험이 있다. 레벨3 자율주행 개념의 핵심은 시스템이 스스로 주행하고 인간 운전자는 필요 시 직접 운전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자율주행 중 특정 행동의 허용 여부는 제조사와 소비자 간 명확한 소통이 필요한 부분이다.

 

SAE J3016와 우리의 역할

운전자에게 모든 의무가 주어진 레벨2 운전자 지원 기능의 사용 시에도 많은 오남용 사례와 안전사고가 발생했다. 자율주행 레벨이 의미하는 바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자율주행차가 상용화 된다면 더 큰 혼란을 발생시킬 것이다. 그리고 그로 인해서 자율주행 시대의 도래가 오히려 늦춰질 지도 모른다. 이제라도 우리가 무심코 사용하던 SAE J3016의 레벨의 정확한 의미를 이해하고 사용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아래 질문에 답해보자.

“레벨3 자율주행에서 우리는 잠을 자도 괜찮을까? 스마트폰을 사용해도 괜찮을까?”

SAE J3016의 자율주행 레벨 분류 기준만으로는 정확히 답할 수 없는 질문이다. SAE J3016은 인간과 시스템의 역할을 개념적으로만 정의할 뿐이다. 잠을 자거나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구체적인 행위의 허용 여부를 제시하고 있지 않다. 오히려, 명확한 책임 관계를 따져야 하는 법에서 규정될 가능성이 높다. 결국 질문에 대한 답은 관련 법과 제조사의 설계 의도에 따라 달라진다고 볼 수 있다.

레벨의 숫자만으로, 마케팅 명칭만으로 운전자의 역할을 속단해서는 안 된다. 소비자는 항상 제조사에서 제공하는 사용설명서를 통해 명확한 역할과 사용법을 인지해야 한다. 그리고 제조사는 자율주행 기능에 레벨을 부여하는 주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자율주행이 상용화될수록 제조사에게는 더 큰 책임이 요구된다. 자율주행 기능을 소비자가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안내하고 교육하는 역할을 충실히 해야 한다. 오해를 일으킬 수 있는 마케팅 명칭이나 용어 사용 역시 지양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