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걸테크, 미국 독식…대응 시스템 없으면 밀린다”
전 세계 리걸테크(법률서비스기술 기업) 수는 2023년 기준 2000여개로 파악된다. 2016년 1100여개에서 급증했다. 인공지능(AI) 기술의 등장으로 법률 검색부터 서류 자동작성, 법률 자문 등 다양한 영역에서 창업이 잇따른 결과다.
국내 리걸테크 기업은 30여개에 그친다. 대한변호사협회(변협) 등 직역 단체의 잇단 소송과 규제 시도, 판례 정보 미공개 등으로 생겼다가 없어지기를 반복하면서 정체 상태다. 전문가들은 이대로면 국가 간 특허 소송이나 조단위 초대형 소송에서 글로벌 로펌과 리걸테크 기업에 주도권을 빼앗겨 이들에게 휘둘릴 것으로 봤다.
13일 국회 유니콘팜(더불어민주당 강훈식 의원, 국민의힘 김성원 의원 공동대표) 주최로 국회도서관에서 리걸테크 시장 현황과 입법 방향성을 진단하는 토론회가 열렸다.
정혜련 경찰대학교 교수는 발표에 나서 “AI 개발이 가속화되면서 미국 시장부터 획기적인 판도 변화가 생겼다”며 “엄청난 숫자의 리걸테크 스타트업 시장이 개시됐다”고 현황을 알렸다. 이어서 “미국이 독식을 하고 있다. 한번 독점이 된 시장에서 독점을 파괴하는 것은 굉장히 힘들다”면서 “유럽이 급진적으로 공정거래법 경쟁법 입법을 통과시키고 규제를 가속화하는 것은 미국의 패권 그리고 중국의 경쟁력을 굉장히 두려워하기 때문”이라고 부연했다.
미국에서 리걸테크가 크게 발전한 이유로는 전자증거개시(e디스커버리) 제도가 주된 이유로 꼽힌다. 증거 보전과 증거 개시를 의무화했다. 소송 당사자가 사건 관련한 각종 증거를 상대방에게 요청할 수 있다. 종이에 전자 문서까지 더해 분석량이 급증하면서, AI 기반의 리걸테크가 발전했다.
정 교수는 “우리도 글로벌 동향에 맞춰서 똑같이 글로벌 소송으로 대응하기 위해선 체계를 갖춰야 한다”며 “복잡한 소송, 예를 들어 특허 소송 등에 대응할 시스템이 없다면 밀리기 쉽다. 1~2조가 되는 거대 소송을 (국외 로펌과 기업에) 맡겨야 된다고 생각지 않는다”고 리걸테크 지원을 재차 강조했다.
이 때문에 ‘법률 데이터 표준화’를 거론했다. 정부와 민간이 데이터 보존과 검증, 이를 담당할 규제기관, 투명성 확보 절차 등을 시스템으로 만들고 표준으로 정립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정 교수는 “굉장히 비용과 기술이 많이 필요해 단순한 문제는 아니”라며 “유럽에선 위원회 차원에서 오랫동안 고심하고 논의가 되고 있다”고 민관 통합 대응을 촉구했다.
“판례 데이터부터 해결해줘야”
이재욱 에이아이링고 대표는 “미국에선 재판을 하고 나면 아무리 낮은 지방법원에도 1~2시간이면 판례가 올라가는데, 한국에선 공개하지 않는다”며 “요즘엔 당사자가 아니면 판례를 주지 않는데, 그러다 보니 판례(데이터)로 먹고 살아야 하는 리걸테크 스타트업이 전부 다 힘들어하고 있다”고 현실을 짚었다.
이 대표는 “미국도 유럽도 판례가 다 공개가 되는데, 한국에선 판례가 공개되지 않으니 산업 발전이 안 되고, 리걸테크로 세계화는 꿈도 못 꾼다”며 “전체 생태계를 위해 판례를 빨리 볼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 문제를 해결해달라”고 국회에 요청했다.
“인공지능과 싸워야 하는데, 사람끼리 싸워서야”
구태언 변호사(코리아스타트업포럼 리걸테크산업협의회 공동협의회장)는 “인공지능하고 싸워야 하는데, 지금 사람끼리 싸우고 있다. 이 점이 너무 안타깝다”며 변협 등 직역 단체의 광고 규제 등을 꼬집었다
그는 ‘리걸테크 스타트업 활성화를 위한 입법 방향성’ 토론문으로 이렇게 입장을 전했다.
“4차산업혁명 시대에는 융합이 중요합니다. 리걸테크는 법률과 ICT 기술이 융합되는 분야로 이미 선진국에서는 뿌리를 내리고 있으며, 학술적으로도 전산법학, 입법정보학 등과 연결되어 연구 테마가 풍부합니다. 인터넷에 이은 인공지능과 블록체인이 가져온 정보혁명이 모든 산업의 소비자 경험을 바꾸고 있고 법률산업도 스스로 변화하지 않으면 글로벌 빅테크에 의해 지배될 운명입니다. 시대에 맞는 법률서비스의 발전을 위해 법률가단체들은 리걸테크산업과 긴밀히 협력하여야 합니다.”
“법률은 누구나 소비하는 일반재이며, 우리의 재산과 생명을 좌우하는 위험한 도구이기도 합니다. 누구나 법률을 몰라 피해 보는 일이 없어야 하고, 누구나 쉽게 법률전문가를 만나 그로부터 양질의 법률서비스를 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법률을 소비하는 틀을 시대에 맞게 혁신하고자 합니다. 법률전문가들이 좀 더 편리하게 법률정보를 수집하고 전문적 판단을 할 수 있도록 돕고, 법률소비자와 편리하게 소통할 수 있도록 하며, 법률사무소의 운영도 쉽게 할 수 있게 하려고 합니다. 법률소비자는 누가 법률전문가인지 쉽게 찾을 수 있게 하고, 판례와 사법통계를 쉽게 접할 수 있게 하여 올바른 법률소비를 하도록 돕고 있습니다.”
“변호사 광고규정, 변협 아닌 대통령령으로 정해야”
변협은 2021년 변호사 광고규정을 개정해 로톡 등 법률 플랫폼 이용을 규제<사진 참조>했다. 변협의 유권해석에 반하는 내용의 광고를 할 수 없도록 금지하고, 금지 내용도 예측할 수 없도록 했다. 변호사가 광고업자에게 광고비를 지급하고 광고하는 행위도 일률 금지했다. 변호사가 법률 플랫폼에 가입하거나 이용하는 것을 법조윤리를 정하고 있는 윤리장전에 ‘원칙’으로도 명기했다.
현재 국회에 일부 계류된 관련 입법안은 변호사가 아닌 자의 변호사 관련 광고를 제한하고 플랫폼이 광고 수수료를 받는 것을 금지하는 등 변협 규제를 강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반면 박성준, 김영배, 이소영 의원 대표발의안은 변호사 광고의 구체적인 사항을 대통령령으로 규정하고 변호사가 이용할 수 있는 광고 매체에 온라인 플랫폼을 명시하는 등의 내용을 담았다. 규제 완화 방향이다.
이소영 의원(더불어민주당)은 토론회에서 “시대의 흐름은 막을 수도 없고 막아서도 안 된다”면서 “변협의 광고 범위 설정이 아니라 (대통령령으로 정해) 법무부가 허용 범위를 정할 필요가 있다. 이를 시작으로 우리나라에서도 거대한 시대적 흐름에 맞게 리걸테크가 발전하고 소비자 복리 증진을 위한 입법을 마련해보고자 한다”고 법안 취지를 설명했다.
구 변호사는 “세무사, 의사, 공인중개사 등 다른 전문자격사 모두 대통령령 차원에서 (광고규정을) 입법하도록 돼 있다는 점을 비춰보면, 유독 변호사법만 법정 협회가 이를 정하도록 하는 것은 다른 법 간 형평과 취지 등에 맟지 않다”고 주장했다.
이날 이경선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 연구위원은 법률 플랫폼 관련 설문(800명), 5점척도 조사(1600명), 경제학 모형 등 활용한 연구 결과를 공개했다.
이 연구위원이 공개한 설문과 이용자 편익 그리고 시장확대 효과에 대한 실증분석 수행에 따르면 ▲여전히 지인 소개로 변호사를 찾는 비중(49.4%)이 높고, 플랫폼 탐색 비중(12.8%)은 낮은 점 ▲20대나 월평균 가구 소득이 200만원 이하일 때 지인 소개보다 변호사를 찾는 대체 수단으로 플랫폼 활용 비중이 높아지는 점 ▲플랫폼을 통해 수임료와 상담료 정보를 공개할 경우 추가 지불 용의가 커지는 점 ▲플랫폼이 소외 계층의 법률 서비스 접근성을 높여 전체 시장 규모를 확대하는 점 등 결과를 언급했다.
이 위원은 또 “전문직 갈등에 대해 플랫폼 주장과 변협 주장에 대해 어느 쪽에 공감하는지 이용자 설문을 진행한 결과, 5점 척도에서 두 주장 모두 공감도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으나 플랫폼 주장에 소비자들이 더 공감하고 있음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이대호 기자>ldhdd@byline.netwo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