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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전력망이 지속해 안정적으로 유지되려면?

최근 전기요금이 인상됐습니다. 1킬로와트시(kWh)당 8원이 인상되었는데, 1월에 인상된 13.1원과 작년에 인상된 19.3원을 합치면 2년간 약 40원에 달하는 가격이 인상된 것입니다.

단순 계산하면 약 40% 정도 올랐으니 많이 올린것이긴 한데, 다른 나라들이 적게는 2배 많게는 5배까지 전기요금을 올린것에 비하면 상대적으로는 적게 올린 상황이기도 합니다. 사실 한전 입장에서는 전기를 구입해오는 비용에 비해 팔아야 하는 가격이 낮다 보니 적자가 가중되고 있고 그로 인해 모든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것이죠.

좀 더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최근 전기요금인상의 가장 큰 원인은 한전의 막대한 적자인데, 작년에만 무려 32조의 적자가 발생했다고 합니다. 일반적으로 기업은 적자가 나면 현금이 부족해지는데, 이를 메꾸기 위해서는 크게 세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1. 부족한 돈을 메꾸기 위해 채권을 발행합니다. 

채권에는 여러 종류가 있습니다. 그중에서 한전에서 발행하는 채권을 흔히 한전채라고 부릅니다. 문제는 한전채 자체도 한도가 있고, 또한 시장에 너무 많은 양이 풀리게 되어 금융시장에 불안정을 가져와서 큰 문제가 되었었습니다. 관련 사항은 한동안 경제뉴스에서 많이 볼 수 있었죠.

   2. 가진 재산을 다 팔아서 돈을 메울 수 있습니다.

최근 뉴스에서 언급되고 있는 사항입니다. 한전이 가지고 있는 자산들을 다 팔아서 현금화 하고, 그걸로 적자를 메운다는 내용들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합니다. 당장은 필요한 현금을 해결할 수 있겠지만, 장기적으로는 매우 큰 문제를 야기하게 됩니다.

예를들면, 세일&리스 라는 방법이 있는데, 가지고 있는 건물을 팔고, 그 건물에 임대로 들어가는것이죠. 해당 방법을 취하게 되면, 당장은 큰 돈이 들어오게 되지만, 앞으로 적자의 규모는 점점 더 커지게 되는것입니다.

  3. 전기요금을 올리는 방법

판매 가격을 올리는 방법인데 현재 한국전력의 전기판매 단가는 한전이 임의로 바꿀 수 있는게 아니라, 법으로 정해져 있어서 정부의 승인 하에만 변경이 가능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전기요금의 경우에는 기본적으로 공공재적인 성격이 있다 보니 국가에서 관리하도록 되어 있는것이죠. 쉽게 말해, 가장 합리적인 방법이지만, 가장 어려운 방법이죠.

한전의 포지션

일반인들은 보통 한전을 단순히 전기를 만들어서 판매하는 곳이라 알고 있지만, 현재 한전의 포지션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습니다. 기본적으로 한전에는 실제로 전기를 생산하는 발전자회사가 있고, 그 전기의 구입 단가를 결정하는 한국전력거래소(KPX )라는곳이 있습니다.

쉽게 말하면, 발전회사들 -여기에는 한전의 발전 자회사와 대기업 계열의 발전회사들 그리고, 소규모 태양광 발전사업자들이 포함됩니다- 이 KPX를 통해 전기를 판매하고 그 거래소를 통해 결정된 가격에 의해서 한전이 전기를 구입해서 한전이 보유하고 있는 송배전망을 통해서 기업이나 가정으로 전기가 배달되는 것이죠.

여기서, 전기가 송전 철탑을 통해서 전달되는것을 송전이라고 하고 각각의 수요자에게 배달되는 마지막 단계를 배전이라고 합니다. 물류에서 이야기하는 라스트마일에 해당 하는 부분이 배전에 해당합니다. 흔히 이야기 하는 송전탑 이슈가 미들마일에 해당하는 부분인것이죠. 이부분도 깊게 들어가면 이야기가 길어지니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한전이 도매로 전기를 사오는 가격, 즉 KPX를 통해 결정된 가격을 SMP(계통한계가격)라고 합니다. 발전회사가 생산한 전력을 한국전력에 판매하는 가격을 말하죠. 

그런데 문제가 여기서 발생합니다. 작년초에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이후 LNG가격이 폭등을 하였고, 덩달아 석탄 요금까지 폭등을 하였습니다. 덕분에 SMP가 같이 올랐는데, 한전은 판매 가격이 고정되어 있으니 구입해오는 가격보다 판매하는 가격이 낮은 상태가 유지 되었고 당연히 적자를 기록하게 된것이죠. 

재작년까지만 하더라도 한전이 과도한 흑자를 낸다고 하여 언론에서도 한전이 과도한 폭리를 취한다는 뉴스가 계속 나왔었으나, 갑자기 상황이 반전이 된것입니다. 그렇다면 SMP는 어떻게 결정되는 것일까요?

SMP의 결정 구조

SMP는 기본적으로 시장 원리에 의해 결정됩니다. 다음날 시간대별로 사용될것으로 예측되는 전력량을 1시간 단위로 한전과 KPX에서 공지를 하면 각 발전사들은 해당 시간대에 자신들이 공급할 수 있는 전력량과 공급 단가를 입찰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집니다.

예를들어보겠습니다.

A 발전사 : 200kWh / 50원
B 발전사 : 200kWh / 80원
C 발전사 : 200kWh / 100원
D 발전사 : 200kWh / 110원
E 발전사 : 200kWh / 120원
F 발전사 : 200kWh / 140원

다음날 10시에 사용될 전력량이 1000kWh 라고 하고, 12시에 사용될 전력량이 800kWh라고 해보겠습니다. 10시에는 A~E 발전사까지 전력 공급이 가능하고, 12시에는 A~D 발전사가 전력 공급이 가능합니다. 해당시간대에 전력공급을 하지 못하는 발전사들은 해당 전력을 판매할 수 없는것이죠.

좀더 복잡한 연관된 문제들이 있는데 그건 아래에서 다시 하도록 하고 우선 SMP 가격 결정 구조부터 설명을 해보겠습니다.

10시에는 가장 비싼 발전사인 E 발전사의 가격인 120원에 SMP가 결정되고, 12시에는 D 발전사의 가격인 110원에 SMP 가 결정되는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실제로는 어떻게 될까?

실제로는 가장 저렴하기도 하고, 항상 동일한 발전량을 공급해야 하는 원전이 기저전원으로써 가장 낮은 가격에 공급이 가능합니다. 다음으로 석탄 발전소, LNG 발전소순으로 가격이 올라가게 됩니다. 그래서 일반적으로는 LNG 발전소들이 SMP가격을 결정하게 됩니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합니다. 모두가 알고 있다 시피 작년 초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이 발발한뒤 LNG 가격이 폭등했습니다. 이어서 석탄가격까지 폭등했습니다. 따라서 한전이 구입하는 SMP가격은 폭등하고 대규모 적자가 발생한것이죠.

최근 어느정도 폭등이 잦아지면서 가격이 많이 내려갔으나 여전히 SMP가격은 판매 가격 대비 높습니다.

현재의 정책 구조와 전력 시스템으로는 한전의 적자는 해결되지 않을것입니다. 심지어 한전은 이번에 재무구조 개선안을 내놓으면서 향후 5년간 각종 투자를 줄이는것으로 적자를 해결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오히려 투자를 늘려서 전력 시스템을 고도화해야 하는데 투자를 줄이는겠다고 발표했으니 앞으로의 전력문제는 심화될것이 확실합니다.

또 하나의 심각한 문제가 있습니다.

전력 거래소의 전력 수요 차트를 보면 계절별로도 차이가 크지만, 하루중으로도 시간대별로 차이가 매우 큽니다. 앞으로 이 차이는 점점 더 커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신재생에너지의 공급을 늘리는것이 SMP 평균 가격을 낮추는데 큰 도움이 되긴 하지만, 신재생에너지는 공급을 컨트롤 하기 힘들고, 그렇다고 석탄화력발전소나 LNG화력발전소는 탄소배출에서도 자유롭지 않으며 실시간으로 컨트롤 하기 힘듭니다.

원전은 더더욱 심각합니다. 한번 전원을 켜면 임의로 끄기도 쉽지 않으며 시간대별로 출력을 조절하는것은 다른 모든 발전소에 비해서 가장 힘듭니다.

5월 16일 기준 현재의 전력수요/공급 차트 ( 기타는 양수발전소를 포함한 ESS )

그래서 현재 한전과 정부에서는 능동적 전력 수요 관리(DR)라고 해서 시간대별로 전력 수요를 늘리는것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전력 공급이 많은 시간에 전기자동차를 충전한다거나 전기를 더 많이 쓰면 전기요금을 할인해주는 것입니다.

기본적으로 현재의 전력 공급 시스템은 각 발전소의 최대 효율을 보장해주지 못합니다. 화력 발전소들은 짧게는 2시간 길게는 12시간 정도의 기동시간을 가지는데, 실시간으로 수요가 들쭉날쭉하면 그에 따른 대응을 해야 하다 보니 최대 효율로 저렴하게 전력 생산을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필요한것이 에너지 스토리지 시스템(ESS)입니다. ESS는 신재생에너지처럼 저장이 어렵고 사용 후 없어져버리는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저장ㆍ관리하는 시스템을 말하죠.

충분한 양의 ESS / 양수 발전소가 있다고 가정했을 경우의 차트

만약에 충분한 ESS 들을 설치해서 각 발전소들이 최적의 효율로 가동이 가능하다면 위와 같은 그래프가 될 것입니다. 물론 ESS 를 설치하는데는 막대한 자금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설치 후에는 엄청난 양의 탄소배출량도 줄일 수 있고, SMP를 낮게 유지하는데도 큰 도움이 됩니다. 또한 신재생에너지를 확대하는데도 큰 도움이 됩니다.

한전에서도 이를 잘 알고 있어서 최근에 양수발전소 계획을 발표했고, 봉화군 같은곳에서는 적극적으로 양수발전소를 유치하겠다고 대대적으로 발표도 했습니다. 현재 국내에 설치되어 있는 양수 발전소의 규모는 약 4GWh 규모입니다. 그러나 최소 한 현재보다 10배는 늘어야 합니다. 꼭 양수 발전소가 아니라 BESS 라도 늘려야 위의 문제들에 대응이 가능합니다. 

이러한 전력 수요량의 변동에 따라 발전소들이 대응하기 위한 전력망 고도화와 ESS 증설이 필요하지만, 한전은 앞으로 (적자때문에) 투자를 줄이겠다고 발표한 것이죠.

물론 당장 완벽한 솔루션을 내놓고 문제를 해결하는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하지만, 앞으로는 현재보다 상황이 더욱 악화되는 방향으로 가겠다고 발표한 것이죠. 해외의 다른 나라들은 전부 신재생에너지에 투자를 급격히 늘리고, 전력망에도 열심히 투자하고 있습니다. 그동안은 한국이 전세계에서 가장 안정적인 전력망 운영으로 유명했지만, 앞으로도 그 명성이 유지될지는 알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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