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중에도 게임은 만들어진다…베이글코드 우크라이나 게임스튜디오
요즘 ‘우크라이나’라는 단어를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를 단어는 ‘전쟁’일 것이다. 2022년 4월 러시아의 침공으로 발발한 이 전쟁은 1년이 넘도록 아직 진행 중이다. 나는 전쟁을 직접 경험한 적은 없지만, 전쟁이 우크라이나인들의 삶을 크게 바꿔 놓았을 것이라는 점을 예상하기는 어렵지 않다.
우크라이나는 IT 분야의 강국으로 꼽힌다. 우크라이나 정부의 통계에 따르면, 2021년 기준 거의 30만 명의 기술 인력과 약 5000개의 기술 회사가 우크라이나에 존재한다. 나스닥에 상장된 소프트웨어 기업인 깃랩이 우크라이나에서 시작됐으며, 영어 사용자의 필수 맞춤법 검사 툴인 그래멀리(Grammarly)도 우크라이나 기업이다.
우크라이나에는 IT관련 오프쇼어링(기업의 업무 일부를 해외 기업에 맡기는 것)을 담당하는 기업들이 많다. 포춘 500대 기업 중 100곳 이상이 우크라이나에서 아웃소싱을 하고 있다는 통계도 있다.
우리나라 기업 중에서도 우크라이나의 기술력을 활용하는 곳이 있다. 오늘 소개할 베이글코드의 드니프로 오피스가 대표적이다. 베이글코드의 경우 우크라이나에서 아웃소싱을 하는 수준이 아니라 아예 게임 스튜디오를 설립했다.
글로벌 기업을 지향하는 모바일 게임사인 베이글코드는 2019년 9월 우크라이나 드니프로에 4번째 오피스를 열었다. 이 곳에는 24명의 직원들이 근무하고 있는데, 베이글코드의 소셜 카지노 게임 콘텐츠가 우크라이나에서 개발된다고 한다.
그런데 지금은 전쟁 중 아닌가. 전쟁 중에도 드니프로 오피스는 정상적으로 운영되고 있을까, 서울 팀과 드니프로 팀의 협업은 잘 될까, 이런 질문을 던지기 위해 베이글코드 드니프로 오피스의 주요 인사 5명과 화상 인터뷰를 진행해봤다.
알렉시 블란넨코(Alexey Bulanenko) : 드니프로 오피스 총괄 디렉터 |
세르게이 라돈킨(Sergey Ladonkin) : 드니프로 오피스 게임 설계 디렉터 |
발레리 셔네츠(Valerii Chernets) : 테크니컬 아티스트 / 게임 디자이너 |
이고르 홀리코프(Igor Holikov) : 테크니컬 아티스트 리더 |
드미트리 페두코비치(Dmitriy Fedukovich) : 개발 팀장 |

안녕하세요. 각자 하는 일과 경력을 소개 부탁드립니다.
알렉시 : 드니프로 오피스 총괄 디렉터 겸 아트 디렉터입니다. 슬롯 컨텐츠 제작을 위한 파이프라인 구축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게임을 만들어 보고 싶어서 동생과 함께 게임 스튜디오를 만든 적이 있습니다. 2016년부터는 플레이티카(이스라엘의 모바일 카지노 게임회사)에서 슬롯 게임을 만들었습니다. 2018년 베이글코드 윤일환 대표님을 만나 드니프로 오피스를 설립하게 됐습니다.
세르게이 : 드니프로 오피스의 게임 설계를 총괄하고 있고, 두 개의 팀을 맡고 있습니다. 2002년부터 게임산업에 종사해왔으며 알렉시가 창업한 스튜디오에 합류했다가 베이글코드에서 일하게 됐습니다.
발레리 : 저도 팀 두 개를 이끌고 있으며, 게임 디자인 문서를 제작하거나 신규 프로젝트를 분석하는 일을 합니다. 대학 졸업 후 게임 스튜디오를 시작하면서 게임 산업에 들어왔습니다. 2014년 플레이티카에서 근무하다가 2021년 베이글코드에 합류했습니다.
이고르 : 2D 아티스트로 시작했다가 애니메이션에 흥미를 느껴 현재 베이글코드에서 애니메이션 제작을 하고 있습니다. 2019년부터 베이글코드와 함께 하고 있습니다.
드미트리 : 슬롯머신을 개발합니다. 소프트웨어 개발자로 시작했고 2017년 슬롯 게임 개발을 시작했습니다. 한 게임회사를 공동창업하기도 했고 2019년 베이글코드에 합류했습니다.
드니프로 게임 스튜디오에서는 무슨 일을 하나요?
알렉시 : 메인 업무로는 일단 슬롯 게임 개발이 있습니다. 게임 기획부터 QA(품질보증) 테스트까지 게임 개발의 전 영역을 담당합니다. 만약 베이글코드가 4개의 슬롯 콘텐츠를 만든다고 하면 서울에서 두 개, 우크라이나에서 두 개, 이런 식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게임 스튜디오는 아니지만 UA(유저 획득) 팀원도 있습니다. 이 분들은 주로 마케팅을 담당합니다.
우크라이나 입장에서 한국이라는 나라가 친숙하지는 않을 것 같은데, 어떻게 한국의 게임 스타트업과 함께 일하게 됐나요?
알렉시 : 오랫동안 소셜 갬블링 분야에서 일했습니다. 플레이티카에서 일할 때 윤 대표 님을 만나게 돼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다가 고향(드니프로)에 스튜디오 설립이 가능하겠다는 판단이 들어 함께 하게 됐습니다.
세르게이 : 한국 회사가 좀 더 논리 정연하고 생산성의 위주로 일을 하는 모습이 좋아 보여서 합류했습니다. 이전 회사들은 하나의 결정을 하는데도 굉장히 많은 단계를 거쳐야 했는데, 여기는 스스로 자율성과 통제권을 가지고 있어서 바로바로 일을 진행할 수 있습니다.
발레리 : 코로나19 이후로 플레이티카의 일하는 방식이 좀 비효율적이라고 느꼈습니다. 반면 베이글코드는 굉장히 잘 맞춰간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한국 회사에 2~3년 다녀보니까 어떤가요? 기존에 다닌 회사와 다른 점이 있나요?
알렉시 : 서울 팀원들은 이견이 있을 때 직설적으로 말하기보다는 에둘러 말하는 부분이 있는데 그런 점이 좀 다른 것 같습니다. 한 번은 외주 아티스트에게 미흡한 부분에 대한 의견을 전달해야 했는데,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고 에둘러서 표현하더군요. 그래서 서울 팀원들에게 좀더 직접적으로 피드백을 주는 게 어떻냐고 한 적이 있습니다.
서재용 디렉터(게임 스튜디오 총괄) : 제가 조금 덧붙여도 될까요? 세르게이나 발레리 님이 기획서를 써주시면 제가 그걸 승인하는데요. 가끔 일주일 동안 고생해서 썼는데 이게 좀 마음에 안 들거나, 그 사이 제 마음이 바뀌어서 수정을 요청할 때가 있어요. 한국인 입장에서는 좀 미안하고 언어도 잘 안 통하니까 되게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하는데 우크라이나에서는 “그래 해줄게” 하고 자세히 물어보지도 않고 진행하더라고요. 아마 이 분들은 ‘왜 미안해 하지?’ 할텐데, 이런 부분은 문화가 좀 다른 거 같아요.
서울 팀과 협업은 잘 된다고 생각하나요?
발레리 : 시차가 달라서 어려운 점은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통 창구가 굉장히 잘 구축돼 있기 때문에 전반적으로는 협업이 잘 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개선해야 할 점이 있다면 서로가 모두 영어가 모국어가 아니고 영어 실력이 다 달라서 이런 부분은 서로 노력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세르게이 : 서울팀과의 협업이나 커뮤니케이션에는 별다른 문제가 없는데 외주사와 커뮤니케이션은 좀 힘들 때가 있어요. 예를 들어 어떤 의견을 제안하거나 물어봤을 때 그분들이 답변에 체크마크라도 달아주면 조금 편할 텐데, 답이 없으면 좀 답답함을 느끼신다라고 하네요.
서재용 : 덧붙이자면 베이글코드 내에서는 코로나 기간을 거치면서 메신저 사용에 룰이 좀 생겼어요. 누군가 제안이나 의견을 이야기할 때 즉각적인 답은 안 하더라도 읽었다는 체크라도 하는 룰이 있어요. 검토 중이라고 알 수 있죠. 하지만 외주사는 이런 룰이 없으니까…
서울 팀에 요청하고 싶은 건 없나요?
세르게이 : 게임 개발을 하다 보면 처음 기획과는 다르게 저희가 연출을 하거나 할 때가 있거든요. 중간에 바꿔야 할 때가 있는 거죠. 사실 이런 게 딜레이를 발생시키는 원인이 되곤 합니다. 이럴 때 좀더 유연하게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서울 팀과 이견이 있으면 어떻게 하나요?
드미트리 : 개발 방식에 대해서 조금 이견이 있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저는 제가 제안한 방식이 더 효율적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냥 밀어붙이기보다는 이게 왜 효율적이고 왜 이렇게 해야만 우리가 좀 더 잘 능동적으로 개발을 할 수 있는지 좀더 구체적으로 설명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아무래도 전쟁 이야기를 빠질 수 없을 거 같아요. 전쟁 중에도 업무는 정상적으로 돌아가고 있나요?
알렉시 : 네, 다만 이전에는 사무실에서 대면 근무를 했었는데, 이제는 아무래도 각자의 공간에서 일을 할 수밖에 없어요. 대면 근무를 하면 서로 의견을 공유하거나 협업하기 편하죠. 비주얼 면에서 새로운 제안이 있으면 눈 앞에서 보여줄 수도 있고요. 커뮤니케이션이 100% 온라인으로만 이뤄진다는 점에서 좀 어려움은 있죠.
하지만 전쟁 전부터 코로나 상황 때문에 재택근무가 조금씩 실행이 되면서 익숙해진 면은 다행입니다.
지금 사무실은 완전히 폐쇄된 상태인가요?
서재용 : 네, 사무실은 지금 현재 폐쇄된 상태고요. 사실 전쟁 초기까지만 해도 사무실을 유지했었는데 드니프로에도 가끔 폭격이 떨어질 때가 있어서 지금은 각자 원하는 곳에서 일을 하고 있어요.
세르게이 님은 한 6개월 전에 가족과 함께 벨라루스 쪽으로 이동을 해서 지내면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전쟁 중에도 굴하지 않고 평소처럼 일을 할 수 있는 우크라이나만의 문화적 특징 같은 게 있나요?
발레리 : 동료애를 넘어선 약간 가족과 같은 이런 우정과 어떤 동료애가 있습니다. 항상 웃고 다니고 서로를 좀 격려해 주는 그런 문화가 있습니다.
서로가 어떤 문제가 발생이 됐거나 곤란한 상황에 처했을 때 정말 주저하지 않고 서로가 서로를 도와주는 어떤 문화가 있습니다. 그런 문화로 인해서 코로나19부터 지금 전쟁 상황까지 이겨낼 수 있는 힘이 된 게 아닐까 합니다.
서재용 : 개인적으로 우크라이나에 가서 흥미로웠던 부분이 하나 있는데요, 출근을 하거나 퇴근을 할 때 사무실에 있는 사람들한테 다 찾아가면서 악수를 하더라고요. 조금 멀리 있어도 다 찾아가서 악수를 하면서 이야기를 나눕니다. 그런 점이 이런 친근한 조직 문화를 만들지 않나 생각해요. 그거 보고 한국에 와서 따라해 보고 싶었는데 한국에서는 잘 안 되더라고요.
방금 언급한 그런 문화는 우크라이나라는 나라의 특성인가요? 아니면 이 팀의 특성인가요?
알렉스 : 우크라이나에서는 일반적인 모습입니다. 특히 저희 드니프로 오피스는 베이글코드 입사 이전부터 함께 일한 분들이 많아서 더욱 친근한 문화가 있기도 합니다.
한국에서 느끼기에도 전쟁으로 인한 업무 차질이 별로 없나요?
서재용 : 저희가 게임 스튜디오를 운영하면서 제일 중점에 뒀던 것이 각 스튜디오에 자율성을 주는 거였어요. 커뮤니케이션은 많이 하되, 커뮤니케이션할 건은 최대한 줄이자. 의사결정 하나하나를 커뮤니케이션하고 확인받아야 하면 일이 잘 안 돌아가죠. 최대한 현지 스튜디오에서 알아서 결정하고, 대신 결정된 사안을 공유해주는 것이 저희 문화입니다. 예를 들어 드니프로 스튜디오에서 기획을 하고 그 기획안을 서울에서 컨펌을 하면 개발, 아트 제작, QA까지 드니프로에서 알아서 할 수 있도록 프로세스가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전쟁 이전과 비교해서 업무가 늦어진다거나 하는 일은 별로 없습니다. 전쟁 전에 코로나라는 경험을 또 했으니까요. 슬랙이나 행아웃 같은 도구에도 익숙해져 있죠.
물론 가끔 문제도 생겨요. 공유가 잘 안되면 드니프로에서 해결한 문제를 서울에서 다시 고민하거나, 드니프로에서 오랫동안 끌어안고 있는 문제를 서울에서는 이미 해결한 사안일 때가 있죠.
회사에서 전쟁 대피에 대한 지원도 있나요? 아까 세르게이 님은 드니프로가 아니라 벨라루스에 거주하신다고 했는데, 회사의 지원인가요?
서재용 : 세르게이 님의 경우는 아니고요. 세르게이 님은 거주지를 옮긴 다음에 회사에 공유를 해줬어요. 이고르 님의 팀원 분 중에 한 분이 부인과 어린 아이들의 안전을 위해 네덜란드로 이전했는데, 거기에는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 회사 차원에서 지낼 수 있는 곳도 찾아주고 거기서 머물 수 있도록 지원비도 지원해줬습니다.
회사 정책상 그런 걸 지원하는 건가요? 아니면 특별 사례인 건가요?
서재용 : 일단 필요하면 회사에 연락을 달라고 했어요. 처음에 전쟁이 났을 때도 이주를 해야 하면 알려 달라, 지원하겠다 했었는데… 사실 저희는 이주희망자가 좀 많이 나올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말씀드린 사례 말고는 모두 드니프로에 그냥 거주하시더라고요. 저희는 좀 걱정이 됐는데, 아무래도 가족이 다 있으니까 움직이는 게 쉽지 않은 거 같습니다.
또 우크라이나 분들은 지역을 평생 안 벗어나시는 분들도 많다고 이야기를 들었어요. 블라드 님이라고 있는데 그 분은 접전지역인 돈바스에 거주하거든요. 회사에서는 위험하니까 거주지를 옮길 것을 권유하는데 그곳에 머물기를 원하시더라고요. 회사에서는 옮긴다고 하면 최대한 지원을 하려는 생각이었는데, 예상보다 옮기길 원하는 사람들이 없었어요.
전쟁으로 인해 물리적인 업무 차질도 약간은 있어요. 러시아가 전기시설에 공격을 해서 정전이 될 때가 있어요. 정전이 되면 일을 할 수가 없죠. 그래서 회사에서 배터리를 대량으로 구매해서 보내주기도하고, 일반 노트북 컴퓨터보다 전력 효율이 좋은 맥북을 구매해서 보내는 지원도 했어요.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심재석 기자>shimsky@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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