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 재밌니?] 길복순과 퀸메이커

오랜시간 착실히 작품을 쌓아온 배우는 신뢰감을 줍니다. 제게는 전도연, 김희애, 문소리와 같은 이들이 그런 배우들 중 하나죠. 다른 건 몰라도, 연기력 하나는 믿고 볼 수 있겠다, 그런 건데요. <길복순(=사진, 넷플릭스 제공)>과 <퀸메이커>도 그런 의미에서 엄청 기다렸던 작품들입니다. 배우 뿐만 아니라 작품의 주요 소재나 장르까지, 제가 딱 좋아하는 요소들이 집합해 있으니까요.

여성 킬러 – 제가 제일 좋아하는 드라마 중 하나가 <킬링이브> 입니다. 매력적인 싸이코 킬러와 더 매력적인 싸이코 수사관이 자꾸만 제 예상을 깨가면서 미친 짓을 벌이는 그 시리즈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봤던 기억이 있습니다.- 를 전도연이 소화한다니. 한국판 킬링이브가 탄생하는 건 아닐까? 액션은 어떻게 소화할까, 생각만해도 짜릿해. 개봉 전부터 엄청 설레면서 기다렸거든요.

개인적 소감으로는 조금 아쉽습니다. 킬러물이긴 한데, 변성현 감독이 두 시간 안에 너무 많은 요소와 메시지를 집어 넣으려 했던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이 약간 들었습니다. 때로 어떤 대사들은 제 손가락을 살짝 오그라들게 만들었는데요. 직접적으로 보는 이들에게 훈수를 두는 듯한 그런 대사가, 제게는 좀 시청 몰입감을 깨는 요소가 되더라고요. 많은 담론(스포가 될까봐, 어떤 내용들인지는 빼겠습니다)을 종합선물세트처럼 집어 넣고 그에 대해서 입장 표명을 하는 듯한 모습은, 어떤 면에서는 훌륭하지만 또 어떤 면에서는 너무 흘러 넘치게 담았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고요.

킬러인 전도연이 아이를 키우는 워킹맘으로 나오면서 여러 갈등구도를 만들어냅니다. 킬러와 엄마라는, 상반된 두 역할 사이에서의 갈등이 흥미를 만들어내기도 하지만 또 어떤 면으로는 그 구도 자체가 다음 장면을 예상케 하는 요소가 되기도 합니다. 하여튼, 뭔가 감독이 이 영화를 <불한당>처럼 섹시하게 만들고 싶어 하기도 했고, <킹메이커>처럼 메시지를 던지는 도구로 쓰려 했던 것도 같습니다. 킬러물이라는 장르에만 충실하게 만들었어도 더 재밌었지 않았을까 싶기도 했고요.

연기는 뭐, 배우들이 훌륭합니다. 전도연, 설경구, 황정민, 구교환, 이솜에 이연까지. 캐스팅이 이정도면 사실 뭘 찍어도 재밌죠. 배우들 눈빛 카리스마 넘치고요, 액션도 나름 괜찮습니다. 멋진 액션도 종종 나오고요. 물론 아, 킬러들도 개싸움 하는구나, 뭘 또 이런 면에서 현실적이야 이런 부분도 있지만요.

배우들 보는 맛이 있고, 아 이 배우들이 안 죽으면 좋겠다(왜냐면 출연하는 이들 대부분이 킬러입니다. 그러니까, 킬러 직업 세계 물이죠) 가슴 졸이기도 합니다. 저는 요즘 개인적으로 구교환 배우를 매우 좋아하는데 구 배우도 연기 역시 잘하고요, 전도연 배우님 눈빛 사랑합니다. <일타스캔들>에서 어린 남행선(전도연 배우 아역) 으로 나온 이연 씨가, 이번에는 전도연 배우의 어린 후배로 나오는 그 캐스팅도 나름 재밌었어요.

다음, <퀸메이커>. 총 11편짜리 시리즈입니다. 날짜까지 꼽아 가면서, 언제 나오나 기다렸는데. 짜게 평가하자면 역시나 조금 아쉽습니다. 네가 뭐라고 대 배우들이 나온 작품을 아쉽다 평가 하느냐, 김희애 문소리인데! 라고 하신다면 할말은 없지만요. 그래도 11편을 아쉬워하면서도 나름 재미있게 끝까지 본 기념으로 이 드라마의 좋았던 점, 안 좋았던 점을 조금씩 꼽겠습니다.

우선 좋았던 것 부터요. 사회비판적인 요소도 많고, 현실세계도 많이 반영합니다. 게다가 이런 정치, 비즈니스물에서 여성 투톱이 (적어도 국내에서는) 나왔던 사례가 없기 때문에, 그 자체로도 흥미롭습니다. 출연하는 배우들도 멋졌습니다. 그중에서 가장 매력적이었던 배우, 이 드라마의 가장 큰 악역 중 한 명인 서이숙 씨였습니다. 스타일이나 눈빛 연기 때문에 화면에 나올때마다 시선을 강탈해갔는데요. 그래서 저는 서이숙 씨가 나왔던 다른 드라마나 영화도 다시 찾아 곧 정주행 할 계획입니다.

그렇지만 일부 ‘호칭’은 불편하기도 했습니다. 드라마에서 문소리 배우는 노동 인권 변호사로 나옵니다. 이름은 오경숙. 오경숙 변호사의 조력자로 젊은 남성(기도훈 배우)이 나오는데요, 초면의 김희애(여기서는 기업 회장 비서실장)에게 ‘언니’, ‘언니’라고 부릅니다. 아, 물론 부를 수 있는 호칭이죠. 언니가 나쁜 단어도 아니잖아요? 저는 심지어 ‘언니’라는 단어를 좋아하고, 그만큼 아껴 쓰기도 합니다. 이 드라마에서는 캐릭터의 능글한 성격을 설정하기 위해서 선택한 호칭일 수도 있고요.

그런데, 이 ‘언니’라는 호칭을 이 상황에서 쓰는게 왜 제게 불편함을 줄까요. 생각해봤는데요. 상대편의 격을 낮추어 부르기 위한 의도된 호칭으로 하필 언니가 쓰였기 때문인 거 같습니다. 존경하지 않는 대상, 심지어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대상을 조롱하기 위한 호칭으로 하필 ‘언니’를 쓴 게 그런거죠. 우리 사회적 맥락에서 ‘언니’는 좋은 호칭이기도 하지만, 일각에서는 ‘언니’를 오용해서 쓰기도 하는데요. 그런 해석이 더해지니까 저 호칭을 듣는 순간, ‘아…’ 싶게 기분이 나빠진 거죠. ‘왜 저래?’ 이렇게요(나중에 김희애를 존경하게 되면서는, 호칭이 ‘언니’에서 ‘본부장’으로 바뀝니다).

하나 더 꼽자면, 이런 정치물의 경우에는 캐릭터들의 수 싸움이 가장 큰 볼 거리죠. 주어지는 역경을 어떠한 두뇌 싸움으로 풀어낼지, 그래서 상대방에게 어떻게 통쾌한 한 방을 먹일지를 재미의 가장 큰 요소로 보게 되는데요. 퀸메이커 역시 계속해 사건이 발생하고 두 주연이 이를 잘 해결해나갑니다. 다만 몇몇 장면은, 주인공들의 역량이 아니라 외부에서 갑자기 선물처럼 해결책을 뚝 떨어트리는 방식으로 문제를 풀어나갑니다. 자포자기해서 선거를 포기하려 했던 주인공들이 갑자기 그 느닷없는(?) 선물에 용기를 얻고, 다시 시장 선거에 임하기도 하는데요. 퀸메이커의 능력을 기대하는 시청자 입장에서는 아쉬운 부분이죠.

퀸메이커의 마지막 장면은 다음 시진을 예고하는 듯한 새 인물의 등장으로 마무리 되는데요. 몇가지 아쉬운 점이 보완된다면, 저는 시즌2도 기꺼운 마음으로 볼 의향이 있습니다. 이런 시도 자체가 의미가 있는 경우도 있으니까요. 부디 더 재미있는 내용으로, 장수하는 드라마를 만들어주세요, 여기 기다리는 시청자가 있습니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남혜현 기자> smilla@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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