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나는 코인일까, 증권일까…’증권성’ 그것이 문제로다
지난 3월 권도형 테라폼랩스 대표가 몬테네그로에서 체포됐다. 우리 정부를 비롯해 테라폼랩스 본사가 있던 싱가포르와 미국 등에서 권 대표의 송환을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주목할 점은 권 대표가 받고 있는 혐의가 각 나라마다 다르다는 점이다. 가상자산을 바라보는 관점이나 규제가 각 나라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한국 검찰은 테라∙루나를 자본시장법상 투자계약증권에 해당한다고 보고, 증권성 입증과 관련 조사에 주력하고 있다. 투자계약증권이란, 말 그대로 특정 사업에 자금을 투자하고, 그 사업의 결과에 따라 이익(또는 손해)를 나눠받는 계약을 만한다. 이는 검찰이 루나를 ‘증권’으로 간주한다는 의미다.
피해자들은 테라폼랩스와 권 대표 등에게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유사수신행위의 규제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고소했지만 검찰은 자본시장법 위반으로 혐의를 바꿨다. 루나가 ‘증권’에 해당되는 데도 불구하고 증권신고서를 제출하지 않는 등 자본시장법을 위반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검찰의 입장처럼 루나가 ‘증권’으로 평가된다면 문제가 좀 복잡해진다. 증권은 자본시장법에 따라 엄격하게 통제를 받으며, 투자자 보호를 위해 증권거래소를 통해서만 거래돼야 한다. 그동안 대부분의 가상자산은 자본시장법의 통제에서 벗어나 있었다. 이 때문에 가상자산은 증권거래소가 아닌 가상자산거래소에서 사고 파는 것이 가능했다.
즉 루나와 유사한 가상자산이 ‘증권’이라면 증권거래소가 아닌 가상자산거래소에서 거래돼 온 행위는 불법이며, 당장 가상자산거래소에서 상장폐지 돼야 한다. 이는 시장에 엄청난 혼란을 일으킬 수 있다.
이에 대해 금융위원회의 입장은 아직 불명확하다. 금융위는 검찰의 사실조회 요청에 루나의 증권성 여부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내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이런 가상자산을 증권이라고 판단하는 것이 투자자의 피해를 키우고 시장을 대혼란으로 이끌 수 있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루나가 실제로 증권성이 있다고 판단될지는 불명확하다. 지난해 10월 법원은 테라폼랩스 공동창업자인 신현성 차이페이홀딩스컴퍼니 대표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하며 “루나 코인이 자본시장법상 투자계약증권인지 여부 등에 대해 법리상 다툼의 여지가 있어 보인다”고 밝힌 바 있다.
반면 미국에서는 테라∙루나 사태를 ‘가상자산을 이용한 사기 행각’으로 인정했다. 미 증권거래위원회(SEC)에 따르면 가상자산의 경우에도 상품거래법상의 불공정거래 규정이 존재해, 증권성 적용을 확대 해석하지 않더라도 관련 행각에 대한 입증이 용이하다.
블룸버그 등의 외신 또한 “테라폼랩스와 권 씨는 무기명증권을 제공 판매해 개인과 기관 투자자들에게 최소 400억달러(약 51조7천억원) 상당의 사기행각을 벌인 혐의를 받고 있다”며 “코인의 안정성 등과 관련해 잘못된 정보를 제공했다”고 보도했다.
이같은 차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국내에 가상자산에 대한 법적규제가 미비하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한국검찰이 권 대표에 대해 다소 무리하게 자본시장법을 적용한 것도 가상자산에 대한 법적 규제가 없기 때문이다.
류혁선 카이스트 교수는 “자본시장법은 증권을 포괄적으로 규정해 투자자를 최대한 보호하고자 하지만, 가상자산 투자자 보호는 아니”라며 “증권성 여부가 문제가 되는 것은 가상자산에 대한 투자자 보호 미비에 기인한다”고 가상자산 투자자 보호체계를 빠르게 마련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금융위는 지난해 9월 증권성을 판단하기 위한 가이드라인 초안을 발표한 바 있다.
구체적으로 ▲일정기간 경과 후 투자금을 상환받을 수 있는 경우 ▲사업 운영에 따른 손익을 배분받을 수 있는 경우 ▲실물자산, 금융상품등에 대한 투자를 통해 조각투자대상의 가치상승에 따른 투자 수익을 분배받을 수 있는 경우 ▲기초자산의 가격변동에 따라 달라지는 회수금액을 지급받는 경우 ▲다른 증권에 대한 계약상 권리나 지분 관계를 가지는 경우 ▲투자자의 수익에 사업자의 전문성이나 사업활동이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경우를 기준으로 판단된다. 제시된 모든 조건에 다 부합해야 증권성을 띤다고 할 수 있다.
루나가 투자계약증권이라고 판단이 되면 루나와 비슷한 형태의 가상자산이 모두 자본시장법의 규제를 받을 가능성이 크다. 정부가 지난해 9월 발표한 ‘증권형 토큰 가이드라인 TF’ 초안에 따르면, 가상자산 거래소에 상장된 코인 중 증권성이 있다고 판정될 경우 자본시장법에 의해 한국거래소로 이전된다. 일각에서는 가상자산 거래소에 상장된 대다수의 코인이 상장폐지될 것이라고 분석한다.
전문가들은 디지털자산기본법의 조속한 제정을 통해 규제 공백을 빠르게 해소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지난 3월 국회 간담회에서 김갑래 자본시장연구원은 “코인 자산에 대한 시장의 예측 가능성을 제고하기 위해서라도 증권성 판단 절차를 구체화할 필요가 있다”고 경고했다.
글.바이라인네트워크
<박지윤 기자> nuyijkrap@byline.netwo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