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위적 감산 나서는 삼성전자, 한 발 물러선 배경은?

“인위적 감산은 없다”던 삼성전자가 입장을 바꿨습니다. 라인 재배치를 통한 자연적 감산 외에도 메모리 생산량을 의미 있게 줄이기로 했습니다. 물론 장기적으로 인프라 투자는 지속하겠지만, 감산 의지 자체는 명확합니다.

메모리 시장에는 늘 사이클이라는 것이 존재합니다. 언제는 메모리 수요가 늘어나 호황을 맞았다가, 어느 순간 재고가 수요보다 많은 경우도 나옵니다. 메모리의 경우에는 장기적으로 그 수요가 늘어날 것이라는 판단 하에 투자를 해야 하지만, 그렇다고 수요가 단시간에 뚝딱 하고 늘어난 생산량(CAPA)에 맞춰 증가하는 것은 아니거든요.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업계가 그렇겠지만, 기가 막히게 수요를 딱딱 맞추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특히나 거시경제 리스크가 상존할 때에는 수요를 종잡을 수 없어 업황이 냉탕과 온탕을 오가기도 합니다. 지금은 스마트폰, PC 등 IT 수요 감소로 불황기죠.

과거에도 메모리 시장이 하락세를 보였던 전례가 많았습니다. 2001년에도 한 차례 있었고요, 세계적으로 금융 위기가 불어 닥쳤던 2008년에도 반도체 사이클은 하락세를 탔죠. 2011년 유럽 재정위기 상황, 2016년 중국 경기 악화, 2018년 미중 갈등 심화 등 글로벌 불확실성이 발생했던 시점에도 메모리 시장은 단번에 불황기를 맞았습니다.

메모리 불황은 국내 반도체 산업을 이끄는 삼성전자, SK하이닉스에 큰 타격을 줍니다. 해당 기업의 캐시카우 역할은 메모리 사업부가 담당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게다가 D램 등 메모리는 업황에 따라 가격이 크게 달라집니다. 적게는 5~8% 정도, 많으면 2~30%대까지도 그 가격이 오르내리거든요. 호황일 때에는 하늘 높은 줄 모르지만, 불황일 때에는 어디가 바닥일 지 우려해야 하는 겁니다.

삼성전자는 아무리 불황기라 하더라도 1996년 이후로 별도의 인위적 감산 조치를 취하지 않았습니다. 아, 물론 생산라인을 효율적으로 운영하기 위해 장비를 재배치하면서 자연적 감산은 꾀했습니다. 장비를 재배치하려면 이를 움직여야 하는데, 이 때에는 생산을 어쩔 수 없이 못하니까요. 하지만 돌아가고 있는 생산라인에 웨이퍼를 일부러 적게 투입해 생산량을 줄이는, ‘인위적 감산’ 방식을 단행하지는 않았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언젠가 불황이 끝나고 추후 호황사이클이 돌아왔을 때에는 메모리를 많이 보유하고 있는 기업이 이득이거든요. 앞서 언급한 것처럼 반도체 시장에는 호황과 불황이 번갈아 나타나니, 조금만 버티면 다시 호황 시기를 누릴 수 있는 겁니다. 호황일 때에는 메모리 가격도 함께 오르게 되는데요, 이 때에는 팔 물건을 많이 보유하고 있는 기업이 더 많이, 더 비싸게 팔 수 있게 됩니다. 게다가 거시경제 영향으로 반도체 업황이 빠르게 오르내리는 상황에서는 언제 물이 들어올 지 모르니, 일단 노를 젓고 있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지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이례적으로 인위적 감산에 나섰습니다. 감산 없이 도저히 버티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번 잠정 실적 발표에 따르면, 삼성전자의 올해 1분기 영업이익은 전분기 대비 86% 감소했습니다. 직전 분기 영업이익이 4조3100억원이었는데 여기에서 6000억원 수준까지 떨어졌으니, 겨우 적자를 면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실적이 우상향 곡선을 그리지 않으면 죽는다”는 기조의 삼성전자 입장에서 적자는 도저히 두고 볼 수 없었겠죠.

시장에서는 삼성전자의 감산을 반기는 분위기입니다. 삼성전자가 감산 소식을 전하자 주가가 전거래일 대비 4.33% 올랐고, 10일에도 주가는 전거래일 대비 1.08% 오른 6만5700원을 기록하며 장마감했습니다. 감산을 단행하면 그만큼 시장에 만들어지는 메모리 재고가 줄어드니 가격은 오를 것이고, 이렇게 되면 기업은 영업이익을 보존할 수 있겠죠. 일종의 생존 전략 같은 겁니다. 

삼성전자는 현재 인프라 투자 기조를 유지하겠다고 밝혔는데요, 이를 고려하면 자금 상황을 신경쓰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삼성전자는 현재 평택에서 5공장을 건설하고 있고, 용인시에도 2042년까지 300조원을 투자해 클러스터를 조성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미국 텍사스 테일러 공장 투자도 함께 단행하고 있죠. 돈 나갈 구석이 많은 겁니다. 결국 삼성전자에게는 수익성을 확보해 자금을 확보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감산을 단행하면 영업이익을 보존할 수 있으니, 결국 삼성전자 입장에서는 필요한 조치였던 셈입니다.

다만 감산에 접어든 이상 이전처럼 ‘업황 회복 이후 입을 수혜’를 기대하기에는 쉽지 않을 전망입니다. 과거에는 타 기업이 감산하는 동안 삼성전자는 버텼기 때문에 최종 승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하락사이클을 잘 버티면서 삼성전자는 장기적으로 더 많은 이득을 볼 수 있지만, 이번에는 다른 기업과 함께 감산에 돌입했죠. 결국 이번 불황이 지나고 난 이후에는 모든 메모리 기업이 비슷한 상황에 놓여 있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과연 이 불황이 지나간 뒤 메모리 업계는 어떤 모습으로 남아 있을 지, 지켜보자구요.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배유미 기자>youme@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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