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임원 중심 관료화” 엔씨소프트 노조 ‘우주정복’ 출범

엔씨소프트(엔씨) 노동조합이 출범했다. 10일 전국화학섬유식품산업노동조합(화섬식품노조) 엔씨소프트지회(지회장 송가람)가 출범 선언문을 냈다. 엔씨지회 별칭은 ‘우주정복’이다. 엔씨는 공식 블로그명을 우주정복으로 운영한 바 있다.

지회는 “엔씨소프트의 핵심 가치인 도전정신, 열정, 진정성이 ‘가족경영에 기반을 둔 수직적, 관료적 문화’로 훼손됐다”며 임원중심의 관료적 조직문화와 만연한 불법 연장근로, 권고사직과 대기발령 등의 문제를 꼬집었다.

지회는 사측에 ▲고용 안정 ▲수평적인 조직문화 ▲투명한 평가 및 보상체계 등을 요구했다. 손가람 지회장은 “우리의 권리를 보호하고, 목소리를 회사에 잘 전달하고자 노조를 설립하게 되었다”며 “많은 분이 믿음을 가지고 계속해서 응원해 주신만큼 지회와 함께 엔씨를 바꿔나가겠다”고 밝혔다.

이날 화섬식품노조 수도권지부 IT위원회는 지지를 표명했다. “노동조합의 시작은 함께 목소리를 내는 것”이라며 엔씨소프트 직원들에게 노동조합에 함께할 것을 부탁했다. IT위원회는 네이버지회, 카카오지회, 넥슨지회, 스마일게이트지회, 웹젠지회, 한글과컴퓨터지회, 포스코ICT지회, LIG넥스원지회 등이 함께 하고 있다.

화섬식품노조는 “엔씨소프트지회의 출범이 장시간 노동시간과 권고사직 압박에 시달리는 게임업계의 노동환경을 개선해 갈 견인차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

엔씨소프트는 업력 27년차의 게임개발사로, PC온라인과 모바일 게임 소프트웨어 개발 서비스하고 있다. 대표작으로는 리니지, 리니지2, 길드워 시리즈, 아이온, 블레이드앤소울 등이 있으며, 미국과 일본 등 해외로도 진출했다.

엔씨 노조 ‘가족경영’ 거론

엔씨 가족경영은 주주총회에서 자주 거론되는 얘기다. 김택진 대표이사와 부인 윤송이 사장(엔씨웨스트홀딩스 대표), 친동생인 김택헌 수석부사장이 그 대상이다. 주요 게임 기업에서 창업자이자 대표의 가족이 핵심 임원에 오른 곳은 엔씨가 유일하다.

주주총회에선 엔씨웨스트 실적 부진이 여러 번 지적받았다. 윤 사장이 주로 도마 위에 올랐다. 엔씨웨스트는 2015년 윤송이 사장이 부임한 이후 계속 적자를 내다가 완전자본잠식에 빠진 바 있다. 결국 구조조정을 진행했다.

이런 가운데 지난 3월 엔씨는 김택헌 수석부사장을 신설한 엔씨소프트아메리카의 최고경영자로 임명했다. 김 수석부사장은 클렙 대표를 지내면서 아이돌 팬덤 플랫폼 ‘엔씨 유니버스’를 앞세운 엔터테인먼트 사업을 추진했으나, 부진을 이어가다 결국 SM엔터테인먼트에 매각한 바 있다. 이를 두고 위정현 한국게임학회장은 지난 3월 주주총회에 끝난 뒤 미디어와 만나 “가족경영이 고착화되다 보면 책임을 물을 수 없는 구조가 된다. 지금의 방식은 지속가능한 경영은 어렵다”고 지적했다.

임금 격차 1등

엔씨 노조는 설립 선언문에서 임원과 직원 간 임금 격차를 짚었다. 사실상 김택진 대표를 겨냥했다. 엔씨 사업보고서(작년 기준)에 따르면 지난해 김택진 대표 보수는 123억8100만원이다. 이 중 상여가 100억3100만원이다. 전년 184억1400만원 보수 대비해선 줄었다. 같은 기간 작년 엔씨 직원 1인 평균급여액은 1억1400만원이다.

지난 28일 기업분석연구소 리더스인덱스가 낸 2022년 사업보고서 분석 결과를 보면, 엔씨소프트가 매출 상위 500대 기업 중에 대표와 직원 간 평균 연봉 격차 1위를 기록했다. 108배 격차다. 그다음 보수 격차가 큰 곳이 CJ제일제당으로 96배 차이였다. 노조 측은 “2021년 낮은 자세로 사우들의 걱정과 제안을 듣겠다던 무거운 책임감은 진정한 변화를 이끌어내지 못했다”며 폐쇄적 평가와 보상 제도 등을 언급했다.

‘아인하사드’로 소모…불법적 연장근로 도마 위에

엔씨 노조는 “사우들의 헌신은 런칭과 업데이트를 볼모로 불법적인 연장근로에 동원되며 임원 승진과 보수를 위한 ‘아인하사드’로 소모되고 말았다”고 설립 선언문에 밝혔다.

아인하사드는 리니지 시리즈의 아이템과 경험치 획득률 등에 추가 혜택을 주는 기본 시스템이다. 보통 게이머들이 아인하사드를 소모하면서 사냥과 전투 등에 참여하기 때문에, 사실상 필수 재화다. 노조 얘기는 직원들이 임원진의 보수를 늘리는 아인하사드로 소모되고 있다는 의미다.

사실 불법적 연장근로의 경우 엔씨만의 문제는 아니다. 근로시간 대비 업무량이 과다하다는 주장으로 IT 기업 전반으로 확장해서 볼 수 있는 문제다.

보통 게임 기업은 프로젝트별로 움직인다. 프로젝트 명운에 따라 권고사직과 대기발령이 결정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각 기업별로 부진한 프로젝트 드롭(취소) 이후 관련 인원들이 새 프로젝트에 유입될 수 있도록 완충 제도를 마련하고 있으나, 이 과정에서 일부 직원들의 불만이 제기되곤 한다.

엔씨 노조 측은 “마치 프로젝트에 고용된 ‘한시적 정규직’ 같다”며 “반면 불투명한 평가는 임원들의 끝없는 임기를 보장하며 진정한 변화와 성장을 어렵게 만든다”라고 노조원 가입을 독려했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이대호 기자>ldhdd@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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