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칩스법 의존해서라도”…반도체 불황에도 투자 놓칠 수 없는 이유

미국, 중국, 대만, 우리나라까지 반도체 지원 정책을 마련하면서 자국 내 생산시설 유치 경쟁을 이어가고 있다. 세계 각국은 자국 내 반도체 시설을 건설하는 기업을 대상으로 세액공제 혜택 등 보조금을 지급하는 칩스법(CHIPS Acts)을 제정하고, 반도체 생산 역량 끌어모으기에 나선 상황이다. 다수의 기업이 반도체 보조금 정책에 맞춰 세계 각국에 생산시설을 짓는 등 추가 투자에 힘을 기울인다.

주요 반도체 기업은 법안에 맞춰 생산라인 투자 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SK하이닉스는 지난달 개최한 주주총회 현장에서 미국 패키징 공장 투자를 계획대로 단행하겠다고 밝혔다. 삼성전자는 현재 미국 텍사스 지역에 반도체 공장을 건설하고 있으며, 국내에서는 평택에도 지속해서 생산라인을 늘리는 중이다.

한 삼성전자 내부 관계자는 “현재 화성 공장에서 평택으로 인력을 다수 배치하려는 움직임이 보인다”며 “생산라인에 바로 투입할 수 있는 인력을 중심으로 평택 신공장으로 옮기려고 하는 듯 보인다”고 말했다. 그만큼 삼성전자가 반도체 생산 역량을 강화하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현재 반도체 시장은 불황이다. 메모리의 경우에는 과잉 공급에 접어들어 주요 메모리 업체가 감산에 나섰다. 이는 시스템반도체를 만드는 곳도 마찬가지다. 지난 1월 초 팻 겔싱어(Pat Gelsinger) 인텔 CEO는 지난해 4분기 저조한 실적과 관련해 “업계에서 본 적이 없는 대규모의 재고 조정이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고 우려를 표했다.

반도체 장비업계는 상황이 더욱 좋지 않다. 반도체 시장 상황이 좋지 않으니 공장 가동률이 줄어들고 있기 때문에 기업 입장에서는 장비를 추가로 들일 필요가 없다. 결국 장비업체는 반도체 재고 증가로 장비를 판매하지 못하면서 불황 여파를 그대로 받았다.

한 채용업계 관계자는 “램리서치를 비롯한 일부 대형 장비업체는 생산라인 가동률 감소로 실적이 좋지 않아 직원 해고도 진행하는 중”이라며 “그만큼 업황이 좋지 않다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불황기에 접어들면서 영업이익도 함께 하락하고 있다. 다시 말해, 계획한 만큼 자금이 많이 쌓이지 않고 있다. 하지만 생산라인 증설에는 막대한 비용이 든다. 게다가 세계적인 인플레이션 여파로 반도체 투자에 드는 비용은 더 크게 증가하는 상황이다. 이와 관련해 로이터통신은 “삼성전자의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시에 건설 중인 반도체 공장 공사비가 예상보다 80억달러(약 10조5000억원) 가량 더 투입될 전망”이라며 “미국 내 인플레이션으로 자재 비용이 상승한 것이 원인“이라고 보도한 바 있다.

이렇게 반도체 불황에도 각 기업이 무리해서 투자를 단행하는 이유는 당장 불황이더라도 현재 투자해 놓지 않으면 추후 다가올 반도체 호황에 대응할 수 없다는 각 기업의 판단 때문이다. 통상 반도체 생산라인은 첫 삽을 뜨기 시작한 시점부터 완공돼 양산을 시작하기까지는 약 2~3년이 걸린다. 바로 투자해서 바로 성과를 볼 수 있는 산업이 아니라는 의미다.

장기적으로 반도체 수요는 늘어날 수밖에 없다. IT 기술이 발전하면 그만큼 기기에 탑재되는 반도체 수량도 늘어나기 때문이다. 단적인 예로 자동차를 꼽을 수 있다. 차량에 후방 카메라, 열선시트 등 기능을 추가하기 위해서는 이를 구동하기 위한 반도체가 필요하다. 여기에 자율주행 시대로 접어들면 지금보다 더 많은 센서와 프로세서 수요가 생긴다. 결국 기술의 발전으로 필요한 반도체 수는 큰 폭으로 늘어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각 기업은 불황 시기에도 투자를 놓칠 수 없다.

주요 반도체 업체가 정부 보조금에 의해 투자를 결정하는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주요 반도체 기업은 장기 호황에 대응하기 위해 보조금 지원을 받아서라도 생산 설비 투자를 이어갈 전망이다.

익명을 요청한 글로벌 반도체 시장 전문가는 “글로벌 기업을 살펴보면 칩스법 혜택이 주어지면 그 돈으로 투자하려는 움직임을 보인다”며 “독소조항이 껴 있지만 그럼에도 보조금 정책에 기댈 수밖에 없는 이유”라고 말했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배유미 기자>youme@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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