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법지대’ 가상자산 시장… 입법 부재가 강력범죄로 이어졌다
지난 5일 서울 강남 한복판에서 납치∙살인 사건이 일어났다. 그리고 그 가운데에는 ‘퓨리에버(PURE)’라는 코인이 있다. 퓨리에버는 지난 2020년 코인원에 단독 상장했다. 사건 피의자인 이경우(35)와 피해자 A씨가 투자한 것으로 알려진 코인이 퓨리에버다.
피해자 A 씨는 퓨리에버의 홍보 업무를 담당한 것으로 알려진다. 상장 이후 코인 가격이 폭락하는 등의 상황을 겪자 A 씨는 사건의 배후라고 알려진 유 씨 부부와 책임 공방을 벌여온 것으로 전해졌다. 퓨리에버 코인은 상장 직후 1만354원까지 가격이 급등하다 한달 뒤 1800원까지 하락했다. 지난 2021년부터는 100원 미만으로 횡보했다. 6일 오후 2시 46분 코인원 기준 퓨리에버는 전날 대비 1.08% 오른 6.498원을 기록 중이다.
사건이 커지자 이 코인을 단독 상장한 코인원도 가만히 있을 수 없게 됐다. 6일 코인원은 퓨리에버의 출금을 일시 중단한다고 밝히며 “코인원에서는 퓨리에버에 대한 의혹과 사실 관계를 확인하는 등 내부적으로 면밀하게 검토 중에 있다”고 말했다.
테라-루나 사태, FTX 파산 등과 같은 어마어마한 금전적 피해에 이어 이제는 납치∙살인사건까지 일어났다. 그 전부터 코인 시장에는 가상자산 거래소 직원을 사칭하는 등의 ‘상장 브로커’가 판을 쳤으며 시세 조작, 미공시 유통 등의 크고 작은 논란이 하루가 멀다하고 일어났다. 이 사건은 자본시장 내 무법지대가 어떤 끔찍한 결과를 이끌어낼 수 있는지 보여주는 사례다.
사건의 원인, 퓨리에버
퓨리에버는 블록체인 기반 친환경 제품과 플랫폼을 운영하는 서비스로, 유니네트워크가 운영을 맡고 있다. 백서에 따르면 퓨리에버 코인은 생태계 형성에 기여에 대한 보상으로 지급된다. 위치 기반 데이터, 실시간 대기질 데이터 등과 같은 자사 서비스에 행동 데이터를 전송하는 것을 동의하면 보상이 주어지는 형태다.
공개된 의도와는 달리 퓨리에버는 상장 과정부터 잡음이 있었다. 상장 과정에서 코인원 임직원에게 뒷돈을 제공했다는 의혹이다. 실제로 지난 3월 서울남부지검찰은 코인 상장 브로커 고 씨를 구속 기소한 바 있다.
고 씨는 2019년 12월부터 2021년 5월까지 ‘피카’를 포함한 총 29개 코인에 대한 상장대가로 가상자산 상장 청탁을 받은 코인원 전 상장 팀 직원 A씨에게 뒷돈을 건넨 것으로 알려진다. 그리고 그 29개 코인 중 하나가 퓨리에버 코인인 것으로 보인다. A씨는 지난 2020년부터 일부 가상자산 상장과 관련해 수억 원 상당의 금품을 받은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다.
시세 조작 논란에도 이 코인은 이름을 올렸다. 퓨리에버 코인은 한달 만에 1만354원까지 급등하고 한달 만에 1800원으로 떨어진 바 있는데, 일각에서는 이를 ‘설거지’로 불리는 시세조종을 했다고 의심했다. 설거지는 코인을 미리 매수해 가격을 높은 뒤, 최고점일 때 모두 팔아 이익을 챙기는 전형적인 시세조종 수법을 말한다.
뿐만 아니라 지난 3월 코인원에 의해 유의종목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당시 거래소에 따르면 퓨리에버는 거래지원 유지심사 항목 중 하나인 프로젝트 외부 평가 리포트를 정해진 기한 내에 제출하지 않았고, 이에 따라 정보 제공과 관련된 문제가 발생했다.
무법지대의 위험성
해당 사건은 무법지대가 어떤 무시무시한 일을 이끌어낼 수 있는지 보여주는 사례와도 같다. 황석진 동국대 교수는 “투자자 보호에 대한 시세 조종과 시장 교란 행위, 불공정행위 자체를 근절하는 근거 자체가 없는 등의 법률적인 부재가 강력 범죄까지 이어졌다”며 “권도형 테라폼랩스 대표 체포부터 이번 사태까지 시장에서 불공정 행위를 막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지 강조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법 시행 전까지의 규제 공백 기간 동안 자율감시체계를 더욱 강화해야 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황 교수는 “현재 원화마켓 5대 거래소가 모인 ‘닥사’ 협의체를 통해 자율 규제 기구 역할을 하고 있지만 이들이 만든 가이드라인 및 규칙 또한 의무 조항이 없고 강제성이 없다”고 말했다.
가상자산 관련 법안 논의는 첫 법안이 발의된 지 약 2년 만에 이제야 논의가 시작됐다. 국회 정무위원회에 따르면 지난달 28일 열린 법안심사 제1소위원회에서 가상자산 관련 법안 18개가 안건으로 다뤄졌으며, 여야 모두 투자자 보호, 불공정거래 규제와 관련해 합의를 봤다. 의결은 이달 법안 소위에서 논의될 예정이다. 현재 국회에는 가상자산 관련 제정안 11개와 전자금융거래법 개정안 4개, 특정금융정보법 개정안 2개, 금융위설치법 개정안 1개 등 총 18개의 가상자산 관련 법안이 계류돼 있다.
그러나 가상자산과 관련한 입법은 이용자 보호・투자자 보호, 거래소 영업행위 및 코인 상장∙발행 등으로 나뉘어 단계적으로 진행될 예정이라, 시장 전반을 아우르는 법안이 시행되는 건 오랜 기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윤창현 의원은 법안심사 회의에서 “이용자 보호가 시급한 상황 속에서 모든 법안을 전부 논의하기에는 시간이 촉박하다”며 “먼저 가상자산 개념, 이용자 자산보호, 불공정 거래에 집중한 기본법부터 논의하고 2단계에서 영업행위 및 가상자산 상장, 발행에 대한 법을 논의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가상자산 법안의 통과에는 긴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한 업계 관계자는 “올해 내에 1단계 법안인 기본법 조차 통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며 “내년에도 총선이 있어 가상자산 시장 내에서는 규제 공백이 꽤 길게 이어질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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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윤 기자> nuyijkrap@byline.netwo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