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호의 시선] 챗GPT가 쏘아올린 공, 어떻게 받아야 할까

챗GPT가 열풍을 이어가며 대중의 친구나 마찬가지가 된 가운데 너무나 빠른 기술 개발 경쟁에 대한 우려가 나오고 있습니다. 인공지능(AI) 기술의 혁신 수준을 오롯이 보여주는 사례가 됐지만, 그 혁신의 온도가 너무 뜨거워 부작용도 만만치 않습니다.

챗GPT가 붙지 않으면 시대에 뒤떨어지는 취급을 받는 현재의 시장 분위기. 아직 검증되지 않은 윤리성과 정보유출 우려 등 혼란도 적지 않은 모습인데요, 몇 가지 쟁점을 짚어봤습니다.

커지는 기술 종속 우려…“이대로면 AI식민지 된다”

현재 챗GPT를 서비스에 붙이려면 개발사 오픈AI에 사용료를 내야 합니다. 응용프로그래밍인터페이스(API)를 쓰는 데 GPT-4는 1000 프롬프트 토큰 당 0.03달러(약 39.3원)을 내야 하죠. 얼핏 적은 비용으로 보이지만, 사용자의 프롬프트 입력이 늘어날수록 부담은 커집니다.

실제로 무료 챗봇이나 텍스트 생성 서비스의 경우 질문이나 글자 수를 제한하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수익이 나지 않는데도 챗GPT가 없으면 뒤떨어진 서비스로 보이니 일종의 출혈 경쟁에 돌입하는 게 현재의 분위기입니다. 한 AI 챗봇 스타트업 관계자는 “지금 우리나라 스타트업이 ‘AI 기술 식민지’라는 말이 돈다”고 전합니다. 비단 이 회사만의 일은 아니겠죠.

하지만 지금 스타트업들에게는 챗GPT 외에 사실상 눈에 띄는 대안이 없는 것도 사실입니다. 네이버의 ‘서치GPT’는 상반기 출시 예정이라고만 알려졌을 뿐, 성능에 대한 검증이 필요합니다. 또 챗GPT라는 이름값이 주는 무게감이 있습니다. 큰 기업도 울며 겨자먹기로 오픈AI의 API를 사용할 수밖에 없는 분위기입니다. 한컴이 정말 챗GPT를 들이기로 했을 때 정말로 기쁜 마음이 들었을까요?

결국 뒤에서 웃는 건 오픈AI입니다. 챗GPT 열풍이 뜨거우면 뜨거울수록 기술 종속은 심해집니다. 오픈AI가 지금의 토큰 가격을 인상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이 때는 대안을 마련하지 못한 많은 스타트업이 심할 경우 도산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죠. 기업들이 “하루 빨리 자체 기술을 만들어야 한다”고 입을 모으지만, 사실 초거대 언어모델을 만들 수 있는 여력이 있는 국내 IT 기업은 네이버나 카카오 정도라는 게 중론입니다.

빨라도 너무 빨라

연일 쏟아져 나오는 생성AI기술과 이를 붙인 솔루션 피로도도 높아졌습니다. 아니 피로도라기 보다는 우려가 더 맞는 말이겠네요. 미국 비영리단체인 ‘미래생명연구소(Future of Life Institute, FLI)’가 지난달 말 공개한 ‘거대 AI 실험을 중지하자’는 제목의 공개 서한에는 1000여명이 이름을 올렸습니다. 주목할 건 서한에 담긴 이름들입니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를 포함해 애플의 공동 창업자 스티브 워즈니악 등 IT 업계에서 잔뼈가 굵은 이들이 이름을 올렸습니다.

물론 모든 AI개발을 멈추자는 건 아닙니다. 6개월 가량 데이터 학습 훈련을 쉬자는 건데, 속도가 생명인 기술 개발 중단을 요청한 건 분명 이례적인 일입니다. 두 가지로 생각해볼수 있습니다. 하나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자들의 ‘잠시 휴전’ 요청, 또 하나는 너무 깊숙이 삶에 파고들어 생길 수 있는 위험 초래에 대한 진심 어린 조언일 겁니다.

업계에서는 전자에 무게를 싣습니다. 오픈AI의 샘 알트만 CEO는 당연히(?) 서한에 이름을 올리지 않았습니다. 이미 성공을 맛봤고, 기술력의 최전선에 있는 그의 입장에서는 되레 서한이 눈엣가시일 겁니다.

떠난 지 오래지만 마이크로소프트의 아버지나 마찬가지인 빌 게이츠의 말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달 초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서 “AI 개발 중단이 문제를 해결하진 못한다”고 말했습니다.

오픈AI에 대규모 투자를 진행했던 마이크로소프트는 오피스 소프트웨어와 보안 제품, 검색 엔진, 클라우드 서비스에 챗GPT를 붙인 서비스로 “물 들어왔을 때 노 젓는다”를 몸소 실천하고 있습니다. 나가려는 자와 멈추려는 이들의 힘겨루기는 현재진행형입니다.

규제 확산되나…영국 “불안 간과해서는 안 돼”

열정의 나라 이탈리아도 AI 앞에서는 냉정한 모습입니다. 챗GPT 열풍에 냉기를 덮어 씌웠습니다. 최근 이탈리아 데이터보호청은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챗GPT 접속을 막고, 오픈AI가 유럽연합(EU)의 개인정보보호규정(GDPR)을 준수했는지 조사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뉴욕타임즈에 따르면 중국이나 북한 등을 제외하고 개인정보 보호를 이유로 챗GPT 접속을 막은 건 이탈리아가 처음입니다.

우려가 현실이 된 상황이 나온 것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오픈AI는 지난달 일부 이용자의 프로그램 사용 기록이 다른 이들에게 노출되는 오류가 발생했다고 밝혔습니다. 오류 해결 공지가 나오긴 했지만 언제든지 사고의 가능성은 도사리고 있습니다.

챗GPT에 하나 둘씩 구멍이 발견되자 규제 움직임은 세계로 확산하고 있습니다. 영국과 프랑스도 규제를 논의 중입니다. 프랑스의 데이터 규제 당국인 정보자유국가위원회(CNIL)는 최근 챗GPT가 개인정보를 무단으로 수집했다는 내용의 진정서 두 건을 접수했다고 발표했습니다.

영국 정부는 백서로 AI 산업에 대한 규제 가이드라인을 제시했습니다. 백서에는 “AI 기술의 이점을 활용해야 하지만 이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새로운 위험이나 기술의 복잡성이 더 많은 대중에 초래할 수 있는 불안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문구가 등장합니다. 아직은 몇몇 나라에 불과하지만 문제가 더 터져나올 경우 규제 움직임은 더 심화할 수 있습니다.

오픈AI가 스스로 정비에 나선 것도 많은 것을 시사합니다. 오픈AI는 5일(현지시간) 블로그 공지를 통해 챗GPT를 18세 이상만 이용하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한다고 밝혔습니다. 부모의 허락을 받아도 13세 이상만 쓰는 옵션을 검토 중입니다. 오픈AI는 “안전에 대한 노력의 중요한 초점 중 하나는 어린이를 보호하는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챗GPT의 유해성을 우려하는 이들에 대한 응답이자, 간접적으로나마 어린이에게 해로운 정보를 줄 수 있다는 걸 자인한 셈입니다.

우리나라는…

우려를 앞에 둔 세계의 분위기와는 달리 우리나라는 AI기술 적용에 엑셀을 밟고 있습니다. 국회 과학기술방송통신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는 7개 AI 관련 법안을 병합 심사한 ‘인공지능산업 육성 및 신뢰 확보에 관한 법률안’을 통과시켰습니다. 개발과 적용을 우선 허용하고 이후 규제한다는 방향이 골자입니다.

정부도 열풍에 편승한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앞서 2월에 과기정통부가 낸 보도자료의 제목은 ‘과기정통부, 챗지피티 교육과 연구모임으로 정부의 업무 혁신 선도’였습니다. 대통령이 1월 행정안전부 등의 업무보고를 받으며 공무원들의 챗GPT 활용을 권고한 뒤의 일입니다. 이 자료에 “본 보도자료의 제목은 챗지피티를 통해 작성하였음”이라는 언급이 붙은 게 우연은 아니겠죠.

하지만 기업들의 온도감은 다릅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포스코 등 대기업을 중심으로 챗GPT 사용을 금지하거나 활용 가이드라인을 지키도록 하는 등 안전장치를 거는 중입니다. 정부는 많이 쓰자고 하고, 기업은 몸을 사리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몇 가지 쟁점만 들여다 봐도 챗GPT는 그 열풍의 크기 만큼이나 많은 과제를 안기는 모습입니다. 챗GPT가 쏘아올린 공을 어떤 식으로 받아내야 할까요.

모바일 시대의 도래 이후 최대의 혁신이라는 최근의 생성AI 기술 발전. 그 가능성의 한계를 챗GPT가 넓힌 것도 사실입니다. AI가 만드는 편리함은 무시할 수 없습니다. 기술 발전이 IT 업계 전반의 속도를 높일 수도 있습니다.

단, 중요한 건 지금부터입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이달 중 초거대 AI 산업 정책을 발표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혁신을 제대로 활용하기 위해 정부가 내놓을 방향타는 어떤 모습일까요. 기대와 걱정이 교차하는 지금 AI를 정말 착한 혁신으로 활용하는 ‘묘수’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이진호 기자>jhlee26@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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