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VB 파산에 관심쏠린 CBDC, 전통금융 대체 가능성은?
실리콘밸리은행(SVB), 시그니처은행 등 글로벌 은행들의 줄파산으로 CBDC(중앙은행 디지털화폐)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전통금융 시장의 파산 원인인 뱅크런(대규모 자금유출)을 CBDC가 막을 수 있다는 기대감과 CBDC의 재무건전성에 대해 신뢰가 쌓이기 시작한 것이다.
CBDC는 디지털화된 형태로 발행되는 중앙은행 현금으로, 현금없는 경제가 도래할 것을 대비해 공신력 있는 중앙은행이 발행화폐를 보유할 수 있도록 하는 취지에서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 디지털 전환의 흐름에 따르면서 관련 화폐를 국가가 관리∙감독할 수 있다.
CBDC에 대한 관심이 급부상한 것은 지난 10일(이하 현지시각) 미국 실리콘밸리 스타트업의 대표 거래 은행인 SVB가 하룻밤 사이에 붕괴되면서다. 시장에서는 SVB의 파산이 증자 실패와 채권 금리의 상승 때문이라고 봤다. 지난 8일 SVB는 재무 구조를 개선하겠다는 이유로 보유 채권을 매각하고 신주를 발행해 약 22억5000만달러를 증자한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이는 시장에 대한 신뢰 하락을 이끌었고, 위기를 느낀 여러 예금주들이 자금을 빼기 시작하면서 뱅크런이 발생했다. 9일 하루 만에 420억달러가 빠져나갔다. 지난 29일 마이클 바 연방준비제도(Fed) 부의장은 SVB 파산 전날인 9일 420억(약 54조6000억원), 10일 1000억달러(약 130조원) 규모의 인출 시도가 있었다고 밝혔다.
전통 금융의 몰락에 비트코인 등의 가상자산은 오히려 수혜를 입었다. SVB 파산 사태가 벌어진 뒤 가상자산의 시세는 최대 37%까지 가격이 올랐다. 30일 오후 4시 30분 코인마켓캡 기준 비트코인의 가격인 전주 대비 3.20% 상승한 약 3만7167달러를 기록 중이다.
시장에서는 은행에서 빠져간 유동 자금이 가상자산 시장으로 움직이고 있다고 평가했다. 전통 금융을 믿지 못하고 가상자산을 선호하는 현상은 남미 등의 외환보유액(미국 달러)이 부족해 하이퍼 인플레이션이 빈번하게 일어나는 신흥국에서 종종 발생하는 현상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 관심은 중앙은행이 직접 관리하는 가상자산인 CBDC에도 이어졌다. 뱅크런의 가능성이 있는 전통 금융의 한계와 시세 변동성이 큰 가상자산의 한계를 모두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에서 비롯됐다.
한국무역협회가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CBDC는 법정화폐로 뱅크런 등의 유사 사태가 발생할 시 중앙은행이 발권력을 동원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가상자산 대비 장점으로 꼽힌다. 뿐만 아니라 CBDC가 신용 미비 등으로 은행 계좌 개설이 어려운 사람들에게 안정적인 지급결제 수단을 제공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신흥국이나 개발도상국의 경우 금융 포용의 차원에서 CBDC 도입 여부를 논의 중이다.
우리나라 또한 CBDC의 제도화에 시동을 걸고 있다. 최근 김한규 의원 등 더불어민주당 16명은 ‘암호자산 이용자 보호에 관한 법률안’을 발의했다. 한국은행이 발행할 CBDC를 가상자산과 달리 규정하는 것이 골자다.
특히 한국은행의 의지가 확고하다. 지난해 11월 이종렬 한국은행 부총리는 “중앙은행은 화폐 제도와 지급제도의 신뢰성을 책임질 의무가 있으며 이러한 구조 변화를 적절히 대응할 필요가 있다”며 “CBDC가 현행 지급 결제 시스템 및 금융 시스템의 안정성을 지키면서 경쟁과 혁신을 촉진할 수 있도록 모든 부분에 대해 면밀히 검토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CBDC 또한 대규모 자금유출에 완전히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은행 예금이 무위험 CBDC로 쉽게 교환하게 되면서 뱅크런과 유사한 디지털 런(Digital run)의 발생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을 대비해 CBDC 선도국으로 불리는 중국은 기존 실물화폐인 현금 발행 구조와 유사하게 중앙은행과 은행으로 구성되는 2단계 체제를 통해 CBDC를 발행, 유통하고 있다. 중앙은행은 민간은행에 CBDC를 공급하고, 민간은행이 이를 시중에 공급하는 것이다. 이 경우 디지털 런의 발생 가능성을 상대적으로 줄일 수 있다.
그러나, CBDC에 대한 부작용을 우려하는 시각도 적지 않다. 중앙은행이 비대해져 시중은행 서비스의 시장 점유율을 잠식시킬 것이라는 주장이다. 경제주체들의 안전 자산 선호가 높은 상황에서는 무위험자산인 CBDC로 자금이동 규모가 더욱 확대될 가능성이 크고, 은행의 자금중개기능이 약화되고 대출 등의 자율배분의 효율성이 감소할 것이라는 우려다.
반면, CBDC의 도입으로 시중은행의 역할이 크게 위축되지 않을 것이란 주장도 나온다. 이명활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CBDC 도입으로) 은행의 역할이 크게 바뀌거나 기능이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라며 “대부분 국가에선 중앙은행과 은행으로 구성된 2단계 체제를 통해 CBDC 구조를 취하고 있다”고 말했다.
글.바이라인네트워크
<박지윤 기자> nuyijkrap@byline.netwo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