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락하는 美 코인은행들… FTX 파산 여파 금융권으로 확산

FTX 파산으로 인한 후폭풍이 금융권으로 이어지고 있다. 지난 8일(이하 현지시각) 미국의 대표적인 가상자산 은행인 실버게이트 은행을 시작으로, 10일 미국 실리콘밸리 스타트업의 대표 거래 은행인 실리콘밸리 은행(SVB)이 하룻밤 사이에 붕괴됐다. 뿐만이 아니다. 실버게이트와 함께 가상자산 양대 은행으로 꼽히는 시그니처은행 또한 12일 폐쇄됐다.

시장에서는 이들의 연쇄파산이 지난해 11월 글로벌 3위 가상자산 거래소였던 FTX 파산과 연관이 깊다고 평가한다. 실제로 실버게이트 은행과 시그니처은행은 FTX의 대표적인 고객사로 알려져 있으며, 실리콘밸리 은행 또한 여러 가상자산 스타트업과 벤처캐피털(VC)를 주요 고객으로 뒀다.

세 은행의 파산으로 인한 피해는 점차 확산될 것으로 전망된다. 12일 워싱턴포스트 등의 외신은 “2008년 파산한 글로벌 투자 은행 리먼 브라더스에 이어 두번째로 큰 규모의 은행 파산이 이뤄지고 있다”며 “코인베이스, 로블록스  등 많은 가상자산∙블록체인 기업의 피해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분석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FTX 산 여파

거센 후폭풍의 시작은 미국의 대표적인 가상자산 친화 은행인 실버게이트다. 지난 8일 파산 절차를 밟은 실버게이트는 성명을 통해 “최근 가상자산 시장과 규제 상황을 고려했을 때 실버게이트 은행 운영을 중단하고 자발적으로 사업을 청산하는 것이 최선의 길이라고 결정했다”며 “모든 예치금을 고객에게 전액 상환하겠다”고 말했다. 앞서 실버게이트는 이달 초 증권거래위원회(SEC)에 “가상자산 사업 운영을 계속할 수 있는 능력이 불확실하다”며 “가상자산 사업을 재평가하고 있다”고 인정한 바 있다.

실버게이트는 30년 전 캘리포니아의 작은 대출업체로 시작한 은행으로, 지난 2013년부터 가상자산 업체들의 대출을 지원하면서 가상자산 산업의 핵심 주체로 급부상했다. 관련 시장이 성장함에 따라 실버게이트의 예금은 2020년 약 20억달러에서 2021년 110억 달러 이상으로 급증하기도 했다.

외신은 실버게이트의 붕괴를 FTX 파산으로 인한 또다른 희생자라고 평가한다. FTX와 알라메다리서치 등 FTX 관련 회사들이 실버게이트의 주거래 은행이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FTX 파산 이후 1분기 동안 실버게이트 내 코인 예금이 68% 인출됐으며, 사측은 뱅크런을 해결하기 위해 주택 대출 은행으로부터 43억달러의 대출과 약 52억달러의 부채 증권을 판 것으로 전해진다.

실버게이트의 파산 직후 12일 미국 양대 가상자산 은행 시그니처뱅크 또한 이날 뉴욕주 규제 당국에 의해 폐쇄됐다. 시그니처뱅크는 “FTX와는 단순 예금 거래 관계였다”며 “FTX가 예치한 금액은 전체자산의 0.1%도 못 미친다“고 일축했지만, 미 당국은 시그니처뱅크의 ▲갑작스러운 예금 유출 폭증 ▲실버게이트보다 규모가 훨씬 크다는 점을 고려해 피해 최소화를 위한 폐쇄를 결정했다.

시그니처뱅크는 뉴욕에 본사를 두고 있는 은행으로, 지난해 말 기준 총자산은 1103억 달러 규모에 달한다. 총 예금은 886억달러에 이른다.

스테이블 코인 시장의 위기론도 불거지고 있다. 지난 10일 뱅크런으로 인해 파산 수순을 밟게 된 SVB가 준비금 일부로 스테이블 코인인 USD코인(USDC)을 보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스테이블 코인이란 특정 다른 자산과의 연동을 통해 가치를 안정시키는 코인으로, 1달러 가치가 유지되는 것(페깅)이 특징이다. 주로 가상자산의 가격 변동 위험성을 줄이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된다. SVB는 지난해 말 기준 총 예금 1754억달러를 가지고 있는 미국 16위 은행이다.

실제로 파산 직후인 11일 USDC는 0.92달러에 거래되는 등 1달러 페깅이 깨지기 시작했다. 13일 오후 3시 47분 코인마켓캡기준 USDC는 0.99달러로 전날 대비 소폭 상승했지만, 아직까지도 페깅이 깨진 상황이다. USDC 시가 총액 또한 11일 기준 433억5000만달러에서 364억8000만달러로 16% 가량 급감하기도 했다. USDC는 테더(USDT에 이어 두번째로 시가총액이 큰 스테이블 코인이다.

선 긋는 블록체인 기업들, 미 당국 “예금 전액 보증”

가상자산∙블록체인 기업들은 자금 회수가 가능하다고 잇따라 발표하는 등 파산한 은행들과 거리를 두고 있다. 글로벌 가상자산 거래소 코인베이스와 스테이블코인 발행사 팍소스는 시그니처은행 등에 2억달러 이상의 현금을 보관하고 있지만, 관련 자금을 완전하게 회수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코인베이스는 13일 “시그니처 은행에 2억4000만달러 상당의 현금을 보관하고 있으나, 당국에 의해 안전하게 보호받고 있다”며 “관련 자금을 완전히 회수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팍소스도 트위터를 통해 “시그니처은행에 2억5000만달러의 예금을 보관 중”이라며 “스테이블코인 준비금의 90% 이상을 미국 국채 등으로 보관하고 있는 등 스테이블코인 준비금은 문제가 없는 상황”이라고 일축했다.

메타버스 플랫폼 로블록스 또한 30억달러의 현금 중 약 5%가 SVB에 예치돼 있다고 밝혔지만, 회사의 운영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마이클 거스리 로블록스 최고재무책임자는 “은행 붕괴의 결과와 시기와 상관없이 회사의 사업에는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미국 정부에서도 이러한 모습에 위기감을 느끼는 모습이다. 12일 미 재무부와 연방준비제도, 연방예금보험공사는 SVB와 시그니처뱅크에 고객이 맡긴 돈을 보험 한도와 상관 없이 전액 보증하기로 결정했다며 공동 성명을 밝혔다. 이는 현 사태가 미국 내부 뿐만 아니라 글로벌 금융 시장 위기로 확산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한 조치다.

미 당국은 “어떠한 손실도 납세자가 부담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다만 주주와 일부 무담보 채권보유자들, 고위 경영진은 보호 대상이 아니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선 “무담보 채권보유자들은 법률에 따라 은행에 대한 특별평가를 거쳐야 한다”고 전했다

글.바이라인네트워크
<박지윤 기자> nuyijkrap@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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