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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일을 AI로 해봤다…프롬프트와의 씨름에서 지고 말았다

편집자주: 생성AI는 인간의 손과 머리를 대체할 수 있을까요? 어느 정도 도움을 줄 수 있는지 정도는 점쳐볼 수 있지 않을까요. 확인하고 싶어졌습니다. 생성AI와 함께 한 하루를 일기 형식으로 써본 기사입니다. 놀라지 마세요.

인공지능(AI) 기술과 오롯이 하루를 보낼 수 있을까. 직업인, 그것도 기자로서 일을 하는데 생성AI는 얼마나 쓸모가 있을까.

적과의 동행(?)을 결정했다. 생성AI 기술을 기자 일에 활용해보기로 했다. 정말 머지 않아 백수가 되는 건지 확인하고 싶은 마음도 컸다. 이 기사는 우리 대표 선배들도 볼 것이기 때문에 짜르지 말아 달라는 염원을 담아 찬양은 빼고 냉정하게 써보려고 한다.

오전 8시 50분

보고 예정시간 10분 전. 전날 밤 만들어 놓은 취재보고안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나와라 챗GPT. 너의 도움이 필요하다. 통과만 되게 해다오. 기본적인 취재 가제와 내용을 적어 챗GPT에 알려줬다.

원래 버전은

*생성AI와 보낸 하루… 어떤 솔루션 쓸까?
-생산성은 노션 AI, 정보 리서치는 챗GPT, 기사 사진은 달리 등 하루 일기 형태로 따라가는 기사

였는데, 챗GPT는

*생성AI와 보낸 하루… 어떤 솔루션 쓸까?
-노션 AI, 챗GPT, 달리 등을 활용한 하루 일기 형태의 기사 작성
-노션 AI를 이용한 생산성 증대, 챗GPT를 이용한 정보 리서치, 달리를 이용한 기사 사진 활용 등 다양한 솔루션을 활용하여 보다 효율적인 하루를 보낼 수 있음을 제안하는 기사

라고 고쳐왔다.

뭔가 예뻐지긴 했다만 그냥 말을 덧붙이는 데 그친다. 이러면 굳이 도움을 받을 필요가 없다. 전 직원이 모일 편집회의에서는 썰을 더 풀어야 한다. 위 보고안을 기반으로 한 번 더 돌려 기사 초안을 달라고 했다.


찬양 일색이다. 비판적인 논조로 해달라는 명령을 프롬프트에 더해봤다.

아래와 같은 멘트가 딸린 글이 나왔다.

“우리는 이러한 AI 솔루션들을 활용하면서도 항상 인간의 판단력과 분별력을 유지해야 하며, 솔루션의 한계와 함께 적절하게 활용해야 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단순한 편리함에 매여 솔루션을 오용하는 것은 오히려 역효과를 낳을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흔히 기사에 쓰이는 전문가(라고 쓰고 교수님이라고 읽는다)들의 멘트 비스무리한 게 등장했다. 일단 킵해둔다.

오전 11시 40분

이번주 있을 컨퍼런스 사회를 맡게 됐다. 맨땅에 헤딩을 계획했지만, 참석자분들에게 무례한 일이다. 무리 없이 진행할 수 있는 대본을 만들어야 한다. 챗GPT에 기회를 한 번 더 줘 보자.

대충 빈칸을 잡아놓은 사회 대본을 만들어준다. 좀 많이 고쳐야겠다. 아니 그냥 다시 내가 써야겠다.

오후 1시 30분

글 작성이 좀 막히는 것 같으니 일단 기사 표지를 먼저 만들어보기로 했다. 익숙한 달리(Dall-E)2를 쓸까 하다가 스테이블 디퓨전을 적용했다는 캔바 AI로 가기로 했다.

텍스트 투 이미지 앱을 켠 후 몇 가지 스타일 옵션 중 ‘회화’를 선택했다. 프롬프트로 ‘The way AI replaces people’을 넣었다. 이미지 생성에 걸린 시간은 15초가량. 15초가 아까워졌다. 도대체 이 친구는 뭐하자는 걸까.

내 프롬프트의 잘못일 수도 있다. 겸손하고 간결하게 ‘Journalist’를 넣어봤다.

얘는 안 되겠다. 시간이 없다.

달리2를 열었다. 다시 ‘The way AI replaces people’을 넣었다. 여러 번 돌려보고 그럭저럭 쓸 수는 있을 것 같은 그림을 구했지만 그래도 성에는 안 찬다.

신토불이. 카카오브레인이 오픈베타 중인 비 에디트를 써보기로 한다. 자체 개발한 이미지 생성 모델 칼로를 적용한 서비스다. 첫 느낌은 좋았다. 내가 좋아하는 사이버펑크가 화풍 옵션에 들어있다. 명령어를 넣었다. 달리랑 똑같이 기본은 정사각형이긴 하지만 잘라서 쓸 생각이(었)다.

내 프롬프트가 이상한 게 확실하다. 그래서 프롬프트 엔지니어가 필요한 거겠지. 근데 지금 내 기사 쓰자고 그 몸값 비싼 분들을 모실 상황은  아니다. 이 기사 맨 위의 사진은 그냥 캔바로 내가 만들었다.

오후 2시 40분

이 기사는 그냥 이렇게 써보는 기사다. 그래서 행사 사회 대본으로 돌아가본다. 챗GPT가 잘 안되면 노션이다. 얼마 전 노션에도 생성 AI가 붙었다. 엔진은 오픈AI의 GPT-3 모델을 쓴다. 최신은 아니지만 사회 대본 초안 쓰는 데는 충분할 걸로 생각했다.

아 이런. 마땅한 템플릿이 없다. 노션은 AI 활용 템플릿으로 ▲아이디어 브레인스토밍 ▲블로그 게시물 ▲개요 ▲SNS 게시물 ▲보도자료 ▲독창적인 이야기 ▲에세이▲할일 목록 ▲회의 어젠다 ▲장단점 목록 ▲직무 설명 ▲영업 이메일 ▲채용 이메일 등 14개의 기능을 제공한다.

옵션은 많지만 사회 대본에 가장 가까운 템플릿을 겨우 찾은 게 독창적인 이야기나 에세이였다. 타임테이블과 행사 취지를 넣고 독창적인 이야기를 선택해봤다. 약간 내가 대학생 때 쓴 스케치 기사 습작 같은 게 나와 버렸다.

기자는 멀티플레이어이기도 하다. 기사 쓰기는 기본이고 인터뷰 질문지 만들기나 섭외, 외고 관리, 가끔은 행사 기획까지 해야 한다. 근데 나는 그걸 제대로 다 못하는 것 같다.

회사가 쫓아낼 때를 대비해 미리 채용공고를 써 봤다. 바이라인네트워크가 잘 되면 써먹을 일이 있을 테다. 그럭저럭 괜찮은 텍스트가 나왔다.

오후 3시 50분

왜 이 기사를 쓴다고 했을까. 편집회의에 이거이거를 써본다고 했던 건 있었는데 더 다양한 걸 사용해보고 싶다. 검색해봐야겠다. 물 들어올 때 노 젓는 건 빅테크 기업도 예외는 아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자사 솔루션에 신나게 챗GPT를 붙이고 있다. 그렇다면 써봐야지. 새로운 ‘빙(Bing)’에 물어봤다.

아, 뤼튼을 왜 생각하지 못했지. 삼성SDS의 브리티 RPA는 업무 자동화 솔루션이라 내 업무와는 결이 다르다. 안 그래도 우리 뉴스레터를 구독하면 웰컴 메일을 보내는 게 어떨까 생각 중이었는데 뤼튼의 웰컴 이메일 툴을 써봤다. 

이 정도면 나쁘지 않다. 아예 생각이 안 날 때. 첫 줄 시작조차 안 될 때 쓰면 좋을 것 같다. 이제 마감시간이다. 생성AI와 함께 보낸 하루. 여기서 끊어야지.

내가 왜 그랬을까. 내 프롬프트들이 다 문제가 있는 걸로 생각하고 싶다. 그냥 내 몸과 머리로 부딪히는 게 낫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기자들은 기본적으로 기자 자신이 아닌 전문가의 통찰이나 팩트를 빌려 쓰는 직업이다. 기사에 업계 전문가에 따르면’ ‘OO 사정에 정통한 관계자는~’ 이라는 표현이 왕왕 보이는 게 이 때문이다.

하지만 몇몇은 급한 마음에 취재원에게 원하는 답을 유도하면서 멘트를 잘라 쓰는 경우가 있다. 내가 생각한 결론과 다른 방향으로 말해도 듣고 싶은 것만 듣는 거다. 더 나쁜 경우는 직접 물어보지도 않고, 익명을 빌어 말을 지어내는 선수들이다. 정말 안 될 일이다. 그걸 기자일 하고 오늘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해보려고 한다.

생성AI 전문가 A씨에게 물었다.

생성 AI가 모든 업무를 대체할 수 있냐는 질문에 “인간은 창의성, 추론, 감정, 윤리 판단, 커뮤니케이션 등 다양한 역량을 가지고 있다”면서 “이러한 역량은 현재 생성AI 기술로는 완벽하게 대체하기 어려운 영역이기 때문에 인간의 역할이 여전히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한다. 아직은 생성 AI는 갈 길이 먼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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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전문가는 챗GPT다. 훌륭한 멘트 자판기다. 양아치 기자가 되려면 생성AI가 아주 약간의 도움을 줄 수는 있겠다. 근데 그렇게 살고 싶지는 않다.

아니면 프롬프트 엔지니어링을 공부해야 더 훌륭한 선장이 될 테다. 그래도 취재를 직접하고 더 쫀쫀한 기사를 쓰는 기자로 성장하는 데 시간을 쏟고 싶다. 불행인가 다행인가. 생성AI와 나 자신 모두 아직은 채워야 할 요소가 많이 남은 것 같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이진호 기자>jhlee26@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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