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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딩 몰라도 실무에서 쓸 수 있는 AI 가르쳐야”

# 1980년대 언젠가 엄마는 나를 컴퓨터 학원에 등록시켰다. 미래에는 컴퓨터가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어디선가 들었었나 보다. 컴퓨터가 무엇에 쓰는 물건인지도 몰랐던 나는 학원에 가서 ‘베이직’이라는 프로그래밍 언어를 배웠다.

그러나 엄마의 기대와 달리 그 교육은 성공적이지 않았다. 당시 초등학생(실제로는 국민학생)이던 나는 도대체 왜 이걸 배워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냥 계산하면 될 걸 왜 계산하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종이에 그리면 될 걸 왜 굳이 코드를 짜서 그림을 그리고 인쇄를 하는지 몰랐다. 나로서는 목적지를 몰랐던 교육이었던 셈이다.

# 인천재능대학교 인공지능특별반(JAIBC) 김명호 교수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어린 시절 다녔던 컴퓨터 학원 생각이 났다. 컴퓨터를 뭐에 쓰는지도 몰랐던 나에게 들입다 프로그래밍 언어부터 가르친 그 학원처럼, 요즘 AI를 가르치는 대학교에서는 일단 파이썬과 각종 통계이론, 수학이론부터 가르친다는 것이 김 교수의 비판이었다. AI는 현실에서 실무의 문제를 풀기 위한 도구인데, 도구를 사용해서 어떻게 원하는 목적을 달성할 것인지 방법론이 아니라 도구를 제작하는 원리부터 배우다보니 어렵고 흥미를 잃게 된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이를 자동차 운전학원에 비유했다.

“운전을 배우러 운전 학원에 갔더니 열역학 법칙, 물리학적 법칙을 가르치고 있는 것과 비슷합니다.”

김 교수는 “지금 스타일의 교육은 너무 비효율적이고 올바른 인재 양성이 불가능하다”면서 “실무 AI 교육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가 주장하는 실무 AI 교육이란, 현실의 문제를 놓고 이를 AI로 풀기 위해 필요한 요소를 하나씩 배워가는 과정이다. 파이썬 프로그래밍이나 복잡한 수학 및 통계 이론이 먼저가 아니라, 문제를 정의하고 해결하기 위한 최소한의 단계부터 먼저 배우자는 주장이다.

그는 “현장의 문제는 그 문제를 풀기 위한 만큼의 기술과 지식이 필요한 것이지 모든 AI 기술이 필요한 게 아니며, 모두 첨단 기술만 필요한 것도 아니다”라면서 “문제해결에 필요한 만큼의 기술을 가르쳐주는 데 목표가 있어야 실무에 적용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JAIBC의 학생들은 이 때문에 AI 교육과정에서 ‘문제’를 먼저 만난다. 공장의 기계부품이 언제 고장날지 예측하는 문제, 보험청구 요청 중에 사기를 찾아내는 등의 문제가 주어진다. 파이썬도 모르고 AI 알고리즘이나 통계이론도 모르는 학생이 이런 문제를 풀 수 있을까?

일단 학생들은 ‘노코드/로코드(No-Code/Low-Code)’를 활용해 해법을 찾아간다. 그 방법론으로는 오토ML을 선택했다. 오토ML은 자동화된 머신러닝 모델 개발 프로세스다. 데이터 과학 전문 지식과 프로그래밍 스킬이 필요한 공정을 기계가 알아서 처리한다. AI 개발자는 학습을 위한 데이터 전처리와 시각화, 예측 결과 분석 등에만 집중하면 된다.

김 교수는 “어떤 알고리즘을 무슨 파라미터로 훈련시켜야 될지를 찾아내는 게 머신러닝에서 가장 어려운 부분이었는데, 오토ML을 통해 이제 어렵지 않은 일이 됐다”면서 “코딩을 하거나 알고리즘의 특성을 수학적으로 공부하는 것부터 할 필요가 없다”고 강조했다.

물론 오토ML이 모든 문제를 완벽히 풀어주는 것은 아니다. AI 학습을 하다 보면 오토ML로 찾은 모델이 부족하다 싶을 때가 있고, 더 좋은 모델을 만들고 싶을 때가 있다. 김 교수는 “그럴 때 필요한 코딩을 배우면 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아무 대책도 없이 알고리즘이나 파라미터 종류를 짐작해서 찾기보다는 오토ML을 통해서 찾은 모델을 베이스라인으로 두고 거기에서 출발하면 더 좋은 모델을 찾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김 교수는 학생들의 AI 학습 속도를 높이기 위해 AI 실무 교재를 만드는 것도 꼭 필요한 일이라고 봤다. 기존의 AI 교재들이 앞에서 말한 것처럼 지나치게 이론적이고, 코딩과 복잡한 수학을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적당한 교재를 찾던 김 교수와 인천재능대학교는 인텔에서 답을 찾았다. 인텔이 만들어놓은 ‘매래의 인재를 위한 인공지능(AI for Future Workforce)’이라는 교재를 약간 수정 보완해서 JAIBC의 교재로 활용했다.

김 교수는 “이 교재는 AI를 활용해서 산업의 문제를 푸는 데 방점이 찍혀 있다”면서 “산업의 문제를 고민하게 만들고, 어떤 방식으로 그 문제를 풀 수 있을지에 대한 방법론을 단계적으로 가르칠 수 있다”고 소개했다.

주어진 산업의 문제를 반복적으로 풀어가면, AI가 할 수 있는 일에 대한 이해가 높아지고, 문제 해결 능력도 향상된다는 것이 김 교수의 설명이다. 이를 위해 김 교수를 비롯한 인천재능대학교 학부 교수 20여 명은 모두 인텔의 ‘AI for Future Workforce’의 교사 훈련 프로그램까지 수료했다고 한다.

일각에서는 김 교수와 같은 방식의 교수법이 기초를 쌓지 않는 사상누각 교육이라는 비판을 할 수도 있다. 이에 대해 김 교수는 “기초가 필요 없다는 뜻이 아니라 필요할 때까지 교육을 미루는 방식”이라며 “처음에는 코드 없이도 풀 수 있는 방식으로 풀고, 그 다음에는 적은 양의 코드로 풀고, 이후 더 섬세하게 튜닝하기 위해서 더 많은 코드가 필요한 방식으로 푸는 이 과정을 점진적으로 반복하게 하면 어렵지 않게 AI를 배울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노코드나 오토ML을 강조한 건 진입장벽을 크게 낮춰 많은 문제를 풀게 하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로우코드나 하이코드로 옮겨가게 해줄 수 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김 교수는 이 같은 AI 교육 방식이 실제로 성과를 거두고 있다고 자신했다. NIPA가 운영했던 AI 놀이터라는 사이트의 1~4위를 JAIBC 학생들이 차지했고, AI-X 해커톤 대회에서 대상을 받기도 했다. 김 교수는 이와 같은 교수법을 논문으로 발표하기도 했다.

김 교수는 “AI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AI 인재를 양성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지만, 막상 학교 수업에서는 코딩만 배우다가 AI는 들어가지도 못하고 한 학기가 끝나는 경우가 많다”면서 “실무 AI 교육은 AI가 무엇인지 개념을 익힌 후에, 잘 알려진 문제에 AI를 적용해서 데이터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 이후 도메인 데이터를 처리할 수 있도록 한 다음, 어떤 문제를 주더라도 거기에 맞게 데이터 수집부터 시스템을 만드는 것까지 할 수 있는 역량을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심재석 기자>shimsky@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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