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이곳은 아마존이 아닌 국민은행의 애자일팀이다

형형색색 포스트잇이 벽면에 가득 붙여진 한 사무실. 포스트잇에는 팀의 목표와 업무 규칙, 일정, 당면한 문제, 해결방법 등이 빼곡하게 적혀 있다. 통일 되지 않은 글씨체를 보니 이곳 직원들이 한 자 한 자 써내려 갔다는 것을 한 눈에 알 수 있었다.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는 애자일 프로젝트 진행상황

한편으로는 미국의 아마존 사무실을 연상케 했다. 책과 인터넷에서 본 아마존의 사무실의 분위기와 비슷했다. 깔끔하게 정돈된 사무실이 아닌 곳곳에서 직원들의 아이디어와 진행사항을 공유할 수 있는 메모들이 더욱 그렇게 보이게 만들었다.

이곳에서는 개발자, 기획자 등이 한데 모여 일을 한다. 새로운 프로젝트를 진행하기 위해 직원들은 일정 기간 동안 본업과 프로젝트 업무를 겸직한다. 직원들이 프로젝트를 원활하게 수행할 수 있도록 애자일(Agile) 업무 방식을 지원하는 전담 직원들이 투입됐다. 

이들은 KB국민은행의 애자일빌드팀과 애자일 프로젝트 직원들이다. 외부업체가 아니라 국민은행이 내부 직원들로 꾸린 자체 팀이다. 일과 시간 중 4~5시간은 애자일 코칭 프로그램 바탕의 스크럼 방식(소규모 다기능 팀이 업무주기를 반복)으로 개발을 하고, 나머지 시간은 칸반 방식(우선순위에 따른 업무처리)으로 코칭을 받는다. 

이 애자일팀은 현재 국민은행의 10대 플랫폼인 리브넥스트(NEXT)에 CU편의점 택배 예약 서비스 론칭을 준비하고 있다. 사용자가 편의점에 방문하기 전 리브넥스트에 미리 택배 발송정보를 입력하고 예약번호를 발급받으면, 편의점에서 예약번호만 입력해 택배를 등록하는 서비스를 개발한다. 

애자일팀 직원들은 서비스 기획, 개발 등 맡은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애자일빌드팀 코치들은 직원들이 ‘애자일(Agile)’ 방식으로 일을 할 수 있도록 코칭을 해준다. 이들을 애자일빌드팀 코치라고 부른다. 코치들은 겸직이 아닌 이 일을 본업으로 하며 애자일 팀을 발굴하고 이들의 업무 방식에 도움을 준다. 

지난 3일, 전국경제인연합회관 33층에 위치한 KB국민은행 본사를 방문했다. 국민은행이 왜 애자일팀을 만들었는지, 이들이 어떤 목적을 갖고 어떻게 일하고 있는지를 알아보기 위해서다.

기자가 방문한 3일 오전, 애자일팀 사무실 한켠에서 ‘데일리 스탠드 업(Daily Stand Up)’이 진행됐다. 이번 프로젝트의 애자일 팀과 코치들이 자리에서 일어서서 약 10분간 업무 진행 상태를 공유하는 시간이다. 이때 직원들은 서로의 업무 진행척도를 알 수 있도록 주요 안건을 공유한다. 모든 직원들이 일어서서 이야기를 하는 것은 가능한 짧은 시간 안에 중요한 이야기만 하자는 취지에서다. 즉, 회의가 길어지는 것을 방지한다. 

애자일 코치들과 직원들은 매일 업무시작 전 DSU를 통해 업무진행 상황을 공유한다.

쭈뼛쭈뼛한 기자를 빼고 직원들은 익숙한 듯 DSU의 시작을 알리는 박수를 쳤다. 그리곤 각자 업무 진행 상황을 공유하기 시작했다. 

“애플리케이션프로그래밍인터페이스(API) 설계에 들어갔으며, 인서트하는 것부터 시작을 했다. 예약번호에 ‘0’이 많이 들어가면 입력할 때 문제가 생길 수 있을 것 같아 이를 중점적으로 봐야 할 것 같다.”

“보안성 심의 관련해 담당자와 얘기를 나눴고 어느 정도 확정이 됐다.”

“예약정보 입력은 다 끝내놓은 상태여서 디자인이 나오면 그것을 하려고 한다. 추가적으로 위치 관련된 사항을 보완할 예정이다”

각 직원들이 업무 진행사항을 공유하는데 까지 10분이 채 되지 않았다. 벌써 끝이 난 것인가 싶었는데 곧바로 스프린트 회고가 진행됐다. 스프린트 회고는 약 3주 간격으로 한 번씩 진행된다. 그동안 프로젝트를 하면서 좋았던 업무방식과 아쉬웠던 업무 방식을 서로 공유하며 이를 다음 업무에 적용한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직원들은 익숙하게 포스트잇을 하나씩 집어 들었다. 좋았던 점, 아쉬웠던 점, 노력해야 할 점 등을 거침없이 써내려갔다. 애자일 프로젝트 직원들 뿐만 아니라, 애자일빌드팀 코치들도 업무 방식의 장단점을 가감없이 적기 시작했다. 

포스트잇을 채운 직원들은 벽에 붙이고 의견을 말했다. 개발을 함께 해서 좋았다는 의견부터 즉각적인 피드백을 받아 긍정적이었는 의견, 디자이너가 늦게 투입되어서 아쉬웠다는 점, 의사결정에 지연이 있었다는 점 등 모든 의견이 거침없이 쏟아졌다. 누구 하나 눈치보는 이, 말을 아끼는 이 없이 솔직하고 냉정하게 의견을 주고받았다. 

이렇게 모인 의견은 다음 스프린트 기간 동안 해야 할 일의 후보에 오른다. 직원들은 또 다시 토론을 통해 할 일(Action)을 정하고 이를 협업툴에 옮겨 놓으면서, 회의는 끝이 났다. DSU부터 스프린트까지의 시간은 약 30분 정도. 짧고 굵게 업무 방식의 장단점을 가리고 이를 다음 업무에 적용하는, 효율적이고도 흔치 않은 회의로 인상이 깊었다. 

회의가 끝나자 애자일 프로젝트 직원들은 다시 업무에 돌입했고, 코치들은 각 자의 자리로 돌아감으로써 이날의 공식 일정은 끝이 났다.  

국민은행은 언제부터 애자일 조직을 운영한 것일까. 그리고 애자일 방법론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국민은행은 지난 2021년 플랫폼 부서 조직 구조로 개편한 뒤, 2년 동안 어떻게 하면 부서 간 소통 속도를 높이고 실행력을 강화할 수 있을지 고민을 했다. 플랫폼조직은 사업조직과 기술조직이 함께 일한다. 기획부터 설계, 개발, 운영, 유지보수 등이 동시에 이뤄지는 이른바 데브옵스(DevOps) 조직이. 

그러나 국민은행은 전통적인 조직구조와 시스템 구조의 특성상 모든 업무를 플랫폼 조직화하는 것은 어렵다고 판단했다. 따라서 점진적으로, 또 필요한 조직에 애자일 업무 방식을 지원하기로 했다. 애자일 방식으로 상품이나 서비스를 개발하면 기획단계부터 고객의 수요를 파악하고 시제품에 대한 피드백을 수렴해 개발 전부터 이를 반영할 수 있기 때문에 빅테크와 핀테크와의 경쟁에서 유리할 것이라 판단했다. 

이런 필요성에 의해 국민은행은 애자일 전담 조직을 만들었다. 지난 2021년 외부 업체를 통한 애자일 코칭으로 시작해서 지난해 테크그룹의 테크혁신본부 안에 애자일빌드팀이 신설됐다. 국민은행의 자체 직원들로 구성된 애자일코치 팀이다.

애자일코치팀은 애자일 조직을 꾸리는 것을 돕고 프로젝트 수행방법을 안내한다. 풀타임으로 코칭을 하는 프로그램부터 기존 업무와 병행하며 코칭을 받을 수 있는 프로그램 등 상황에 따라 다양한 방식을 선택하도록 한다.

국민은행의 애자일 프로젝트는 은행 내부의 자발적인 요청에 의해 시작된다. 직원들은 원래 하던 업무나 새롭게 도전해보고 싶은 일이 있다면, 애자일빌드팀에 코칭을 신청할 수 있다. 물론, 업무방식은 팀마다 다르다. 기존업무를 병행하거나 그렇지 않은 경우가 있다.

애자일 코칭 프로그램은 크게 두 단계로 이뤄진다. 첫 번째는 직원들에게 애자일이 무엇인지 알려주는 것이다. 주로 애자일의 기본, 스크럼이나 칸반 프레임워크, 관련 협업툴 사용방법, 애자일 관련 지식을 습득할 수 있도록 교육을 한다.

두 번째는 스크럼 방법론을 기반으로 여러 번의 스프린트를 반복한다. 스크럼은 소규모 팀이 제품을 완성하기 위해 ‘스프린트’라는 업무 주기를 반복하는 것을 말한다. 위 사례처럼 계획을 세우고 중간점검을 하면서 서비스나 제품을 만든다. 이때 애자일빌드 코치들은 팀원들이 개발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돕는다.

무엇보다 애자일 코치들의 가장 큰 역할 중 하나가 은행에 애자일 문화를 확산하기 위한 노력이다. 이와 관련해 뉴스레터를 발행하기도 하고 여러 부서와 업무팀들의 정보를 가시화, 투명화하거나 협업툴의 모니터링 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국민은행의 애자일빌드팀은 “(애자일 팀은) 기존 업무와 병행할 수 있다는 특징 덕분에 플랫폼 부서의 호응이 좋은 상태”라며 “또 애자일 코칭이 종료된 후에도 팀이 유지될 수 있도록 코칭받은 부서들의 지원 요청에 수시로 대응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홍하나 기자>0626hhn@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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