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디즈니 플러스에 대해 잘 몰랐던 네 가지’에서 이어집니다. 원래 시리즈로 쓰려던 것은 아니었는데, 연작이 된 것은 앞선 기사에 달린 댓글 때문입니다. 왕 중의 왕, 독자님은 제게 “이게 1부인가요? 2부가 있나요? “라고 물으셨습니다. 물론, 제가 최근 싱가포르에서 열린 디즈니 플러스 아시아태평양 지역 신작 쇼케이스에 다녀온 탓도 있습니다. 긴급 편성. 독자님의 요청(?)과 현장 취재를 녹여서 2탄 갑니다.

지난달 30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월트디즈니 아태지역 콘텐츠 쇼케이스 현장의 모습입니다. 사진=바이라인네트워크

디즈니의 새 얼굴은 ‘다양성’을 담는다

디즈니가 콘텐츠의 주인공 자리에 다양한 인종과 능동적 여성을 세우려고 노력하는 배경에는 오랜 기간 디즈니가 백인 우월주의, 외모 지상 주의, 남성 중심 주의 등으로 비판받아온 역사가 있습니다. 디즈니의 최고경영자(CEO) 밥 아이거의 저서 ‘디즈니만이 할 수 있는 것’에도 그런 고민이 묻어있는데요. 2017년에는 ‘펄프 픽션’을 만든 할리우드의 유명 제작자 하비 와인스타인(한때 디즈니에 몸 담았었다)의 성범죄가 파문을 일으켰고, 디즈니 내부에서도 픽사의 애니메이션 감독인 존 래시터의 성추문 사건이 있었죠.

밥 아이거는 책에서 “할리우드는 물론 사회 전반에 걸쳐 여성에 대한 성적 약탈과 기회 불균형, 임금 차별 등과 관련된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행동방식에 대해 다수의 심각한 혐의들이 제기되며 오랫동안 억눌려왔던 움직임이 촉발되었다”고 미디어 업계의 변화를 이야기했습니다. 디즈니에도 그런 바람이 분 것이죠. 디즈니는 2016년에 디즈니 여성 캐릭터 중 처음으로 “나는 공주가 아니다”라고 선언한 ‘모아나’를 선보였고요. 이듬에 ‘블랙 팬서’로 흑인 슈퍼 히어로에 도전합니다.

이후 디즈니는 다양성에 조금더 적극적으로 매진하는데요. 여기에는 모아나를 비롯해 블랙 팬서, 그리고 여성 히어로를 앞세운 ‘캡틴 마블’의 흥행 성공이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도 보입니다. 관객들도 불편한 지점이 줄어든 디즈니의 콘텐츠를 선호했고요. 만약 정치적 올바름과 다양성을 지향한 디즈니의 새 콘텐츠들이 관객에게 외면 당했다면 디즈니도 빠른 움직임을 보일 순 없었겠죠. 물론 이런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강조가 몰입도를 방해한다는 불평의 목소리도 있지만요.

디즈니의 변화를 가장 잘 보여준 상징적 장면은 뭐니뭐니해도 캡틴 아메리카가 흑인 히어로 팔콘을 후계자로 낙점하던 순간입니다. 이후 디즈니의 새 콘텐츠 중 상당수가 흑인을 주인공으로 앞세우고 있는데요.

이는 월트디즈니의 100주년 기념 애니메이션에서도 드러납니다. 2023년 100살이 되는 콘텐츠 왕국의 탄생을 기념해 만드는 애니메이션 ‘위시’의 주인공은 흑인 소녀 에이샤죠. 에이샤의 목소리를 연기한 이도 미국의 흑인 배우 아리아나 드보즈입니다. 여러 면에서 다양성을 담고 있는 배우이고요. 또, 내년 개봉작 중 기대를 얻고 있는 ‘인어공주’ 역시 흑인 배우인 헬리 베일리가 연기합니다. 롭 마셜 감독은 헬리 베일리를 보고는 “에리얼 역을 위한 단 한 명의 주인공”이라고 낙점했다고 합니다.

현장에서 쇼케이스를 보던 이들 사이에서는 ‘백설공주’를 제외한 나머지 주인공은 모두 흑인이 되는 것 아니냐는 농담도 나왔는데요. 사실 그 백설공주를 맡은 배우 역시 라틴계인 레이첼 앤 제글러입니다. 다만, 좀 아쉬운 것은 디즈니의 주요 스튜디오에서 만드는 신작의 주인공에 동양계는 드물다는 것이죠. 디즈니는  이 부분을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콘텐츠를 확보하는 것으로 보충하는 모습입니다.

영화감독이 방송국이 아닌 OTT에서 드라마 도전하는 이유

“아무래도 영화 쪽에 있던 감독으로서, 방송 드라마로 바로 진입하는 것이 쉽지는 않아요. 표현의 수위가 중요한데, OTT는 표현의 수위에 제한을 두지 않고 있어서 도전하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최민식 배우가 25년만에 드라마에 출연한다고 해서 화제가 된 디즈니 플러스의 신작 ‘카지노’를 연출한 강윤성 감독의 말입니다. 강 감독이 그동안 영화를 만들어 왔는데 드라마로 진출하면서 처음 선택한 채널이 왜 방송사가 아니라 OTT였는지를 물은 것에 대한 답이죠.


카지노를 연출한 강윤성 감독. 영화 ‘범죄도시’를 만들었다. 사진제공=월트디즈니 컴퍼니

싱가포르 쇼케이스 현장에서는 디즈니 플러스 신작의 제작진과 인터뷰가 이어지기도 했는데요. 저는 강 감독의 발언이 가장 기억에 남았습니다. 그는 코로나의 공습 이후 처음으로 극장에서 천만을 넘긴(정확히는 1269만명) ‘범죄도시2’의 감독이기 때문이죠. 그런 강 감독도 차기작을 OTT 시리즈로 만든다는 것은 의미심장합니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원하는 만큼 충분한 분량으로, 수위 조절 없이 그려낼 수 있도록 투자하는 채널은 현재로서는 OTT가 유일하다는 이야기이니까요.

물론, 그가 디즈니 플러스를 택한 것은 디즈니만 그런 환경을 제공해서는 아닙니다. 현장에서 “왜 디즈니 플러스와 함께 하기로 했느냐”는 질문에 강 감독은 “대본을 각 OTT에 줬는데 디즈니 플러스가 흔쾌히 제작을 결정해 함께 하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디즈니가 빠르게 결정한 덕에 곧 공개될 최대 기대작을 확보하게 됐군요. OTT가 다른 미디어를 씹어먹으면서 성장하고 있지만, 자기들끼리의 경쟁은 더욱 치열해지는 모습입니다. 좋은 스토리와 제작진, 배우를 확보하는 것은 이제 무한경쟁의 영역입니다.

디즈니 플러스는 넷플릭스를 넘어설 있을까?

솔직히 말해서 어려워 보입니다. 넷플릭스가 괜히 넷플릭스겠습니까? 다만, 디즈니가 꼭 넷플릭스를 넘어설 이유는 없습니다. 최근의 트렌드를 보면 시청자가 꼭 하나의 OTT만 선택해 보지 않습니다. 한국의 사례를 들자면, 콘텐츠진흥원의 조사 결과 OTT를 구독하는 시청자 1인당 이용 플랫폼 수는 평균 2.7개라고 합니다. 각 지역별로 2등 안에 든다면 디즈니의 콘텐츠로 세계 정복이라는 이 회사의 염원은 실현 가능한 일일테니까요(물론 디즈니는 세계 최고의 OTT를 키우겠다는 꿈이 있겠지만요).

전편에서 밝혔지만, 디즈니가 디즈니 플러스로 내는 손실은 어마어마합니다. 3분기에만 디즈니 플러스가 속한 스트리밍 사업부의 손실이 2조원에 육박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디즈니가 ‘디즈니 플러스’라는, 한동안 밑빠진 독일 수밖에 없는 카드를 꺼낸 것은 디즈니 왕국이 과거에 머무르지 않고 글로벌로 지속 성장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세계 곳곳, 각 지역에 숨어 있는 시청자를 발굴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스크린으로 직접 진격해야 한다고 본 것이죠. 애초에 디즈니가 2024년이 되어야 디즈니 플러스가 수익을 낼 수 있을 것이라 전망하기도 했고요.

디즈니의 전략은 할 수 있다면 인수합병, 아니라면 로컬 제작진과 파트너십 확대를 기본으로 해왔습니다. 몰락하던 왕국을 재생시킨 신호탄은 픽사와 마블스튜디오 인수였듯이 말이죠. 그래서 인도에서는 가입자 수가 많은 로컬 OTT ‘핫스타’를 인수해 디즈니 플러스 핫스타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디즈니 플러스를 띄우기 전에는 폭스를 인수해서 라인업에 심슨을 추가시키기도 했죠. 미국 OTT 시장에서 점유율 3위를 유지하고 있는 ‘훌루’도 디즈니의 자회사입니다(참고로 1위는 넷플릭스, 2위는 유튜브네요. 디즈니 플러스는 5위고요, 그 사이 4위는 아마존 프라임이 차지했습니다).

한국이나 일본, 인도네시아 같은 나라에서는 로컬 제작진과 파트너십 확대를 강화하고 있습니다. 내년에 아태지역에서 50여편의 신작을 발표하겠다고 하는데, 싱가포르에서 공개된 것만 30종에 달합니다. 그 중 13편이 한국어 오리지널이고요. 디즈니의 구원투수라 불리는 밥 아이거가 CEO로 복귀하고 나서 당장 수익성 개선이라는 숙제를 안고 확장 중심으로 짰던 디즈니 플러스의 전략을 재고하겠다고는 했지만, 오리지널을 만드는 콘텐츠 투자를 당장 큰 폭으로 줄일 것으로 보이지는 않습니다. 물론, 어떤 콘텐츠 투자해야 할지, 그 결정에 신중해질 수는 있겠지만요.

루크 강 아태지역 총괄도 쇼케이스에서 “아직도 시청자들은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더 많은 스토리를 원하고 있다”라고 말했는데요. 이는 아태지역의 영상 스트리밍 시청 시간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것도 반영되어 있습니다. 지역의 시청자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현지 오리지널을 강화할 수밖에 없죠. 종일 마블만 보라고 할 수는 없지 않겠어요? 특히 한국과 같은 나라에서는 디즈니가 오리지널을 만들지 않는다면 더 어려운 환경에 처할 수밖에 없고요. 넷플릭스가 강세를 보이고 있는 가운데, 티빙이 KT 시즌과 합병하면서 콘텐츠를 강화하고 있는 상황이거든요.

또 하나, 밥 아이거가 안은 숙제라면, 자신을 이을 차세대 리더 발굴입니다. 고령의 나이에 은퇴를 번복하고 앞으로 2년 동안 다시 디즈니를 이끌기로 한 시점에서, 자신 이후에 회사를 이끌 적임자를 찾아내는 것은 실적 개선만큼 중요한 부분이라는 것이죠.

그래서 CNN이나 CNBC 같은 매체들은 벌써 차세대 밥 아이거 찾기를 보도하고 있습니다. 특히 디즈니 내부의 인물을 살펴보면서 누가 또 다른 밥 아이거가 될 수 있을 것인지 자질검증을 하고 있는 것이죠. 이 작업이 왜 필요하냐면, CNN 보도의 일부를 인용하는 것으로 갈음하겠습니다.

“디즈니는 수백만명의 세계인으로 부터 사랑받는 라이프 스타일 브랜드이면서, 미디어 산업 전체의 변화 속도를 좌지우지 하는 기업이다.”


디즈니의 변화가 결국 미디어 업계 전체에 영향을 미칠 것이기 때문이라는 분석인데요, 바이라인네트워크가 2회에 걸쳐 디즈니 이야기를 들여보다 본 이유이기도 했습니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남혜현 기자> smilla@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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