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금법은 한국판 FTX 사태를 막을 수 있을까

세계 3위 글로벌 가상자산 거래소 FTX의 파산은 가상자산 시장에 많은 부작용을 남겼다. FTX 파산의 주원인은 ‘뱅크런(투자자들이 대규모로 자금을 인출하는 상황)’, 고객 자금에 대한 부실 관리 등이다. FTX는 기업 실사로 이같은 문제가 떠오르자 하루동안 4억5100만달러(약 6300억원)의 스테이블코인이 출금되는 유동성 위기를 겪었고 결국 파산에 이르렀다.

FTX 사태로 인한 글로벌 블록체인 기업의 줄파산은 연말까지도 이어갔다. 최근 외신에 따르면 미국 최대 비트코인 채굴업체인 ‘코어사이언티픽’이 텍사스 주에 파산 신청했다. 영국의 비트코인 채굴업체 아르고 블록체인, 그리니지 제네레이션 또한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는 상황이다. 미국 대표 가상자산 대부 업체 블록파이도 지난 11월 파산보호를 신청했다.

FTX가 초래한 시장의 위기는 세계 1위 가상자산 거래소 ‘바이낸스’ 또한 피할 수 없었다. 최근 바이낸스는 11억4000만달러의 이용자 자금이 순유출돼 우려를 낳은 바 있다. 미국 검찰이 바이낸스 경영진의 기소 여부를 검토하고 있고, 재무구조 투명성에 의심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시장은 ‘뱅크런’의 가능성도 점치고 있다. 이에 따라 바이낸스의 준비금을 증명해왔던 글로벌 회계법인 ‘마자르’ 또한 최근 바이낸스와 거래를 중단했다.

국내 거래소가 초연한 이유, 특금법

그러나 국내 거래소는 오히려 초연한 모습이다. FTX 사태 같은 사건은 국내에서 발생할 가능성이 없다는 것이다. 오유리 빗썸경제연구소 정책연구팀장은 “국내 원화 가상자산 거래소는 지난해 9월 ‘특정 금융거래정보의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특금법)에 따라 투자자 보호 조치를 엄격하게 이행 중이며, 향후 도입될 디지털자산법안을 통해 더욱 세밀한 투자자 보호 방안이 마련될 것”이라고 말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은행을 통한 고객 예치금 구분 보관 의무 ▲거래소 자체 가상자산 발행 및 담보활용 불가 ▲주기적인 재무제표 외부감사 및 실사보고서 공시 등 3가지 투자자 보호 정책으로 FTX 사태와 같은 사건이 국내에서 발생할 가능성이 원천 봉쇄돼 있다.

지난해 9월 시행된 특금법은 가상자산사업자(거래소)에 대한 의무로 ▲금융회사의 사업자에 대한 실명확인 입출금계정 발급 ▲정보보호관리체계 인증(ISMS) ▲대표자가 범죄경력이 없을 것 등을 제시했다. 또한 고객확인, 의심거래보고 등의 기본적 자금세탁방지의무와 이용자 별 거래내역 분리 등의 추가적인 의무를 부과했다.

금융 회사와 금융정보분석원장의 감독도 받게 했다. 거래소는 금융회사로부터 ‘가상자산 신고 의무 여부’ 등을 확인 받아야 하며, 금융정보분석원장으로부터 성명신고도 받아야한다. 자금세탁행위와 공중 협박자금조달행위를 방지하기 위한 목적이다.

황석진 동국대 교수는 “특금법이 시행되면서 대부분의 거래소가 정리되고 정제화됐다”며 “만일 특금법이 시행되지 않았다면 우후죽순처럼 거래소가 난립하면서 보호받지 못하는 투자자들이 몰렸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특금법에서 고객 자산을 분리하는 조항 등을 실시하고 있기에 최소한의 범주 내에서는 보호받을 수 있는 계기가 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고 전했다. 업계에 따르면 실제로 300여 개에 달했던 가상자산 거래소가 특금법 시행 후 30여 개로 줄어들었다.

특금법만이 답은 아니다

하지만 현재의 특금법으로는 국내에서의 ‘FTX’ 사례가 나타나지 않을 거라고 장담할 수 없다. 현재 특금법은 실명계좌 발급 기준이나 고객 예치금 구분 보관 같은 의무를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명시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 11월 고팍스의 가상자산 예치 서비스 ‘고파이’의 출금이 FTX 파산의 여파로 중단되기도 했다. 고파이는 2대 주주인 ‘디지털커런시그룹(DCG)’의 가상자산 중개 자회사 ‘제네시스’에 의해 운용되고 있었는데 제네시스의 상환이 FTX 파산으로 잠정 중단되자 출금이 막힌 것이다. 당시 고팍스 측은 글로벌 블록체인 인프라 업체와 유동성 공급 등의 협력을 위한 ‘투자 의향서’를 체결했다고 설명했다. 구체적인 업체와 협력 방안에 대해서는 밝혀지지 않았다.

현재 진척 상황에 대해 고팍스 관계자는 “실사가 잘 진행 중이며, 진행 상태가 길어지고 있으나 6주 간의 검토 이후 업데이트를 다시 할 수 있을 것”이라며 “제네시스 상황도 계속해서 모니터링 중”이라고 말했다. 자금난과 관련한 지적에는 “고객이 예치한 자산대비 101.5% 이상 보유 중이며 언제든 입출금이 가능하다”고 강하게 부인했다.

황 교수는 “자산은 분리하기는 했는데, 그 자산을 어떻게 관리하고 있는지에 대한 부분은 전혀 규제되고 있지 않고 있다”며 “한꺼번에 돈을 찾는 투자자들이 몰릴 경우 거래소들이 이를 감당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 있다”고 전했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현재 거래소들은 특금법에 따라 기업 고유재산과 이용자 자금을 분리해서 개별 보관하고 있으나, 기술적으로 이를 어떻게 분리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는 상황이다.

특금법 시행으로 산업 내 기울기가 더 심화됐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본래부터 거래소 시장은 ‘독점 시장’이라고 볼 만큼 대형 거래소의 영향이 상당했는데, 원화마켓과 코인마켓이 구분되기 시작하면서 양극화가 심해졌다는 것이다.

특금법 시행 전 은행으로부터 실명 계좌를 확보한 거래소들만 특혜를 누리고 있다는 비판도 있다. 한 중소 거래소 관계자는 “금융 당국측은 은행은 사경제 영역이니 정부가 ‘감 놔라 배 놔라’ 할 수 없다는 추상적인 주장으로 시장을 방치하고 있고, 은행은 은행 나름대로 당국 눈치 보느라 실명 계좌 발급 기준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러한 상황 속 지난 11월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이 발의한 ‘디지털자산 시장의 공정성 회복과 안심 거래 환경 조성을 위한 법률 제정안(디지털자산 기본법)’에 관심이 쏠린다. 해당 제정안은 실명계좌 발급 개선 방안을 포함해 시세조종, 부정거래, 이용자 예치금과 사업자 고유재산의 분리 및 신탁 등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한 가상자산 전문가는 “일련의 악재들이 시장을 강타하면서 투자자 보호가 시급한 상황이 됐다”며 “특금법 가지고는 투자자 보호가 이뤄지지 않고 있기에 디지털자산법을 통해 해당 측면이 다뤄져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글.바이라인네트워크
<박지윤 기자> nuyijkrap@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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