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라인네트워크가 정보기술(IT) 업계의 살아있는 역사를 만납니다. IT 여러 분야에서 오랜 경험을 쌓아온 분들 그리고 기사로 쉽게 접하지 못했던 업계 내 실력자들의 얘기를 담아낼 예정입니다. 이런 분들을 최근 신조어로 ‘짬바’라고 칭하더군요. 짬바는 ‘짬에서 나오는 바이브’의 줄임말로 오랜 경험에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여유와 노련미를 뜻합니다. 성공한 창업자만이 역사를 만드는 것은 아니죠. 꾸준하게 자신의 길을 일궈온 열정피플의 연재를 이어갑니다. <편집자 주>

원윤식 네이버 대외커뮤니케이션 담당 전무 인터뷰
기자 되려다 현대정유 입사…전공 따라 홍보실 배정
데이콤사이버패스 당시 ‘인생에서 제일 열심히 일한 시간’
이재웅 다음 창업자 ‘친하면서도 까다로웠던 상사‘ 회고하기도

[IT짬바]를 기획할 당시, 퍼뜩 떠올린 인물 중 한 명이 원윤식 네이버 대외커뮤니케이션 담당 전무다. 원 전무는 국내 IT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다음(현 카카오)과 네이버라는 양대 포털 회사에 다닌 이력을 지녔다. 20년을 훌쩍 넘긴 경력자임에도 지금까지 대외 홍보로 필드를 누비는 몇 안 되는 인물이기도 하다.

그에게 IT짬바를 요청했더니, 인터뷰 당사자가 된다는 사실에 낯설어하면서도 흔쾌히 응했다. 물론 회사 허가를 우선시했다. 인터뷰를 해보니 천생 홍보인이다. 그야말로 ‘자기 PR’의 도사였다. 기업 홍보만 했던 그에게 ‘본인을 자랑하셔도 된다’고 주문했더니, 그동안 꾹꾹 참아왔던 말문이 터진 것일까. 당최 인터뷰가 끝이 날 줄 몰랐다. 여차저차 인터뷰를 끝낸 직후, 어질어질했던 기자의 기억을 되짚으며 원 전무의 홍보 인생사를 풀어본다.

“제가 신방과잖아요. 기자가 되고 싶어서 언론사 시험을 맨날 치러 다녔죠. 그런데 안 되는 거예요. 당연히 안 되지, 실력이 안 되니까(웃음). 중앙 일간지만 생각을 했죠. 그땐 많이 뽑을 때도 아니었어요. 결국 그 길을 접고, 1996년도에 기업체로 가자해서 간 곳이 현대정유였어요. 신방과다보니 홍보실로 배정하더라고요. 거기서 4년반을 있었네요.”

원윤식 네이버 대외커뮤니케이션 담당 전무

원 전무는 현대정유에 몸담으면서 IT기업이 밀집한 테헤란밸리의 중흥기를 마주하게 된다. 회사 동기들과 ‘거기에선 지나가던 개도 만원짜리를 물고 다닌다더라’는 우스갯소리를 나누면서 IT 업계로 이직을 고민하게 된다. 그는 ‘돈을 더 벌기 위해서였다’고 솔직한 이유를 댔다.

“현대정유를 나오면서 다 될 줄 알았어요. 회사 나올 때 회식하면서 금의환향해서 술 한잔 제대로 쏘겠다고 해서 나갔는데, 안되더라고요. 그때 정보가 너무 부족했죠. 뉴스만 보고 얘기만 했지, 실질적인 정보가 아무것도 없었죠. 구인 사이트를 들락날락했습니다. 그러다가 갔던 곳이 드림컴이라는 홍보대행사였어요. 그땐 홍보대행사가 있는 줄도 모르고, 어떤 구조로 돌아가는지 모르고 들어갔어요. 일주일 만에 야반도주했죠(웃음). 이후 디지털랭크라고 11개 대기업이 출자해서 만든 마케팅회사에도 있었습니다.”

디지털랭크는 현대정유를 포함한 현대 계열사, 삼성전자 등 삼성 계열사, LG텔레콤 등 LG계열사를 더해 국내 굴지의 11개 기업이 인터넷 마케팅을 위해 설립한 회사다. 3개월여 몸담으면서 현대정유를 나오면서 했던 다짐을 되새겼다. 그는 ‘돈을 벌 수 있는 곳이 아니’라는 현실적인 이유로 다시 이직을 고민하게 된다.

“이후에 간 곳이 데이콤사이버패스였어요. 데이콤(LG유플러스 전신) 내에서 사내벤처로 있던 곳이 스핀오프된 곳이었죠. 사이버패스가 일종의 페이예요. 지금은 페이(간편결제)가 대세인데, 그때 너무 일찍 시작한 측면이 있었습니다. 카드 번호를 제휴 쇼핑몰에 입력하면 결제가 됐는데, 약간 좀 복잡했죠. 돌이켜보면 인생에서 제일 열심히 했던 시간이 그때였습니다. 업계 선수로도 소문이 났고요(웃음). 사이버패스가 될 것이라 생각했고, 여기저기 제대로 된 홍보를 해서 많이 알려지고 투자도 많이 받아 회사가 잘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 때문에 진짜 열심히 했습니다. 소재가 없으면 인물이라도 발굴해서 기자들을 끊임없이 쫓아다녔죠. 안 만나주면 그 앞에서 기다리고 이랬던 열정이 있었던 거 같아요. 기자분들 중에 ‘이 자식 열심히 하네’라고 보신 분도 있었고, 회사 내부에서도 인정을 많이 받았습니다.”

업계 내에서 원 전무(당시 팀장)의 이름이 알려지면서, 이직을 제의하는 곳이 속속 생긴다. ‘아이러브스쿨’에 간 계기도 그랬다. 아이러브스쿨을 다시 일구겠다는 당시 대표가 거듭 이직 제의를 뿌리치는 그에게 삼고초려를 했다.

“결국 아이러브스쿨에 갔는데, 3개월 만에 경영진이 교체되더라고요. 이후 제가 나오겠다 했죠. 그러고 나서 다음(현 카카오)에 자리가 있다는 것을 알고 지원했습니다. 2001년 말이었죠. 기자들이 가지 말라고 많이 말렸어요. 경력을 업그레이드하고 새로운 일을 도모하고 싶어서 결국 갔는데, 기자 중 한 분은 술 마시면서 적극 말리시기도 했고요(웃음).”

2005년 다음 포털 당시 모습 (출처: web.archive.org)

이재웅 다음 창업자는 이른바 ‘센캐’다. 기자들과도 부딪혔다. 대표와 수시로 의견교류가 필요한 기업 홍보로서는 같이 일하기가 쉽지 않은 인물이다. 그의 기업 홍보에 대한 이해가 남달랐던 부분도 있다. ‘우리가 언론에 정보를 주는데, 돈을 받아야 하는거 아닌가’라는 홍보관도 잠시 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홍보가 그런 게 아니다. 이 대표님이 생각하는 것처럼 녹록한 곳이 아니고 홍보 바닥이 거칠다고 말씀드렸죠. 이해해달라고 했죠. 많이 친하게 지내면서도 저한테 싫은 소리도 많이 하셨던 양반이예요(웃음). 술도 많이 마시고 일도 많이 했죠. 당시 현대정유 물이 덜 빠져서 넥타이에 양복을 입고 대표 옆자리로 출근했는데, ‘옷 좀 갈아입어’라고도 하시더라고요. 그러면 ‘저는 대표님은 대표님 일을 열심히 하십시오. 저는 제 일을 하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까다로운 상사는 맞아요. 대표 집으로 가서 술 먹으면서 많이 풀기도 했어요.”

그때 업계 맞수였던 네이버가 IT 업계에서 급부상하는 중이었다. 다음을 위협했다. 지금은 필드 홍보에서 한발 물러난 채선주 네이버 대외·ESG 정책 대표와 첫 만남도 이뤄진다.

“어느 하루는 이재웅 대표가 이해진 (네이버) 창업자와도 아는 사이니까 보는 자리에 같이 가겠냐고 묻더라고요. 그 자리에 채선주 대표도 데리고 나온다고 했었죠. 그때 처음 본 인연이 지금까지 이어질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다음 IT짬바 편에서 이어집니다.


글.바이라인네트워크
<이대호 기자> ldhdd@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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