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짬바] “카드 결제 단말기 역사 가운데 ‘페이콕’이 있습니다”
바이라인네트워크가 정보기술(IT) 업계의 살아있는 역사를 만납니다. IT 여러 분야에서 오랜 경험을 쌓아온 분들 그리고 기사로 쉽게 접하지 못했던 업계 내 실력자들의 얘기를 담아낼 예정입니다. 이런 분들을 최근 신조어로 ‘짬바’라고 칭하더군요. 짬바는 ‘짬에서 나오는 바이브’의 줄임말로 오랜 경험에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여유와 노련미를 뜻합니다. 성공한 창업자만이 역사를 만드는 것은 아니죠. 꾸준하게 자신의 길을 일궈온 열정피플의 연재를 이어갑니다. <편집자 주>
권해원 페이콕 대표 인터뷰
이동식 카드 결제 단말기부터 스마트폰 카드결제까지 ‘개발’
창업 초기 규제 해소 위해 보안성 입증에 심혈
규제해소로 투자자들로부터 러브콜 받아
서울시 광진구에 위치한 한 사무실. 여기저기서 걸려오는 전화를 받느라 권해원 페이콕 대표는 바쁘다. 투자 빙하기라는 말이 무색하게 권 대표는 투자사들로부터 끊임없는 러브콜을 받고 있다. 일주일에 투자사 미팅만 두세건은 된다. 페이콕은 어느 때보다 뜨거운 요즘을 보내고 있다.
어려운 시기에도 페이콕이 투자사들에게 러브콜을 받는 것은 지난해 규제가 완화되면서다. 올해로 업력 8년차를 맞은 페이콕은 스마트폰 단말기 서비스를 제공한다. 카드 리더기 같은 별도 장비 없이 스마트폰으로 카드결제를 할 수 있다. 스마트폰이 단말기의 역할을 하는 셈이다. 페이콕의 사업은 지난해 법적으로 정식 서비스로 인정받으면서 순풍이 불기 시작했다.
그러나 페이콕의 사업이 처음부터 순항한 것은 아니다. 권 대표는 지금의 사업성을 인정받기까지 끊임없는 인내와 노력이 필요했다고 말한다. 모든 핀테크 업계가 그랬듯 페이콕의 사업도 규제에 없었다. 권 대표는 금융당국을 직접 찾아가 사업성과 보안성을 인증하고 사업권을 따내야했다.
“페이콕 사업 초기엔 규제 때문에 힘들었다. 서비스의 혁신성은 인정을 받았지만, 몇 년간 금융당국에 드나들면서 끊임없이 보안성을 입증해야 했다. 결국 규제가 풀리면서 사업의 불확실성이 사라졌다.”
권 대표가 업계에 처음으로 몸을 담은 것은 90년대 초반이다. 그는 한국정보통신 판매사 기술 엔지니어 생활을 6개월 하다 영업직으로 직접 현장을 뛰었다. 당시 만해도 국내에는 카드 결제 시스템이 없어서 일본이나 미국의 시스템을 수입해야 했다. 권 대표는 주로 외국인이 많이 찾는 명동이나 공항 등에 카드 결제 시스템을 구축하는 일을 했다.
영업직으로 현장을 경험한 권 대표는 유통업계에서 카드 결제 시스템에 대한 니즈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러나 수입해 온 카드 결제 시스템은 한국의 환경에 맞지 않았다. 일본과 미국은 표준전압으로 110V(볼트)를 사용하지만, 한국은 220V를 사용해 과전류로 인한 고장이 잦았다. 권 대표는 오랜 고민 끝에 몸담고 있던 한국정보통신과 이동통신사와 손잡고 이동식 카드 결제 단말기를 개발했다. 그때가 1997년이었다.
“IMF 위기가 닥친 시기, 카드 결제 시장은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당시 정부가 결제 시 카드를 의무적으로 받도록 법제화를 했기 때문이다. 1997년도에만 카드 거래액이 300% 가량 성장할 정도였다.”
권 대표가 이동식 카드 결제 단말기를 만들게 된 것은 한 피자 프랜차이즈의 요청을 받으면서다. A 피자 프랜차이즈는 배달 전문점이었다. 신용카드 사용이 급증하던 당시, A사는 배달을 갔다가 카드를 받지 못하고 돌아오는 일이 일쑤였다. 결국 A사는 권 대표에게 배달을 가서 카드 결제를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해달라는 부탁을 했다.
권 대표는 통신사와 협업해 2G 통신을 활용한 이동식 카드 결제 단말기를 개발했다. 단말기를 도입한 A 피자 프랜차이즈점은 카드결제를 받게 되면서 매출이 급상승했고, 국내 상위권 피자 브랜드에 이름을 올렸다는 것이 권대표의 주장이다. 이후 대형 유통점, 면세점, 대기업 등도 권 대표가 개발한 이동식 카드 결제 단말기를 도입했다. 권 대표는 이동식 카드 결제 단말기를 고도화하는 등 10년 간 사업을 이끌었다.
그러던 어느날 권 대표는 새로운 것에 주목했다. 2010년대 초반 보급화된 스마트폰은 권 대표에게 아주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스마트폰은 PC와 달리 항상 전원이 켜져 있는 상태로, 권 대표는 스마트폰이 카드 결제 단말기로 제격이라고 봤다. 스마트폰 중에서도 어떤 기술을 활용할지 고민하던 그는 ‘광학식 문자판독장치(OCR)’ 기술을 활용해 결제 서비스를 만들었다.
스마트폰으로 카드결제 시 신용카드 이미지를 찍어 올리면 자동으로 카드 정보가 입력되고 결제가 이뤄지는 오늘날의 바로 그 결제 서비스다. 이때 카드 이미지나 데이터는 실시간으로 보안 전송 처리가 된다. 권 대표는 이 기술이 승산이 있다고 보고 곧장 특허를 출원했고, 2015년 페이콕을 창업했다.
그러나 야심찬 도전과 달리, 제도는 뒷받침 되어 주지 않았다. 단말기 없이 결제할 수 없는 당시의 법으로 페이콕은 창업을 했지만 서비스를 할 수 없는 처지에 놓였다. 그럼에도 권 대표는 서비스 고도화와 기술 개발에 매진했다. 권 대표는 창업 2년 뒤인 2017년, OCR 기술 외에도 근거리무선통신(NFC) 기술을 활용해 결제할 수 있는 서비스를 개발했다. 이 시기에 스마트폰에 NFC 기술이 탑재됐기 때문이다. 스마트폰 뒷면에 신용카드를 갖다 대면 결제가 이뤄지는 방식이다.
이때 보안기술을 입증하기 위해 권 대표는 국방부 등 정부기관의 보안 시스템을 점검해주는 회사에게 약 6개월간 OCR 보안 테스트를 받기도 했다. 또 스마트폰의 트러스트 존을 활용한 보안 기술에 대한 검증도 받았다. 페이콕이 오늘날 삼성전자와 손잡을 수 있었던 배경이다. 삼성전자는 자체 보안 플랫폼 녹스의 트러스트 존에 페이콕의 보안키를 활용한다.
보안은 권 대표가 강하게 자부하고 있는 대목이다. 보안에 대한 자신감은 누구보다 컸기에 당국에서도 페이콕의 서비스를 혁신금융서비스로 지정해줬다. 덕분에 페이콕은 당장 서비스를 운영할 수 있었지만 규제의 불확실성은 여전했다.
“핀테크 서비스를 사업화하기 어려운 이유는 보안을 증명하지 못하면 어느 국가나 기관이든 받아주지 않기 때문이다. 페이콕이 8년이라는 기간 중 3년은 보안성을 증명하는데 시간을 썼다. 2017년 국가정보원 등 국가기관을 찾아가 보안성을 인정받을 정도였다. 후배 창업자들에게 국정원에 가서 보안성을 인정 받을 수 있는 배짱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확실한건 두드리면 열린다는 것이다.”
페이콕은 올해로 업력 8년차다. 그럼에도 권대표가 “페이콕은 이제 시작”이라고 말하는 것은 작년 12월 규제가 완화됐기 때문이다. 단말기 없이도 결제가 가능하다는 내용의 여신전문금융업법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페이콕의 사업은 법적 테두리 안에 진입했다. 그토록 바라던 법적 불확실성이 해소되던 순간이었다. 이때부터 페이콕은 투자자들로부터 러브콜을 받기 시작했다.
권 대표는 페이콕의 해외 진출을 위한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회사의 파트너사로 비자(VISA), 마스터카드, 미국 결제솔루션 기업 파이서브 등이 있다. 비자, 마스터카드 등이 만든 표준인 EMV 규격 승인을 기다리고 있다. 권 대표는 승인이 나는 대로 27개국에 OCR, NFC 방식의 결제 서비스를 공급할 계획이다. 빠르면 내년 2분기 안에 승인이 마무리되고 사업을 시작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사업 합법화와 함께 몰려오는 투자자들의 러브콜에도 권 대표는 여전히 불안하다고 말한다. 그간 규제의 불확실성을 경험해온 만큼 규제의 중요성을 몸소 깨달았고, 시장의 니즈가 없으면 서비스를 유지하기 어렵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여전히 기쁨보다 불안감이 더 크다. 장애물은 모두 비켜갔지만 시장이 서비스를 받아들이는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국산 서비스에 대한 사용자들의 호응이 없거나, 투자사들이 핀테크를 바라 보는 편견이 없어지지 않으면 여전히 국내에서 사업이 힘든 것은 사실이다. 다행인 점은 금융 당국에서 시장에 대한 서비스 니즈가 있다면 규제해소를 위한 의지가 충분하다는 점이다. ”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홍하나 기자>0626hhn@byline.netwo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