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라인네트워크가 정보기술(IT) 업계의 살아있는 역사를 만납니다. IT 여러 분야에서 오랜 경험을 쌓아온 분들 그리고 기사로 쉽게 접하지 못했던 업계 내 실력자들의 얘기를 담아낼 예정입니다. 이런 분들을 최근 신조어로 ‘짬바’라고 칭하더군요. 짬바는 ‘짬에서 나오는 바이브’의 줄임말로 오랜 경험에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여유와 노련미를 뜻합니다. 성공한 창업자만이 역사를 만드는 것은 아니죠. 꾸준하게 자신의 길을 일궈온 열정피플의 연재를 이어갑니다. <편집자 주>

통신칩 엔지니어에서 부품 유통업체 지사장까지… “확장이 성장 동력”
반도체 인력 수급, ‘기회’ 관점서 개발도상국까지 넓게 봐야

“40년 전으로 돌아간다면 다시 반도체 산업에 종사 할 거냐고요? 에이, 일단 난 과거로 안 돌아갈래. 우리네는 어렵던 시절부터 살아왔는데, 이 좋은 세상을 경험하고 다시 과거로 돌아가겠다는 생각은 잘 안들어요. 하지만 과거를 돌아보면서 ‘그 때 참 값진 경험 많이 했다’는 생각은 자주 하죠.”

만약 40년 전으로 돌아간다면 다시 반도체 업계에 뛰어들 것이냐는 질문에, 김용춘 에브넷코리아(AVNET Korea) 지사장은 이 같이 답했다. 그는 35년 간 반도체 기업에 몸담았던 인물로, 이병철 전 삼성전자 회장의 ‘도쿄 선언’ 당시에도 업계에 종사하고 있었다.

김용춘 에브넷 지사장

김용춘 지사장이 처음 반도체 업계에 발을 들인 시점은 1988년이다. 지금은 아날로그 반도체로 유명하지만, 당시에는 통신칩으로 이름을 알렸던 내셔널 세미컨덕터(National Semiconductor)가 그의 첫 직장이다. 김 지사장은 내셔널 세미컨덕터에서 엔지니어로서 주문형 반도체(ASIC) 디자인 업무 담당으로 입사했다. 하지만 추후 제안을 받아 회사 내에서 영업 직무로 전환했고, 1997년에는 영국 반도체 대리점 메멕(Memec)으로 이직해 본격적으로 영업을 시작했다.

이후 그는 다시 첫 회사 내셔널 세미컨덕터로 복귀해 한국지사장을 담당했고, 2017년부터 지금까지는 전자부품 유통업체 에브넷 한국지사를 이끌고 있다.

김용춘 지사장의 이력은 한 마디로 ‘확장’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통신칩 엔지니어 시기에는 정해진 소수의 사람과 소통하면 됐지만, 영업 직무를 담당하면서 소통해야 할 사람이 늘어났다는 것이 김 지사장의 설명이다. 또 그는 처음에는 통신칩에 국한된 기업에 몸담고 있었으나, 거의 모든 영역의 전자부품을 유통하는 업체로 이직을 했다.

김용춘 지사장은 과거를 회상하며 “변화를 겪으면서 세상 넓은 줄 알게 됐다”고 말했다.

“한 분야에 국한된 엔지니어는 정해진 카테고리에서만 일하잖아요. 그런데 유통은 더 많은 부품을 다루게 되고, 그 중에서도 영업은 더 다양한 사람을 상대하게 되죠. 다루는 종목의 수도 많아졌고, 만나는 사람도 사장님부터 시작해서 테스트 엔지니어, 생산직 등 범주가 늘어났어요. 그 때 마치 태평양에서 헤엄치는 고래가 된 것 같았어요. 그제서야 아, 세상이 정말 넓구나 싶더라고요.”

통신을 전공했고 엔지니어의 삶을 살며 반도체에 대한 기술력을 갖출 수 있었던 김 지사장이다. 그럼에도 성향상 더 넓은 곳에 발을 디디는 것에 큰 가치를 느꼈기 때문에, 유통업체 지사장 자리를 담당할 수 있었다. 누군가에게는 한 분야를 외길로 파고드는 엔지니어가 천직이지만, 누군가는 다양한 경험을 하고 사람을 대하는 업이 맞는 옷이라고 그는 설명한다.


김용춘 지사장의 철학은 직원을 교육할 때에도 나타난다. 김 지사장은 한 직원에게 2~3년 간 특정 포지션을 담당하게 한 후, 성향을 파악해 또 다른 업무에 도전하도록 한다. 그가 여러 경험을 통해 성장하고 자신을 알아갔던 것처럼, 최대한 많은 것을 경험하고 자신을 아는 과정을 직원들도 거쳤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물론 한 곳에서 오래 일하면 노벨상 받을 정도로 기술력을 키울 수 있겠죠. 하지만 통상 3~5년 정도 회사에 근속하면 전반적인 업무 윤곽은 이해하게 되죠. 이 때 한 자리에 오래 뿌리박게 하기보다는 같은 회사 내에서도 최대한 여러 일을 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는 것이, 그 직원에게는 또 자신을 알아갈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 판단해요.”

김용춘 지사장은 인재 육성을 위해서는 ‘기회’ 관점으로 다가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근 반도체 업계에서는 인력 부족 문제가 지속해서 대두되고 있다. 우리나라 정부도 반도체 인재 양성을 위한 정책 마련에 팔을 걷어 붙인 상황이다. 대학에서는 반도체 전문가 양성을 위해 관련 학과를 개설하고, 주요 반도체 기업과 업무협약(MOU) 체결도 진행 중이다.

그 가운데 김 지사장은 인재 채용 풀을 더 넓게 고려하는 것이 우리나라에도, 다른 국가에도 도움이 된다고 강조했다. 이미 미국 내에서는 반도체 산업을 기피하고 다른 산업쪽으로 진로를 정하는 현상이 만연하다. 아무리 반도체가 중요하다고 강조하지만, 기술이 어렵다 보니 해당 산업에 뛰어들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다. 미국에서 기술을 배우는 학생은 주로 인도, 중국인 출신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 인력도 결국 본국으로 돌아가곤 한다.

하지만 조금만 생각을 바꾸면 기술 발전이 크게 이뤄지지 않은 국가, 즉 개발도상국에서 인재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이 김용춘 지사장의 설명이다. 김 지사장은 “주요 국가가 기술 발전이 이뤄지지 않은 국가에 교육을 제공했을 때, 그 안에서 또 다른 인재가 육성될 수 있다”면서 “글로벌 이야기를 하지만, 우리는 더 넓은 국가에 기회를 줄 수 있다”고 말했다.

김용춘 지사장은 은퇴한 사람도 고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제는 수명이 늘어나 정년퇴직 이후에도 제2의 삶을 준비해야 한다. 그 중 경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또 다시 업계에서 은퇴 후 제2의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고용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의견이다.

“은퇴한 사람의 경력은 매우 값지죠. 그런데 100세 시대라고 하잖아요. 퇴직 이후에 그냥 그 경력을 버리는 것보다, 특정 분야에서 조금은 적은 임금에 여유롭게 일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방안이 되지 않을까 싶네요.”

언제나 도전을 즐길 것 같은 김 지사장에게 가장 어려웠던 시기가 언제냐고 물었을 때, 그는 “지금”이라고 답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반도체 산업에 일어난 변화에 대해 김용춘 지사장은 ‘전례 없는 변화’임을 거듭 강조했다.


통상 반도체 품귀현상은 2~3년 간격으로 특정 제품에서 나타나곤 했다. 부품 부족의 원인을 파악하는 데에도 큰 어려움은 없었다. 하지만 코로나19 직후 발생한 반도체 수급난은 어느 분야 하나 특정할 것 없이 산업 전반에서 나타났다. 여기에 국가 간 분쟁, 인플레이션과 경기 침체 등의 여파로 시장이 급변하고 있다.

“아침에 눈을 뜨기가 싫을 정도였어요. 언론에도 여러 차례 반도체 수급난과 경제 불안정성에 대한 이야기는 많이 나왔기 때문에, 업계에서도 이미 공급망 불안정성을 이해를 하고 있긴 합니다. 그럼에도 35년 간 이렇게 반도체 시장이 급박하게 상황이 돌아가는 경험을 해본 적이 없으니, 대응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연쇄 작용 여파가 크거든요.”

단기적으로는 수요 공급을 좀 더 체계적으로 예측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반도체 공급망 불안정성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김용춘 지사장은 다른 무엇보다 국가 차원에서의 기술 경쟁력을 갖춰야 다른 국가에 휘둘리지 않고 우리의 산업을 안정적으로 영위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전 세계가 자국 경쟁력 강화에 혈안이 돼 있죠. 결국 누가 더 많은 기술을 가지냐가 관건일 텐데, 따라서 엔지니어가 기술 개발에 총력을 기울일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해야 해요. 이를 위해서는 정부의 노력이 빠질 수 없어요. 이미 미국이 전 세계 인력과 공장을 빨아들이려고 하고 있는데, 우리도 방안 마련이 필요해 보입니다. 그게 무엇이든 간에 말이죠.”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배유미 기자>youme@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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