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00억원 들여 반도체 키운다는 일본, 성공 가능성은?

일본 정부가 반도체 산업 진흥을 위해 700억엔(약 6700억원)을 들여 자국 내 대표적인 기업 8개사와 ‘래피더스(Rapidus)’라는 이름의 회사를 설립하기로 했으나,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되고 있다.

니시무라 야스토시 일본 경제산업장은 래피더스 출범 발표 당시인 지난 13일 “회사는 2027년 2나노 회로 선폭을 가진 반도체를 양산하고, 2030년에는 본격적으로 파운드리 사업에 진입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일본은 장인 정신을 기반으로 산업을 키워 왔기 때문에, 기초 기술과 소재⋅부품⋅장비 측면에서 강점을 가지고 있다. 여기에 래피더스는 ▲도요타 ▲소니 ▲소프트뱅크 ▲키옥시아 등 일본의 핵심 기업으로 구성돼 있다. 자국 내 유명한 자동차 회사와 기술 기업이 모인 ‘어벤저스’인 셈이다. 따라서 일본의 발표 직후에는 세계 각국이 긴장해야 한다는 언론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업계와 현지 언론은 래피더스의 성공 가능성에 대해 의구심을 드러내는 분위기가 읽힌다.

먼저 니혼게이자이신문, 요미우리신문 등 현지 언론은 “일본은 래피더스를 통해 5년 내 2나노 미만의 공정을 구현하겠다고 하는데, 현실적으로 가능할 지 미지수일 뿐만 아니라 나노 경쟁에만 집중해 구형 반도체 시장을 중국에 빼앗길 수도 있다”면서 “무작정 국고를 투입한다고 해서 성공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보도했다.

증권가와 업계에서 공통으로 꼽는 일본의 고질적인 문제점은 인건비다.

한 해외경제 연구원은 “일본 회사에 비해 대만 반도체 위탁생산 업체(파운드리) TSMC를 비롯한 해외 기업의 연봉이 더 높기 때문에, 일본 반도체 회사에서 근무하던 인력이 다수 유출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증권업계 관계자도 “일본은 현재 금리도 낮고 물가 상황도 좋지 않은데, 주요 기업 연봉도 몇십년 전과 동일하다”면서 “이렇다 보니 일본 내에 기술 엔지니어 인력이 부족한 실정”이라고 설명했다.

한국노동연구원에서 발간한 국제노동브리프 보고서에 따르면, 일본 기업의 임금은 1997년 경제위기 이후 거의 인상되지 않았다. 2021년 10월에 있었던 일본 중의원 선거에서도 노동자 임금이 지난 20년 간 인상돼지 않았다는 점이 화두가 되기도 했다. 그만큼 일본 내에서는 인건비 문제가 심각한 상황이다.

일각에서는 래피더스에 속한 주요 기업의 색깔이 다른 데다가, 일본 기업 문화 자체가 매우 보수적이라는 점도 연합군의 성공 가능성을 낮출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한다.

앞서 언급한 연구원은 “아무리 같은 일본 기업이라 해도 8개 기업 모두 색깔이 크게 다르다”며 “일본 주도로 했던 구조조정 중 성공하지 못했던 사례도 적잖았다”고 말했다.

앞서 언급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8개 기업의 타이틀만 놓고 보면 그럴싸해 보이지만, 각 기업 문화가 매우 보수적인 데다가 성격이 다 다르기 때문에 연합하기 어렵다고 본다”며 “아무리 정부가 손을 쓴다고 해도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을 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일본이 기술 장인정신을 가지고 있지만, 새로운 기술 트렌드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전자업계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일본의 기초과학 경쟁력과 소재⋅부품⋅장비 기술력은 인정한다”면서도 “하지만 산업 트렌드를 따라가기 위해서는 미국으로부터 기술 전수를 받아야 하는데, 미국 교육기관 내에 일본 출신 엔지니어는 매우 소수”라고 말했다.

해당 관계자는 이어서 “이 말은 곧 일본 엔지니어가 우물 안 개구리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음을 의미한다”고 덧붙였다.

다만 현재 TSMC가 일본 구마모토에 공장을 짓고 있기 때문에, 이를 중심으로 반도체 허브가 구축될 가능성은 있다. 일본은 반도체 제조에 특화된 기업을 보유하고 있지 않은데, 이를 TSMC가 해결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일본이 래피더스를 통해 승기를 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보기에는 어렵지만, 제조 허브를 구축하는 데에는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배유미 기자>youme@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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