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드 반도체]”적용 사례 늘려라” AI반도체 기업 전략은?

이제는 인공지능(AI) 산업의 경계가 희미해질 정도로 적용 범위가 매우 넓어졌죠. 가깝게는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스마트폰부터 시작해서 넓게는 의료와 공장 자동화까지 특정하기도 어려울 정도입니다. 그 과정에서 처리하는 데이터의 양도 큰 폭으로 늘어나고 있고요.

AI가 처리해야 할 데이터가 방대해지면서, AI반도체의 필요성도 커지기 시작했습니다. AI반도체는 쉽게 말해 인공지능 처리 속도를 높여주는 가속기를 말합니다. 한 번에 많은 양의 데이터를 받아들이고, 학습하도록 고안했습니다. 그간 AI 가속기 역할은 미국 반도체 설계업체(팹리스) 엔비디아가 주력하는 부문인 그래픽처리장치(GPU)가 담당하고 있었습니다. GPU는 들어오는 데이터를 한 번에 대량으로 받아들이고 처리하는 데 특화돼 있었거든요.

하지만 이름에서도 알 수 있다시피, GPU는 그래픽 처리를 위해 만들어진 칩입니다. 누군가는 AI처리를 GPU로 하는 것이 “책받침으로 무를 써는 것과 같다”고도 표현했습니다. 그만큼 한계가 있는 건데요, 그 여파로 세계 곳곳에서 AI반도체 개발업체가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국내에도 복수의 AI팹리스 기업이 존재합니다. 여러 기업이 각자만의 강점을 가지고 있지만, 그 중에서도 대중과 언론 사이에서 많이 언급되는 기업은 ▲퓨리오사AI ▲리벨리온 ▲사피온을 꼽을 수 있습니다. 이번 [인사이드 반도체]에서는 앞서 언급한 세 기업의 강점과 주요 전략, 그리고 AI반도체 기업의 필수 요소에 대해 다뤄보고자 합니다.

백준호 퓨리오사AI 대표

대표 토종 AI반도체 기업 퓨리오사, 국가사업 주력한다

국내 스타트업 중 국가 차원에서 많이 주목했던 AI반도체 스타트업으로는 퓨리오사AI를 꼽을 수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한국무역협회(KITA)에서는 지난 4월 퓨리오사AI에 대해 언급하면서 “2017년부터 4년간 고성능 AI반도체 개발에 필요한 하드웨어부터 소프트웨어까지 풀스택을 직접 개발해 왔다”면서 “장기간 연구개발과 투자가 필요한 AI반도체 분야에서 독보적인 경쟁력을 갖췄다는 점에서 이례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정통부) 장관도 첫 취임 직후 첫 행보로 퓨리오사AI를 찾았습니다. 이종호 장관은 국내 AI반도체 업체와 함께 산업 애로사항, 정부 요청사항 등에 대해 논의하는 자리를 마련했는데요, 당시 대표로 백준호 퓨리오사AI 대표가 종합토론에 앞서 대표발언을 했습니다. 퓨리오사AI가 정부 사이에서 어떤 입지를 다지고 있는 지 알 수 있겠죠.

업계에서는 퓨리오사AI가 소프트웨어 측면에서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고 평가합니다. 2021년 9월 진행된 AI반도체 성능 테스트 ‘MLPerF AI 벤치마크’에서 엔비디아보다 높은 성능을 보였거든요.

퓨리오사AI는 국책과제에 주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퓨리오사AI는 지난 2020년 과기정통부에서 주관하는 ‘차세대 지능형 반도체 기술개발’ 사업에서 서버 분야 주관기관으로 선정됐습니다. 2029년까지 2475억원을 투입하는 대규모 과제입니다.

앞서 언급한 국내 AI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퓨리오사AI는 광주과학기술원을 비롯한 국가사업에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고, 또 진심으로 임하는 중”이라며 “국내 AI반도체 산업의 첫걸음을 담당한 만큼, 국가의 기대도 한 몸에 받고 있다고 보인다”고 평가했습니다.

퓨리오사는 1세대 AI반도체 ‘워보이(Warboy)’의 개발을 마쳤고, 2023년 삼성 파운드리를 통해 양산 예정입니다. 이를 위한 2000억원 규모의 펀딩도 진행 중이고요. 여기에 AI솔루션 업체 업스테이지와도 협업해 AI칩 활용방안을 넓히기 위한 노력도 하고 있습니다.

박성현 리벨리온 대표

‘큰손’ KT 잡은 리벨리온, “데이터센터 로드맵 앞당겼다”

리벨리온은 퓨리오사AI와 함께 업계에서 주목받는 또 다른 AI반도체 스타트업입니다. 박성현 리벨리온 대표가 인텔, 월가의 모건스탠리, 일론 머스크의 스페이스X를 거치는 등 화려한 이력을 가지고 있어 주목받았죠. 여기에 IBM 왓슨연구소에서 AI반도체 수석 설계를 담당했던 오진욱 최고기술책임자(CTO) 등 인재를 영입하면서 ‘맨파워가 강한 기업’ 이미지를 남기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통신사 KT의 협력사로 이름을 알리고 있습니다. 지난 7월 KT는 리벨리온에 300억원을 투자하고, 전략적 협력을 통해 AI 경쟁력을 강화한다고 밝혔죠. 양사는 이를 기점으로 AI반도체 클라우드 환경을 적용한다고 밝혔는데요, 리벨리온 입장에서는 큰 고객사를 확보하게 된 셈이죠.

KT는 GPU 업계에서도 큰손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엔비디아도 KT의 요청사항이 있을 시 전담 지원팀이 한국에 방문해 응대를 할 정도라고 하죠. 지난 9월에는 엔비디아가 KT의 자사 GPU 적용 사례를 블로그에 게재하면서, 양사의 관계에 대해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일각에서는 KT가 리벨리온을 선택한 이유가 금융 부문을 고려했기 때문이라고 추측합니다. 한 통신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KT는 공공⋅금융 클라우드 부문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습니다. 또한 리벨리온은 초창기 금융 AI반도체를 먼저 출시한 후, 데이터센터향 칩을 출시해 고객사를 확대해 나가겠다는 전략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 부분에서 보면 어느 정도 사업 방향성이 맞아 떨어져 보입니다.

이 같은 추측에 대해 리벨리온 측은 “마냥 금융 부문에 대한 강점이 KT를 고객사로 확보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라며 “대부분의 AI반도체 기업이 비전 부문에 초점을 맞추고 있을 때 리벨리온은 비전, 언어 등 다방면으로 기술 개발을 하고 있었는데, 이 점이 긍정적으로 작용한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해당 관계자는 이어서 “원래는 금융 AI반도체 시장을 먼저 공략하려고 했던 것이 맞다”면서도 “하지만 KT를 고객사로 확보하면서 데이터센터 관련 로드맵이 크게 앞당겨졌다”고 덧붙였습니다.

이후에도 리벨리온은 자사 경쟁력 중 하나로 꼽았던 맨파워를 중심으로 고객사를 확보해 나갈 계획입니다. 이를 통해 국내뿐만 아니라 미국 등지에서도 시장을 넓히려는 시도를 하는 중입니다.

류수정 사피온 대표(출처: SKT)

대기업 기반으로 탄탄한 입지 다진 사피온

또 빼놓을 수 없는 기업이 있죠. 바로 사피온입니다. 사피온은 지난 2021년 12월 SKT로부터 분사해 나온 AI반도체 설계업체입니다. SKT는 2020년 AI반도체 개발을 시작해 왔는데요, 이 사업을 본격적으로 확대하기 위해 분사를 추진했죠. 본사는 실리콘밸리에 위치해 있고, 사피온 코리아가 국내와 아시아 지역 사업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사피온의 가장 큰 장점은 SKT를 배경으로 두고 있다는 점입니다. 국내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사피온은 SKT라는 대기업을 계열사로 두고 있기 때문에, 자금력을 어느 정도 확보하고 있다”며 “SKT의 서비스와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또 다른 AI반도체 업계 관계자도 “SKT는 AI컴퍼니로 거듭나겠다는 포부를 밝혔는데, 그만큼자사 칩을 적용할 수 있는 부문도 많아질 것”이라면서 “고객사 확보 측면에서는 계열사만 봐도 메리트가 있음을 알 수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일각에서는 사피온의 기술력이 다른 AI반도체 스타트업에 비해 낮을 것이라는 지적도 있었습니다. 사피온 인력 중 대부분이 SKT에서 전환된 케이스인데요, 반도체보다는 통신 쪽에 좀 더 강점을 가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통신과 AI반도체는 또 다른 기술이기 때문에, 한계가 있다고 본 셈이죠.

하지만 류수정 대표를 사피온을 이끌면서, AI반도체 경쟁력도 보완할 수 있었습니다. 류 대표는 2004년부터 삼성전자 종합기술원에서 모바일 그래픽처리장치(GPU)를 개발해 온 AI반도체 전문가거든요. 박정호 SK스퀘어 부회장도 류 대표를 영입하기 위해 많은 힘을 쏟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사피온은 지난 9월 MLPerf 벤치마크 시행 결과를 공개했습니다. 발표 내용에 따르면, 사피온이 출시한 X220은 데이터센터에서의 고성능 AI서비스 성능 측정 부문에서 엔비디아 최신 GPU A2 대비 2.3배 빠른 처리 속도를 기록했습니다. 물론 MLPerf의 8개 부문 모두 테스트를 진행한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경쟁력을 입증할 수 있었죠.

사피온은 고객사 확보에도 나서고 있습니다. 지난 9월30일에는 사피온이 NHN 데이터센터 ‘NCC(NHN Cloud Center)’에 X220 기반 인프라를 확대 구축했다고 밝혔죠. 류수정 대표는 해당 협업 사례를 기반으로 비즈니스 모델을 지속해서 개발하고, 정부 지원을 기반으로 국내 AI 생태계 조성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겠다는 의사도 밝혔습니다.

AI반도체 경쟁력, “고객사 확보가 핵심”

각 기업마다 사업 전략은 조금씩 차이가 있습니다. 이에 따라 추후 경쟁력도 달라지겠죠. VC 관계자는 “과거 CPU 시장처럼 특정 기업이 산업을 독식하는(Winner Takes All) 구조보다는 자율주행⋅데이터센터⋅IoT 등 특정 부문에서 강점을 가지고 있는 복수의 AI반도체 기업이 나올 가능성이 높다”며 “그 중 경쟁에서 살아남은 곳들이 제 2의 인텔, 엔비디아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결국 모든 AI반도체 업체에게 가장 중요한 요소는 고객사 확보 여부입니다. 국내 반도체 시장 전문가는 “아무리 제품 개발을 지속하고 있어도 고객사가 없으면 적용 사례를 만들 수 없는데, 이렇게 되면 레퍼런스를 쌓지 못할 뿐만 아니라 AI를 발전시키기 위한 데이터 확보에도 어려움을 겪는다는 이야기”라면서“결국 고객사 확보와 적용 사례 확대 여부를 통해 AI반도체 업체의 옥석을 가릴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배유미 기자>youme@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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