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팹리스 위탁생산 거절한 TSMC, 반도체 굴기 어쩌나

TSMC가 중국 AI반도체 스타트업 비런테크놀로지(Biren Technology, 이하 비런)의 칩을 생산하지 않기로 했다고 블룸버그통신 등 외신이23일(현지시각) 보도했다. TSMC는 미국의 수출규제를 대비하기 위한 조치라는 입장인데, 중국 기술 업계에는 타격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자료: 비런테크놀로지)

비런은 2019년 9월 설립된 중국 그래픽처리장치(GPU) 업체로, 최근 공개한 칩은 BR100이다. 비런은 학술행사 핫칩스 34(Hot Chips 34)에 참석해 BR100 시리즈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당시 비런 측은 “BR100은 TSMC 7나노 공정으로 생산되며, 엔비디아 고성능 GPU A100보다 2.8배 빠르다”고 강조했다.

중국이 비런을 비롯한 자국 내 반도체 기업에 많은 투자를 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최근 미국이 강도 높은 제재를 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정부는 지난 9월 엔비디아에 대중국 제품 판매 규제를 강화한 바 있다. 중국은 엔비디아로부터 A100, H100 등 데이터센터용 GPU를 받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중국은 고성능 GPU를 공급할 수 있는 다른 방안을 부랴부랴 찾아 나서기 시작했다. 현재 중국은 반도체 외에도 인공지능, 양자컴퓨팅, 자율주행 등 신산업 개발에도 힘을 주고 있다. 해당 산업은 모두 고성능 반도체를 기반으로 한다. 업계에서는 엔비디아의 중국 쪽 매출 비중이 25%가량 된다고 본다. 엔비디아가 전 세계에 GPU를 공급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대중국 수출 비율이 적잖음을 알 수 있다.

대안을 마련하기 위해 정부가 주목한 기업은 비런이다. 반도체 시장 전문가는 “중국 내에서 실시한 벤치마크이기 때문에 실제 성능은 제품을 공식적으로 보급한 이후에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도 “그럼에도 중국이 이렇게 기업이 호언장담할 수 있는 데에는 뒤에 정부 차원에서 밀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하지만 TSMC가 비런의 첨단 칩 위탁생산을 중단한다고 밝혔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등 외신은 그 이유에 대해 “아직 미국 정부가 TSMC에 중국 제품을 위탁생산하지 말라고 요구하지는 않았다”면서도 “하지만 정황상 미국의 대중국 제재가 강화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선제적으로 비런 제품을 생산하지 않겠다고 한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TSMC의 이 같은 조치로 중국의 반도체 산업 계획에도 다소 차질이 생길 전망이다. 비런 BR100은 7나노 공정으로 생산되는데, 현재 중국에서는 TSMC만큼 안정적으로 7나노 반도체를 생산할 수 있는 기업이 없기 때문이다.

중국 파운드리 점유율 1위를 달리고 있는 중신궈지(SMIC)가 7나노 반도체 생산 기술을 보유하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이 또한 구형 장비를 사용해 생산하기 때문에 한계가 있을 뿐만 아니라, 수율도 낮아 상용화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물론 중국이 7나노 미만의 선단(Advanced) 공정에 필요한 극자외선(EUV) 노광장비 장비를 들이면 가능성을 점쳐볼 수 있다. 하지만 현재 미국이 해당 장비 제조업체인 ASML에 EUV 노광장비 대중국 수출 금지 조치를 취하고 있기 때문에, 당장 7나노 반도체를 생산하기에는 무리가 있는 상황이다.

중국 내에서는 나름의 준비를 하는 중이다. 이미혜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 선임연구원은 “현재 중국은 반도체뿐만 아니라 장비 부문에도 투자 규모를 늘리기 시작했다”면서 “반도체 산업에 대한 중국 정부의 이해도가 높아진 만큼 구체적인 지원 방안이 나오고 있고, 생태계도 체계적으로 조성하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중국이 아무리 재정적인 지원을 해도 기술 외교가 이뤄지지 않으면 언젠가 또 한계에 봉착할 수밖에 없다는 의견도 제기되고 있다.

한 글로벌 주요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반도체 산업 자체가 많은 기술력을 요구하는데, 단순히 돈만 투자한다고 부족한 기술이 해결되지는 않는다”면서 “결국 다른 국가와 생산⋅소프트웨어⋅장비 측면에서 협업 체제를 구축하지 않으면, 반도체 산업에 차질이 생기거나 발전 계획이 늦어지는 것은 불가피하다”고 설명했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배유미 기자>youme@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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