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드 반도체] 중국과 불장난 말라는 미국 정부, 눈치 보는 애플

애플이 중국과 밀월 관계를 맺어 왔다는 이야기, 관심 있는 분들이라면 들어보셨을 겁니다. 미국 정부의 제재와 별개로 애플은 중국과 꽤 깊은 관계를 유지하는 모습을 보여 왔습니다. 지난 해 말에는 애플이 중국에 저자세를 취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사업을 영위하기 위한 비밀계약 체결까지 한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죠. 분명 당시에는 미국이 중국 반도체 산업을 제재하고 있을 때였는데 말이죠.

그런데 최근 미국 정부가 애플이 중국과 교역하는 모습을 두고 “불장난 하지 말라”고 으름장을 놓았습니다. 코로나19 팬데믹 직후만 해도 미국 정부는 불안정한 공급망 때문에 자국 기업에는 대중국 교역을 암암리에 어느 정도 허용하는 분위기였는데요.

반도체 지원법 통과 이후에는 자국 기업에도 꽤 강한 제재를 가하고 있습니다. 특히 애플의 경우 그간 중국 시장으로부터 적잖은 이익을 취해 오고 있었기 때문에, 미국 정부의 비판이 대중에게 더욱 부각됐습니다. 이번 인사이드 반도체에서는 애플과 중국의 관계와 추후 교역 측면에서의 전망에 대해 다뤄보고자 합니다.

애플은 왜 중국과 손을 잡았을까

애플과 중국은 부품 공급, 생산 등 다방면에서 협업하고 있습니다. 먼저 디스플레이부터 살펴볼까요. 그간 애플은 삼성디스플레이와 LG디스플레이, 두 업체로부터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패널을 공급받아 왔습니다. 하지만 애플은 아이폰 12, 13 제품 일부에 중국 디스플레이 업체 BOE OLED 패널을 탑재하기 시작했죠. 이번에 선보인 아이폰14에도 BOE OLED를 일부 적용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메모리 부문에서도 비슷합니다. 그간 애플은 삼성전자, SK하이닉스의 낸드플래시를 적용해 왔습니다. 하지만 미국 IT매체 더레지스터 등 외신은 애플이 중국 내수용 아이폰14에 중국 메모리 업체 양쯔강메모리테크놀로지스(長江存儲, 이하 YMTC) 낸드플래시를 사용할 것이라고 보도했습니다.

물론 애플은 YMTC 제품을 중국 물량에만 탑재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YMTC가 애플과의 협업을 계기로 영향력을 넓혀갈 것이라고 우려했죠. 대만 매체 디지타임스는 “애플이 YMTC의 손을 잡은 이상 한국 메모리 기업의 좋은 날은 얼마 남지 않았다”고 보도했습니다.

미국 정부는 그렇게 반도체 기업을 대상으로 중국과 교역하지 말라고 강조하는데, 애플은 중국과 계속해서 손을 잡아 왔습니다. 애플이 중국을 놓지 못했던 이유는 중국 스마트폰 시장에서 아이폰이 차지하는 점유율이 꽤 높기 때문입니다.

시장조사업체 카운터포인트리서치에 따르면, 애플은 지난해 4분기 중국 스마트폰 시장에서 23%의 점유율을 기록하며 1위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비보, 오포 등 중국 스마트폰 업체는 시장점유율 20% 미만이었고요. 그만큼 애플은 중국에서 적잖은 재미를 보고 있었습니다.

애플이 중국과 밀월관계를 맺는 또 다른 이유 중 하나는 공급망 강화의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세계적으로 거시경제(매크로) 불확실성이 상존하고 있기 때문에, 하나의 국가, 하나의 기업에만 의존해 부품을 공급받기에는 위험하다는 겁니다.

한 글로벌 주요 전기전자 업계 관계자는 “애플이 중국에 손을 뻗었던 이유는 낸드플래시나 디스플레이 공급처를 다변화하기 위한 전략 중 하나”라며 “단순히 중국으로 옮겨간다, 라는 것보다는 공급망을 고려한 판단”이라고 말했습니다.

그 중에서도 애플이 중국을 선택했던 이유는 중국에 좋은 인프라와 적합한 노동력을 갖추고 있으며, 물류 시스템 또한 높은 수준이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입니다. 우선 중국은 한국과 대만 등 부품을 공급하는 국가들과 가까운 위치에 있죠.

여기에 중국은 물류 산업 규모뿐만 아니라 관련 기술 수준도 큰 폭으로 높였는데요, 애플은 이 같은 요인이 공급망 안정화에 도움이 된다고 본 것입니다.

다만 애플이 조금씩 중국 의존도를 낮추기 시작한 시점이 있습니다. 바로 중국이 코로나 확산을 막기 위해 내린 강력한 방역 조치, 일명 ‘제로 코로나(Zero COVID-19)’ 정책을 펼쳤을 때입니다.

이 때 상하이, 베이징등 중국 경제 핵심 도시뿐만 아니라 여러 생산라인이 밀집한 선전시 등 여러 도시가 봉쇄되면서 공급망에도 차질이 생긴 적이 있었죠. 이 때부터 애플은 중국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베트남, 인도 등지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애플이 중국과 완전히 교역을 놓겠다는 입장은 아니었습니다. 그간 중국과 쌓아온 공급망 생태계가 있다 보니, 국가를 옮기는 것이 마냥 쉽지는 않거든요. 따라서 애플은 여전히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인도⋅베트남에 눈 돌리는 애플

그런데 미국 정부가 제대로 뿔이 났습니다. 복수의 미국 의원은 애플이 중국과 교역하는 모습, 특히 YMTC와의 교역에 대해 “애플이 불장난을 하고 있다(Playing with fire)”며 강경하게 비판했습니다.

마르코 루비오(Marco Antonio Rubio) 미국 연방 상원 정보위원회 부위원장은 “애플이 만약 중국과의 관계를 더 진전시킨다면 전례 없는 조사를 받게 될 것”이라며 “중국 공산당에 기대 영업하는 회사가 미국 통신망과 스마트폰에 들어오도록 내버려둘 수 없다”고 경고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난 달 말 미국 정부는 엔비디아에도 대중국 AI반도체 수출 규제를 더 까다롭게 했습니다. 미국 정부는 엔비디아의 제품이 중국군에 사용될 위험을 줄이기 위해 대중국 수출에 대한 새로운 라이선스 요건을 제시했는데요.

엔비디아의 엔터프라이즈용 AI 인프라 시스템 DGX 신제품이 규제 대상에 해당합니다. 이처럼 미국 정부는 자국 기업에도 압박을 넣고 있는 상황인데, 애플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애플도 이 같은 상황을 인지하고 있는 분위기입니다. 우선 메모리나 디스플레이 수급은 우리나라에 대한 의존도가 좀 더 높아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앞서 언급한 전기전자 업계 관계자는 “국내 메모리⋅디스플레이 업체가 이미 애플에 적잖은 비중으로 부품을 공급하고 있기 때문에, 중국 메모리⋅디스플레이 업체와 협업을 중단하는 것이 애플 제품 생산에 큰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가장 문제가 되는 점은 디스플레이나 메모리 공급보다도 생산입니다. 애플은 폭스콘, 페가트론과 같은 대만 전자기기 생산업체에서 자사 제품을 생산하고 있는데요, 해당 공장이 대부분 중국에 위치해 있죠.

게다가 한 반도체 시장 전문가에 따르면, 최근에는 폭스콘과 페가트론이 중국 전자기기 생산업체 럭스쉐어에 공장을 팔아 넘기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간 사용하던 생산라인이 중국으로 넘어가면서 애플은 제품 생산 시 중국에 크게 의존하게 됐죠.

다행인 점은 애플이 미리 인도, 베트남 등지에도 손을 뻗어 놓았다는 것입니다. 그 중에서도 애플이 특히 주목하고 있는 국가는 인도입니다.

애플은 이미 베트남과 인도에 위치한 폭스콘⋅럭스쉐어 공장을 이용해 제품을 생산하고 있는데요, 해당 생산라인에서 만드는 물량을 더 늘릴 것으로 예상됩니다. 일각에서는 중국 내수용 제품은 중국 공장에서, 그 외 제품은 인도⋅베트남 공장에서 생산한다고 보고 있기도 하고요.

다만 애플이 중국에 법인을 따로 설립할 가능성은 낮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습니다.

한 반도체 시장 전문가는 “가능성이 완전히 없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미국이 중국 반도체 산업을 철저하게 규제하고 있기 때문에 자국 기업뿐만 아니라 우호국 주요 반도체 기업에도 제재를 가할 수 있다”며 “같은 맥락에서 애플의 중국 지사 설립을 미국 정부가 보고 그냥 두지 않을 것”이라고 예측했습니다.

아무리 세계 디바이스 시장과 생태계를 제패하고 있는 애플이라고 해도 정부의 규제 앞에서는 꼼짝 못하고 있죠. 이후 애플이 어떻게 미국 정부의 요청과 중국 시장 사이에서 줄타기를 할 지, 주목됩니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배유미 기자>youme@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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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댓글

  1. “미국이 중국과 밀월관계를 맺는 ” –> “애플이 중국과 밀월관계를 맺는” 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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