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대.출] 협업 메신저 잔디 UX 기획팀은 이렇게 일한다
[남혜현의 대신 출근] 사람 구하기 힘드시다고요? 네? 그 회사, 이름은 들어봤는데 어떻게 일을 하는 덴지는 잘 모르겠다고요? 네, 그래서 제가 대신 다녀왔습니다. 남혜현의 대신 출근, 줄여서 남.대.출. 사람을 구하는 팀에 찾아가서 신입으로 하루 일하면서, 이 조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무슨 일을 하는지 독자님들 대신 샅샅이 훑어봅니다. 두번째 회사는 토스랩(잔디)이고, 부서는 ‘UI/UX팀’입니다.
[오늘의 출근지_토스랩 UI/UX팀]
[box type=”bio”] 토스랩은 어떤 곳?
기업에서 쓰는 메신저 기반 업무 협업툴 ‘잔디’를 운영한다. 2014년 창업한 8년차 스타트업. 클라우드 서비스인 잔디는 주제별 대화방, 파일 무기한 저장, 스마트 검색, 할 일 관리, 화상 회의 , 업무용 이모티콘, 문서 미리보기, 외부 서비스 연동 등 협업에 필요한 기능을 제공한다. [/box]
신입에게 주어진 첫 번째 미션은 인사다. 출근 첫날 회사를 한 바퀴 돌면서 구성원 모두와 인사를 나눈다. 나의 일일 팀장, 벨라(조아라 기획자, 이 회사는 서로를 영어 이름으로 부른다)가 담임선생님처럼 내 옆에 섰다. UI/UX(사용자경험/사용자인터페이스)팀의 리더인 그를 따라다니면서 “제가 얼굴은 이렇지만, 오늘은 막내입니다”라는 말을 대략 열다섯번은 한끝에 자리에 앉았다. 잔디 로고 티셔츠를 입은 진(양진호 최고운영책임자)이 잔디색을 옷을 입고 출근한 내게 엄지척을 해주었다. 자신을 이 회사 최고 훈남이라고 소개한 또 다른 동료에게는 적절한 대답을 찾지 못한 내가 엄지척을 했다.
기획자는 어떠한 일을 하는가
잔디는 원래 공원이나 경기장처럼, 사람들이 자주 보고 쓰는 곳에 심는다. 자주 깎고 모양을 다듬어 관리해야 미관에도 활용성에도 좋다. UI/UX 팀이 하는 일이 그렇다. 잔디는 이제 꽤 많은 기업의 컴퓨터에 깔린 협업툴이다. 토스랩 측 발표에 따르면 누적 사용팀이 30만, 이용자 수가 240만명이다. 많이 깔았다고 끝이 아니고, 보기 좋고 쓰기 편하도록 계속 다듬고 관리해야 한다. 이 일이 UI/UX 팀의 핵심이다. 이들이 잔디 서비스의 디자인과 사용자경험을 만들어 낸다.
“저는 무슨 일을 하면 될까요?”라고 묻는 신입에게, 벨라가 메신저로 PPT 파일 하나를 건넸다. 기획자와 디자이너로 구성된 UI/UX팀에서 벨라도 기획 일을 한다. 벨라가 내게 보낸 것은 서비스 기능 업데이트를 위한 기획안. 잔디 앱을 샅샅이 훑으면서 개선점을 찾아 내야 하는데, 여기 앉은 신입은 잔디력이 짧다. 벨라가 찾아낸 기능 수정 방향을 PPT 파일로 만들어 보면서 기획자가 하는 일을 맛보기로 했다.
미션) 협업툴 잔디 내 ‘할 일 메뉴’에서 ‘링크 업로드’ 옵션 추가
어떤 일을 했냐고 물으신다면, 잠깐 요약합니다. 업무 협업툴인 잔디 안에는 ‘할 일’ 이라는 메뉴가 있다. 간단한 업무 개요와 일정을 짠 후 이를 함께 하는 팀원과 공유할 수 있도록 해놓은 기능이다. 그런데 여기, 첨부 파일 업로드 메뉴에 링크 추가 옵션이 빠져 있는 게 발견됐다.
링크 추가 없는 게 무어 대수냐고 할 수 있겠지만, 이게 또 없으면 번거롭다. 참고할 웹페이지를 링크만 걸어놓으면 간단할 것을, 그게 없으면 화면을 캡처해 첨부해야 하는 수고로움이 생긴다. 불편을 알았으니 이제는 어떻게 고치는 게 좋을지 정리해야 할 일이 남았다. 그게 내게 주어진 업무다.
단순히 내가 PPT 파일을 만들 수 있는지를 알아보려고 이 일이 할당된 것은 아닐 터다. 파일을 명확하게 작성하는 일 자체가 꽤 중요하다. 그래야지만 기획자의 의도가 협업하는 개발자, 디자이너에게 잘 전달될 수 있어서다.
흔히들 기획자가 홀로 화면을 설계한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 메신저를 비롯해서 우리가 흔히 쓰는 모든 서비스는 ‘기획자-개발자-디자이너’라는 삼각편대의 노고를 바탕으로 만들어진다. 디자이너와 개발자도 모두 기획에 참여한다. 따라서 기획자의 주요한 덕목 중 하나가 설득의 기술이다. 자신이 발견한 문제와 개선 방향을 개발자와 디자이너가 납득하고, 의견을 더해 업데이트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이날 할당된 PPT 작업은 개발자와 디자이너의 작업 효율화와 의견 요청을 위한 일종의 제안서 작성인 셈이다. 모두가 이해하기 쉬운 명료한 PPT를 만들어야 한다.
일이 주어졌다고 해서 혼자 뚝딱 할 수 있다면, 그렇다면 사수가 서운할 일이다. 나의 모자람은 사수의 뿌듯함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옆자리 사수 앤더슨(장기원 기획자)에게 SOS를 쳤다. 앤더슨은 잔디 3개월 차로, 의욕 넘치게 잔디를 흡수하는 중이다. 친절하게 설명하는 앤더슨에게 물었다. 기획을 할 때 가장 중점에 두는 것은 무엇인가요?
“기존 고객들이 눈치채지 못할만큼, 조금씩 단계적으로 서비스가 바뀌어 나가고 있어요. 기능 추가가 있고 변화가 되더라도 기존 이용자들이 불편하지 않게 쓸 수 있게끔 하는 그런 부분에 중점을 둡니다.”
이 말에는 ‘오래된 서비스’의 기획자와 디자이너가 하는 고민이 함축되어 있다. 예컨대 새로 선보이는 서비스는 없던 것을 만들어내는 것이므로 파격적 시도가 가능하다. 그러나 잔디는 8년차 서비스. 매번 완전히 다른 UI를 만들어내면 이용자는 혼란스러울 것이다. 당장, 마이크로소프트가 ‘시작’ 버튼을 숨긴 PC 운영체제(OS)를 선보였을 때 좌절한 경험이 내게도 있다. 이용의 혼선을 막기 위해서라도 “이게 과연 잔디에 필요한 기능인지, 어떻게 사람들이 효율적으로 업무를 할 수 있을지”를 최우선에 놓고 기능 추가를 고민한다.
기획자에게 ‘질문’이 중요한 이유
팀에는 나보다 한 달 먼저 입사한 기획자 동기(뻔뻔)가 있다. 점심을 먹으면서, 그의 입사 후일담을 들었다. 경력 공채에 지원한 알렉스(정승현 기획자)는, 잔디의 장단점을 분석하고, 어떤 부분을 어떻게 수정하면 좋을지를 기획안으로 만들어 면접에 들어왔다. 그리고는 면접관보다 더 많은 질문을 쏟아냈다. 결과는 보다시피 합격. “질문을 많이 하는 것”을 장려하는데, 이런 문화는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보지 않게 하는 효과가 있다.
대화를 종합해보면, 기획자가 하는 일은 사실 질문에서 시작한다. 기획자는 스스로 불편을 찾거나, 혹은 이용자들로부터 접수된 의견을 모아 기능 개선 의뢰를 준비한다. 지금의 서비스가 불편하지는 않는가, 어떻게 바꾸면 효율적인가를 찾아내는 능력은 평소 스스로에게든 남에게든 질문하는 것에서부터 비롯되는 것 아니겠나.
그렇다면 어떤 이들이 기획에 적합할까? 기획자가 어떠한 일을 하는지는 다소 모호한 부분이 있다. 이름이 멋있는 것에 비해, 어디에서도 제대로 가르쳐 주는 업무는 아니라서다. 예컨대 개발과 디자인은 학교에서 전공 과목으로 만들어져 공부를 시키지만, 기획은 그렇지 않다.
그래서 기획자는 업무 현장에서 다듬어진다. 벨라에게 어떤 사람이 기획을 잘 할 수 있는지를 물었는데 “업무 몰입도와 이해도”를 꼽았다. 결국 기획은 서비스의 최전방을 맡는 일이다. 내게 떨어진 미션 외에, 서비스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도가 높아야지 서비스 개선을 이끌어낼 수 있다. 하나의 기능 개선이 다른 기능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도 업무 이해도를 키워야 하는 이유 중 하나다.
그렇게 점심을 마치고 사무실로 돌아오는 그때, 밥 동료였던 리안(김란영 매니저)이 내게 귓속말을 한다.
“혹시 그거 아세요? 혜현님이 7년 전 토스랩에 온 날도 7월 21일 이었던 거요”
소오름, 소오름. 이 세상에는 정말로 신이 있고, 사람은 운명의 장난에 따라 사는지도 모르겠다. 토스랩에 출근한 이날은 7월 21일. 개인적으로는 토스랩에 취재차 방문한 것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2015년 즈음에, 처음 출근형 체험 기사를 기획했을 때도 토스랩에 갔었다. 그런데,
헐. 허얼. 토스랩은 당연히도 내부 메신저와 협업툴로 잔디를 쓴다. 잔디는 경쟁력으로 ‘무한 파일 저장, 대화 이력 검색’ 같은 걸 내걸었는데, 따라서 그 안에는 이 회사 창업 이래 모든 자료와 대화가 남아 있다. 7년 전 내 취재 차 방문 이력도 말이다. 이것은 운명인가.
지난 7년 간, 토스랩 잔디는 같은 듯 달라졌다. 기업용 협업툴이라는 뼈대는 같으나 그 일을 해나가는 구성원들이 대부분 바뀌었고 인원도 늘었다. 2015년엔 스무명이던 토스랩의 인원이 지금은 대만 지사를 포함해 75명이 됐다. 서울 강남 스파크플러스 한 층을 터서 쓰는데, 곧 공간이 부족해질 전망이다. 왜냐, 계속 충원 중이니까.
[box type=”bio”] 출퇴근은 어떻게 하나요?
기본적으로 회사로 출근이고, 몇시부터 몇시까지 일할지는 스스로 정한다. 그리고 잔디 내 자신의 프로필에 업무 시간을 기재해 놓을 수 있어, 다른 팀원이 언제 협업을 요청해야 할 지 알 수 있게 했다. 그렇다고 재택하는 길이 막혀있는 것은 아니며, 육아를 병행하는 부모는 일주일에 이틀을 재택하는 ‘엄빠일하잔디’를 선택할 수 있다. [/box]
왜 매년 UI를 바꿔야 하나요?
잔디는 매년 대규모 업데이트를 한다. 일년 동안 잔디를 쓰는 고객들로부터 받은 피드백을 모아서 덜어낼 건 덜어내고 더할 건 더한다. 올해 잔디는 창사 이래 가장 큰 디자인과 기능 변화를 준비한다. 스물두번째 버전의 잔디다. 신입인 내게는 그중 일부만 공개됐는데, 화면의 맨 오른쪽에 존재해왔던 메뉴바가 오른쪽 상단으로 옮겨가고, 또 캘린더 기능을 새롭게 더하는 것이 포함됐다.
여기까지 말하면, 아니 그게 무슨 큰 변화냐고 묻는 이들이 생길텐데, 그건 또 사람의 습관이라는 것을 대충 보고 하는 소리다. 늘 오른쪽에 있던 메뉴를 상단으로 올린다는 것은, 일하는 이들이 오른쪽으로 돌리던 시선을 화면 상단으로 옮기도록 습관의 변화를 만들어 내야 하는 일이다. 변화가 익숙함보다 이득을 줘야 하기 때문에 서비스를 기획하는 이들은 이런 종류의 결정에 심사숙고한다.
잔디 팀이 메뉴바를 상단으로 옮기면서 노리는 이득은, 화면을 분리해 쓰는 스플리트 뷰를 널찍하게 쓰고 싶다는 요구를 충족시키는 것이다. 스플리트 뷰를 넓게 쓰게 되면 잔디 내에서 동시에 두 명하고 이야기를 나누는데 불편함이 줄어든다. 이미 이용자들이 의견을 개진해온 것으로, 이번 대규모 업데이트에 포함됐다.
개발자와 협업은 어떻게 이뤄질까. 폴, 그러니까 서준호 최고기술책임자(CTO)와 함께하는 회의에 참석했다. 2주에 한 번, UI/UX팀이 정례로 갖는 회의다. 통상 이때 기획자와 개발자, 디자이너가 진행중인 기능 개편을 놓고 의견을 나눈다. 예컨대 기획자가 새 아이디어를 내면 이것이 기술적으로 가능한지 살펴보고 더 나은 디자인을 골라내는 일이 이 회의에서 이뤄진다.
오늘의 주제는 앞서 언급한 ‘업데이트’. 7말8초에 이뤄질 이 업데이트 작업이 한창 막바지다. 앤더슨이 중심이 되어 진행한 캘린더 추가 작업에 대한 이야기가 오갔다. 그간 잔디에는 캘린더 기능이 없었다. 내근직이 많은 조직에서 캘린더가 크게 쓰일 일이 없기 때문에 복잡도를 줄이기 위한 방안으로 캘린더를 추가하지 않아왔다.
그러나 잔디를 쓰는 이용자가 늘어나면서, 잔디 안에서 캘린더 기능을 함께 활용하면 외부 프로그램으로 나갈 시간을 줄이기 때문에 업무 효율이 늘어날 것이란 의견이 계속해 들어왔다. 이날 회의에서는 아주 작은 부분까지 논의가 이뤄졌는데, 예컨대 왼쪽 상단의 잔디 로고를 캘린더 아이콘이나 혹은 각 조직을 나타낼 수 있는 사진으로 갈아 끼울 수 있게 바꿔서 이용자가 헛갈릴 일이 없게 해주는 게 어떻겠느냐 등의 이야기다. 여러 안을 실시간으로 바꿔가면서 확인해보고 그 자리에서 의견 교환과 결정이 빠르게 이어졌다.
이렇게 결정된 사안은 다시 UI/UX 팀으로 넘어온다. 사용자가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디자인을 잘 심어야 하기 때문이다. 폴은 “기술적으로 기능 업데이트할 때 제일 처음 이용자에게 닿는 부분이 UI”라면서 “어떻게 보여지느냐를 이 팀에서 담당한다”고 설명했다.
회의는 구성원을 바꿔서 또 한 번 이어졌다. 이 회사에서 가장 고객과 가까운 팀은 어디일까? 당연히 CX팀이다. 앞서 언급한 캘린더 기능 포함 등, 고객이 원하는 모든 것은 CX 팀을 일차로 거친다. 업데이트가 이뤄지고 나면 “이게 왜 바뀌었느냐”를 묻는 이용자들을 응대하는 것 역시 CX 팀이 하는 일이다. 이들은 최전선에서 고객의 피드백을 듣는다.
따라서 매월 정기적으로 자리를 갖고, 이용자들로부터 들어온 여러 의견을 전달받는 것은 UI/UX 팀에게 매우 중요한 일이다. 또, UI/UX 팀은 최근 준비 중인 업데이트 상황을 CX 팀과 공유하면서, 향후 이용자들이 어떤 의견을 내올지를 미리 유추해보기도 한다.
참여한 구성원들이 단 한 명도 빼지 않고 의견을 내는데도 불구하고 회의는 길지 않았다. 최근 업데이트 되고 있는 부분을 보면서 CX 팀원들은 미리 정보를 확인, 고객 응대 방안을 마련하는 모습을 보였다. 회의에는 진(양진호 COO)이 참여했는데, 지난 8년간 토스랩을 지켜온 지박령(?)이다. 실제로 7년전 이 회사를 취재 왔을 때, 나는 진을 인터뷰한 경험이 있다. 그에게 “7년 후에 다시 와야겠다”고 인사를 건넸더니 “7년 후에는 사옥에서 보자”는 답이 돌아왔다.
이 귀여운 오리는, 잔디의 마스코트다. 현관에서 사람들을 맞이한다. 퇴근 하는 이에게 오늘 하루 수고했다는 인사를 건네는 것 같다. 그럼, 토스랩 여러분. 7년 후인 2029년 7월 21일에 만나요!
… 말하고 검색해보니, 그날 토요일이네요. 혹시 잔디에 주말 당직 제도가 있나요?
[지난 남.대.출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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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바이라인네트워크
<남혜현 기자> smilla@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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