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반도체 지원법, 공장 없는 팹리스는 소외될까?

미국 정부가 반도체 지원법 통과에 속도를 내고 있는 가운데, 일부 기업에게만 특혜가 돌아갈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반도체 제조와 설계를 모두 담당하고 있는 인텔이 가장 이득을 많이 보고, AMD, 퀄컴, 엔비디아 등 반도체 설계만을 하고 있는 팹리스 기업은 혜택을 보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로이터통신, CNBC 등 외신은 18일(이하 현지시각) “상원에서 제기한 520억달러(약62조원) 규모의 반도체 지원법은 인텔과 같은 제조업체들에게만 불균형하게 혜택을 줄 가능성이 있다”면서 “전반적으로 정부에서는 팹리스를 위한 지원책에는 큰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 분위기이고, 이 기세가 이어지면 AMD, 퀄컴, 엔비디아 등의 기업은 보조금을 받지 못할 수도 있다”고 보도했다.

미국이 처음 반도체 지원법을 발의한 이유는 자국 반도체 제조역량을 강화하기 위함이 크다. 조 바이든 대통령이 반도체 생산라인에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된 것도 코로나19 팬데믹을 기점으로 미국의 반도체 공급망이 취약하다는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미국은 자국 내 반도체 공급망을 강화해 산업의 한계를 극복하고, 중국 반도체 산업을 견제하겠다는 목적을 가지고 반도체 법안 통과를 추진하고 있다. 애초에 반도체 지원법이 제조 역량 강화 측면에 더 초점을 맞출 수밖에 없는 이유다.

하지만 상⋅하원에서 각각 통과한 반도체 지원법을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팹리스 관련 지원 여부가 차이 난다. 상원에서 통과한 법안에는 팹리스 세액 공제 등 관련 조항이 포함되지 않았던 반면, 하원이 발의한 법안에는 반도체 제조 관련 지원과 더불어 팹리스의 칩 설계 활동에 대한 지원 조항도 포함돼 있다. 따라서 팹리스 기업 입장에서는 하원의 반도체 법안을 더 지지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 미국에서 생산라인 증설을 진행하거나 계획하고 있는 기업은 인텔, 마이크론, 텍사스인스트루먼트, TSMC, 삼성전자 등이다. 그 중에서도 인텔은 지난 해 미국 애리조나에 공장 두 곳을 착공한 데 이어, 지난 1월에는 미국 오하이오주 콜럼버스시에 200억달러(약 24조원) 규모의 반도체 공장 두 개를 건설한다고 밝혔다. 반도체 법안이 통과되면 앞서 언급한 기업은 세제 혜택 등의 이득을 볼 수 있다.

반면 AMD, 퀄컴, 엔비디아 등 팹리스 기업은 자체 칩을 만들기는 하지만, 팹리스이기 때문에 파운드리 협력사를 통해 반도체 를 제조한다. 따라서 상원에서 제출한 법안에 힘이 실릴 경우 팹리스 기업이 공장 건설 과정에서 보조금을 받거나 공장 가동 시 세제 혜택 등의 직접적인 이득을 얻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미국 주요 팹리스 기업은 반도체 지원법에 대한 공식적인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워낙 민감한 사안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로이터통신, CNBC 등 외신과 인터뷰를 진행한 한 미국 팹리스 업계 관계자는 “인텔은 반도체 생산과 설계를 모두 담당하는 종합반도체기업(IDM)이기 때문에 미국 반도체 지원법으로 300억달러(약 39조원) 정도의 지원을 받을 수 있지만, 다른 팹리스 기업은 한 푼도 못 받을 수 있다”면서 “팹리스에 대한 지원책 없이 반도체 지원법 최종 통과가 이뤄진다면, 미국 내에서도 소수의 회사만 정부의 지원을 받게 될 것”이라고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일각에서는 인텔이 미국 정부와 친화적인 기업이기 때문에 먼저 혜택을 주고, 그 뒤에 팹리스 기업에 대한 지원이 이어질 것이라고 추측하기도 한다. 한 반도체 시장 전문가는 “인텔은 미국 정부 친화적인 기업 중 하나이며, IDM 2.0도 정부의 기조와 들어맞고 있는 상황”이라며 “미국 내 반도체 생산라인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으면, 미국 정부는 팹리스 기업이 자국 내에서 반도체를 생산하도록 유도할 수도 있다”고 예측했다.

우선 당장은 인텔 등 반도체 제조업체에 전폭적으로 지원해 파운드리 역량을 강화하되, 추후 팹리스 기업이 자국 내에서 반도체를 생산할 시 특혜를 주거나 설계 역량을 확대할 수 있는 지원책을 내놓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어떤 반도체 지원법이 통과되든 인텔은 지원금 측면에서 이득을 볼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인텔은 미국 정부와 중국 관련 규제에 반대하기 위한 로비를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정치 전문지 폴리티코(Politico)는 “미국 정부는 기업에 대한 중국 투자를 제한해 반도체 지원금을 가져갈 수 없도록 해야 한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는데, 이는 아직 협상 중이고 반도체 업계의 강력한 논의 대상 중 하나”라며 “인텔을 포함한 기업과 미국 반도체산업협회(Semiconductor Industry Association, SIA)는 현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중국 규제 방안에 대해 반대하고 있다”고 18일 보도했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배유미 기자>youme@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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